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김현우 (1)
* * *
불판 위의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다. 맞은편에 앉은 한유정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아저씨, 아직 안 익었어요?”
“응.”
“소고기는 조금 덜 익혀도 괜찮다던데.”
“야, 방금 전에 올렸어! 설익어도 괜찮다는 게 생고기 먹으라는 뜻은 아니야!”
내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유정은 미련이 물씬 남은 눈빛을 불판에 보냈다.
대체 내가 주는 용돈들은 다 어디다 쓰는 거야? 게임용품 사는 것도 한두 푼이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도 아니고 주면 주는 대로 질질 새어나간다.
일일이 따지는 것도 못 할 짓이고, 어디 이상한 곳에다가 쓰지는 않겠거니 믿어야지.
엄한 짓 할 애도 아니니까.
“그런데 아저씨.”
“응?”
“고깃집은 갑자기 왜 온 거에요?”
“아, 이거.”
집게로 고기를 뒤집었다.
“갑자기 공짜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공짜 돈이요?”
“누가 20만 원을 던지더라고. 적선하는 것처럼.”
내기로 돈 딴 걸 빙빙 돌려 말했다.
본인을 두고 도박했다고 사실대로 어떻게 말해?
이해하지 못한 한유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해할 필요가 있냐.”
핏기가 가신 고기를 두어 점 집어 한유정의 밥 위에 얹어줬다. 막 불판에서 도망친 고기 위로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고기는 똑같은 고긴데.”
평온한 내 말투에 한유정의 얼굴이 대번 심각해졌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도인처럼.
“고기는 고기.”
그러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저씨 말이 맞아요. 고기는 고기… 잘 먹겠습니다.”
양심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융털이 가시처럼 쿡쿡 심장을 쑤셨다.
미안.
사실 이거 네가 번 돈이야.
양념에 흠뻑 젖은 고기를 입에 쏙 집어넣으며 웃었다.
“역시, 공짜 밥이라 맛있네.”
한유정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식사하는 때였다.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헌터 자격시험에서 3,000점을 넘긴 헌터 지망생이 등장해 큰 화제입니다.]
[현재 S급 헌터로 활동 중인 이지아를 이어서 두 번째로 3,000점을 넘긴 고득점자인데요.]
[한유정 양은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뉴스는 대부분 실속 없는 추측에 불과했다. 과거를 지우고 새로 시작하는 한유정은, 어떻게 보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느 순간 한유정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그리곤 멍하니 TV를 집중해서 본다. 애타게 찾던 고기도 잠깐 잊은 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볼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왜? TV에 네 이야기 나오니까 신기해?”
“이런 식으로 TV에 언급될 줄 상상도 못 했어요.”
한유정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런 건 천살성을 들켜서 지하 감옥에 끌려갈 때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짠한 그 말에 눈 밑이 시큼시큼해진다.
더 들으면 밥 먹다가 울 거 같아.
“…먹자, 먹어. 놔두면 고기 다 타겠다."
“앗.”
한유정이 젓가락을 움직여 고기를 입에 넣었다. 오물거리는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3,000점? 높은 건가?”
“이지아에 이어서 두 번째라잖아. 그럼 높은 거겠지.”
“부럽다 시발. 나도 각성 안 하나.”
“네가 각성하면 잘 해봐야 고기 잘 굽는 능력이나 얻겠지.”
“뭐, 인마?”
한유정을 쳐다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식사에 집중하는 척하지만, 쫑긋 세운 귀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젠 익숙해져야 할 거야.”
“네? 소고기요?”
“소고기…. 그래, 소고기도 익숙해지긴 하겠지.”
어디 소고기뿐이겠어?
지금이야 내게 용돈 받아 쓰는 처량한 신세지만, 아마 통장 잔고는 금방 역전돼서 떵떵거리며 살 거다.
“1차 시험으로도 벌써 언론에 제법 노출됐잖아. 2차, 3차가 지날수록 주목도는 더 오를 거야.”
언론은 제2의 이지아가 나타났다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것이다.
“저 사람들이 떠든 거처럼, 앞으로 네 이야기가 사방에서 끊임없이 들릴 거거든."
천살성이라는 능력을 각성한 죄로 한유정의 인생은 나락까지 곤두박질쳤다.
과거의 문제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걸 보며 자주 생각했다.
내 능력껏, 도와주고 싶다고.
그리고 슬슬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많이 변할거다.
음지에서의 삶이 어땠던. 과거가 어떻든.
암살자 한유정이 아니라 헌터 한유정의 미래는,
“여태까지 하고는 조금 많이, 달라질 거야.”
양지에서 찬란히 빛날 테니까.
&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에요?]
방에서 영화를 보는데 전화가 왔다.
한예림이었다.
“여보세요?”
오늘 약속 있어? 급한 일 아니면 나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길드 일?”
엉. 유정이 오늘 인터뷰 잡아놓은 거 알지?
알다마다.
한유정은 인터뷰가 잡힌 날부터 예상 질문과 답안을 달달 외우는 중이었다.
갑자기 협회에 들릴 일이 생겼거든. 네가 유정이하고 같이 인터뷰 갔다 와줘.
“어려울 건 없는데. 협회는 갑자기 왜?”
수화기 너머로 한예림이 혀를 찬다.
이 녀석들이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길드 등록 신청한 거 반려돼서. 협회 가서 서류 좀 다시 확인해봐야 할 거 같아.
이지아는 한예림이 데려가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던, 한유정의 믿음직스러운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뒤로 푼수 같은 모습들도 쫘르륵 지나간다.
영 불안한데.
한유정의 방문을 두드렸다. 반응이 없다. 몇 번이나 두드리며 한유정을 불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이마를 짚었다.
얼씨구.
“야, 한유정! 그만 자고 일어나! 인터뷰 가기로 했었잖아!”
*
길쭉한 빌딩들 앞에서 시계를 확인했다.
12시 20분.
기자와 약속한 시각은 3시. 남아도 아직 한참 남았다.
등 뒤가 따갑다. 한유정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더 잘 수 있었는데.”
“인터뷰 시간 늦춰진 지 몰랐지. 미안….”
한예림 얘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그걸 깜빡하면 어떡해?
점심시간인데 회사로 쳐들어가서 지금 당장 인터뷰하자고 땡깡부릴수도 없고. 잠깐 끼니나 때울까 해서 근처의 포장마차로 향했다.
“사장님, 떡볶이 2인분…. 유정아, 배 안 고파? 얼마나 먹을래?
“2인분이요.”
“여기 3인분만 포장해주세요.”
기다리면서 어묵 꼬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냥 길거리에서 파는 흔한 맛이다. 그리고 어묵 꼬치가 흔한 맛이라는 건, 맛있다는 의미지. 순식간에 빈 막대기가 수북이 쌓였다.
“떡볶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포장마차를 나온 걸었다. 한여름이라 햇빛은 쨍쨍하고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벤치에 앉아서 이걸 먹다가는 열사병으로 쓰러질 거다.
“…차로 갈까?”
한유정이 세상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생각 같아요.”
그래, 에어컨 틀어놓고 먹어야지. 필터에 떡볶이 냄새 좀 배기겠지만, 뭐 어쩌겠어. 이렇게나 더운데.
한적한 골목길을 걸으며 물었다.
“인터뷰 준비는 잘했어?”
“네. 언니가 질문거리 요약해줬어요.”
“언니? 누구? 지아 씨?”
“아줌마 말고 예림이 언니요.”
한예림은 언니야? 이지아는 아줌마고? 나는 아저씨… 셋 다 동갑인데 부르는 건 전부 다르네. 기준이 종잡을 수가 없다.
“응?”
커다란 밴이 골목길 입구를 막고 있었다.
주차 개떡같이 해놨네.
우리 차는 골목길 안쪽에 있었다.
그런데, 이 자식이 번호를 안 꽂아놨다.
나중에 우리는 어떻게 나오라고?
“어떤 양아치 새끼…….”
말끝을 흐렸다. 한유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입도 살짝 벌리고 있다. 나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음, 얼른 들어가서 떡볶이 먹자.”
“아저씨, 방금….”
“아니야!”
비좁은 길을 파고들어 자동차에 겨우 들어갔다. 한유정과 떡볶이를 먹으며 인터뷰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갑자기 차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뭐지?
밴 앞에 5명 정도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있다. 시커먼 양복의 남자가 통화를 끊으며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환장하겠네, 이거.”
“오빠, 왜 그래요?”
“대진 일보 기자한테 전화 와서. 그동안 말 없어서 나가리 된 줄 알았는데 오늘 갑자기 인터뷰할 수 있냐고 묻네.”
대진 일보?
한유정과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은 신문사 이름이었다.
“대형 신문사잖아! 그쪽하고 인터뷰 잡혔는데 왜 한숨을 쉬어요? 복 달아나게.”
“아이씨, 더 헌트하고 이미 인터뷰 잡아놨으니까 그렇지. 대진 일보 쪽하고 시간이 겹쳐.”
“더 헌트? 거긴 헌터 전문 잡지잖아요.”
여자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대형 신문사하고 잡지사인데, 그럼 뭘 고민해요? 잡지사 쪽 인터뷰 취소하면 되지.”
“얼씨구, 스케줄 조정을 지가 하려 그러네. 그냥 네가 헌터 말고 매니저 할래?”
“아쉬워서 하는 말이죠.”
머리를 벅벅 긁던 남자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조 기자님? 저 태산 길드 박 실장인데요. 잠깐 통화되세요? 상암동 가는 중에 차 사고가 나서… 처리하는데 좀 걸릴 거 같아서요.”
수화기 너머로 큰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매니저와 헌터들 같다. 어쩐지, 골목길에 뭔 코끼리만한 밴이 떡하니 놓여 있다 했더니.
대형 길드 매니저와 헌터들이 타고 다니는 차였구나.
그러고 보니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를 제외하면 얼굴들이 제법 눈에 익다.
태산 길드, 태산 길드….
아!
가물가물하던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한유정과 같은 헌터 시험을 치고 있는 유망주들이었다. 그것도 제법 미래를 기대받고 언론에도 노출된.
근데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야?
“떡볶이 맛있네. 순대도 사 올걸 그랬다, 그치?”
“네.”
한유정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 올까요?”
“사와도 매니저인 내가 사 와야지 네가 왜 갔다 오냐?”
“제가 가면 금방인데.”
“됐어, 인터뷰나 마저 준비하자.”
한유정의 인터뷰에 집중하려던 때였다.
전화를 끊은 매니저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한유정인가, 걔 있잖아. 3,000점 넘겼다고 ‘제2의 이지아’라며 난리 치고 있는 유망주.”
한유정?
귀가 쫑긋 세워진다.
“너무 걱정들 마. 이번에 2차 시험 때 그렇게 높은 점수 못 받을 거야.”
뭐?
“왜요?”
“2차 시험은 단체전인 거 알지? 4명씩 랜덤으로 팀 이뤄서 몬스터 웨이브 막는 거.”
“알죠.”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이게. 팀을 잘 만나야 하는데….”
피식 웃은 매니저가 연기를 길게 뿜어낸다.
“대형 길드들은 벌써 로비 들어갔어. 로비 못하면 족쇄 차고 싸우는 거고, 시작도 전부터 끝난 거지 뭐.”
유망주들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우리 길드는요?”
“걱정할걸 해라. 우리가 어떤 길드인데. 이미 판 다 짜놨지. 돈만 먹이면 끝나. 너넨 그냥 떠먹여주는 거 받아먹기만 해.”
매니저가 담배를 바닥에 비비며 말했다.
“시간 됐다. 가자.”
매니저와 헌터들이 우르르 밴에 올라탔다. 입구를 막은 밴은 곧 사라졌다.
“…….”
입안이 꺼끌꺼끌했다.
한유정은 말없이 인터뷰 종이만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들은 걸, 한유정이 못 들었을 리가 없지.
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돌았다.
그걸 먼저 깬 건 내가 아니었다.
“아저씨.”
“응?”
“걱정하지 마세요.”
“뭐?”
고개를 돌렸다. 인터뷰 종이에 시선을 고정한 한유정이 마치 안부 인사를 묻듯, 툭 말을 던졌다.
“제가 보란 듯 이겨서 꼭 1등 할게요.”
의기소침해 있던 게 그렇게 얼굴에 티 났나.
격려받을 정도로?
한참 동안 할 말을 찾다가 그냥 웃어버렸다.
“내가 말했었지?”
“뭐를요?”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 편히 가져. 만약 네가 1등을 못 하더라도, 그건 내 능력이 부족했던 거니까.”
멍하니 있던 한유정이 무거운 입술을 뗐다.
“……네. 열심히, 할게요.”
“그럼 됐어.”
시계를 확인했다. 2시 15분. 먼저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어야지. 기자한테 먹일 도넛과 커피도 준비하고.
가서 아부 떠는 것도 내가 할 일이다.
한유정의 기사가 조금이라도 좋게 나오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매니저의 역할이니까.
“우리도 슬슬 출발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