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8화 (8/112)

〈 8화 〉 이지아 (8)

* * *

역시 S급 헌터의 집이라고 해야 할까.

이지아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커다란 규모의 훈련장이 있었다.

맙소사.

상층의 저택보다 훨씬 큰 거 같은데.

“훈련용으로 특수 제작된 공간이라 그래요. 신기한 거 보여드릴까요?”

“신기한 거요?”

뭔가 싶어 쳐다보니 이지아가 싱긋 웃으며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쿠콰아아앙!

소닉붐이 터지며 바람이 불었다.

그녀가 내지른 주먹의 방향으로 날아간 풍압이, 바닥을 긁으며 거대한 궤적을 남겼다.

“으아악!”

바람에 밀린 나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고 있으려니 이지아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여파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어떡해… 현우 씨, 괜찮으세요? 손 잡아드릴게요.”

“아, 네. 고맙…….”

이지아가 고소 하단 듯이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부로 그런 거였어?

아직도 훈련 때문에 꽁해있는 모양이었다.

“유치하게, 진짜.”

“뭐가요! 손이나 잡아요.”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었다. 이지아가 헛기침을 하며 갈기갈기 갈려 나간 땅바닥을 가리켰다.

“보세요. 신기하죠?”

“어?”

갈라진 땅바닥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날뛰어도 원상복구 되도록 특수 제작된 훈련장이에요. 저 정도의 헌터가 평범한 훈련장에서 훈련하려면 지하가 남아나질 않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장난스레 허공을 때려 만들어낸 게 저 정도인데, 진심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

이지아가 침울하게 물었다.

“…현우 씨 능력 훈련하기 적당하죠?”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의 전원을 껐다 켜다 보면 이지아가 패닉에 빠질 텐데, 저택에서는 그걸 감당하기 힘들었다.

벌써 욕실 문 하나를 박살 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훈련하나 고민했는데 때마침 이런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근데 지아 씨.”

“네?”

“저는, 이 정도일 줄 상상도 못 했어요”

“뭐가요?”

“S급 헌터의 힘이요.”

칭찬으로 받아들인 이지아가 어깨를 으쓱대며 우쭐한 얼굴을 했다.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욕실에서 이지아가 문을 박살 내며 들어왔을 때.

그때 이지아는 패닉상태에 빠져있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만약 이지아가 내 몸을 으스러지게 안았으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지아 씨. 기억나세요? 저희 욕실에서요.”

“욕실이요?”

“일주일 전에…….”

“아.”

시선을 마주친 이지아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귀가 시뻘게진 게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지, 지금 그걸 왜 말하는데요?”

나도 괜히 코가 간질간질거려서 그냥 묻어놓고 싶은 기억이었다.

그런데 어떡해.

내 목숨이 걸린 이야긴데. 일단 꺼내 봐야지.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 지아 씨 패닉상태에 빠졌었잖아요.”

“네….”

“그리고 절 끌어안았었죠.”

대답이 안 돌아온다.

그냥 계속 말했다.

“그때, 힘 조절은 어떻게 했어요?”

“그…….”

이지아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말했다.

“사람이 다치면 안 되니까 본능적으로…? 워낙 경황이 없어서 저도 모르겠어요.”

“그럼 훈련하다가 또 패닉에 빠졌는데 힘 조절을 잘못하면…….”

이지아가 대번 반색하며 활짝 웃었다.

“현우 씨가 크게 다칠 수도 있겠네요!”

“그렇네요.”

“아하하. 뭐에요, 진짜! 거기까진 생각 못하신 거예요?”

찰싹찰싹!

이지아가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내 팔뚝을 자꾸만 때린다.

“똑똑한 줄만 알았는데 이런 어벙한 구석도 있으시구나!”

조금 전까지는 나라 잃은 것 마냥 곧 죽을 거 같은 얼굴을 하더니 뒤바뀐 상황에 텐션이 급격하게 오른 모양새였다.

이지아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훈련하다가 현우 씨가 다치면 안 되니까요. 진짜 안타깝다. 이제 밖에서 돌아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아쉬워하는 얼굴이다.

“아니, 사실…….”

“그럼 이제 방으로 돌아갈까요? 어차피 훈련도 물 건너갔는데. 저 좋아하는 드라마 할 시간이라.”

휙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는 이지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아 씨, 말 끝까지 들으셔야죠.”

“네?”

“방법이 없긴 왜 없어요.”

웃고 있던 이지아의 뺨이 살짝 경직됐다.

“방법이라뇨? 마음의 평화가 풀렸다가 제가 발작하면 현우 씨 크게 다칠 수도 있는데요.”

이지아가 조목조목 따졌다.

“저는 그런 꼴 절대 못 봐요! 제가 편해지기 위해 현우 씨를 다치게 하다뇨! 그냥 제가 불편하고 말지!”

“그 말 진짜죠?”

“그럼요!”

“다행이네요.”

“네?”

“다행이라구요, 지아 씨가 불편 감수한다니까.”

내 말에서 수상함을 느낀 건지 이지아가 불안한 기색을 내비친다.

“그게──”

말을 바꾸려는 이지아에게 재빨리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 속 사진을 본 이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뭐예요?”

“구속복이요.”

“네? 구속복이요?”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벙긋거리던 이지아가, 돌연 얼굴을 붉히더니 소리 지른다.

“현우 씨!!”

귀 멀겠네.

“구, 구속복이라뇨?”

“구속복이 왜요.”

“이상하잖아요?!”

이상해? 뭐가?

“그, 그리고 구속복으로 s급 헌터를 어떻게 구속하겠다는 거에요?”

옳은 말이다.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겠지.

평범한 구속복이라면.

이지아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게 각성 능력 범죄자 포획용으로 특수 제작된 건데…….”

헌터 스토어에서 판매 중인 특수 구속복.

최대 B급 각성자까지 완전 구속 가능하며, 그 비용은 단돈 5억.

“어, 어라? 이거 최대 B급까지인데…….”

“게임처럼 능력치에 맞게 딱 구속하는 것도 아니고. B급 이상으로도 어느 정도 저지는 가능하대요.”

S급인 이지아가 전력으로 힘을 주면 역시 찢겨나가겠지만.

최소한 마음의 평화를 다시 켜는 동안의 시간은 벌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패닉에 빠져있더라도 욕실 때처럼 어느 정도 컨트롤은 하겠지.

이지아가 뾰루퉁한 얼굴을 했다.

“돈은요?”

손가락으로 슬쩍 이지아를 가리켰다.

“필요경비는 당연히 사장님이 부담하셔야죠.”

“으으.”

이지아가 구속복을 꺼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둬야지.

“이럴 때만 사장님이야…….”

이지아가 작게 투덜거리며 내 핸드폰으로 스토어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헌터 스토어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넵, 말해주시면 됩니다.

“그, 구속복… B급…….”

­아, B급 구속복이요 고객님.

상담사가 곤란한 기색으로 말한다.

­구속복은 악용의 여지가 있어서 개인 고객들한테는 안 팔고 있습니다, 고객님.

이지아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간다.

“아, 그래요?”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뇨아뇨. 규정이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죠.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 저. 수고하세요!”

급하게 전화를 끝내려고 하는 이지아.

핸드폰을 빼앗아 내가 대신 받았다.

“안녕하세요. 핸드폰 주인인데요. 방금 통화한 건 S급 헌터 이지아구요. 구매자가 공인인 S급 헌터인데도 불가능한가요?”

­잠깐 규정 좀 살펴보겠습니다, 고객님.

“천천히 하세요.”

“현우 씨! 저 지금 랭크 하향돼서 A급이에요!”

이지아가 옆에서 폴짝폴짝 뛰길래 한마디 했다.

“쓰읍, 가만히 좀 있어 봐요. 통화 중이잖아요.”

그사이 규정을 찾아본 건지 상담사가 말을 걸었다.

­전 S 랭크, 현 A 랭크인 이지아 님이시죠?

“네.

­사용 목적이 어떻게 되시나요?

“훈련입니다.”

­네네, 본인인증만 거치시면 가능 하실 거 같습니다. 상품은 언제 수령하시겠습니까?

“결제되는 대로 바로요.”

­감사합니다, 상담사 김지영이었습니다.

뚝.

이지아가 불만스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하세요?”

“…….”

“빨리 주민등록증 안 가져오시고? 결제도 해주세요. 사장님.”

탁!

이지아가 내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듯 낚아채 갔다.

* * *

구속복은 바로 도착했다.

“아, 이거 생각보다 입히기 힘드네.”

구속복에 묶여 중심을 잡지 못한 이지아가 바닥에 풀썩 엎드렸다. 그녀가 뚱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세웠다.

“할 거면 빨리 시작해요, 우리.”

나도 이지아의 앞에 앉아 준비했다.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트레이너가 전자 제품의 전원을 누르는 이미지라고 했었지.

음…….

끄응….

이걸 대체 어떻게 하란 거야.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 내 삽질은 사흘이 넘게 이어졌다.

트레이너는 하루면 감이 잡힐 거라 했는데, 역시 나는 아무런 재능도 없는 걸까.

가만히 자리에 앉아 끙끙댔을 때였다.

“히익─!”

갑자기 들리는 비명 소리.

눈을 뜨자 이지아가 바닥에 엎드린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지아 씨!?”

“혀, 현우 씨….”

이지아가 괴로운 듯 몸부림쳤다. 그녀가 입을 벌려 숨을 헐떡였다. 아무래도 능력이 성공적으로 꺼진 모양이었다.

“능력 빨리… 빨리요.”

이지아가 재촉했다.

곧바로 움직이려던 내가 멈칫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이지아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삶을 포기할 것처럼 행동하던 그녀의 모습이.

하지만 당시의 이지아는 지금처럼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지아는 나와 만나기 전에 이미 안 좋은 결과를 맞이했겠지.

욕실에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이지아가 취미생활처럼 악플을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패닉에 빠져 과격하게 반응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지?

욕실에서의 사건과 지금의 반응.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지아 씨, 진정하고 들으세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현우 씨….”

“어서요! 대답하세요!”

이지아의 숨소리가 더욱더 거칠어졌다.

“주, 죽고 싶어져요. 계속 절 욕하던 악플들이 떠오르고, A 랭크 하락했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상상 되요.”

“계속 자살하고 싶어져요? 저하고 처음 만날 때하고 비교해서는 어때요?”

“현우 씨… 이제 됐잖아요…… 느, 능력 먼저 사용해줘요…….”

이지아의 눈에서 이성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패닉에 빠진 상태로 마음의 평화를 갈구하는 그녀를 보며 깨달았다.

상태가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 능력이었다.

이지아는 내 곁에서 모처럼 평온한 삶을 지냈다.

옛날처럼 악플에 마음 졸이지 않으며, 그녀가 원하던 대로 평온하게 살아간 것이다.

그리고 내 능력에서 벗어났을 때.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가 찾아오자 이지아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부서졌다.

쉽게 말해, 평온 속에서 지낸 이지아의 정신이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하고 더 빠르게 붕괴한 것이다.

“흐윽… 힉……!”

이지아가 말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나는 빨리 다시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눈을 감고 다시 전원 버튼을 연상했다.

집중하자, 집중.

하지만 아직 걸음마를 막 뗀 수준이어서 그런 걸까, 능력은 내 마음대로 좀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부스럭.

“…?”

바닥을 끄는 소리.

눈을 떴다.

이성을 잃은 이지아가 바닥을 기며 내게 기어 오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 지아 씨?”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을 때, 이지아가 위압적인 기세를 뿜은 적이 있다.

그때와 같은 기세가 나를 옭아맸다. 옴짝달싹 못 하는 내게 이지아가 바닥을 기며 다가왔다.

“지아 씨! 제발 정신 좀 정신 차리세요!”

“…….”

이지아가 무시하고 바닥을 긴다.

이거 좆된 거 같은데.

남녀칠세부동석도 아니고 같이 다니는 게 뭐라고, 그냥 연습 같은 거 하지 말걸 그랬나.

이제 와서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다고 손 놓고 죽을 수는 없기에 다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필사적으로 전원 버튼을 연상하던 내게, 무언가가 날아와 부딪쳤다.

툭.

짧은 순간 생각했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

품속에서 꿈틀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질끈 감은 눈을 슬그머니 떴다.

“현우 씨…….”

구속복을 입은 이지아가 내 품에 파고든 채 애원했다.

“능력 사용해주세요… 죽을 거 같아요, 현우 씨…….”

멍한 초점의 눈동자 속에 미약한 기대감과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가 패닉에 빠진 상태로도 마지막 선을 넘지 않는 이유를 눈치챘다.

내 능력이 있으면 다시 평온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패닉에 빠진 이지아에게 마지막 선을 넘지 않고 버티게 해주고 있었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가까스로 능력의 발동을 성공시키는 데는 10분이 걸렸다.

* * *

정신을 차린 이지아는 엎드린 채로 땅바닥에 고개를 푹 처박고 있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온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 지금 이지아가 죽으면 새로운 사인이 만들어질 것이다.

치욕사라고.

“그, 지아 씨.”

조심스레 불러보자 이지아가 웅얼거렸다.

“……말하지 마요.”

“울 수도 있죠. 저도 가끔 펑펑 울어요. 사실 어제도 영화 보고 살짝 울었어요. 클래식 알아요? 완전 명작인데.”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이지아는 대답없이 계속 고개를 처박고만 있었다.

“저기, 지아 씨…….”

“…됐어요!”

“지아 씨…….”

“됐다니까요! 위로하지 마세요!”

구속복을 입은 이지아가 꿈틀거리며 손길을 피했다. 내가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니 이지아가 슬그머니 물어왔다.

“…왜요?”

“전 정말 신경 안 써요. 사람이 울수도 있죠. 그러니까…….”

“그러니까?”

“연습 더 하셔야죠.”

“……?”

이지아가 홱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쳐다본다. 황당해하는 얼굴이다.

뭐가?

슬슬 감이 잡힐 것만 같았다.나 같은 둔재는 이런 시기를 놓치면 언제 또 감이 올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서둘러 재촉했다.

"연습 하셔야죠. 빨리 준비하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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