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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이지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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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스 던전 공략 실패!]
랭커들이 어비스 던전 공략에 실패했다.
공략대 멤버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라고 불리는 이지아 양도 포함된 걸로 알려져 있다.
[댓글창]
폴로: 그럼 그렇지. 이지아가 국내 탑랭커지 세계 탑랭커냐? 이게 이지아의 한계다.
ㄴwldk123: 이지아가 국내 탑랭컨지 세계 탑랭컨지가 공략 실패하고 무슨 상관임? 다른 랭커들 참가한 건 안보임?
ㄴ폴로: 분위기 곱창 내지 말고 ㄹㅇㅋㅋ만 치라고.
ㄴwldk123: 아니 시발 상황에 맞는 이야길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잖아.
ㄴ폴로: 응 상황에 안 맞는 이야기하는 건 너고
떡볶이냠냠: 나 남잔데 얘 옛날부터 SNS에 사진 올리는 거 꼴 보기 싫었음ㅋㅋㅋ 맨날 이쁜 척이나 하고~ 스물여섯이면 아줌마예요 아줌마. 아줌마, 이제 정신 차리세요~
ㄴwldk123: 이지아는 SNS 계정을 만든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뭔 개소리함?
ㄴ떡볶이냠냠: 아닌데? 있는데? 내가 봤는데?
ㄴwldk123: 너 지금 파파라치들 사진 보고 그러는 거 아니지?
시금치홍당무: wldk123 뭐 하는 놈임인데 그렇게까지 이지아 쉴드치고있냐? wldk=지아인데 혹시 본인이냐?
ㄴ폴로: ㄹㅇㅋㅋ
ㄴ떡볶이냠냠: 본인인가 봐 ㅋㅋ 헌터 무서워서 인터넷도 못 하겠네
멈칫.
키보드를 두들기던 이지아의 손가락이 멈춰 섰다.
날카로운 댓글의 지적에 더는 답글을 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간에 그들은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대체가…….”
악플. 악플. 악플.
온통 악플투성이였다.
도대체 자신이 뭘 했길래 전 국민이 이렇게 신나서 물어뜯는 걸까.
던전의 공략 실패는 분명 인류에게 패전보나 마찬가지였지만 인터넷에서는 승전보의 축제라도 즐기는 듯 여러 사람이 경쟁적으로 그녀의 커리어를 비웃으며 물어뜯었다.
이지아가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며 f5 버튼을 연타했다.
타다다다다닥!
늘어나는 댓글들. 비웃음으로 가득한 인터넷.
연예인보다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된 헌터들의 사생활은 대중들에게 큰 관심이었고, 당연하지만 악플들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악플? 신경 쓰지 마. 뒷담 같은 거야. 뒤에서 뭔 말하든 내 귀에 안 들어오면 신경 쓸 이유가 뭐가 있겠어?’
보다 못한 동료들이 조언도 해줬지만 유독 남의 시선에 민감한 이지아는 악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드르륵! 드르륵!
이지아는 우직하게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땀이 그녀의 턱을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띠리링!
전화벨 소리. 발신인은 헌터 협회장이었다. 이지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지아 양.
“……무슨 일이세요?”
전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네.
“저희가 용건도 없이 전화할 사이는 아니긴 하죠.”
협회장이 뜸을 들였다. 지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던전 공략 실패 후에 오는 협회장의 전화라. 뭔지 몰라도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다.
이번 공략 실패로 지아 양의 랭크가 하향 조정되었…….
파직!
전화기가 박살 났다. 지아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멍한 눈동자로 인터넷 기사를 들여다봤다.
인터넷에는 끝없이 올라오는 악플들이 보였다. 공략 실패 하나로 이렇게나 달리는 악플들인데 랭크 하향 조정이라고?
“하, 하핫…….”
지아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지금과 비교도 안될 만큼 물어뜯길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맞았다. 다음날 이지아의 랭크가 하향됐다는 기사에는 엄청난 댓글들이 달렸다.
이지아는 모든 대외 활동을 멈추고 집안에 틀어박혔다.
그녀가 집에 틀어박혀 한 행동들이라고는 기사들을 찾아다니며 댓글들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걱정한 동료들의 연락도 무시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악플들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녀는 퀭한 눈동자로 집 밖을 나섰다.
* * *
바야흐로 초능력자들의 세상이다. 소수의 인간들은 각성을 통해 마법 같은 초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나도 소수에 포함되는 선택받은 인간이었다.
“현우야. 발주 넣어야 하니까 창고 가서 원두 재고 좀 확인해라.”
“넵, 형.”
맞다, 오늘 발주 날이었지.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창고로 향했다. 문을 열자 원두 냄새가 확 밀려왔다.
“하나 두이 석삼 너구리…….”
쪼그려 앉아 포댓자루나 세고 있는 신세라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1년 전, 우연히 각성을 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헌터 모집 광고. 헌터란 몬스터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최전선의 방패들.
사람들의 선망, 명예, 자연히 따라오는 금전적 여유는 덤이다.
어릴 때 장래 희망이 헌터가 아니었던 남자가 어딨을까. 나 또한 헌터를 꿈꿨던 과거가 있었다. 각성자만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포기했었지만.
그런데, 내가 각성자가 된 것이다. 헌터가 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기쁨에 젖어 있기도 잠시, 협회에서 감정한 내 능력은 쓰레기 그 이하였다.
이름하여 ‘마음의 평화’.
능력의 내용은 주변 사람들을 진정시킨다.
‘예? 정말 이게 끝인가요?’
‘넵, 김현우 씨 능력은 사람의 심신을 진정시켜주는 효과가 전부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이걸 대체 어디에다가 써먹어?
그래도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와신상담!
나는 카페에서 쓸개대신 원두를 핥으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다.
“…….”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카페 알바생 박지영이었다. 그녀가 난처한 기색으로 내게 물었다.
“오빠, 재고 파악 다 끝났어요?”
“응, 다 끝나고 좀 쉬고 있었지. 왜?”
“사장님이 급하게 찾으셔서요.”
“무슨 일인데?”
“클레임이요.”
“아.”
대충 무슨 이야긴지 눈치챈 나는 급하게 매장으로 향했다.
적막한 카페. 스피커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팝송. 그걸 뒤엎는 날카롭게 째진 여자의 목소리.
“죄송하면 다야!? 어떻게 보상할 거야!?”
한쪽 구석에서 사장과 손님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사실 사장이 일방적으로 맞는 구도였다. 서비스직이 전부 그렇다.
“죄송합니다, 손님. 주문에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로 환불해드리겠습니다.”
“내가 무슨 거지 인줄 알아!?”
돈 돌려준 데도 지랄이야.
근데 뭔 상황인지 모르겠네. 나는 박지영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왜 저러셔?”
“그, 손님이 라떼를 주문하셨는데요. 사장님이 분명 뜨거운 거로 달라고 들으셔서 그렇게 드렸거든요.”
“그런데?”
“받자마자 훅 들이키시더니 입천장 뎄다고 저러시는 거예요. 본인은 아이스로 주문했었다고…….”
어이구.
카페에서 가장 많이 들어오는 클레임이다.
누구의 잘잘못 이전에 이런 경우 보통 손님이 원하는 거로 다시 교체해주고 마는데 입천장까지 덴 상태라 보상을 원하는 모양이었다.
“@#$@#$@%!!”
손님이 소리 지르는 와중에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사장이 눈짓으로 손님을 마구 가리켰다.
아주 다급한 얼굴이었다. 도와달라는 시그널이었다. 나는 싫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사장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뭘 잘했다고 얼굴을 굳히는 거예요!?”
손님의 샤우팅과 함께 표정 관리하는 사장. 그가 등 뒤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띠링!
사장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창식이형: 제발 좀 도와줘!]
그러고보니 요즘 훈련이 부족했지.
내일 pt 날짜 좀 잡고 싶은데.
[나: 내일 대타 가능?]
[창식이형: 내가 들어갈게! 빨리!]
좋아.
나는 성큼성큼 손님과 사장에게 걸어갔다. 사장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그게 손님의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하긴, 클레임 중인데 저런 얼굴을 하면 놀리는 건가 싶기도 하겠지.
목을 가다듬고 손님을 불렀다.
“손님.”
“당신은 또 뭐……!”
말끝이 사그라들었다. 성난 손님의 얼굴도 조금씩 잔잔해졌다. 어딘가 멍해 보이기도 했다. 이젠 익숙한 표정이다.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아니……. 그게 라떼를 아이스를 시켰는데……. 뜨거운 게…….”
“바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다음부터 주의해주세요.”
“넵, 대단히 죄송합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손님을 뒤로하고 나는 재빨리 컵을 수거해갔다. 사장이 다급히 내 뒤를 따라왔다.
“현우야, 고맙다 인마!”
“내일 시프트나 빼줘요.”
“당연하지. 형이 들어갈게. 내일 푹 쉬어.”
앗싸.
기쁨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내렸다. 날 지긋이 쳐다보던 사장이 턱을 긁적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요?”
“어떤 클레임이 들어와도 현우 너만 나타나면 손님들이 순한 양이 되잖아.”
‘마음의 평화’라는 나의 능력 때문이었다. 헌터로서는 쓸모없지만, 서비스직으로는 S 랭크 부럽지 않은 능력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글쎄요. 제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그런가?”
사장이 내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가? 별로 편안하게 생긴 얼굴은 아닌데.”
“형, 손님 또 화내시겠어요. 빨리 아이스 라떼 드리고 오세요.”
“어, 어어. 고맙다 현우야.”
사장이 커피를 들고 사라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주변에 각성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무슨 능력이냐부터 각성했으면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냐는 말까지 온갖 참견에 시달리기 때문이었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능력이라 능력을 밝힐 때마다 항상 득보다 실이 많은 기억이 있다.
손님이 진정하고 나자 가게는 다시 한적해졌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멍하니 TV를 봤다.
이곳은 전 랭커였던 이지아 양의 저택입니다. 현재 이지아 양은 연락 두절된 상태로 실종되었으며…….
뉴스에서 이지아의 저택으로 보이는 집을 보여주고 있었다. 리포터는 주변 주민들을 취재했다. 이웃들의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참나, S 랭크 헌터가 무슨 잠수를 타? 세계 최초 아니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사장도 TV를 보며 한 마디를 더했다. 다들 갑자기 사라진 이지아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였다.
사장의 말마따나 탑티어 랭커가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잠수탄 건 최초이기 때문이었다.
헌터는 명예로운 직업이다. 모두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헌터들 중에서도 최선두를 달리는 S 랭크가 던전 공략 실패 후 잠수라니.
덕분에 인터넷도 난리였다.
이지아는 안티팬이 유독 많았는데, 외모나 능력 때문에 팬들도 많았었다.
평소에는 팬들과 안티팬들이 용호상박처럼 싸웠는데 잠수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안티팬들이 승리하는 분위기였다.
“그건 그렇고. 현우야, 형 먼저 간다.”
사장이 앞치마를 풀었다. 시계를 봤다. 오후 5시 30분이었다.
아직 시간 남았는데?
“형 벌써가게요?”
“인마, 누구 덕에 내일도 출근하잖아.”
“그건 정당한 거래였어요.”
“그렇지. 어쨌든 나는 사장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오늘은 5시 30분 퇴근이다.”
사장은 떠났다. 가게는 여전히 한적했다. 박지영도 앞치마를 풀며 다가왔다.
“오빠 저도 가볼게요.”
“그래. 모레 보자.”
“내일 출근 아니었어요?”
“클레임 해결해준 걸로 사장님하고 거래했지.”
“아.”
“조심해서 들어가.”
“네. 모레 봬요.”
시계를 슬쩍 봤다. 저녁 9시 30분. 손님은 한 명도 없고 슬슬 마감해도 될 거 같다. 문에 걸린 영업중 푯말을 교체하기 위해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지이잉.
자동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였다. 시꺼먼 밤중에 선글라스는 뭐야? 특이한 인상 차림이었다.
“어서 오세요.”
퇴근을 아쉬워하며 인사하던 나는 멈칫했다. 여자가 테이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카푸치노. 사이즈는 그란데. 디저트로 케잌. 매장에서 먹을 거고 할인은 필요 없어요.”
다다다다.
속사포처럼 내뱉은 그녀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나는 빠르게 그녀의 주문을 이행했다. 퇴근 시간대의 손놀림은 평상시보다 약 2배 정도 빠르다 볼 수 있다.
“여깄습니다. 손님.”
여자는 짧게 고개를 까딱였다. 나름의 인사인 듯했다. 카운터석으로 돌아온 나는 여자 몰래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염원했다.
제발.
빨리 나가주세요.
여자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선글라스라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선은 핸드폰에만 박혀있었다. 그녀가 초조한 기색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혼잣말을 했다.
“하,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왜 날 가만두지 않는 거야…….”
“꼴 보기 싫어해서 사라져줬잖아.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왜 찾으려고 하는 건데?”
음…….
미친년인가?
손님이 그녀 하나뿐이다 보니 여자의 중얼거림이 귓가에 쏙쏙 박혀 들어왔다. 사생활 침해였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다 들린다고 말해주기도 뭐하니까.
그런데, 듣고 있다 보니 혼잣말의 수위가 조금씩 올라갔다.
“죽을 거야…….”
“내가 죽으면 너네도 후회하겠지?”
“여태까지 욕했던 놈들 전부…….”
“……너희가 원하는 게 이런 거지?”
아니 시발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러다가 오늘 가게에서 초상 치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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