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제주도에 도착하고나서 일주일.
지화자는 우종문을 욕했던 것도 잊고 오랜만의 휴식을 만끽했다.
“지화자야! 수영하러 가자!”
“파도에 휩쓸릴 일 있어?”
갑자기 목아치는 폭풍우에 성난 파도가 육지까지 밀려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세상 하직할 것 같았다.
“그럼, 화자 누님! 번지 점프하러 가요!”
“물놀이와 다를 게 뭐야?”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는 지금.
번지 점프를 했다가는 줄이 끊어져버려 세상 하직할 것 같았다.
지화자의 말에 리아와 라이가 두 뺨을 부풀렸다. 불만 가득한 표정에 지화자는 콧방귀를 꼈다.
“다들 놀 시간에 오늘 자정에 있을 게이트 공략 준비나 해.”
이제 휴식도 끝.
자정에 생성될 게이트를 시작으로 0팀은 계속해서 게이트 공략을 다녀야했다.
“생성 예정인 게이트가 제주도에서만 10개라니, 다른 지역은 괜찮을까요?”
“괜찮으니까 국장이 우리를 제주도로 유배보냈지.”
“유배온 것 치고는 지금가지 잘 먹고 잘 논 것 같은데요?”
“시끄러.”
가하성의 말에 지화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말했다.
“어쨌든, 내일부터 업무 시작이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
게이트 공략이 끝나면 보고서를 작성해야했고, 그 보고서의 작성이 끝나면 또 게이트 공략에 들어가야했다.
“…끔찍하네.”
설상가상 0팀에는 현재 유은영이 없었다.
전담 어시스트 힐러가 빠진 상황 속에서 지화자는 빌었다.
제발, 부디 다치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제주도에서의 일이 안전하게 마무리되기를 말이다.
예전의 지화자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기도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유승민, 이 멍청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지화자의 바람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
―키에에엑1
―키야악!
A급 몬스터, 화려한 날개를 지닌 독충이 입에서 독을 내뿜으며 하늘을 장악했다.
가하성이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눈 채로 하나씩 처리했지만.
“수가 너무 많아요.”
가하성 혼자 감당하기에는 몬스터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래도 최대한 처리해!”
지화자가 유승민의 허리 부근을 붕대로 감싸고는 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무슨 지잇?!”
지화자가 검지를 치켜 들었다.
“너야말로 무슨 짓이야?”
독충이 지배하고 있는 하늘에 맨 몸으로 나가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유승민이 기가 죽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것들을 한 번에 처리할 방법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야지!”
지화자가 다시 한 번 더 유승민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아픕니다!”
“아프라고 때린 거야.”
유승민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지화자를 쳐다봤지만.
“왜? 한 대 더 맞고 싶어?”
지화자가 싱긋 웃으며 주먹을 들자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래서?”
“네?”
“저것들 한 번에 처리할 방법이 있다며? 그 방법이 뭔데?”
지화자가 무기를 꺼내 쥐고서는 물었다.
“여기에서 계속 죽치고 있을 수는 없잖아?”
제주 지부의 센터 팀원들과는 이미 헤어진 상태.
유승민의 상태를 살필 수 있는 힐러 역시 그들과 함께 헤어지고 말았다.
조금에라도 빨리 하늘을 장악 중인 저 몬스터를 처리한 후 그들과 합류해야했다.
“리아와 라이는 괜찮겠죠?”
“괜찮을 거야.”
리아와 라이 역시 그들과 함께 자신들과 헤어진 상태였으니.
“그쪽 전력으로 S급 게이트의 주인을 만나지 않기를 바라야지.”
리아와 라이, 그리고 제주 지부의 센터 팀원들만으로 S급 게이트의 주인을 처리하기는 불가능한 전력이었다.
그나저나.
“유승민 씨? 설마, 그새 그 방법을 잊은 건 아니지?”
“아닙니다!”
유승민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이 아래.”
“응?”
“용암 지대입니다.”
“오.”
지화자가 입술을 오므리고는 쥐고 있는 봉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확실합니다. 봤으니까요.”
유승민이 본 미래는 바뀔 지언정 틀린 적은 없었다.
“그렇단 말이지?”
지화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는 하늘을 쳐다봤다.
벌 떼처럼 모여든것에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마치 종말의 한 장면 같았다.
“징그럽기도 하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지화자가 하태균을 불렀다.
“네, 팀장님.”
“나랑 협업 좀 하자.”
“네?”
하태균이 놀란 눈을 보였다.
“협업이요? 저와, 팀장님이 말입니까? 함께요?”
“그럼, 함께지.”
지화자가 별소리를 다한다는 듯 짧게 혀를 차고는 말했다.
“한 번만 설명할 거야.”
“네, 팀장님!”
하태균이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례는 왜 하는 거야?’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지화자는 이내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저 녀석들을 한 곳으로 모을 거야.”
“네?”
놀라 물은 건 가하성이었다.
“위험합니다!”
화려한 날개를 지닌 독충, 레드고파스(A급)를 상대하던 가하성이 지화자를 말렸지만.
“그래도 한 번에 쓸어버리려면 그래야해.”
그녀는 단호했다.
“하태균, 너는 내가 저것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을 때 이 땅을 부서버려.”
“어떻게 부수면 되겠습니까?”
“유승민 씨 말로는 이 아래에 용암이 흐르고 있다고 하더라고.”
지화자가 바닥을 두드리고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용암이 솟구쳐오를 정도로 부서뜨려버려.”
“네, 알겠습니다.”
하태균이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
가하성은 여전히 무모한 짓이라면서 그녀를 말리려고 했지만.
“시끄러.”
지화자는 그 말을 남겨두고 땅을 박차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사람이 걱정을 해줘도 정말!”
가하성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그녀를 서포트했다.
레드고파스(A급)는 화려한 날개에서 독가루를 뿜어내는 몬스터.
암만 지화자가 S급 각성자라고 해도 그 독이 체내에 쌓이면 버티기 힘들 터였다.
“형님!”
“안 그래도 지금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성아!”
흐아아압!
하태균이 크게 기합을 터트리며 대지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쿠구궁―!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요동치는가 싶더니.
콰과광!
대지 아래에서 들끓고 있던 용암이 솟구쳐 올라 하늘을 덮고 있던 몬스터를 덮쳤다.
문제라면.
“지화자 팀장님!”
레드고파스(A급) 무리를 한곳에 모으고 있던 지화자 역시 용암에 덮쳐졌다는 거다.
“이런, 미친!”
가하성이 욕설을 내뱉는 순간.
“왜 욕해?”
지화자가 그의 뒤에 나타났다.
“팀장님!”
가하성이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옷이요! 옷!”
지화자가 입고 있던 옷이 전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용암에 맞고 산 것 자체게 행운이라고.”
녹아든 옷을 벗어 던지고는 지화자가 말했다.
“유승민 씨, 겉옷 좀 벗어줘요.”
“네?”
“유승민 씨가 제일 꼼꼼하게 몸을 싸매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 벗어서 자신에게 달라는 소리였다.
“아님, 저. 계속 이렇게 다녀요? 노출증 환자처럼? 뭐, 성격 파탄자라는 별명에 노출증 환자 붙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너스레를 떠는 목소리에 유승민이 결국 겉옷을 벗어 지화자에게 넘겨줬다.
“고마워요.”
지화자가 싱긋 웃고는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래도 속옷은 멀쩡해서 다행이야. 아니었음 너희 앞에서 나체 보일 뻔 했어.”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가하성이 빼액 소리 지르고는 무기를 챙겨 들었다.
“저것들 처리 됐으니까 어서 다른 사람들이나 찾으러 가요!”
“맞는 말입니다. 남은 시간도 별로 없습니다.”
제한 시간 내로 게이트 공략에 실패하면 모든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가게 될 거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붉게 적셔진 하늘 위, 표시된 시간은.
【00: 57: 14】
1시간 남짓.
얼마 안 남은 시간이라고 해도 지화자에게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가자.”
***
【00: 23: 17】
지화자가 헤어진 사람들과 합류한 후 남은 시간이었다.
30분도 채 안 남은 시간.
다행이라면 S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와 만났다는 거다.
“나 잘했지?”
“저랑 리아가 여기까지 끌고 온 거예요!”
“칭찬해줘!”
리아와 라이가 두 눈을 빛내며 지화자를 쳐다봤다. 지화자는 심드렁하게 아이들을 칭찬했다.
“그래, 잘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제주 지부의 사람들은 엉엉 울고 있었다.
“살았다! 드디어 살았어!”
“흐어어엉! 저 다음 게이트에는 참가 안 할래요!”
“안 돼! 제주도까지 올 길드는 없다고!”
“그래도 싫어요! 쟤들이랑 또 그딴 짓을 하라고요? 절대로 싫어!”
지화자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리아와 라이를 쳐다봤다.
아이들은 지화자가 헤실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묻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아 지화자는 0팀의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전투 준비.”
예전 같았으면 지화자 혼자 저 몬스터를 처리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가하성이 무기를 들었고, 하태균이 콧김을 뿜어내며 주먹을 들었다. 리아와 라이는 사이좋게 붉은 눈을 빛내며 거미줄을 뽑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유승민은.
“유승민 씨는 물러나세요.”
“왜죠?”
“도움이 안 되나까요.”
지화자의 말에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어쨌든 갖춰진 대열에 지화자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남은 시간은 이제 20분 남짓, 그 시간 안에 저 빌어먹을 벌레 새끼를 처리한다.”
알겠나?
조교라도 된 것처럼 둗는 목소리에 모두가 대답했다.
“네, 팀장님!”
그 모두에 유은영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새삼스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