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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83화 (183/200)

제183화

―끼히히! 히히힛!

키메라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긴 다리를 휘둘렀다.

채찍이나 다름 없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위력을 내며 지화자를 몰아붙였다.

“큭……!”

가까스로 키메라의 공격을 막아낸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가슴 부근의 상처가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그냥 불편한 정도면 몰라도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지화자는 정신을 붙잡기 힘들었다.

“괜찮냐?”

지화자가 고개를 저었다.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그 말에 서이안이 물었다.

“너? 아님, 쟤?”

“나.”

지화자가 가쁘게 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조심해. 아무래도 저 다리에 독이 묻어있는 것 같으니까.”

“독?”

서이안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독이라면 상대하기 쉽지.”

독주, 서이안.

스콜피언의 길드장인 그는 ‘독’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능통했다.

“여기에서 얌전히 쉬고 있어.”

서이안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활짝 웃어주고는 키메라를 향해 땅을 박찼다.

―끼히히히!

수십 개에 이르는 얼굴에서 같은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듣기 거북하네.”

순식간에 그들 앞에 도착한 서이안이 주먹을 치켜 들었다. 보랏빛 불꽃이 그를 휘감는 찰나.

―끼하하하하!

키메라가 여러 개의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미친!”

서이안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몸을 뒤로하며 키메라가 휘두르는 것들을 피했다.

저건 스쳐도 사망이다.

시멘트를 가볍게 으스러뜨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지화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만하게 가더니.”

“시끄러.”

서이안이 얼굴을 붉혔다.

“저 괴물은 도대체 뭐야?”

“키메라.”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서이안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리고는 말했다.

“저것들, 도대체 어떤 몬스터랑 결합이 된 거야?”

“나야 모르지.”

그걸 알면 지금보다도 더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을 터.

“아마, 우리가 만나본 적 없는 몬스터와 결합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게 가능해?”

“지유화라면 가능하지.”

그녀는 자신의 손에 죽은 후 여러 세계를 떠돌아다닌 듯했으니 말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르겠지마는.’

어쨌든 지유화라면 자신들이 만난 적 없는 몬스터를 만나 그것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저 키메라를 쓰러뜨리는 것.’

어떻게든 이곳에서 저 키메라의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서이안, 합 좀 맞추자.”

“뭐?”

서이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가, 나랑?”

“보통은 반대로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놀라서 그러지!”

서이안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세상만사 혼자 사는 줄 알았던 지화자의 입에서 합 좀 맞추자는 말이 나오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지랄하네.”

자신과 동갑이면서 세상 다 산 것처럼 구는 모습이 우스웠다.

“농담할 시간에 나한테 제대로 맞출 생각이나 해.”

“네가 나한테 맞춰야지.”

서이안이 지화자의 옆에 서서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부상 입은 몸으로 제대로 움직이기는 하겠어?”

지화자가 물끄러미 그를 보다.

타앗!

빠르게 움직였다.

“야! 지화자!”

서이안이 뒤늦게 그녀를 쫓았다.

“합 좀 맞추자면서 먼저 튀어나가는 게 어디있어!”

지화자가 그 목소리를 무시하며 키메라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이 키메라를 집어삼켰다.

―끼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건지 웃음을 터트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끼하하하하!

키메라가 이번에는 웃음소리가 분명한 것을 터트리며 지화자를 향해 수 개의 다리를 뻗었다.

지화자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것들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외쳤다.

“서이안!”

지화자를 따라잡은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동시에 서이안은 주먹을 휘둘러 지화자를 노리던 것들을 가볍게 쳐냈다.

―끼이이잇!

키메라가 분하다는 듯 이를 드러냈다.

수십 개의 얼굴이 같은 표정을 짓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징그럽네.”

서이안이 짧게 혀를 차고는 제 손에 들려있는 여자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그보다 너는 제정신이야?!”

“시끄러. 머리 울려. 안 죽었으니 됐잖아.”

“되기는 뭐가 돼!”

빼액 내지르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귀를 막는 찰나.

―끼아아아!

키메라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쉴 틈을 안 주네!”

서이안이 지화자를 안아 들고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서이안, 하나 물어봐도 돼?”

“안 돼.”

칼날과도 같이 움직이는 것들을 피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런 와중에 질문이라니.

절대로 사양이었다.

하지만 지화자가 누구인가?

남의 사정따위 신경 쓰지 않는 대한민국의 랭킹 1위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태연하게 서이안을 향해 물었다.

“너 혼자 저거 죽일 수 있겠어?”

“장난하냐?”

서이안이 얼굴을 찌푸렸다.

“죽일 수 있었으면 진작 죽였겠지! 너야말로 혼자서 상대할 수 없어서 나한테 합을 좀 맞추자니 뭐니 한 거잖아!”

그렇게 짜증을 부렸건만.

“지화자?”

돌아오는 목소리가 없었다.

서이안이 얼굴을 찌푸리고서 제게 안겨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빌어먹을!”

지화자는 금방에라도 죽을 사람처럼 끙끙 앓고 있었다.

서이안이 황급히 키메라로부터 말리 떨어졌다. 적당히 안전한 곳을 찾은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야! 정신차려!”

하지만 지화자는 서이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가쁘게 숨을 내쉬기만 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헤집던 서이안이 뒤늦게 떠올렸다.

“조심해. 아무래도 저 다리에 독이 묻어있는 것 같으니까.”

지화자는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독.’

서이안이 지화자의 상처를 살피고자 할 때였다.

―끼히히! 히히힛!

키메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수십 개의 다리가 쇄도했다.

서이안이 지화자를 보호하면서 그것들을 막으려고 드는 순간.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벽이 생성됐다.

“서이안 길드장님!”

“하태균?!”

벽을 만들어낸 사람은 다름아닌 하태균이었다. 그를 부르기 무섭게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렸다.

“가하성도 온 거야?”

“네, 그렇습니다.”

하태균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아!”

하지만 지화자는 아니었다.

어찌 됐든 키메라의 공격을 피했다. 서이안이 그에 안도하며 다시 지화자를 살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상처 좀 보려고 그래. 이 자식, 저 괴물한테 가슴 부근이 뚫렸거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공격에 당했나 봐.”

“그런!”

“어쨌든, 이 녀석은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너희끼리 저 괴물 좀 막고 있어 줘. 이 녀석이 당한 건 아무래도 독인 것 같으니까.”

말했듯, 독은 서이안의 전문.

그러니 그는 지화자의 상처를 손쉽게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돌아버리겠네.”

괴물에게 꿰뚫렸던 곳은 지화자가 불로 지져 치료를 해놨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죽어 있었다.

독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서이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입을 열었다.

“지화자, 내 말 들려?”

지화자는 대답이 없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듯, 가쁘게 숨만 내뱉고 있는 그녀를 향해 서이안이 목소리를 높였다.

“너, 이대로 정신줄 놓으면 안 된다? 죽는 순간 내가 지유화 님 다시 살려낼 거야. 알겠지?”

지유화.

평소라면 그 이름 석 자에 당장에라도 반응할 지화자는 이번에도 조용했다.

“지화자! 정신 차리라고!”

서이안이 다급하게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서이안 길드장님! 피하십시오! 얼마 못 버틸 것 같습니다!!”

하태균이 외쳤다.

서이안이 그에 지화자를 안고서 몸을 움직였다.

쿠구궁!

하태균이 생성한 벽이 부서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태균!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서이안 길드장님은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저희 팀장님은 어떠십니까?!”

서이안이 입을 다물었다.

빈말로도 괜찮다고 할 수가 없었다. 답이 없는 그를 하태균이 다시 불렀다.

“서이안 길드장님!”

“시끄럽고! 저 괴물부터 막아!!”

지화자가 잘못됐다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하면 사기가 떨어질 거다.

‘이게 전쟁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전쟁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로 인해 탄생한 키메라와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화자가 필요했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좀!”

서이안이 회복 포션을 꺼내들었다. 힐러의 치료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나을 거다.

그렇게 그가 억지로 지화자에게 회복 포션을 먹이려고 할 때였다.

“그거로 되겠어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이안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당연히 저희 팀장님 도우려고 왔죠.”

유은영이 싱긋 웃었다.

“때마침 잘 온 것 같네요.”

그녀가 지화자를 향해 곧장 힐을 시전하며 재잘거렸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도로는 다 부서져 있지. 키메라는 계속 나타나지. 또 사람들은 도와 달라고 울지.”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는 도중에 리아 씨랑 라이 씨를 못 만났다면 고생 꽤 했을 거예요.”

어떻게 됐든 이곳에는 도착했겠지만 말이다.

그러는 사이 치료가 끝났다.

유은영이 손가락 끝에서 번지던 빛을 거두고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팀장님, 일어나세요.”

“못 일어날 거야. 저 녀석 치료하려면 S급 힐러가 와야만… 어? 뭐, 뭐야……!”

서이안이 입을 쩍 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여자가 눈을 떴기 때문이었다.

“정신이 좀 들어요?”

“언니……?”

지화자가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꿈인가?”

유은영이 그 말에 지화자의 뺨을 쭉 잡아당겼다.

“아야.”

지화자가 앓는 소리를 내고는 씩 웃었다.

“꿈 아니네.”

“네, 꿈 아니에요.”

유은영이 그녀를 보며 싱긋 웃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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