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저기, 아델라이트 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유은영이 안절부절 뭐 마려운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물었다. 그에 아델라이트가 대답했다.
“네.”
“아, 그렇구나.”
가 아니라.
“문제가 있다고요?”
유은영이 놀라 물었다.
‘문제라니! 무슨 문제?’
힐은 제대로 먹혔다. 유은영의 주먹에 의해 중상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말끔하게 치료된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아델라이트는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유은영 씨.”
유은영이 가진 힘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대단했다.
그녀라면, 분명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이든 살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대로 계속 힘을 사용하다가는 수명이 깎이게 될 거예요.”
“네?”
아델라이트는 묻는 말에 대답해주는 대신, 유은영의 손을 잡고서 힐을 시전했다.
따뜻한 빛이 유은영을 감싸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졌다.
다른 날보다 가벼웠던 몸이 더 가벼워졌다.
아델라이트 덕분에 최상의 컨디션을 얻게 된 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기, 아델라이트 님.”
그녀로서는 궁금했다.
“수명이 깎이게 될 거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요?”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이다. 유은영의 질문에 아델라이트가 작게 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단명하게 될 거라는 거예요.”
유은영이 입술을 오므렸다.
S급 힐러인 자신이 단명이라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유은영은 틈틈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스스로에게 힐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키메라에 의해 피해가 막심하며 사상자가 많은 도시. 그에 자신이 쓰러진다면 큰 폐를 끼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단명하게 될 거라니!
유은영이 살짝 표정을 굳혔다.
그런 그녀를 향해 아델라이트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유은영 씨께서 가진 힘은 저보다 뛰어나요.”
같은 S급이라고 해도 저마다 가진 힘이 다르다.
지화자와 서이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그건 힐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유은영 씨께서 가진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는 거예요.”
다르게 말하면 기력.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생명력이 되겠죠.”
쉽게 말해서 생명력이지, 자신의 수명을 끌어다 쓰게 될 거다.
“유은영 씨, 알고 있겠지만 암만 저희라고 해도 잃어버린 수명은 채울 수가 없어요.”
더군다나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수명이 어느정도인지, 그건 힐러가 아닌 다른 각성자라고 해도 모를 테니.
“유은영 씨, 많은 사람을 치료하고 난 다음에 꼭 스스로에게 힐을 사용하셨죠?”
“네? 아, 네.”
지금까지 줄곧 그랬었다.
“그건, 유은영 씨께서 한계치를 넘어 힐을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몸에 큰 이상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아델라이트의 말대로라면, 몸에 이상이 생겼어야하는데 말이다.
“제가 힐을 사용한 건, 컨디션이 살짝 나빠졌기 때문에 그런 것 뿐이에요. 몸에 이상이 생긴다거나 그런 일은 단 한 버노 겪어본 적이 없어요.”
“기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장기가 비틀린다거나 몸에 출혈이 일어난다거나 그러지는 않잖아요?”
다만, 서서히 움직일 힘을 잃고 쓰러져 숨이 다할 뿐이었다.
아델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린 유은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몰랐어요.”
“그럴 수밖에 없죠.”
이 좁은 땅에 S급 힐러는 유은영 뿐이었다.
같은 등급을 지닌 각성자는 그녀말고도 여럿 있었찌만 그들은 힐러가 아니었다.
유은영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을 터.
“앞으로 힘을 사용하는 건 자제하도록 하세요.”
“네?”
유은영이 놀라 외쳤다.
“저는 힐러에요!”
아델라이트의 말은, 눈 앞에 부상당한 사람이 있어도 외면하고 지나쳐라는 말과 똑같았다.
“하지만, 유은영 씨. 가진 힘의 총량도 모르고 그렇게 힐을 사용했다가는 단명하실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당신이 괜찮다고 해도 이 나라는 괜찮지 않겠지요.”
아델라이트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요?”
없었다.
“다음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당신이 없다면요?”
지금과 같은 속도로 도시가 복구되는 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유은영은 알았다.
자신은, 상처입고 부상당한 사람을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아델라이트의 말대로, 제 수명을 갉아먹어서라도 그들을 치료하게 될 것임을 유은영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델라이트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입술만 꾹 깨물었다.
언뜻, 분노를 참고 있는 듯한 그 표정에 아델라이트가 물었다.
“마음껏 힘을 사용하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까요?”
“네?”
“유은영 씨께서 자신의 기력도, 생명력도 끌어다 쓰지 않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요. 한 가지 있거든요.”
유은영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가르쳐주세요!”
다급하게 외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델라이트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유은영 씨께서 가지고 있는 힘을 알아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힘의 총량을 말이죠.”
“그걸 어떻게…….”
“힐을 사용하는 거죠. 유은영 씨께서 스스로 지치지 않을만큼의 힐을.”
유은영이 당황하여 말했다.
“어디에서요?”
키메라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회복됐다. 남은 사람은 힐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상자들.
그런데 자신이 지치지 않을만큼 힐을 사용해서 힘의 총량을 알아내면 된다니?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지방으로 내려가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라는 걸까?’
그럴 수도 있었지마는.
“유은영 씨, 저와 분쟁 지역에 가지 않을래요?”
아델라이트가 생각해낸 방법은 다른 것이었던 듯했다.
분쟁 지역에 가지 않겠냐니.
“네……?”
유은영이 당황하여 물었다. 그에 아델라이트가 싱긋 웃었다.
“그곳에는 저희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죠.”
살육을 저지르는 사람은 많지만, 그 피해자를 돌보는 사람은 무척이나 적으니 말이다.
“그곳에서 힘을 다스려보도록 하세요.”
“하지만.”
“유은영 씨께서 힐이 아닌, 다른 것을 끌어다 사용하려고 하면 제가 막을 테니까요.”
유은영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고민에 잠긴듯한 그 표정에 아델라이트가 싱긋 웃었다.
“대답은 천천히 주세요. 하지만 제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답을 주셨으면 좋겠네요.”
“…네, 아델라이트 님.”
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프랑스의 귀빈을 습격한 무리는, 모두 키메라에 의해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었다.
“대부분 현장에서 즉사했는데, 그 분노를 언니랑 아델라이트한테 돌린 모양이더라고.”
우스운 소리였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힐러한테 돌리다니.
유은영도 아델라이트도, 그들 가족이 죽던 때에 그 자리에 없었는데 말이다.
설사 있었다고 해도 살리지 못했을 거다. 대부분, 현장에서 손 쓸 틈도 없이 죽었다고 했으니.
“멍청한 놈들이지, 뭐.”
“그래도 안타깝네요.”
“안타깝기는 무슨.”
지화자가 짧게 혀를 찼다.
“그 새끼들이 언니랑 아델라이트 노리려던 거 그새 잊었어?”
프랑스의 귀빈들이 한국을 방문한지 어느새 일주일 째.
“그래도 지화자 씨 덕분에 다친 사람이 없었잖아요?”
“우리 쪽 사람들에 한해서는 맞는 말이지.”
그들을 습격하려던 자들 중에서는 크게 다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유은영의 주먹에 나가떨어졌던 남자.
그는 유은영의 적절한 힐로 함몰됐던 안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유은영이 지화자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지나간 일 꺼내지 마세요!”
지화자가 키득거렸다.
“그보다 어떻게 할거야?”
“네?”
“아델라이트.”
들린 이름에 유은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지화자는 그런 그녀를 향해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내일이면 돌아가잖아.”
“그래서요?”
“아델라이트가 제안한 게 있을 텐데?”
어색하게 끌어 올리고 있던 입꼬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지화자 씨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델라이트와의 대화가 그녀의 귀에 들어가기라고 했던 걸까?
‘하지만 지화자 씨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었은데?’
그녀의 성격상, 아델라이트와의 대화를 들었다가는 그 자리에서 파토나게 만들었을 텐데 말이다.
유은영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할 때.
“아델라이트가 말해줬어. 걔, 성녀라는 이름 답지않게 성격 엄청 나쁘거든.”
지화자가 입술을 씰룩거리며 입을 열었다.
“언니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려주더라고.”
“아… 그, 그렇군요…….”
유은영이 은근슬쩍 지화자의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잘 모르겠어요.”
기력이니 생명력이니, 자신의 몸을 갉아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다 해도 잘 느껴지지가 않으니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가늘고 길게 살기를 바라는 유은영은 짧고 굵게 가는 삶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주어진 힘을 이용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그때, 지화자가 말했다.
“나는 언니가 아델라이트 따라서 갔으면 좋겠어.”
“네?”
유은영이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지화자가 그 시선을 못본 척, 입을 열었다.
“언니가 제 살 갉아먹으면서 남 치료하는 꼴 보고싶지 않거든.”
“지화자 씨…….”
유은영이 감동한 듯, 지화자를 쳐다봤다.
“징그럽게 그렇게 보지마.”
“그치만요!”
헤실거리며 유은영이 물었다.
“저 오랫동안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그건 싫지만.”
지화자가 작게 숨을 내쉰 후 말을 끝마쳤다.
“기다려줄 수는 있어.”
유은영이 있어야할 곳은 센터의 0팀이니까.
그 말에 유은영이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