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37화 (37/112)

〈 37화 〉 폭풍전야 (1)

* * *

태산 길드 매니저가 밴에 탑승했다.

“형! 로비 걸린 거에요?”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죠?”

기다렸다는 듯 유망주들이 종알종알 물었다. 운전석에 앉은 매니저가 혀를 차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불법 로비, 대형 길드와 협회의 유착. 대중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기삿거리였다.

기사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인기 검색어 1위가 ‘협회 로비’였다.

유망주들도 돌아가는 사건들을 전부 확인한 건지, 불안해하며 떠들었다.

“사진 찍힌 거 오빠 맞죠?”

“이거 완전 망했어. 로비 때문에 불이익 생기는 거 아니야?”

“놔뒀어도 상위권으로 무난하게 통과했을 텐데.”

빠아아아앙──!!

듣다 못 한 매니저가 자동차 경적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깜짝 놀란 유망주들이 입을 다물었다.

“……로비는 대형 길드들 전부 하는 거야. 안 했으면 니네 팀이 어떻게 됐을 거 같아?”

“그런데 걸려서 다 텄잖아요! 오히려 상황 더 안 좋아졌는데!”

“그걸 걸릴 줄 알았겠냐? 내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인 매니저가 기사를 다시 확인했다.

최초 보도는 더 헌트였다. 기자의 이름도 눈에 익었다. 조정빈 기자. 태산 길드에 좋지 못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약속 잡은 인터뷰를 당일날에 까버렸으니까.

얼추 가다가 잡혔다.

“이 개새끼….”

보복성으로 기사를 터트린 게 분명했다. 이를 가는데 뒤에서 유망주 한 명이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만졌다.

“아, 진짜. 한유정인지 뭔지, 얘한테 좋은 거는 다 넘어가네.”

“뭐가?”

“우리가 깠던 더 헌트 인터뷰. 한유정이 날름 먹었잖아. 근데 이거 봐.”

그러면서 옆자리의 유망주한테 핸드폰을 보여준다. 더 헌트에서 특집으로 다룬 한유정에 대한 블로그 글이었다.

좋은 반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우리가 나갔을 네 명분 분량 혼자 다 먹었잖아. 사실상 한유정 특집처럼 나가서 인지도도 많이 쌓였나 봐. 우리는 토막기사나 짤막하게 나가서 별다른 반응도 없던데.”

“그리고?”

“얘는 불법 로비에도 안 얽혀있잖아! 팀원 짜인 거봐. 사람들이 벌써 한유정은 그럴 리 없다고 로비 명단에서 빼고 있어. 댓글 읽어줘?”

[wldk123: 한유정이 로비했다는 놈들은 뭐임? 니들 같으면 로비 찔러서 팀을 저따구로 짜겠냐? 웃겨서 미치겠네ㅋㅋㅋㅋㅋㅋ]

[ㄴ떡볶이냠냠: 그걸 어떻게 앎? 조사하고 까봐야 아는 거지]

[ㄴgusdn999: 한유정은 소속 길드도 없는데 개뿔 말이 되는소릴하셈ㅋㅋㅋ]

[ㄴ방배동라이더: 로비할 돈도 없을 듯]

[ㄴwldk123: ㄹㅇㅋㅋ]

“한유정이 돈하고 빽이 없어서 못한 거지. 정정당당해서 안 했을 거 같아? 괜히 난리야, 진짜.”

“팀원이 어떻게 짜져있길래 이런 말이 돌아?”

“1차 시험에서 커트라인 걸치고 통과한 놈들이야. 능력들도 일대 다 전투에 특화된 것도 아니고. 2차에서 무조건 떨어질 송사리들.”

한유정의 팀원들을 한번 쓱 훑은 유망주가 실소를 머금었다.

“이건 나 같아도 의심 못 하겠네. 우리만 엿됐어.”

핸들을 꽉 움켜쥔 매니저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걱정 마. 어차피 너네 2차 시험하는데 크게 영향 없어. 잘라도 매니저 단독행동으로 꼬리 자르고 끝내지.”

업계 돌아가는 게 다 그랬다.

월급쟁이와 회사에서 빗어낸 상품은 그 가치가 다르다.

유망주들은 안심하면서도 크게 티를 내지 않았다. 조용해진 차 속에서 매니저는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김현우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래서, 대진 일보에서 전화 오자마자 더 헌트는 까버리고 쫄래쫄래 인터뷰하러 기어들어 가는 게, 당신이 말하는 대형 길드의 비즈니스 방식입니까?’

매니저가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낸 건 단 두 군데 뿐이었다.

골목길에서 유망주들과 대화할 때. 돌아가는 차 안에서 팀장에게 보고할 때.

그리고, 그때 그가 유망주들을 안심시켜주기 위해 했던 말도 있었다.

‘걱정할 걸 해라. 우리가 어떤 길드인데. 이미 작업 준비 다 마쳐놨지. 돈만 먹이면 끝나. 너넨 그냥 떠먹어주는 거 받아먹기만 해.’

기사는 더 헌트의 조 기자가 터트렸다.

조 기자는 한유정을 취재해서 이번 호의 더 헌트를 발간했다.

그리고 한유정의 담당 매니저는…….

“김현우, 너구나.”

진실을 깨달은 매니저가 이를 까득 깨물었다. 그가 차키를 조수석의 유망주에게 던지며 말했다.

“너희 먼저 회사로 돌아가.”

“네? 형은요?”

“들릴 데 있어. 먼저 가.”

*

떠들썩한 시험장을 뒤로하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저씨.”

“응?”

“2차 시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완전 엎어진 거에요?”

“음, 아니.”

“네?”

한유정이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한 번 확인한다.

“인터넷 엄청 난린데. 그대로 진행해요?”

“응. 관련된 사람들 대충 몇 명 잡아내고 끝날 거야.”

2차 헌터 시험 내용이 바뀔 일은 없다.

다음 시험 때부터는 몰라도 당장 지금은 말이다.

작전 수행 능력과 팀원들 간의 협동성을 평가하는 테스트다. 당장에 새로운 판을 만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둘 중 하나다.

시험을 전면 취소하거나, 관련자만 처벌하고 그대로 진행하거나.

과거에도 몇 번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긴 했지만, 헌터 시험은 단 한 번도 취소된 적 없었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한유정이 불쑥 말했다.

“아저씨는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갑자기 내 얼굴에 왜 금칠해?”

용돈 필요한가?

달라면 그냥 줄 수 있는데.

한유정이 빙글빙글 웃는다.

“그냥, 제가 본대로 말씀드린 거에요.”

실없기는.

“유정아.”

“네?”

“나중에 사진 찍을 때도 그렇게 웃어봐.”

한유정이 멋쩍게 웃는다.

“그거하고 이건 좀 다른데…….”

오순도순 떠들며 걸어가는 와중이었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낮은 목소리가 날 부른다.

“김현우.”

“응?”

태산 길드의 매니저가 숨을 거칠게 헐떡이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실장님? 인터넷 기사 봤는데 지금 많이 바쁘지 않으세요? 대형 회사 소속이시잖아요.”

당장 논밭에 옮겨붙은 불 끄기에도 벅찰 텐데. 특히나, 사진을 찍힌 게 본인인 만큼 얼굴 드러내고 다니기도 많이 부담스러울 테고.

빨리 회사로 돌아가서 후속 대처나 준비할 것이지.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려니까, 왜 마지막에 등장해서는 험상궂은 얼굴을 보여주는 거야?

좋던 기분 초치게.

그러자 매니저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린다.

“그게 댁이 할 말이야?”

“왜 또 그렇게 뿔나셨어요? 볼 때마다 시비시네.”

“당신이 했지? 더 헌트의 조정빈 기자한테 나 고발한 거.”

“뭘요?”

“시치미 떼지 마. 알고 온 거니까.”

확신에 담긴 눈빛이었다.

“골목길에서 내가 했던 말. 근처에서 듣고 있었잖아.”

“어이구, 일없습니다. 유정이하고 밥 먹으러 가야 하니까 들러붙지 말고 가십쇼.”

운전석으로 들어가려는데, 성큼성큼 다가온 매니저가 내 어깨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윽박질렀다.

“당장 조 기자한테 전화해서 정정 보도 요청해!”

“제가 뭐라고 정정 보도를 어떻게 요청해요? 당사자인 대형 길드들 쪽 홍보팀 사람들이 머리 숙이면서 부탁해야지.”

나는 내가 담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모멸적인 웃음을 매니저에게 보여줬다.

“그런데 조 기자님도 어떻게 못 해 드릴걸요. 이미 지나간 루비콘이라. 사건 다 터지고 나서 이러시면 어떡해요? 그리고 아까 물으신 거 있잖아요?”

주위를 슥 둘러봤다. 자동차와 CCTV들이 많다. 매니저가 어쩌다가 단서를 흘린 건지 직접 봤는데, 같은 실수를 하면 안되지.

웃으면서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인사하듯 가볍게 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어. 시발아. 내가 한 거 맞아.”

마음의 평화에는 큰 단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켜준다 하지만, 그게 세상 해탈한 부처님으로 만드는 건 아니다. 감정 없는 기계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극단적으로 쏠린 감정의 기복을 진정시켜준다. 한계치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수준이라면, 결국 능력 적용 범위 밖이라는 의미다.

화난 손님들을 이성적인 말로 설득 가능하거나, 분노 때문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차분한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

딱, 그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서 내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성적이다. 감정에 몸을 맡기는 경우가 드물다.

때문에 싸울 일이 거의 없지만, 간혹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날 때릴 생각으로 마음먹고 온 경우가.

이런 차분한 분노는, 이미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린 상태기에 진정시키고 뭐고가 통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날 때리겠지.

눈앞의 매니저처럼 말이다.

퍽!

갑자기 눈앞이 번쩍이며 시야가 돌아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쓰라린 입술을 만졌다.

피가 묻어나온다.

주먹이 제법 맵네. 각성자인가? 손등으로 피를 닦으며 일어섰다.

“잘하는 짓이다. 실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앞뒤 분간 못하고 지금 같은 시기에 사람을 때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고, 구조조정 때는 제법 뻗대던 양반들도 움츠러드는 법인데.

한창 불판 뜨거울 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당신 지금 실수한 거야.”

히죽이며 고개를 들었다. 매니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한 대 때리고 나니까 뒷감당이 무서워졌나 보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조심…….

응?

이상함을 느낀 나는 매니저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다. 눈동자도 이쪽에 향해있다. 그런데, 뒷감당이 무서워서 짓는 표정이 도저히 아니었다. 그런 거치고는 조금 더 직관적인 위협을 앞에 둔 느낌이다.

마치 흉포한 짐승을 마주한 거 같은.

뭐지?

자세히 보니까 시선도 내게 향하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내 뒤쪽?

매니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 때문에, 멍하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정아…?”

그곳에는, 고요한 눈빛을 뜬 한유정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