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이곳에서 받는 돈의 세 배를 제시할게요.”
“네?”
세 배라니!
“머물 곳 역시 제공해드릴 겁니다. 무상으로요. 프랑스어는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다고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아델라이트는 말했다.
“최고급 통역 기기를 드릴 거고, 원하신다면 프랑스어 과외 선생님도 붙여줄 거예요.”
“아니, 잠깐…….”
지화자에게 분명히 말했다.
프랑스에 갈 생각따위 없다고.
‘그러데 왜 이러는 거야?’
당황도 잠시, 유은영이 헛기침을 두어 번 터트린 후 말했다.
“아델라이트 님, 죄송하지만.”
“제 제안, 받아드릴 생각 없죠?”
“네? 아, 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델라이트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그냥 해본 소리에요.”
“네?”
“그야, 지화자 씨께서 말한 게 있거든요.”
“지화자 팀장님께서요?”
“네.”
아델라이트가 싱긋 웃고는.
“우리 대한민국의 S급 힐러는 그쪽에 갈 생각따위 없으니 괜한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지화자를 흉내냈다.
목소리와 말투 모두 똑같이 흉내내는 그 모습에 유은영이 힘겹게 웃음을 참아내고는 말했다.
“지화자 씨 흉내를 정말 잘 내시네요.”
“몇 번 본 사이니까요.”
아델라이트가 키득거렸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프랑스는 유은영 씨를 정말 많이 원하고 계시더라고요.”
자신한테 유은영과 직접 만나 저런 조건을 내밀어 보라면서 시킨 사람들도 프랑스의 정부 쪽이라며 아델라이트가 말했다.
“정말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니까요?”
성녀라고 불리는 자신이 있는데 또 다른 S급 힐러를 원하다니.
“가끔은 조국이 전쟁이라고 일으키려고 하는 건가 걱정돼요.”
전쟁이 일어나면 다치는 사람은 많을 테고, 그 부상자를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힐러뿐이었으니까.
“적당히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델라이트가 구시렁거렸다.
유은영이 그에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아델라이트 님의 말대로 힐러는 귀환 존재니까요.”
특히나 S급 힐러는 세계적으로 귀한 자원이었다.
“뭐,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요.”
아델라이트가 그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요.”
“네?”
힐러에 대한 의존도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의존하지는 않는데?
유은영의 생각과는 달리 아델라이트는 말했따.
“힐러가 너무 없다고요.”
유은영이 몇 번이고 동의한 말에 아델라이트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유은영 씨, 사실 저는 당신과 함께 프랑스로 가고 싶어요.”
사실은 프랑스의 정부 쪽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아델라이트 님.”
“이번에는 서울이라는 이 도시 하나로 끝났지만, 다음에는요?”
도시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닌, 국가 단위로 일이 벌어진다면?
“유은영 씨 혼자 막기에는 힘이 들 거예요.”
다른 힐러들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유은영 씨께 의존하려고 들 테니까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지한 조언이었으나.
“고마워요.”
유은영은 그래도 한국에 남는 걸 선택했다.
“아델라이트 님의 말대로 한국은 힐러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요. 아마, 앞으로 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제가 나서야겠죠.”
그렇지만.
“저 혼자 나서는 건 아니에요.”
지화자가, 그리고 그녀와 자신의 팀원들이 나설 터였다.
그러니 괜찮았다.
아델라이트가 유은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픽 웃었다.
“지화자 씨랑 똑같네요.”
“네?”
지금 욕하는 건가?
유은영이 순간 당황해하며 그런 생각을 가졌지만.
“지화자 씨와 성격이 똑같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욕이잖아요.”
유은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아델라이트가 친절하게 말을 덧붙였다.
“제가 지화자 씨와 똑같다고 하는 건, 이 나라를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이에요.”
유은영이 놀란 눈을 보였다.
지화자가 이 나라를 생각하다니?
“믿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네에, 뭐.”
그야,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지화자를 좋게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다.
지화자 역시 알고 있다는 듯이 무덤덤한 태도를 취했지만, 사실 속이 많이 들끓었을 거다.
S급 힐러보다는 아니지만 그 수가 적은 S급 각성자를 홀대하는 사람들이라니.
생각해보면 지화자가 이 나라에 남아있는 게 신기했다.
“혹시, 지화자 씨께서도 귀화를.”
“하는 게 어떠냐고 많은 요청을 받았었죠.”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로부터 말이다.
“한국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줄테니 자신들의 나라로 오라고 얼마나 많은 나라가 지화자 씨에게 살살 꼬리쳤는지 몰라요.”
하지만 지화자는 그들의 요청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요.”
자신한테 온 제안들을 거절할 때, 지화자는 어떠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원하는 대로 맞춰줄 자신이 모두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 나라를 많이 아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아델라이트가 말했다.
“유은영 씨도요.”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글쎄요, 우리나라를 그렇게 엄청 생각하지는 않는데.”
“다친 국민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운 것만으로도 나라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말에 유은영은 떠올렸다.
지화자와 몸이 바뀐 것을 알고 당황했을 때, 그녀가 일렀던 말.
“먼저, 유은영 씨. 존댓말 금지야. 굳이 써야한다면 돈 주는 사람한테만 써.”
“돈 주는 사람한테요……?”
“그래, 우리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지?”
지화자는 그렇게 말했었다.
흐릿한 기억을 떠올린 유은영이 픽 웃었다.
“유은영 씨?”
“아무것도 아니에요.”
유은영이 홀가분하다는 듯 활짝 웃었다.
“저를 그렇게까지 좋게 생각해주시다니. 너무 영광스럽네요.”
비아냥거림 따위 없는 진실 어린 감사 인사에 아델라이트가 미소를 그렸다.
“역시, 유은영 씨를 프랑스로.”
“아니요! 안 갑니다!”
유은영이 다급하게 거절했다.
그 모습에 아델라이트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그보다 유은영 씨, 당신의 실력을 좀 보고 싶은데 보여줄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기회가 된다면 제가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릴게요!”
“고마워요.”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아델라이트가 다섯 번의 기적을 행사한 것을 끝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에.
“시발! 죽어!!”
무장한 괴한들이 그들을 습격한 거다.
모두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무리.
도시가 혼란스러울 때 일어난 무장 강도들이었다.
‘강도들이 왜?’
유은영이 크게 당황해하며 아델라이트를 보호했다. 그 순간, 지화자가 앞으로 나섰다.
“안 그래도 너희 때문에 골머리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화르륵―!
불꽃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지화자가 몸을 움직였다.
한순간 흐릿해진 그녀의 모습이 강도들 앞에 나타났다. 지화자는 곧장 쥐고 있던 무기를 휘둘렀다.
퍽! 퍼억!
“으악!”
“끅!”
“아악!”
여러 비명과 함께 무장 강도들은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저것들 치워.”
“네, 팀장님.”
지화자가 손을 털고는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시바알!”
바닥에 쓰러져 끙끙 앓고 있던 강도 하나가 젖 먹던 힘을 쥐어짜내 아델라이트를 노렸다.
“네 년이 늦게 오는 바람에! 내 가족이 모두 적어버렸다고!!”
분노를 터트리는 목소리에 아델라이트가 당황해할 때.
후웅―!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유은영이 주먹을 휘둘렀다.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휘두른 주먹이 강도의 뺨을 강타했다.
퍼억!
아델라이트를 노린 강도는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가 빈 철제함과 함께 나뒹굴게 되었다.
“헉!”
유은영이 놀라 입술을 오므렸다.
“괜찮으세요?”
강도에게 물은 건 아니었다.
아델라이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보다 유은영 씨, 잘 싸우시네요.”
싸운 것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주먹을 뻗어 달려든 상대를 날렸을 뿐.
아델라이트의 칭찬에 유은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조건반사적으로 나왔네요.”
지화자의 몸으로 움직였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고 말았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아델라이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게이트 공략 경험이 많은 건 알았지만.’
저렇게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내뻗다니.
그것도 힐러가 말이다.
‘힐러는 대부분 사람들을 상처 입히는 걸 주저하는데.’
눈앞의 힐러는 그런 기색 따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델라이트가 조용히 감탄할 때, 지화자는 유은영이 날려버린 강도를 살폈다.
완전히 너덜해진 꼴이 많이 다친 모양이었다.
“유은영 씨, 얘 치료 좀 해줄 수 있을까요?”
“네?”
“이런 꼴이면 조사도 제대로 못하거든요.”
병원에 바로 입원해야하니까 말이다.
다른 사건이라면 몰라도, 이번 사건은 꽤 심각하게 다뤄져야할 사안이었다.
프랑스의 귀빈들을 습격한 무리라니.
지화자가 가볍게 제압했다고는 하나 치안과 관련해서 말이 나올 문제인 만큼 확실하게 처리해야만 했다.
유은영이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차피 아델라이트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한만큼 기회로 여겨야겠다.
유은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날려버린 강도에게 힐을 시전 했다.
유은영이 터트린 빛에 닿자 강도의 상처가 말 그대로 눈 녹듯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오오!”
프랑스의 귀빈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하지만 아델라이트는 아니었다.
그녀는 살포시 미간을 좁힌 채, 심각한 표정으로 유은영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유은영은 활짝 웃으며 아델라이트를 쳐다봤다.
마치, 착한 일을 한 자신을 칭찬해달라고 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유은영은.
‘어?’
심각하게 굳어있는 아델라이트의 표정에 뒤늦게 당황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