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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9화 (19/112)

〈 19화 〉 한예림 (7)

* * *

조금 전 이지아의 개인행동으로 의논할 게 생긴 모양이다. 멤버들이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소심한 이지아가 한 소리 듣지는 않을까 걱정돼 쳐다보는데, 스카우터가 옆에서 입을 벙긋거린다.

“할 말 있으세요?”

“예? 아뇨.”

“…….”

스카우터가 크흠, 헛기침을 한다.

“사실──”

그럼 그렇지. 궁금해 죽을라 하던 표정이더구만.

“전에 자택에 찾아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두 분이 많이 친하시네요.”

“네, 뭐. 매니저고 측근이니까요.”

“측근이요?”

뒤통수를 벅벅 긁던 스카우터가 사족을 덧붙인다.

“사내 연애는 금지라…….”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가뜩이나 이지아는 평판에 민감한데.

눈을 날카롭게 뜨고 쳐다보니까 스카우터가 웃는다.

“농담입니다. 그건 그렇고, 미리 말씀을 듣긴 했지만 이지아 헌터가 협동력이 많이 부족하네요.”

전투 중에 자리를 이탈한 건 명백히 이지아의 실수였다. 공략 중인 던전의 랭크가 낮아서 다행이지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지아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내려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때마침 공략대들과 대화를 끝낸 이지아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현우 씨, 공략대원들하고 이야기 끝났어요. 많이 놀랐었죠?”

“아뇨. 저보다는 공략대분들한테 미안하죠. 저 때문이니까 사과를 먼저…….”

이야기도 끝났겠다, 미안해서 공략대쪽을 바라보는데 어째 전부 거무죽죽한 얼굴로 초상 치르는 분위기다.

아무도 안 다친 거 맞지?

그런데 불쑥, 내게 얼굴을 들이민 이지아가 빙글빙글 웃으며 자꾸만 시야를 가로막는다.

“지아 씨, 잠깐만요. 사과 좀 하고 올게요.”

누가 먼저 잘못했든간에, 신입인 만큼 이쪽이 숙여주는 게 낫겠지.

그런데 내 앞길을 막은 이지아가 좀처럼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아 씨?”

“방금 리더한테 한바탕 깨져서 다들 침울해져 있어요. 지금은 놔두는 게 좋아요.”

어쩐지, 그래서 저렇게 풀이 죽은 모습이었구나. 뭔가 싶었다.

“지아 씨는요?”

“네?”

“중간에 자리 비웠다고 잔소리 안 들었어요?”

이지아가 눈웃음을 흘린다.

“지금 걱정해주는 거예요?”

솔직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 또 어디서 쓴소리 한 번 들었다고 방구석에 처박힐까 걱정되기도 하고.

“그럼요. 갑자기 자리 비웠잖아요. 공략대원들이 뭐라 생각하겠어요? 유정이 있으니까 다음부턴 자리 지키세요.”

슬쩍슬쩍 웃던 이지아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 * *

공략대가 다시 출발했다. 분위기는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어딘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눈알에 힘이 빡 들어가 있었다.

특히나, 실수를 저지른 길잡이는 의욕이 과하다 못해 흘러넘쳤다.

바닥에 코를 처박고 필사적으로 트랩을 찾고 있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집합 한 번으로 기합이 확 들어갔네.

키에에에엑!

다시 등장하는 몬스터.

스카우터가 찰칵, 몬스터들의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공략이 마무리되는 거 같네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기 눈알에 박쥐 날개 달린 몬스터 보이시죠.”

스카우터의 손가락 방향으로 시선을 따라가자, 묘사한 그대로의 몬스터가 파닥파닥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저게 심층부에 등장하는 몬스터거든요. 이블아이라고 해요.”

“저게 B랭크 몬스터예요? 엄청 약해 보이는데.”

B등급이란 게 일견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견 길드에서도 주력으로 운용하는 헌터들의 랭크다.

최고는 아니라도 일류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

눈알 하나가 날아다니는 게 어떻게 B등급 던전에 어울리는가 싶어 물었다.

“눈알에서 빔이라도 나가나?”

스카우터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나는 진지한데.

“그게 아니라, 저주계열 몬스터거든요.”

무슨 저주길래?

“헌터들한테 혼란을 줘요. 사실 본체는 별것 없는데, 같이 나타나는 몬스터들하고 뭉치면…… 까다로워지죠.”

“혼란이요?”

“음,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게 계속 흔들어요. 감정도 격앙시켜서 실수를 만들어내죠.”

역시 업계인이라 그런가 잘 아네.

팔짱을 끼고 이블아이를 쳐다봤다.

징그럽게 생긴 눈알이 360도 회전하고 있었다.

“……아.”

갑자기 끔찍한 가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이블아이는 헌터들의 감정을 격앙시킨다.마음의 평화는 능력을 받는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범위가 줄어든다.

빠르게 공략대에서 이지아를 찾아냈다.

그녀가 멍하니 제자리에 서있었다.

“거참, 이상하네요.”

스카우터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의아스레 말했다.

“왜 여긴 멀쩡하지? 원래대로라면 범위 안에 들어갈 텐데.”

왜긴, 마음의 평화 때문이겠지.

이지아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어어? 어어어! 어어!?”

당황한 스카우터가 입을 벌리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가 이지아를 가리키며 내 어깨를 마구 잡아당겼다.

“혀, 현우 씨! 이지아 헌터! 이지아 헌터 상태가 이상한데요?!”

공략대 쪽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지아가 패닉에 빠지자 전열이 흐트러졌다.

이블아이를 먼저 처치하라고 전하고 싶지만 전투가 한창이라 들리지도 않겠지.

고민하고 있는데 한유정이 말을 걸었다.

­아저씨, 눈알 괴물만 처리하면 되는 거죠?

“응.”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놀라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바닥의 그림자가 내 몸을 기어 올라왔다. 비명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혀 깨물 수도 있으니까 입 꽉 다물고 있어요.

“이거 설마 너가 내 몸 조종하는……켁!”

혀 깨물었다.

오른쪽 다리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몸이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저 멀리, 조그마한 점으로 보이던 이블아이가 빠르게 확대된다.

꾸르륵!

이블아이의 동공이 커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블아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내 손이 먼저 움직였다.

피슈우웃!

기다란 핏줄기가 터지며 이블아이가 바닥에 쓰러진다. 다시 몸이 움직이며 다음 타깃에 달려든다.

솔직히, 내가 어떻게 이블아이를 죽인 건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한 마리 죽였다 싶으면 다른 이블아이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움직여도 되나?

“야,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반작용으로 뭐 수명 깎이거나 그런 거 아니지?”

­그런 거 없어요. 대신에 내일 근육통 좀 시달릴걸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한유정이 속삭였다.

콰직!

마지막 이블아이를 처치하자 상황이 안정됐다. 공략대원들은 알아서 잘 해결하는 모습. 전장 한복판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지아에게 다급히 뛰어갔다.

“지아 씨!”

내 부름에 이지아가 슬그머니 고갤 들었다. 그녀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현우야....”

* * *

입단 테스트가 끝나고 풍화 길드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이지아 헌터의 입단 관련 건은 재고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입안이 꺼끌꺼끌하다.

이지아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를 보여줬다.

첫 번째로 협동성의 부족.

내가 위험에 처하자 공략대는 모르는 척하고 뒤로 내빼버렸다.

여기까지는 스카우터도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실책이 크게 작용했다. 이블아이로 혼란에 빠진 이지아가 전투 의지를 상실한 것.

이지아의 개복치 멘탈이 상상 이상이란 걸 길드에서 눈치챈 것이다.

전투 중에 갑자기 사라지고, 패닉에 빠져서 전투를 포기하는 헌터.

이지아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전력으로 삼기 힘들어진다.

스카우터가 전화를 끊었다.

속앓이 할 곳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

한쪽 구석에 처박혀 내 눈치를 살피던 이지아가 뜨끔, 어깨를 굳힌다.

던전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계속 저러고 있다.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헌터 복귀를 강행했는데, 자신의 실수로 갈아엎어지자 미안한 모양이다.

“연락 안 돌린 길드들 많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길드가 어디 풍화 하나뿐이에요?”

명함을 하나 꺼내며 밝은 목소리로 격려했다.

“청문회 끝나자마자 개떼처럼 몰려들던 거 생각해보세요. 아직 갈 곳 많아요.”

랭커가 딱지치기로 얻은 자리도 아니고. 이지아를 원하는 길드가 어디 한둘이야? 내 격려에 이지아도 기운이 났는지, 내 눈치를 보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그쵸?”

이지아가 무릎을 질질 끌며 내 옆으로 기어 왔다. 그녀가 내 손에 들린 명함을 쳐다봤다. 눈이 초롱초롱 밝게 빛났다.

“설월 길드네요?”

설월 길드도 중견 규모의 길드였다.

대기업 산하인 풍화 길드보다는 조건이 살짝 떨어져 반려했는데, 그래도 차선으로 설월 길드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울리더니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넵! 설월 길드의 김민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지아 헌터의 매니저 김현웁니다.”

­아…… 이지아 헌터요……?

어째 목소리가 영 시원찮은데.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지아 헌터 가입 건으로 계약에 대해 말씀 좀 나눴으면…….”

스카우터가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죄송합니다만, 길드 내부의 상황이 바뀌어서요! 아무래도 S급 헌터를 저희가 유지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

다급하게 다른 명함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넵! 에코즈 길드의 박승현입니다!”

“이지아 헌터 매니저──”

­죄송합니다!

뚝! 전화가 끊겼다.

“현우 씨…….”

“자, 잠깐만요. 명함 아직 많이 남았어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지아 헌터──”

­죄송합니다!

“여보세요? 이지아 헌터 매니저──”

­죄송합니다!

“승수 물산 길드죠? 이지아 헌터──”

­…….

뚝! 전화가 끊겼다.

처음 느낀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됐음을 깨달았다.

좆됐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지아의 행보는 모든 길드의 관심사다. 풍화 길드에서 입단 테스트를 보는 것까지 소문은 빠르게 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지아가 풍화 길드에 들어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입단 테스트에서 까였다. 다들 의문을 느꼈겠지.

알음알음으로 이지아의 결함이 드러난 것이다.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이걸 진짜 어떡하지? 차라리 길드를 직접 운영해볼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풋내기 매니저가 맨땅에 헤딩하면서 길드를 운영해보겠다니. 우습지도 않다.

이지아는 침울해하고 나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이지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 올 사람 있어요?"

"아니요. 현우 씨는요?"

"여기 제 집 아니잖아요."

지나가던 한유정이 한마디를 툭 던진다.

“길드 사람 아니에요?”

띵동! 띵동! 띵동!

신경질적으로 눌리는 초인종.

우당탕, 이지아와 함께 현관으로 뛰어갔다.

벌컥! 문을 열자 한 여자가 뚱한 표정으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갑자기 이곳에서 보게 될 줄 상상도 못 해서 얼떨떨하게 인사했다.

“예림아?”

“안녕, 현우야.”

“야! 연락도 안 되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야? 걱정했었잖아!”

찝찝하게 헤어지고 나서 연락이 끊겨 걱정했다. 그래도 얼굴 멀쩡하게 마주치니 반갑기도 하고, 안심도 되고, 섭섭하기도 했다. 한예림이 풍선껌을 탁, 불더니 내게 물었다.

“소식 들었어. 길드 구한다면서?”

“어? 응.”

“사실 이번에 길드를 만들어볼 생각이거든.”

뜸을 들인 한예림이 이어 말했다.

“……어때, 생각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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