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가 랭킹 1위가 되어 버렸다-186화 (186/200)

제186화

25. 구원

유은영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아아……!”

“아파! 아파아!!”

“아가! 우리 아가 어디 있니?!”

“으아아앙!”

보이는 거라고는 어둠뿐인 공간 속에서 수십, 수백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분명 자신의 귀에 들린 건, 한 사람의 목소리뿐이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유은영이 힘겹게 숨을 토해난 후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아.”

오른쪽 다리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뭉개져있었다. 다른 몸도 성한 곳이라고는 없었다.

‘그래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유은영이 픽 웃고는 스스로에게 힐을 시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 언제인가부터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게 참 웃겼다.

어쨌든 뭉개진 다리는 곧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상처투성이였던 몸의 다른 부분도 곧 회복되었다.

그런 후에야 유은영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으아아아앙!”

울부짖는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분명한 아이의 울음 소리였다.

유은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마아! 엄마아아!!”

보이는 거라고는 어둠뿐이었는데 아니었다.

“얘.”

작은 체구의 아이가 흐릿한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유은영이 아이에게 다가가서는 다시금 목소리를 내었다.

“얘, 괜찮니?”

내뱉은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그야, 아이는 어떻게 봐도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굴의 반이 일그러져있는 아이가 유은영을 발견하고는 훌쩍였다.

“엄마가 안 보여요. 그 언니가 말 잘 듣고 있으면 우리 엄마가 나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그랬었는데.”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이가 말한 ‘언니’가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지유화.

‘당신은 도대체……!’

유은영이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만든 걸까?

유은영은 욕지거리를 토해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러 담고는 물었다.

“이름이 뭐야?”

“왜요?”

“엄마 찾아주려고 그러지.”

아이가 눈물이 가득한 두 눈을 끔뻑였다.

“우리 엄마 찾아줄 수 있어요?”

“응.”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이렇게 보여도 꽤 대단한 사람이거든.”

“진짜?”

“응, 진짜.”

유은영이 서글프게 미소를 내보이며 아이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할게.”

아이가 물끄러미 유은영이 내민 손을 보다가 작디작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약속이에요.”

그러면서 아이는 말했다.

“은영이에요. 유은영.”

유은영의 두 눈이 흔들렸다.

유은영이 입술을 파르르 떨다 이내 억지로 미소를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언니도 은영인데.”

“진짜요?”

“응, 언니도 유은영이야.”

“우와!”

아이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의 반쪽이 일그러져있다고 해도 유은영은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언니, 이름 가르쳐줬으니까 우리 엄마 꼭 찾아줘야 해요.”

“그래.”

아이와 맞닿은 손가락 끝에서 빛이 환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약속 꼭 지킬게.”

흐릿한 모습으로 형상을 유지 중이었던 아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언니.”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사라진 것이다.

유은영이 자신이 터트린 빛과 함께 사라진 모습을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다고 언니가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구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했건만, 유은영은 이런 식으로밖에 키메라가 된 사람들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지화자가 걱정한 것처럼 키메라는 이미 곳곳에 치명상을 입은 체 죽어가고 있었으니.

키메라의 목숨이 다하기 전에, 이 괴물과 섞여버린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줘야만 했다.

“아파! 아파아!!”

이윽고 괴로움에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은영이 들은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녀는 고민도 않고 고통에 끊임없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아아악!”

차라리 죽여 달라며, 아니. 살려달라면서. 몇 번이고 계속해서 말을 바꾸는 그의 손을 유은영은 다정하게 잡아줬다.

“미안해요.”

명색이 S급 각성자면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S급 힐러가 됐으면서 이런 식으로밖에 구할 수 없다니.

“정말로 미안해요.”

고통에 울부짖던 남자가 눈물을 뚝뚝 흐리며 유은영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그가 터트리고 있는 빛을 말이다.

“따뜻해…….”

이내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아프지 않아.”

그 말을 끝으로 끊임없이 고통에 울부짖던 남자 역시 사라졌다.

유은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추모하듯 두 눈을 슬며시 감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아가! 우리 아가 어디 있니?!”

아직, 구해줘야 할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키메라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저들 모두를 ‘인간’으로 생을 다하게 해야 했다.

유은영은 그렇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키메라가 죽은 이후, 자신이 어떻게 될 건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로.

“아가! 아가!!”

유은영은 아이를 찾는 여인을 꼭 끌어안았다.

도대체 이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지유화의 손에 잡혀 키메라가 되고 만 걸까?

그녀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궁금하다고 해서 이제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사람들을 편안하게 보내주는 것뿐.

“미안해요.”

그렇게 유은영은 사과를 내뱉으면서 자신이 지닌 힘을 사용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세 명…….

유은영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 걸음을 옮기면서 그들을 구원했다.

마지막에 그녀가 만난 사람은.

“또 유은영 씨네요?”

지유화였다.

***

“야, 지화자. 저거…….”

“나도 알아.”

“알겠지! 너도 눈이 달려있는데 보일 거 아니야?!”

키메라의 머리 부근에 달려있던 수십, 수백에 이르는 머리가 모두 사라진 것을 말이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었다.

어느 순간, 머리에 달려있는 얼굴이 하나씩 눈을 감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서이안은 자신의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지화자는 알았다.

유은영이 키메라와 뒤섞인 사람들을 한 명씩 모두 구하고 있는 중이란 것을.

그때, 서이안이 말했다.

“그래, 유은영 씨!”

그가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유은영 씨께서 지금 저 키메라 속에 있잖아! 아니야?”

“맞아.”

“유은영 씨가 저 키메라를 처리하고 있는 중이구나?”

처리라…….

“말은 똑바로 해.”

지화자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처리가 아니라 구원이야.”

“뭐?”

“키메라는 원래 인간이었던 자가 몬스터와 결합되어 탄생한 괴물이잖아.”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언니는 그 괴물에 내재된 인간의 목소리를 들었어.”

“그게 가능해?”

“나야 모르지.”

지화자가 씁쓸하게 웃고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언니가 아니니까.”

유은영과 수십 번도 넘게 몸이 바뀌면서 알게 된 건, 그녀의 몸을 암만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유은영이 아니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상하지.’

그걸 잘 알고 있는데도 자신은 바뀌었다.

남들이 암만 손가락질 한다고 해도 신경이라고는 하나도 쓰지 않던 자신인데.

남들이 어떻게 된다고 해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던 저였는데.

‘바뀌었지.’

이제 아니게 됐다.

지화자가 움직임이 멈춘 키메라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뭐하는 거야, 언니.”

이제 하나 남았잖아.

“어서 구해.”

네가 잘하는 걸 하라고.

지화자는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 쥔 손이 흔들렸다.

‘걱정하지 말자.’

유은영이라면 분명 아무렇지 않게 저 키메라의 몸속에서 나올 테니까.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그때는 자신이 구해주면 되는 일이다.

저 거대한 몸을 검으로 몇 번이고 헤집으면 결국은 유은영을 찾게 되겠지.

지화자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팀장님!”

그녀의 팀원들이 도착했다.

“지화자야!”

리아가 한달음에 달려와 지화자에게 안겼다. 아이를 밀어내려고 했던 지화자가 손을 거두고서는 물었다.

“왜 왔어?”

“당연히 걱정돼서 왔지!”

리아가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외쳤다. 그 뒤를 이어 하태균이 말했다.

“다른 곳은 대충 정리가 끝났습니다. 각 팀장님들께서 정리 중이라서…….”

그래서 지화자를 찾아온 거였다.

“내가 걱정돼서?”

“유은영도 걱정되고!”

리아가 웅얼거렸다.

“지화자도 유은영도 강한 거 알고 있지만 걱정된단 말이야!”

“유은영 씨의 어디가 강하다고 그래?”

“다!”

리아가 또랑또랑하게 외쳤다.

“성격 나쁜 지화자랑 맨날 같이 붙어 있잖아! 그러니까 강해!!”

아니야?

덧붙여 묻는 목소리에 지화자가 멍하니 입술을 벌렸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맞아.”

그러면서 그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니는 강해.”

그러니 저 괴물의 입속으로 뛰어 들어간 거겠지.

키메라와 결합된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끝을 맺게끔 해주고 싶어.

그래서 그런 거다.

“그런데 유은영 씨는 어디 있습니까?”

“저 괴물은 또 왜 저러고 있는 거예요?”

하태균에 이어 가하성이 물었다.

지화자는 움직임을 멈춘 괴물을 바라보며 대답해주었다.

“유은영 씨께서는 지금 저 괴물 안에 있어.”

“네?”

모두가 놀라 물었다.

“화자 누님! 그게 정말이에요?!”

“거짓말이지?!”

라이와 리아의 물음에 지화자가 담담하게 대답을 들려줬다.

“사실이야. 하지만 걱정 마.”

스르륵, 눈을 감는 마지막 얼굴을 보며 지화자가 말했다.

“언니는 괜찮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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