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한유정 (5)
* * *
불안한 마음에 멀리서부터 한유정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그들을 지나쳐 한유정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누구…?”
조심스레 묻자 한유정 또래의 소녀가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유정이 친구예요.”
“네?”
“이지혜입니다!”
한유정 친구?
눈살을 찌푸리는데 등 뒤에서 한유정이 양복 소매를 조심스레 잡아당긴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길래 나도 모르게 물었다.
“너 친구 있었어?”
“아저씨…….”
한유정이 섭섭한 얼굴로 쳐다본다.
아차.
이지혜와 남자의 눈치를 살피던 내가 변명하듯 작게 속삭였다.
“아니, 너 학교 안 다니니까… 친구 만나겠다고 외출한 적도 없었잖아.”
“중학교는 나왔거든요.”
“아. 중학교 친구야?”
“…네.”
어째 대답이 영 시원찮은데.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기색이다.
이지혜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정이 하고 중학교 동창이에요. 여기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갑자기 학교도 안 나오고 연락도 끊어져서 많이 아쉬웠는데.”
시기를 생각하면 천살성 때문이겠지.
반말할지 존댓말 할지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셨구나. 유정이하고 많이 친하셨나 봐요?”
사회니까.
옆에 매니저처럼 보이는 남자가 붙어있는 걸 보면 나름 기대받는 유망주 같고.
한유정 소개로 사적으로 만난 것도 아닌데 존댓말 써줘야지.
“네. 우리가 많이 친했죠.”
당차게 대답한 이지혜가 한유정에게 고개를 돌린다.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걸려있다.
“유정아, 너도 각성한 거야?”
“응.”
“매니저도 붙은 거 보니까 대단한가 보다. 무슨 능력?”
“…….”
“너무 갑작스러웠나? 미안. 아, 너 중학교 때 갑자기 연락도 끊고 사라진 게 각성 때문이었구나! 맞지?”
“아니.”
“아니야? 언제 각성했는데?”
“한달 전에.”
이지혜의 살가운 미소가, 한순간이지만 조소로 바뀌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내가 이겼다는. 그런 감정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미소였다.
한유정의 건조한 반응도 그렇고….
정말 친구 맞아?
어째 이지아와 한예림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는 기분인데.
그만큼 서늘한 분위기였다.
“사실, 너 사라지고 나서 금방 각성했거든. 그런데 내가 생각보다 재능있는 모양이더라. 1년 만에 중견 길드에 붙고 헌터 준비한 거 있지.”
“그래? 잘됐네.”
“그런데, 내가 1년을 준비했는데 각성한 지 한달이면…….”
잠깐 고민하던 이지혜가 피식 웃는다.
“이번엔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고 다음번을 노려봐.”
“그럴게.”
“그리고 이거 무기 한번 봐볼래? 이번에 자격 시험 본다고 길드에서 지원해준 건데…….”
이지혜가 장비를 꺼내 한유정에게 뽐낸다.
나불나불, 자랑이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한유정이 귀찮은 기색으로 팔짱을 꼈다. 싫어하는 티를 내자 이지혜의 목소리가 더 활발해졌다.
그 꼬라지를 본 나는 혀를 찼다.
그런 거였구나.
저런 애들, 한 명씩 꼭 있지.
남 깔보고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기보다 더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마구 날뛰는 거다.
한유정이 꺼리던 게 이제야 이해 갔다. 얼굴 마주칠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겠지.
곧 1차 자격시험이 진행됩니다. 수험생 여러분들께서는 자리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재잘재잘 떠들던 이지혜와 한유정이 대화를 멈추고 발걸음을 옮긴다.
맞다, 이거 못 줬네.
“유정아!”
걸어가던 한유정이 뒤를 돌아봤다.
봉투를 뒤적이며 후다닥 달려갔다.
그녀의 손에 재빨리 빵과 우유를 쥐여줬다.
“너가 평소에 좋아하던 거로 사 왔어. 너 아침에 일어나면 꼬박꼬박 밥 챙겨 먹는데 오늘 외출 준비한다고 그냥 나왔잖아.”
“….”
“알아서 하겠지만, 긴장하지 말고. 전에 센터에서 말했던 거 기억하지? 실망 안 한다고.”
“…네.”
“그럼 됐어.”
한유정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지혜가 옆에 달라붙어 재잘거린다.
자리로 돌아가는데 남자가 불쑥 말을 건다. 방금까지 이지혜 옆에 정승처럼 서 있었던 남자다.
“안녕하세요? 악산 길드의 최대현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김현웁니다.”
남자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넨다.
허리를 꾸벅 숙이며 받는데 그가 멀뚱멀뚱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눈치챈 내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했다.
“아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명함이 없어서…….”
“아. 매니저 아니세요?”
“…매니저 맞습니다.”
남자가 헛웃음을 짓는다.
그걸 들은 내 귀가 시뻘게졌다. 명함 먼저 팔걸.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매니저가 명함도 없어?
“그럼, 어디 길드세요?”
“네?”
“길드 이름이요. 명함 없으시다니까.”
“…….”
오늘 한예림이 길드를 만든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길드 이름도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달싹거리는데 남자가 의심스레 날 쳐다본다.
“혹시 어린애한테 지금 공사 치는 겁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아직 길드가 안 만들어져서요.”
남자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방금과는 태도를 달리한다. 같은 매니저로 보지 않는, 무시하는듯한 자세.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여기서 지금 이지아의 이름을 말하면, 저 남자의 태도가 바뀔까?
그러다가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져서 그만뒀다.
병신새끼.
팔 게 없어서 이딴 걸로 이지아의 이름을 팔려고 그래?
제 혼자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꾸민 게 떠오른다.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왁스로 쫙 넘긴 머리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도수 없는 안경도 빼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팔짱을 끼고 주위를 둘러봤다.
힘주지 않고 깔끔하게 꾸민 매니저들. 여유로운 태도가 자연스레 나온다. 대부분 대형 길드 소속이었다.
“하하.”
그냥, 갑자기 내 꼴이 우스워졌다.
남자와의 대화를 통해 똑똑히 깨달았다.
결국 헌터 업계에서 우리는 신입에 불과했다. 나를 보여주는 건 이따위 것들의 외관이 아니었다. 날 지탱해주는 길드와 헌터들의 위상이 중요했다.
“…?”
저 멀리 수험생들 사이에서 한유정과 시선이 마주쳤다. 멍하니 날 쳐다보고 있다. 왜 저렇지? 기운 없어 보인다.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을 흔들어 줬다.
한참 동안 제 자리에 서 있던 한유정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 * *
천살성은 월요일을 기준으로 살심이 초기화된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살심이 강해지다가 일요일을 기점으로 통제를 잃고 폭발한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손에 피를 묻히고 난 뒤였다.
이런 비극은 다행히도 김현우의 능력으로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초기화시키지 못한 살심은 더욱 증폭된다. 다음 주의 월요일은 저번 주의 월요일보다 살심이 강하다.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저번에 길드 자체적으로 모의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안정적으로 순위권에 들 정도는 되더라고.”
이지혜가 자랑한다. 한유정이 무시하고 심신을 다스렸다.
김현우와 멀리 떨어지고부터, 죄책감이 전신을 옥죄여왔다.
원해서 한 살인은 아니다. 천살성 때문이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한유정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결국 주체는 자신이었으니까.
‘내가 없었다면… 그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까?’
김현우의 능력은 천살성 뿐만 아니라 죄책감까지 옅게 만들었다.
한유정이 굳이 김현우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 이유였다.
“1차, 2차, 3차 총 세 번의 시험이 있으며, 2차 시험은 1차 시험의 합격자에 한하여 추후 시험일을 통보할겁니다. 1차 시험은 랜덤으로 떨어진 필드에서 몬스터를 잡으며 수험자들끼리 경쟁하는 것으로…….”
시험관이 엄격한 얼굴로 설명한다.
헌터를 지망한다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라 다들 지루하게 듣고 있었다.
한유정의 눈에, 현우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가 매니저와 나눈 대화까지도.
어째서 어깨가 저렇게 축 처져있는지, 기죽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충분히 짐작됐다.
현우가 손을 흔들었다
한유정도 어색하게 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
한유정이 봉투를 뜯어 빵을 입에 물었다. 목이 퍽퍽해 우유를 벌컥 들이켜는데 옆에서 이지혜가 조소를 짓는다.
“야, 너네 매니저 되게 능력 없다. 시험 들어가는데 빵하고 우유가 뭐냐?”
“…….”
“우리 매니저는 자격시험 잘 보라고 어제 호텔 레스토랑 데려다줬는데.”
아저씨도 고기 사줬는데. 디저트도.
목구멍에서부터 무언가 울컥한다. 한유정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가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사회에서 가장 먼저 만난 어른은 협회장이었다. 16살짜리 애를 어떻게든 이용하려고 하던 욕망에 가득 찬 늙은이.
그렇기에 현우는 협회장하고 많이 대비됐다.
살인 도구로만 이용하던 협회장과 다르게 현우는 한유정을 그 나이대의 소녀처럼 대우해 줬다.
너무 힘들면…… 그럼, 중간에 포기해도 괜찮아.
존경할만한 어른이었다. 한유정이 생각하는 현우는 그랬다.
그래서 현우가 이지혜와 그녀의 매니저에게 무시당할 때, 한유정이 처음 느낀 감정은 짜증이었다.
누구든지 그럴 것이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얼굴도 모르는, 혹은 아는 것만도 못한 사람에게 무시당하면 속에서 열이 날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그 정도였을 것이다.
“너희 길드도 너무한 거 아니야? 무슨 한달 전에 각성한 초보를 시험장에 쑤셔 넣어?”
최근 두 달간 천살성은 초기화되지 않고 넘어갔다. 살의는 끊임없이 강해진다. 이번 주는 저번 주보다 더.
평소 습관처럼 심신을 다스리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부정적인 감정이 꾸물거리며 자꾸만 밖으로 터져 나오려 한다.
난폭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너가 아직 각성한 지 한달밖에 안 돼서 잘 모를 수 있는데. 순진한 애들 작업 치는 유령 길드들 많거든.”
한유정이 남은 빵을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었다. 그녀가 가슴을 턱턱 두들기며 우유를 마셨다. 다 마신 우유곽에서 얇은 물줄기가 몇 방울 뚝뚝 떨어진다.
혀를 내밀어 전부 받아마신 한유정이 우유곽을 꾸깃 쥐었다.
“우리 매니저하고 너무 비교된다. 어쩔 수 없긴 해. 그래도 내가 있는 데가 중견 길드니까.”
그래도 참으려 했다.
참아보려 하는데, 어째 잘 안 참아진다.
“길드에 담당 매니저 바꿔 달라고 해 봐. 허우대는 멀쩡한데 센스 없게 빵이 뭐야? 커피라도 사 오던가.”
한유정이 마음속 끈을 놓았다.
은은한 살의가 터져 나온다. 수험생들이 싸늘함을 느끼고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녀가 촉새처럼 떠드는 이지혜를 불렀다.
“야.”
“응?”
한유정과 눈을 마주친 이지혜가 저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밝은 빛 아래, 한유정의 붉은 안광이 귀화처럼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낮게 읊조렸다.
“입 찢어버리기 전에 닥치고 가만히 있어. 옆에서 짹짹대지 말고.”
한유정의 눈동자에 살의가 진득하게 일렁였다.
소녀는 생각했다.
한순간 감정이 격해진 건 천살성이 문제라고.
아무튼 간에, 전부 천살성 때문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