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왜 저래?
유은영과 지화자가 동시에 가진 생각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승민은 웅변 대회를 하는 아이처럼 열변을 토해냈다.
“은영이가 아깝습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가진 거라고는 돈뿐이지 않습니까!”
저 인간이 뭐라는 거야?
지화자가 헛웃음을 흘리는 찰나.
“그건 아니지 않아요?”
가하성이 말했다.
“옛날에야 지화자 팀장님께서는 돈만 많은 개차반이었지.”
뭐라고?
지화자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가하성을 쳐다봤지만 그에게는 그 시선이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은 아니잖아요. 따지고 보면 지 팀장님께서 더 아깝죠.”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어쨌거나 가하성의 말에 리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인성 개차반은 유은영이 됐어!”
“그게 무슨 소리세요, 리아 씨!”
유은영이 울상을 지었다.
인성 개차반이 됐던 건 부정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억울했다.
그야, 그때의 자신은 ‘지화자’였으니까 말이다.
유은영이 한마디 해 달라는 듯 지화자를 쳐다봤지만.
‘저 인간이!’
지화자는 키득거리며 웃고있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지화자와 유은영이 붙어먹으면 누가 더 아깝냐에 대한 토론은 더욱 불이 붙었다.
“은영 누님이 인성 개차반이 됐던 건 맞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잖아. 지금 은영 누님은 개과천선했다고!”
“그건 지화자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지화자가 더 아까워!”
“나는 은영 누님!”
사이좋은 남매가 서로 반대 의견을 내세웠고.
“나는 리아 말대로 지 팀장님이 더 아깝다에 손. 태균 형님은요?”
“나도!”
가하성과 하태균의 의견은 일치했다.
유승민은 분노했다.
“당신들이 봤던 인성 개차반 은영이는 우리 은영이가 아니라!”
텁!
그 입을 지화자와 유은영이 다급하게 막았다.
“뭐야, 왜 그래?”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자, 쓸데없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고기나 구워 먹자.”
“맞아요. 애초에 저랑 팀장님이 잘 맞는 건, 제가 힐러이기 때문이라고요.”
대화의 주제를 돌릴 뿐이었다.
뜬끔없는 주제로 열렬하게 토론을 벌였던 0팀의 팀원들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냥 고기도 아니고 소고기이지 않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배부르게 많이 먹어야 했다.
‘돼지들.’
지화자가 빠르게 사라지는 고기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뭐, 내가 내는 돈은 아니니까 상관없지.’
2차를 쏘기로 결정된 건 유승민이었다. 지금 보니 그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는중이었다.
지화자는 그에 조소를 보내며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14인분 추가요.”
“네, 손님.”
종업원이 돌아간 후, 유승민은 경악했다.
“14인분이라니요! 사람이 몇인데 그렇게 많이 시키는 겁니까?!”
“감자탕집에서 사람 머리대로 시켰다가 순식간에 그릇 비워지는 거 못 봤어요?”
그러면서 지화자는 물었다.
“유승민 씨, 혹시 돈 없어요?”
놀리듯이 묻는 말에 유승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곧, 그가 손을 들었다.
“저기요! 여기 14인분 말고 20인분 치 주세요!”
“와아!”
리아와 라이가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유승민 씨, 괜찮아요?”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가하성과 하태균은 유승민의 지갑을 걱정했으나.
“괜찮습니다. 저 돈 많거든요.”
유승민은 오기를 부렸다.
지화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바보.’
유은영이 호구처럼 구는 오빠를 향해 속으로 짧게 혀를 차고는 지화자에게 귓속말했다.
“우리 오빠, 너무 잘 다루시는 거 아니에요?”
그에 지화자가 비딱하게 웃었다.
“내가 언니 몸으로 저 자식을 몇 번이나 상대했는데.”
잘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저 자식한테 당한 게 좀 많거든.”
정확하게는 쌓인 게 많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되돌려주고 싶거든.”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 사악한 모습에 유은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는 사이 고기가 나왔다.
“우와아아아!”
리아와 라이가 꿀꺽 침을 삼키며 허겁지겁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리아, 라이. 내가 구워줄 테니까 손대지 마.”
가하성이 아이들이 먹기 좋게끔 고기를 노릇하게 구워졌다.
하지만.
“우움.”
지화자의 무릎을 베개 삼아 자고 있던 김지후가 눈을 뜨자.
“지후야, 고기 먹어.”
리아와 라이를 위해 굽고 있던 고기를 모두 김지후에게 줬다.
남매가 멍하니 가하성을 쳐다봤지만 그는 김지후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배고프지? 어서 먹어.”
“형아,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그래, 같이 다녀오자.”
그렇게 가하성이 김지후와 함께 화장실로 떠났다.
“하성이 오빠가 우리 버렸어.”
“맞아. 우리는 이제 뒷전이 됐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해.”
리아와 라이가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지화자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리아, 라이. 세상은 원래 혼자 열심히 살아가는 법이야. 그러니 알아서 고기 구워 먹어.”
“그치만 하성이 오빠가 구워주는 게 더 맛있는데.”
“그리고 하성 형님이 직접 구워준다고도 했었는데.”
리아와 라이가 우물쭈물 구시렁거렸다.
그에 하태균이 나섰다.
“내가 구워줄게! 하성이보다 내가 더 잘 구워!”
라고 했지마는.
“다 탔네.”
“그러게.”
하태균은 값비싼 소고기를 모두 태워 먹었다. 하태균이 작게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불판이, 영.”
자신이 잘못 구웠으면서 도구 탓을 하는 게 우습기 그지없었다.
결국 지화자가 집게를 들었다.
“바보들.”
팀원들을 놀리면서 말이다.
지화자는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를 리아와 라이의 밥그릇에 올려줬다.
나머지 고기는 모두 유은영의 몫이었다.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에요?”
“귀하신 힐러님 몸보신 해야지. 주는 대로 어서 먹어.”
유은영이 활짝 웃었다.
그렇게 입에 넣은 고기는 아주 꿀맛이었다.
“지화자 씨, 고기 왜 이렇게 잘 구워요?”
‘팀장님’이라고 부를 때는 언제고 이제 또 ‘지화자 씨’다.
지화자가 픽 웃고는 말했다.
“높으신 분들이랑 만나면 항상 집게는 내 몫이었거든.”
그래서 고기를 잘 굽게 됐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아마 유승민 씨도 고기 잘 구울걸?”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쌈 싸먹고 있던 유승민이 쿨럭거리며 기침을 토해냈다.
“더럽게…….”
유은영이 질색했다.
유승민은 황급히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고는 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제가 뭘요?”
지화자가 모르는 척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유승민 씨도 고기 잘 구우실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것뿐인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태연하게 묻는 목소리에 유승민은 속이 부글부글 들끓는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조금 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영수증을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머리가 얼얼해진 상태였는데.
‘저 인간이?’
지화자가 계속 도발을 했다.
어쨌거나 유승민은 지화자와 함께 집게를 들었다.
도발하는 대로 걸리는 모습이 조금 우스워 보였지만.
‘보여줘야지.’
유은영에게 자신이 직접 구운 고기를 먹이고 싶었다.
그렇기에 유승민은 적당히 달아오른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려 능숙하게 그것을 굽기 시작했다.
마치, 장인이라도 된 것처럼 놀라운 손놀림으로 말이다.
“유승민 씨, 왜 저러고 있어요?”
가하성이 김지후와 함께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지화자는 그의 질문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앉아서 구경이나 해.”
가 아니라.
“유승민 씨가 구워주는 고기 많이 먹기나 해.”
쉽게 보지 못할 귀환 광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가하성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김지후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깬 김지후가 유승민의 고기 굽는 솜씨를 보고는 말했다.
“나도 저 형아처럼 되고 싶어.”
“안 돼.”
가하성이 단호하게 일렀다.
“저 형아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그치만 나도 저렇게 멋있게 고기 굽고 싶은데! 그래서 형아한테 주고 싶은데!”
“마음만 받을게.”
가하성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2차가 끝이 났다.
* * *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가하성이 김지후를 안은 채 팀원들에게 인사했다.
“지후가 많이 피곤한가 봐요.”
아이는 완전히 잠든 상태였다.
“그래. 먼저 돌아가.”
지화자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 뒤를 이어 유은영도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가하성 씨.”
가하성은 그들을 향해 꾸벅거리며 인사한 후 걸음을 돌렸다.
“나도 그만 갈래. 잠 와.”
“저도요.”
리아와 라이가 크게 하품했다.
“그럼, 저도 리아랑 라이 데리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괜찮겠어?”
“네, 팀장님! 리아와 라이는 오늘 저희집에서 재우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태균도 리아와 라이와 함께 퇴장했다.
남은 사람은 이제 셋.
지화자와 유은영, 그리고 유승민이었다.
유승민 역시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마는.
‘은영이가 남아 있어!’
그러니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때, 지화자가 휴대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셋이서 술집이나 갈래? 아는 사람이 하고있는 술집이 이 근처에 있는데.”
“좋아요!”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승민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지화자 팀장님께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답니까?”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유승민 씨께서는 나를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센터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몇 없지 않습니까?”
“시끄러.”
팀원들도 모두 떠났겠다.
지화자는 유승민을 편하게 대하면서 말했다.
“듣기로는 유승민 씨께서 그렇게 술을 잘한다고 하던데, 기대 좀 할게?”
“누가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내가.”
유승민이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지화자를 쳐다봤다. 그에 지화자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서 따라오기나 해.”
지화자가 앞서 나갔다.
유은영이 얼이 빠진 유승민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지화자 씨 성격 알잖아? 그러게 왜 건드려?”
내가 언제 건드렸다고!
유승민은 하나뿐인 동생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여자들의 뒤를 따랐다.
어차피 억울함을 토해낸다고 해도 유은영이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지화자, 저 인간이 우리 은영이를 다 망쳐났어.’
유승민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지화자의 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열렬한 시선을 지화자 역시 느꼈지만.
‘미친놈.’
그녀는 가볍게 무시했다.
애초에 유승민이 저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술집은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낡은 가게였다.
하지만 지화자는 몇 번 와본 적 있는지 가게 안에 들어서며 크게 인사했다.
“아주머니, 저 왔어요.”
“화자니?”
부엌 안에서 머리가 희끗하게 샌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화자구나!”
“잘 지내셨어요?”
“그럼! 네 덕분에 무너진 가게도 금방 복구할 수 있었다!”
“다행이에요.”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말했다.
“제가 매일 찾는 음식으로 해주세요. 술은 제가 꺼내 마실게요.”
“그러렴!”
가게의 주인이 활짝 웃고는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세요?”
“어릴 적에 나랑 친하게 지냈던 집안사람.”
지화자가 술을 꺼내 들고는 유은영에게 말했다.
“나를 꽤 예뻐해 주셨는데…….”
그것 때문에 지유화의 눈 밖에 나 저렇게 되고 말았다.
그것을 알게 된 후, 이것저것 그녀를 도와주고 있지만 쉽지가 않았다.
“지유화 때문에 마음속에 얻은 상처가 꽤 큰 모양이더라고.”
지화자가 씁쓸하게 웃고는 입을열었다.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알아서 잘 회복 중인 것 같았으니까. 그보다 앉기나 하자. 저 아줌마 솜씨 엄청 좋거든. 안주 맛있을 거야.”
유은영이 부엌을 흘긋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유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더니.
‘그 이름은 이제 좀 지워졌으면 하는데.’
유은영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