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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28화 (28/112)

〈 28화 〉 한유정 (7)

* * *

헌터 자격시험의 1차 테스트는 포인트 경쟁전이다. 몬스터들을 잡고 획득한 포인트로 랭크가 매겨진다. 당연하지만, 강한 몬스터일수록 높은 포인트를 지급한다.

자격시험인 만큼 목숨을 거는 일은 없다. 수험생들은 가상 현실 속 필드에서 경쟁한다. 통증은 그대로지만 최악의 상황인 죽음만큼은 피할 수 있다.

그래도 붙어있는 조건은… 수험생들끼리는 서로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

헌터는 몬스터를 잡는 게 목적이지 같은 인간을 해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시험장은 헌터에 알맞은 각성자를 선발하는 곳이다. 헌터 진압 부대가 아니라.

그렇기에 시험장에서 수험생들끼리의 살인은 금지였다.

“…이제 대충 알겠지?”

“네.”

한유정이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몰라 규칙에 대해 다시 설명해줬는데 한 번 듣고 전부 이해한 거 같다.

눈치가 워낙 빠른 애라 별로 걱정은 안 됐다.

이지아였으면 두세 번 더 꼼꼼히 확인해봤을 거 같은데.

어째 애가 손이 덜 가냐, 하하.

“아저씨, 근데 만약 시험장에서요.”

턱을 괴고 고민하던 한유정이 조심스레 묻는다.

“같은 수험생을 처치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우.”

서늘함에 나도 모르게 엄살을 부리니까한유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얘는 다 좋은데 가끔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진다니까.

“야! 그런 건 또 왜 물어? 감독관이 하지 말라면 안 하면 되는 거지.”

“네? 아뇨, 그야….”

말을 삼킨 한유정이 아, 작게 입을 벌리더니 돌연 외친다.

“그거요!”

“그거 뭐?”

“다른 수험생들이 절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몬스터 잡는 데 방해된다고…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유정이 머쓱하게 웃는다.

맞는 말이다. 규칙은 자세하게 알면 알수록 득이 된다. 걸리적거린다고 다른 수험생들을 처리하지 않도록, 시험장의 규칙을 알려줬다.

“공격하면 안 돼. 현실하고 다르게 가상 공간이라 빈틈이 없거든.”

몬스터 잡은 거까지 포인트로 집계를 하는데, 사람 때리고 죽이는 걸 운영 측에서 모를 리가 없다.

같은 수험생을 공격하면 곧바로 불합격 처리. 시험장에서 추방된다. 공격받은 수험생은 재시험의 기회를 얻고.

사실상 득을 볼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몬스터나 잡으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필드에서 다른 수험생들 만나면 그냥 소 닭 보듯 지나가. 걔네도 미친 거 아니면 공격 절대 안 할 테니까.”

“네.”

얌전히 대답한 한유정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이 정도까지 설명해줬으면 알아서 잘하겠지. 시계를 보니까 슬슬 들어갈 시간이다. 한유정을 데리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복도를 걷는데 한유정의 정수리가 시야 한구석에서 아른거린다. 어깨도 닿을 듯 말듯 스치는데 갑자기 감회가 새롭다.

일요일을 제외하면 이렇게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걸었던 적이 있었나? 집안에서 가끔 마주치면 서먹하게 아는 채 하면서 지나갈뿐이었는데.

최근 한유정과의 거리감이 부쩍 줄어들었다. 분명, 옷 사주고 디저트까지 먹었던 날이 계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내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한유정하고 약속했던 게임은 막상 못 했었네.

“유정아.”

“네?”

“너 요즘도 게임하고 있어? 맨날 거실에서 하던 거.”

한유정이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그 게임을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하긴, 지금 제일 인기 많지.

“그래? 잘됐네. 왜, 전에 약속했던 거 때문에.”

“약속이요?”

“엉. 게임 알려준다 했는데 옷 산다 디저트 가게 간다 뭐하다 보니 시간 부족해서 흐지부지됐었잖아.”

한유정이 뒷말을 예상했는지 기대하는 얼굴로 귀를 기울인다.

“갑자기 생각나서. 자격시험 끝나면 같이 게임할까?”

“언제요?”

“글쎄, 시간 남으면 언제든지?”

진짜 좋아하네.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방금까지 옆에 나란히 갔는데 지금은 살짝 앞으로 치고 나가서 살랑살랑 걷고 있다.

저게 기뻐하는 척 연기 하는 거라면, 아마 난 이 세상 누구도 믿지 못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의 모퉁이를 도는데,

““어?””

의외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한유정의 친구 이지혜와 그녀의 매니저였다.

시험장 문을 사이에 두고 발걸음을 딱 멈춰 섰다. 뻘쭘하게 서로를 바라보는데 이지혜가 먼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안녕, 유정아.”

한유정이 심드렁히 고개만 까딱였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내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너 친구도 얼마 없으면서 그렇게 차갑게 대하면….”

어이쿠, 한유정의 눈빛이 싸늘해진다. 입에 지퍼를 잠그며 뒤로 물러났다.

나와 한유정의 눈치를 살피던 이지혜가 물었다.

“아직 시험 안쳤구나?”

“어.”

“아, 그래?”

불안감에 흠뻑 젖은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린다. 침을 꿀꺽 삼킨 이지혜가 물었다.

“혹시, 너 조가….”

“6조.”

대답을 들은 이지혜의 얼굴이 쩌적 갈라진다.

*

이지혜가 다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조가 같은 게 뭐 어때서?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어차피 시험장에서 수험생들끼리는 공격하지 못한다.

분명 알고 있는데, 부어오른 볼이 자꾸만 쓰라려 온다.

“그, 그래? 우연이네. 나도 6조거든.”

그렇게 말한 이지혜가 매니저의 소매를 확 잡아당겼다.

“오빠! 빨리 들어가자, 늦겠어!”

“여기서부터는 수험생만 들어갈 수 있어. 너 혼자 들어가.”

“뭐?”

매니저가 이지혜의 등을 떠밀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이지혜는 한유정과 함께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강당에는 이미 도착한 수험생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방송이 나왔다.

[곧 시험이 시작될 예정이니 6조에 속한 수험생분들께서는 안내에 따라 자리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이지혜가 한유정의 눈치를 살피며 걸었다. 한유정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멀리서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소리쳤다.

“방금 도착하신 수험생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이지혜와 한유정이 다가가자 스태프가 명단을 휘리릭 넘겨 이름을 확인했다.

“이지혜 님이죠?”

“네.”

“66번 자리로 가시면 됩니다.”

번호표를 받은 이지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유정아, 나중에 보자. 시험 잘 봐.”

“한유정 님은 67번 자리예요.”

“…….”

전선이 덕지덕지 붙은 캡슐에 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66번과 67번.

이지혜와 한유정이 자리에 섰다.

단상에 선 감독관이 인사와 함께 시험에 관한 주의사항들을 설명했다.

대부분 매니저에게 들었던 내용이다. 이지혜는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유정이 계속 신경 쓰여서 감독관의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한유정이 갑자기 손을 뻗어온다.

“으악!”

지레짐작한 이지혜가 팔을 들어 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 동안 가만히 있는데 어째 아무런 반응도 없다.

한쪽 눈을 슬그머니 떴다. 손을 내민 한유정이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지혜가 입술을 떨며 물었다.

“…이게 뭐야?”

“사탕.”

한유정이 손을 재차 내밀었다.

‘약이라도 탔나?’

의심스러웠던 이지혜가 철썩! 한유정의 손등을 때렸다. 한유정이 사탕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깐 내가 좀 심했어. 미안.”

“뭐?”

“볼 꼬집은 거.”

이지혜가 욱씬거리는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팔짱을 끼며 물었다.

“너 대체 뭐야? 사람 입을 찢어버린다고 협박하더니 왜 갑자기 사과하고 있어?”

“…….”

설명해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김현우를 욕한 이지혜가 먼저였다. 한유정이 눈썹을 찌푸렸다.

“너가 시작한 거였잖아. 그러니까 내 매니저를 왜 욕해?”

“고작 그런 거로 사람 볼을 이렇게…!”

이지혜가 따져 물으려다가 말을 멈췄다.

단상에 있는 감독관이 수상쩍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씩씩거리며 분을 삼켰다.

[이제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장치에 누워 대기해주시면 됩니다.]

“너! 이제 됐으니까 나한테 말 걸지 마. 앞으로 나도 아는 체 안 할 테니까. 알겠어?”

이지혜가 으르렁대며 쏘아붙였다. 자리에 눕는데 한유정이 뚱한 얼굴로 사탕만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이지혜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지금은 시험에 집중할 때였다. 눈을 감았다. 곧 의식이 점멸했다.

* * *

한유정이 들어가고, 이지혜의 매니저와 뻘쭘하게 시선을 마주쳤다. 그가 크흠, 흠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그, 한유정 매니저였죠?”

“네.”

“한유정에 대해서는 지혜한테 다 들었습니다. 아까는 사짜 취급해서 미안합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아이 꼬셔서 헌터 시켜주겠답시고 장난질 치는 줄 알아서….”

“네?”

뭔 소리야? 의아스레 쳐다보니까 매니저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요즘 웬 양아치 녀석들이 너도나도 매니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다니다 보니까 이런 일도 있네요. 그쵸?”

“…?”

“한유정이 각성한 지 한 달이 안 됐다고 들었는데, 지혜를 그렇게 만든 거 보면 벌써 떡잎이 보이더라고요.”

“이지혜를요?”

“각성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러기 힘들 텐데. 혹시, 실례지만… 신체 강화 능력인가요?”

“네.”

내 대답을 들은 매니저가 제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적대적이던 시선이 한풀 꺾이다 못해 호의적이기까지 했다.

뭔가 싶어 물었다.

“근데, 이지혜하고 유정이한테 무슨 일 있었나요?”

“네?”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안 잡혀서요.”

“아. 말씀 못 들었어요?”

“네.”

“아까 지혜 볼 벌겋게 부어오른 거 보셨죠?”

“네.”

“한유정한테 꼬집혀서 그렇게 된 거래요.”

“네?”

잠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 얼타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한유정이 이지혜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때려서?

“농담도 참.”

“아뇨, 저도 농담인줄 알았는데 지혜가 분명…….”

매니저가 불라불라 설명하는데 별로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잠깐에 불과했지만, 그 사이에 이지혜의 성격이 강렬하게 내 뇌리에 박혀 있어서 말이야.

믿을 사람의 말을 믿어야지.

“아무튼, 한유정을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유령 길드는 아니라고. 아까 전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매니저.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다.

묘하게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아직 새록새록하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거들먹 거릴정도의 실수는 아니라 적당히 그의 사과를 받아 넘겼다.

“그럼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가서 커피나 마시면서 기다릴까요?”

한예림한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헌터와 다르게 매니저는 인맥이 전부고 실력이라며. 총과 칼 대신 핸드폰 속 연락처가 가장 큰 무기라고.

커피 한잔 마시며 안면 트는 것도 괜찮겠지.

그런 제안을 하는데, 매니저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린다.

“제가 사죠.”

“미안한 거라 그런거면 진짜 괜찮다니까요.”

“아뇨, 그런게 아니라.”

매니저가 위풍당당한 얼굴로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

“저, 법카 있습니다.”

법카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지.

* * *

키에에에엑!

괴물이 괴성을 질렀다. 날카로운 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풀숲에 숨어있던 괴물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와 한유정에게 달려들었다.

한유정이 손날을 휘둘렀다.

서걱!

괴물들이 산산조각 나며 쓰러진다. 핏줄기가 솟구쳤다.

[score: 0 ­> 272]

[1위]

시야 한편에 창이 떠오른다. 점수가 올랐다. 한유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휘휘 손을 저었다.

‘신기하네.’

한유정이 손을 쥐었다 폈다, 현실과 똑같은 감촉을 느꼈다. 코끝에 스며드는 흙냄새까지 생생했다.

잠깐 게임 같은 기분으로 즐기려던 한유정이, 한예림의 부탁을 떠올렸다.

압도적인 실력 차로 데뷔해달라고. 새로 만들 길드가 대중에게 관심받을 정도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지아 정도의 기록으로.

쉬운 일이었다.

“어…?”

발걸음을 옮기려던 한유정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가슴이 부글부글 들끓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잠잠하던 살의가 갑자기 파도처럼 밀려올때가 있다. 보통은 김현우가 근처에 없을때다.

왜지? 여기는 마음의 평화가 닿지 않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살기가 들끓은 일은 한 번도…….

­야, 너네 매니저 되게 능력 없다. 시험 들어가는데 빵하고 우유가 뭐냐?

­길드에 담당 매니저 바꿔 달라고 해 봐. 허우대는 멀쩡한데 센스 없게 빵이 뭐야? 커피라도 사 오던가.

­유령 길드라고 매니저도 어디 허접한 새낄 붙여줘서는. 그리고 아저씨는 무슨… 혹시 너 원조 교제하니?

무시하고 모욕하던 이지혜의 언행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인상을 찌푸리던 한유정이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두 눈이 끈적한 살기를 머금은 채 은은하게 빛났다.

이미 시험은 뒷전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광활한 숲이 시야 한가득 들어온다.

주위를 빠르게 둘러본 한유정이 다리로 허공을 때렸다.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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