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김현우 (2)
* * *
조 기자가 핸드폰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실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터뷰를 펑크내야 한다니요?”
상암동 가는 중에 차 사고가 나서… 처리하는데 좀 걸릴 거 같아서요.
“아니, 후처리는 실장님이 하시고, 인터뷰할 헌터분들만 보내주시면 되잖아요!”
교통사고인데 그래도 병원 가서 ct는 찍어봐야죠. 진단도 받아봐야 하고. 죄송합니다.
“실장님? 실장님!”
뚝. 전화가 끊겼다.
굳어있던 조 기자가 뒤늦게 폭발했다.
“시발!! 헌터 유망주가 무슨 교통사고로 ct를 찍는다 뭐다 지랄이야?!”
후배 기자가 의자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그가 물었다.
“선배, 뭔 일 있어요?”
“인터뷰 펑크 났어.”
“네에? 오늘 인터뷰 태산 길드 유망주들이었잖아요.”
후배 기자가 쓰읍,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어떡한담. 그쪽 유망주가 한 두 명도 아니고 네 명 전부 실으려고 했던 거라 할당된 지면도 많은데.”
“…그래서 내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야, 너 아는 매니저들 있냐? 유망주들 데리고 있는.”
“그냥 헌터는 연락처에 많아요.”
“그쪽 번호는 아무렴 경력이 경력인데 내가 더 많지, 인마! 다음 호 컨셉이 뭔지 몰라서 그래?”
안다.
최근 헌터 자격 1차 시험이 끝났다. 업계에서는 한창 그걸로 뜨거운 이슈 몰이 중이었다.
당연히 헌터 전문 잡지사인 ‘더 헌트’의 이번 호 특집도 유망주들이었다.
그래서 태산 길드와 어렵게 인터뷰도 잡고, 지면 할애도 많이 할 예정이었는데. 방금 전화 한 통으로 모두 어그러졌다.
“그쪽 다 바쁘잖아요. 거의 한 달 전부터 인터뷰 약속 잡아놓은 기자들도 많은데.”
후배 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지금 와서 절대 못 구하죠. 곧 있을 2차 시험 준비한다고 인터뷰도 짬짬이 때리고, 단독 인터뷰다 뭐다 해서 중복도 안될 텐데. 당장에 대타를 어디서 구해요?”
“그러니까 말이다.”
조 기자가 마른세수를 했다.
“이 좆같은 새끼들.... 언젠가 엿 먹일 거야. 약속 당일에 이따구로 물을 먹여?”
“에이.”
후배 기자가 커피를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대형 길드에 어딜 비벼요. 비비기는.”
“그치?”
“망상은 일단 접어두고, 당장 땜빵 때울 인터뷰어부터 찾아야죠.”
“……그치?”
“다음 주 화요일에 출간하려면 어떻게든 오늘 안에 인터뷰 끝내야 하는 거 아시죠? 바로 내일 편집 들어 가야 해요.”
“…그래? 혹시 말이야.”
조 기자가 편집장실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주제로 땜빵하는 건….”
“편집장님한테 한 번 말씀드려보세요. 혹시 알아요?”
망설이던 그가 편집장실로 들어갔다. 고성이 터졌다. 한참 뒤에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나온 조 기자가 의자에 걸어놓은 외투를 집었다.
후배 기자가 피식거리며 물었다.
“선배, 어디 가요?”
“없으면 만들라길래 만들러 간다, 시발.”
* * *
대진 일보 기자가 손짓으로 자리를 권했다.
“날씨 덥죠?”
“잠깐 걸었는데 땀으로 범벅이네요.”
“하하.”
“기자님, 인터뷰 잘 부탁드립니다. 언론에 나가는 첫 기사라서요.”
허리를 꾸벅 숙이니 사람 좋은 미소로 응대한다.
“걱정 마세요. 왜곡 기사도 다 옛말이에요. 세상이 어느 땐데. 아, 녹취 동의서에 사인 좀 해주실래요? 두 분 다.”
이지아가 기자들한테 당하는 걸 얼마나 많이 봤는데 헛소리는.
자본주의 미소를 띠며 볼펜을 휘갈겼다.
웃는 얼굴에 침 안 뱉는다고, 인상 쓰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네요.”
“자,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기자가 길쭉한 녹음기를 책상에 올려뒀다. 처음은 가벼운 인사와 신변잡기가 오갔다. 그리고 얼추 대화할 분위기가 잡힐 때쯤, 기자의 본격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한유정 씨, 이지아를 이어 두 번째로 3,000점을 초과하셨죠? 현재 업계 관계자들한테는 가장 뜨거운 감자거든요.”
“네.”
“혹시 3,000점을 넘긴 비결이 뭐라 생각하시나요?”
잠깐 뜸을 들이던 한유정이 입을 열었다.
“재능보다는, 우연히 뛰어난 능력을 각성한 탓이라 생각합니다.”
“뛰어난 능력이요…. 한 달밖에 안된 각성자가 마의 벽이라 불리는 3,000점을 넘겼습니다. 이걸 단순히 좋은 능력을 각성했다고 볼 수 있나요?”
기자가 날카로운 어투로 톡 쏘아붙였다. 한유정은 차분히 반응했다.
“한 달은 뭔가 이루기엔 짧은 시간이잖아요.”
“그렇죠.”
“아무리 재능있는 사람이라도 극적인 변화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재능이 아니라 우연히 얻은 능력이 뛰어났을 뿐이다?”
“만약 저와 같은 능력을 각성했다면 누구라도 손쉽게 해냈을 거예요.”
기자가 열심히 메모한다. 그 뒤로도 공격적인 질문과 겸손한 대답이 오갔다.
“쓰읍.”
못마땅하다는듯한 뱀샛바닥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기자의 주머니가 진동했다.
“아, 죄송합니다. 급하게 전화 올 데가 있어서.”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던 기자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얼굴 위로 곤란한 기색이 스친다.
“잠깐 통화 좀 받고 와도 될까요? 바로 다음 차례에 인터뷰할 매니저 전화인데, 대형 길드라….”
“그럼요. 편하게 받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기자가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제야 긴장이 탁 풀린다.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인터뷰 분위기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내가 뭘 했다고. 힘든 건 네가 다했지. 난 뒤에서 팔짱 끼고 구경만 했는데.”
뚜껑 딴 물병을 한유정에게 건넸다. 말을 하느라 목이 많이 탔는지 꼴깍꼴깍 잘도 넘긴다. 그리고 소매로 입가를 닦더니 작게 웃는다.
“별거 아니었어요.”
“기자 없으니까 겸손 그만 떨어도 돼.”
“진짠데.”
말실수할까 봐 가슴이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그런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나 보다.
한유정은 기대한 것보다 더 훌륭하게 대응했다.
“응?”
바닥에 떨어진 메모장이 눈에 들어왔다.
급하게 나가다가 떨어트린 건가?
허리를 숙여 줍는데, 인터뷰하는 내내 날카로운 어투로 질문하던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슬쩍, 천장을 스캔하듯 훑었다. CCTV 없네. 밀폐된 공간이고. 기자도 방금 전화 받으러 나갔지.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야, 메모장 확인해봐. 유정이 인터뷰잖아. 뭐 적었을지 궁금하지 않아?
맞은편에서 천사의 속삭임도 들렸다.
야, 메모장 확인해봐. 유정이 인터뷰잖아. 뭐 적었을지 궁금하지 않아?
눈을 마주친 천사와 악마가 악수를 나눈다.
한 번만 확인해볼까?
긴장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메모장을 펼쳤다.
그리고 말문이 턱 막혔다.
이거 뭐야?
[한유정, 한 달 만에 만들어낸 결과. 3,000점은 너무 손쉬워]
뜨겁게 달궈진 숨이 용암처럼 흘러나왔다.
이 새끼 봐라?
끼익!
문이 열리며 기자가 들어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태산 길드 매니저가 인터뷰 시간 땡길 수 있겠냐고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러면서 넌지시 말한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한데, 인터뷰를 일찍 끝내야 할 거 같은데요.”
“……어쩔 수 없죠. 인터뷰는 마무리하는 건가요?”
“태산 길드에서 4시에 오기로 했는데, 지금 시간이 3시 45분이라.”
기자가 검지로 손목시계를 툭툭 두들겼다.
“많이 급하시구나. 이거 참, 인터뷰 와서는 변변찮은 신변잡기만 하고. 이거 기사는 나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기자님 시간만 잡아먹어서 어쩌나.”
“어후, 뭘요. 만족스러운 인터뷰였어요.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그래, 트래픽 올리는 데는 훌륭하겠지.
“어디 보자, 메모 해놓은 게…. 이게 어디 갔지?”
기자가 바닥을 뒤적인다. 다리를 꼬고 구경하다가 물었다.
“기자님, 뭐 찾으세요?”
“메모장이 안 보여서요. 아까 들고 나갔나.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깜빡깜빡….”
툭.
메모장을 기자 앞으로 던졌다.
“이거 찾으세요?”
“어? 이걸 매니저님이 왜?”
한유정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다.
첫 기사가 나가고 나면 순식간에 눈길이 쏠릴 건 분명했다.
이 기사가 그대로 나갔을 때, 어떤 반응이 올지는 뻔하다.
운 좋게 각성한 애송이, 거만한 천재.
대중들은 한유정의 실패를 기대할 거고, 기사에 딸릴 악플들은 덤이겠지.
세상은 변했다.
더는 유명인들에게 겸손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더 큰 호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함은 몰매를 맞을 뿐이다. 그것까지 대중들에게 인식을 박게 만들 전략이자 캐릭터라면,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도 격투기에서는 매너 좋은 선수가 일부러 악역 이미지를 잡으며 상대 선수를 도발하니까. 티케팅 파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통계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맹세코 한유정을 그런 이미지로 휘발시킬 생각은 참새 눈곱만큼도 없다. 악플로 무너진 이지아가 어떤 삶을 사는지 옆에서 지켜봤다. 한유정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리고 설령 한유정이 악플을 신경 쓰지 않더라도. 가까운 사람이 욕을 먹는다는 건, 썩 기분 좋아지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입술을 비집고 겨우 꺼낸 말은,
“기자님.”
“네?”
“혹시 고소장 받고 싶으세요?”
“…네?”
내가 듣기에도 너무나 차분하고, 또 냉소적이었다.
* * *
기자가 메모장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앞뒤 상황을 파악한 그가 김현우를 비웃었다.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내가 고발하겠다는 말만 몇 번을 들은 줄 아세요? 대기업에 버금가는 게 언론사 쪽 법무팀이거든요.”
“그쪽 사람들이 개인적인 민형사까지 막아주진 않을 거 같은데.”
“뭐?”
“길드 없다고 저희가 병신으로 보이세요? 신문사를 고소하게? 당연히 회사가 아니라 기자님 앞으로 가죠. 고소장은.”
김현우가 마른 웃음을 지었다.
“회사 법무팀이 기자님을 지켜줄지, 잘 모르겠는데. 업무 외적으로 봉사하는 취미라도 있는 거 아니면.”
“…당신도 귀찮아지는 거야 그럼.”
“그건 걱정 마세요. 변호사 쓸 테니까.”
“그게 수지가 맞다고 생각해?!”
“그걸 기자님이 왜 걱정해요? 남이사 돈을 땅에 처박든, 거지한테 적선하든, 로펌 변호사를 쓰든. 기자님 돈도 아닌데.”
말문이 턱 막힌 기자가 입을 다물었다. 김현우가 기자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위협적으로 속삭였다.
“고소장 받을래요? 인터뷰 취소할래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기자가 무언가 말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덩치 커다란 남자가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기자님? 방금 통화 드린 태산 길드 매니저인데. 전화를 안 받아서요. 인터뷰 끝났죠? 저희 이거 더 헌트 인터뷰도 취소하고 온 거예요. 알죠?”
“아, 실장님, 그게…….”
매니저가 김현우와 한유정을 발견했다.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인터뷰 아직도 안 끝났어요? 이 뒤에 스케줄 있어서 시간 촉박한데.”
매니저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걸어왔다. 그가 김현우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말했다.
“슬슬 마무리해 줬으면 하는데.”
“저희요?”
“우리도 인터뷰해야 해서. 정해진 시간은 지켜야 하잖아요. 안 그래?”
“시간, 약속.”
김현우가 웃으며 기자를 쳐다봤다.
“사회인한테 가장 중요한 덕목이죠.”
“…….”
“아깝네요, 기자님.”
김현우가 슥, 손을 내밀었다.
“인터뷰 제대로 못 해서요. 이걸로 기사 나가긴 하겠어요?”
기자가 한동안 말없이 그 손을 내려다봤다.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여있어 투박하지만, 길쭉하게 뻗은 유려한 손가락.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옥죄여오는 듯한 착각이 순간 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던 기자가 웃는 낯으로 손을 맞잡았다.
“그러니까요. 스케줄 꼬여서 인터뷰 시간도 못 챙기고, 이번 기사는 못 나가겠네… 다음으로 미뤄야죠.”
“위에서 엄청 깨지실 거 같은데,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제 잘못인데요.”
“그렇군요.”
“크흠, 흠.”
“그럼, 나중에 또 부탁드릴게요. 혹시 모르니까 이건 받아 가겠습니다.”
김현우가 기자의 녹음기를 챙겼다.
“유정아, 끝났으니까 이제 가자.”
“네.”
김현우가 문밖으로 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네 명의 남녀가 옹기종기 모여 문 앞을 막고 있었다. 태산 길드의 유망주들이다. 그가 말했다.
“길 좀 비켜줄래요? 지나가야 해서.”
빙글빙글 웃던 유망주들이 비켜섰다. 김현우가 앞서 걸었다. 한유정이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기로는, 초라한 패자의 모습이었다.
“대형 길드가 좋긴 좋아.”
유망주들이 작게 속삭였다. 김현우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인터뷰 도중 나오라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알아서 기잖아.”
“자존심 많이 상했겠어.”
“상하면 뭐 어쩔 건데? 길바닥 출신 같던데.”
킥킥 웃던 유망주들이 동시에 팔뚝을 슥슥 문질렀다. 등골이 서늘했다. 어디 에어컨이라도 강하게 틀어놨나? 휙휙 주위를 둘러보던 그들이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쳤다.
“…….”
한유정이 가만히 서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눈동자가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담는다. 그렇게 몇 초인가 서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양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터뷰 빨리 끝내야 하니까 그만 시시덕거리고 들어와!”
“유정아, 안 오고 거기서 뭐 해?”
매니저의 부름에 유망주들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들어갈게요, 형!”
그들은 찝찝한 기색을 숨기며 방에 들어갔다. 어느새 다가온 김현우가 의아스레 물었다.
“왜? 아는 얼굴이라도 있어?”
한유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래? 난 또,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줄 알았네.”
김현우가 피곤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진이 쫙 빠진다, 쫙 빠져. 우리 밥이라도 먹고 들어갈까? 아니면 날도 더운데 보양식? 뭐가 좋아?”
“아무거나요.”
“야! 섭섭하니까 이젠 사양 좀 그만하고 솔직하게 말해, 그냥!”
김현우가 한유정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어, 하며 당황한 한유정이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저, 저는 삼계탕 먹고 싶은데.”
“그래? 오늘 많이 더웠구나?”
“네, 네…. 아, 아저씨, 그만… 이제 어지러워요.”
김현우가 웃으며 손을 뗐다. 기자와 싸우면서도 잊지 않던 웃음이었지만, 지금에서야 겨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어색하게 따라 웃는 한유정도 마찬가지였다.
“밥 먹으러 가자.”
* * *
한유정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인터뷰는 좀 아쉽네.”
1차 시험이 끝나며 업계의 시선이 한창 몰려있었다.
신문사를 통해 얼굴도 알리고 자연스레 관심을 끌려고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엎으면서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시간이 시간이라 지금 당장 인터뷰 구하기도 힘들고.
이런 건 타이밍이 중요한데.
“죄송해요, 아저씨.”
한유정이 불쑥 그런 말을 꺼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섰다.
의기소침한 얼굴이다.
“제가 좀 더 잘했으면…….”
한유정의 말을 끊었다.
“왜 그런 말을 해?”
“네? 그야, 제가.”
“아까 말했잖아. 네가 뭔가 실수한다면, 그건 내 능력이 부족한 거라고.”
헌터는 몬스터들과 싸운다. 매니저는 그 외의 모든 것들을 한다.
서류, 스케줄, 비즈니스의 전반적인 관리….
던전에서의 사고는 전적으로 헌터의 탓이다.
그렇다면, 던전이 아닌 장소에서의 문제는 모두 매니저의 몫이다.
지금도 그랬다.
내가 그 기자의 이력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 당장 연락할 기자의 번호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헤매지 않고 인터뷰를 훌륭하게 마쳤을 거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나하고 예림이가 다시 인터뷰 잡아볼 테니까. 이번엔 기자 평판도 신경 써서…….”
갑자기 어디선가 큰 목소리가 들렸다.
“매니저님! 인터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아니, 조 기자님. 당일 날 갑자기 인터뷰해달라고 떼쓰시면 어떡해요?”
뭐지?
검은색 밴 앞에서 웬 남자 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중에 꼭 갚을게요. 원하는 기사 방향 있으면 그대로 내드릴게요! 어떻게든 안 될까요?”
매니저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쉰다.
“하아… 아니, 저도 해드리고 싶은데. 아시잖아요. 이미 단독 인터뷰해놓은 상태인데 다른 곳에서 또 인터뷰하면 서로 피곤해지는 거.”
“그건.”
“죄송합니다. 기자님. 이걸로 기분 안 상했으면 좋겠네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매니저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밴은 매끄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상황이 이런데 어디 가서 인터뷰를 따오냐고!!”
뒤늦게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한유정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걸음으로 기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기자님이시죠?”
낯선 얼굴에 기자가 뒤로 주춤 물러난다.
그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 더 헌트의 조정빈 기자입니다.”
더 헌트.
대형 신문사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영향력 있는 잡지사였다.
한유정의 얼굴과 이름을 충분히 알릴 정도로.
그걸로 됐다.
찌라시 전문 언론사만 아니라면, 나머지는 한유정에 대한 관심이 알아서 주목을 끌어들일 테니까.
“지나가다가 말씀 나누던걸 우연히 들었는데요.”
한유정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혹시, 인터뷰할 유망주 필요하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