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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5화 (15/112)

〈 15화 〉 한예림 (3)

* * *

식당에 도착한 한예림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현우야! 여기 자리 비었어. 이쪽으로……?”

한예림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얼굴이 경직됐다. 이지아가 내 팔짱을 잡아당기며 한예림의 맞은편 자리로 끌고 갔다.

이지아가 미안한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예림 씨. 아직 동행이 한 명 더 있어서…….”

“동행이요?”

한예림이 얼굴을 굳히며 따지듯 물었다.

“동행분이 이지아 씨하고 앉으면 되지 않아요? 모르는 사이끼리 앉는 것보다는, 현우하고 제가 같이 앉는 게 서로 대화하기 편할 거 같은데.”

이지아가 내 그림자를 발끝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녀가 말했다.

“유정아, 빨리 나와. 식당이야.”

불쑥, 한유정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한예림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한유정을 쳐다봤다.

“뭐, 뭐예요?”

“한유정이라고 아까 말한 동행이에요.”

“아니, 제 말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인간이라니. 신기할 만도 하지. 나도 처음 봤을 땐 식겁했었는데.

한유정이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4인용 탁자라 3명이 나란히 앉기엔 많이 비좁았다. 한유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내 어깨를 마구 밀쳤다.

“아저씨, 안쪽으로 좀 들어가 봐요.”

“야, 자리 없어. 밀지 마.”

“아줌마하고 더 붙으면 되잖아요!”

“현우 씨, 유정이도 밥 먹어야 하는데 안쪽으로 더 들어와요.”

아이씨, 두 자리를 놔두고 세 명이 껴 붙으려니까 주변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진다. 자리 옮기고 싶어도 점심시간이라 만석이고.

빨리 먹고 나가던가 해야지.

이지아와 한유정하고 부대끼며 내 자리네 너 자리네 싸우고 있을 때였다.

“……그, 한유정 씨?”

“네?”

“그냥 제 옆자리로 오면 되지 않나요?”

한예림의 지적에 내가 앞으로 나섰다.

“아, 예림아. 사실은…….”

천살성과 마음의 평화에 대해 설명하려는데 이지아가 덥썩, 손으로 내 입을 가로막았다. 그녀가 내 귀에다가 속삭였다.

“현우 씨, 천살성까지 설명하면 안 되잖아요. 유정이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천살성은 각성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사회는 언제 칼을 휘두를지 모르는 살인마가 거리를 활보하도록 허용해주지 않는다.

이지아의 말이 백번 옳았다.

“지아 씨가 맞네요.”

“그쵸?”

이지아가 한예림을 돌아봤다.

“미안해요, 예림 씨. 사정이 있어서…….”

“……하!”

코웃음 친 한예림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또 사정이에요?”

“네.”

“……지랄들 하고 있네, 진짜.”

탁!

작게 중얼거린 한예림이 신경질적으로 메뉴판을 책상 위에 던지듯 내려놨다. 그녀가 팔짱을 끼며 다리를 꼬았다.

“……빨리 음식이나 골라요. 다른 사람들한테 구경 받고 싶은 취미 없으니까.”

날카로운 그녀의 말투에도 이지아는 별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현우 씨, 여기 치즈 돈가스가 그렇게 맛있대요.”

“치즈 돈가스가 맛있다구요?”

“후기 한 번 봐보세요.”

이지아가 핸드폰으로 검색한 내용을 보여줬다. 대부분 칭찬 일색이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지아와 문뜩 시선이 마주쳤다.

“현우 씨. 따로 시키면 다 못 먹고 남길 거 같은데, 저희 같이 나눠 먹을까요?”

날 바라보는 이지아의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그녀가 눈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귀 쪽으로 쓸어넘겼다. 흰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

덜덜덜, 갑자기 책상이 마구 흔들렸다.

뭔가 싶어 바닥을 내려다보니 한예림이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

“예림아, 괜찮아?”

“뭐가?”

한예림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기로 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한자리에 옹기종기 붙어있는 우리를 보고 종업원이 당황했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다.

식사 내내 이지아와 한예림의 대화가 진행됐다.

애초 나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관계없던 둘만 서로의 신상을 캐물었다.

“……현우하고는 언제 알게 되신 거예요?”

“카페에서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야겠죠. 예림 씨는요?”

“중학생 때부터요. 공학이었는데 같은 반 짝이었어요. 그게 인연이 돼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쭉 친하게 지냈구요. 그러고 보니 이지아 씨는 s급 헌터인데 현우가 필요한 일이 있나요?”

“아하하. 그럼요.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살아가나요. 아, 그런데 예림 씨는 무슨 일 하세요?”

“외국에서 대형 길드의 매니저를 하고 있어요. S급 헌터인 이지아 씨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제법 잘나가요.”

“아, 매니저 하시는구나…… 한창 시즌이라 많이 바쁘시겠네요. 그런데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라도……?”

“글쎄 웬 빌어처먹을 여우 새끼가 제가 집을 비운 사이에 우리 집 강아지 목덜미를 콱 물어갔더라구요.”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면 강아지도 힘들었겠어요. 외국 생활 동안 강아지는 다른 곳에 맡기셨을 거 같은데, 그 정도면 강아지가 예림 씨보다 맡고 있던 사람을 주인이라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강아지가 어디 첫 주인을 잊겠어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반갑다고 꼬리 흔드는 게 강아지죠, 뭐.”

이 집 치즈 돈가스 맛있네.

고기와 치즈의 비율이 일품이었다.

치즈로 범벅이 된 것도 아니고, 고기가 지나치게 크지도 않았고.

절묘한 중간 사이의 어딘가, 완벽한 균형을 잡아냈다. 맛집이 괜한 맛집은 아닌가 보다.

입에 넣은 돈가스를 삼키며 한예림에게 물었다.

“너희 집에서 강아지도 키웠던가? 자주 놀러 갔는데도 한 번도 못 본 거 같은데.”

“응. 미안한데 현우야. 지금 이지아 씨하고 대화 중이라…… 먹던 거 마저 먹을래?”

“어, 응? 그, 그래? 알겠어.”

묘하게 압박하는 한예림의 말투에 얼떨떨하게 고갤 끄덕였다.

옆에 있던 한유정이 물을 벌컥 들이마시고는 내게 말했다.

“아저씨.”

“응?”

“저, 화장실이요.”

한유정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지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아 씨, 유정이 화장실 때문에 그런데 같이 좀 가주세요.”

마음의 평화 범위가 워낙 좁다 보니 개인적인 용무를 볼 때도 이렇게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지아가 영 떨떠름한 티를 내며 나를 따라 일어났다. 한예림이 멍하니 입을 벌리며 내게 물었다.

“……현우야, 방금 뭐라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화장실 갔다 온다니까.”

“……이지아 씨하고, 한유정 씨까지 같이? 화장실을?”

“아.”

이상한가?

이상하게 들리겠구나.

한예림이 충격받은 얼굴로 우릴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갑자기 이지아가 수줍어하며 내 등 뒤로 숨었다.

나는 다급히 변명했다.

“야야, 화장실 앞까지만 같이 가주는 거야. 이상한 상상하지 마.”

고갤 숙인채 몸을 부들부들 떨던 한예림이 겨우 진정했다. 그녀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는 싱긋 웃었다.

“이해하는…….”

촥!

한예림이 물컵의 든 물을 내게 홱 뿌려버렸다.

“…….”

정수리부터 떨어지는 물이 바닥으로 줄줄 흘렀다.

* * *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영화관으로 향했다. 처음 한예림이 예약한 좌석은 단 두 표뿐이었기에 어떻게 앉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안녕하세요? 초면에 실례지만 그 자리 저한테 팔아주실래요?”

“네? 그게 무슨…….”

“값은 서른 배로 드릴게요.”

“넵! 그냥 다음 시간 걸로 보죠, 뭐. 남자친구분하고 영화 즐겁게 보세요.”

“마흔 배로 드릴게요.”

이지아가 옆좌석을 몽땅 사버렸다. 김현우의 양옆에는 이지아와 한유정이 자연스레 앉았다. 한예림이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한예림은 팔걸이에 턱을 괸 채 뚱하니 스크린을 쳐다봤다. 김현우가 힐끔 눈동자만 굴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화가 풀릴 것 같다가도,

“현우 씨, 손이 모자라서 콜라 하나밖에 못 샀는데…….”

“그럼 지아 씨가 드세요.”

“아뇨, 빨대는 두 개 챙겼어요. 같이 먹어요.”

이지아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음료를 빨대로 마시던 이지아와 김현우의 볼이 서로 부딪쳤다.

한예림과 눈이 마주친 이지아가 김현우의 시선을 확인했다.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이지아가 김현우 몰래 히죽 웃으며 한예림을 쳐다봤다.

으득.

이를 깨문 한예림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가 김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예림: 야, 김현우]

김현우에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한예림: 야]

[한예림: 야]

[한예림: 야]

[한예림: 야]

[한예림: 야]

.

.

.

우웅. 우우웅.

마구 울리는 진동에 당황한 김현우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그가 손으로 화면을 가리며 문자를 확인했다.

[김현우: 뭐야, 영화 보는데 갑자기 왜 불러?]

[한예림: 물어볼 게 있어서.

[김현우: 뭐?]

[한예림: 이지아, 한유정하고 대체 무슨 관계야?]

[김현우: 아까 말했잖아. 직장 동료야.]

직장 동료? 웃기시고 있네.

한예림이 코웃음 쳤다. 이지아의 행동 어디가 직장 동료의 태도란 말인가, 대체.

[한예림: 너 매니저 한다면서?]

[김현우: 응]

[한예림: 이지아 지금 길드 없지 않아? 사무실은 어디야? 지금 무슨 일 하고?]

한예림의 집요한 질문에 김현우가 당황한 기색으로 손가락을 멈췄다. 고민하던 김현우가 겨우겨우 문자를 써넣었다.

[김현우: 그, 사무실은 지아 씨네 집이고…… 청문회 말고는 따로 일한 거 없어. 지아 씨가 워낙 헌터 일에 질려버린 거 같아서…….]

[한예림: 뭐? 너 제대로 계약한 거 맞아?]

눈을 마주친 김현우가 아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한예림: 사무실이 집이란 건, 너 지금 이지아네 집으로 출퇴근하는 거야?]

[김현우: 아니, 같이 살고 있어]

[한예림: ???]

한예림이 고갤 갸웃거렸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한예림: 오피스텔 숙소?]

[김현우: 아니, 주택]

[한예림: 한집에서?]

[김현우: 응]

[한예림: 한유정은?]

[김현우: 유정이도 같이 살지. 사정이 있어서]

[한예림: 다른 사람은? 남자라던가, 할머니라던가.]

[김현우: 나까지 총 세 명. 그 외에는 더 없어]

빠각. 쥐고 있던 핸드폰의 액정에 금이 갔다. 그녀가 심호흡하며 핸드폰을 두들겼다.

[한예림: 이지아는 평소에 어떤 거 같아?]

[김현우: 지아 씨? 착하고…….]

[한예림: ……착하고?]

[김현우: 마음이 너무 여려 보여서 탈이야. 사람이 가끔은 독해져야 하는데]

한예림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거 다 연기야, 병신아.

우물거리던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이지아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김현우와의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

김현우와 헤어진 뒤, 한예림이 골목길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이지아…… 이지아…… 이지아…… 이지아…….”

이지아의 이름을 되뇌이던한예림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길드장, 저 한예림이예요.”

한예림이 유창하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길드장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어어, 들었어. 이번에 남자친구 보러 한국 갔다며? 잘 마무리됐어?

한예림이 싸늘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 그래? 남자친구하고 싸웠나 보구나?

한예림이 말랑말랑한 입술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길드장에게 이야기하기엔 조금 미안한 주제였다. 그녀가 말했다.

“길드장, 말씀드릴게 있어서요.”

­뭔데?

“그만두려구요.”

­뭐어!? 왜!?

“사정이 생겨서요. 한국에 들어와야 할 거 같아요.”

­하아…….

길드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예림의 말투에서 고집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미 마음이 돌아간 사람이었다.

길드장은 한예림을 자기네 길드에 붙잡아 둘 수 없다는걸 깨달았다.

­아직 계약 기간 남은 거 알지?

“네.”

­……그래, 그동안 일한 정도 있는데 빡빡하게 다 채우고 가라고는 안 할게. 와서 인수인계만 제대로 마무리하고 나가.

“고마워요, 길드장.”

­그럼 더 일해주던가.

“그건 안 돼요.”

뚝.

한예림이 전화를 끊었다.

호텔로 돌아온 그녀가 비행기 티켓을 끊고 다급히 짐을 챙겼다. 일분일초가 지체될수록 김현우와 이지아가 함께 지내는 시간도 길어진다.

하루라도 일찍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예림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빨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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