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송곳 (3)
* * *
“…네?”
팀장이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는 듯, 눈을 끔벅인다.
“아무래도 보호자분께서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잘 모르시나 본데요.”
아주 잘 안다.
독이 든 사과인걸.
“마케팅 비용 같은 경우에는 대형 회사가 한해 쏟아붓는 금액하고 엇비슷합니다. 주목할 점은 그게 한유정 씨를 포함한 몇몇 유망주들한테만 돌아간다는 거죠.”
팀장이 한유정의 안색을 살피며 말한다.
“상상해보세요. 지하철 스크린 도어부터 버스, 온갖 방송과 CF까지 한유정 씨 얼굴로 도배될 거에요. 마스크도 좋으니까요.”
좋은 이야기다. 읽는 사람들만 읽는 자잘한 인터뷰 기사 수십 개보다, 방송 한 번 나오는 게 이름을 더 알릴 수 있다.
헌터야 결국 경력과 실력이 중요한 업계라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도 무시하지 못하는 법이다.
스타 헌터는 공략대에 들어가기도 쉽고, 긍정적인 이미지에 힘입어 더 많은 투자와 스폰도 받아낼 수 있으니까.
헌터란 반쯤은 연예인 같은 존재들이다.
정말 순수한 실력만으로 모든 걸 헤쳐나갈 수 있었다면, 길드와 매니저라는 존재는 있지도 않았을 거다.
“장비 지원부터 전문 트레이너들까지, 성장하기 최적의 요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혹할 정도로요.”
“그렇네요. 이제 막 데뷔할 유망주가 쓰기에는 과한 장비들에….”
헌터를 지망하며 수백 번도 더 들어봤던 이름의 트레이너들. 훌륭한 수련 공간. 전문적인 마케팅.
온갖 치장으로 휘황찬란하다.
팀장이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말했다.
“이걸 이 자리에서 바로 안 한다고 결정하는 건, 한유정 씨의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경솔한 선택이 아닌가 합니다.”
왜 자꾸 한유정의 눈치를 살피나 했더니.
그런 식으로 공략하겠다?
입술을 비뚜름히 올리며 물었다.
“왜요?”
“네?”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대체 왜 유정이한테 이런 지원을 하려는 겁니까?”
내 질문에 팀장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 대답했다.
“망했으니까요.”
망했다고?
“원래 기획하던 게 있었는데, 이지아가 협회하고 척지면서 전부 나가리됐죠. 화신 길드에 나가면서 계약은 뒤집히고. 청문회에서 그렇게 싸웠는데 우리가 누구 좋으라고 이지아를 띄워줍니까?”
울컥하는 속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며 물었다.
“……그럼 다른 S급 헌터를 찾는 게 우선 아닌가요?”
팀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들이야 지금 와서 지원해주겠다고 나서면 계약서 안 써주죠. 저희도 이번엔 제대로 된 파트너 헌터를 찾고 싶은 거여서.”
결국, 떡잎부터 키워서 자기들 영향력 안에 넣겠다는 의미다.
그런 거만 보자면 좋은 계약이었다. 제안하면 하겠다고 줄 설 유망주들이 한 트럭이겠지.
협회에서는 아무래도 이지아와 같은 새로운 영웅을 만들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으니까.
혹할만했다.
강제 동원 명령을 다시 읽어봤다.
역시, 임무의 위험도에 대해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만약….”
“네.”
“만약 지금 이지아한테 이 강제 동원 명령을 행사할 수 있었으면요.”
“…네.”
그런데, 나는 도무지 이 계약이 내키지 않았다. 협회장이 한유정을 통해 어떤 헛짓거리를 한 건지 두 눈 뻔히 뜨고 지켜봤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같은 소릴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독소 조항의 목적이 너무나도 뻔했다.
“아직도 이지아가 살아있을 일은, 없었겠죠?”
결국 안전하게 목줄을 채워놓고 토사구팽하겠다는 의도 아닌가.
계약이 물 건너갔다는걸 눈치챘는지, 팀장의 얼굴 위로 짜증이 올라온다. 그가 거칠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쪽에서 말씀하신 것들이 전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네요.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계약서를 다시 팀장에게 내밀며 말했다.
“역시 안 되겠습니다.”
*
밴댕이 같은 놈.
계약 깠다고 마중도 안 하고 보내기는. 화나는 건 시간 낭비한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팀장씩이나 돼서… 나이를 뭐로 처먹은 게 분명하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자판기 찾게. 휴게소가 여기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아, 저깄다.
협회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자판기 근처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한유정과 자판기 앞에 멀뚱멀뚱 서서 고민에 빠졌다.
뭐 마시지?
다른 선택지를 포기한다는 건 항상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버튼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진열된 음료만 다섯 줄이 넘는다.
하나하나씩 소거법으로 지우고 결국 콜라를 눌렀다.
덜커덩!
자판기에서 캔을 빼는데 남자들의 대화가 어렴풋이 들렸다.
“요즘 출근하기 왜 이렇게 빡세냐.”
“살얼음판이야, 살얼음판. 임원들 날 서 있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긴 한데 요즘 유독 심해.”
남자가 담배 연기를 길게 뱉는다.
“시발, 청문회 때문에 언제 칼춤 맞고 모가지 잘릴 줄 모르는데 제정신인 게 이상하지.”
청문회? 칼춤?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어우, 이지아 진짜…. 그냥 그대로 사건 묻고 다시 헌터 생활 이어나가던가. 왜 청문회까지 가서 이렇게 들쑤신 거야?”
“협회장 라인도 이번에 반 토막 났던데. 나중에 그 영감태기 다시 복귀할는지는 모르겠다.”
사내 정치 이야기였다.
협회장이 청문회로 경질된 이후, 아무래도 협회 쪽에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콜라를 하나 더 뽑으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지금 이사회 기 싸움도 장난 아니게 살벌…….”
“야야.”
남자가 동료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른다. 그리고 턱짓으로 날 가리킨다. 동료가 꺼림직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이후로 협회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깝네. 더 듣고 싶었는데.
중년 남성이 수행원을 데리고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니네 일 안 해?”
“앗, 본부장님! 지금 바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담배를 비벼끄고 도망치듯 떠나갔다. 본부장이라고 했나?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저 녀석이 우리 길드 심사를 깐 녀석이구만.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날 아니꼽게 쳐다본다.
콜라 캔을 따며 물었다.
“무슨 볼일 있습니까…?”
“아, 직원 아니시구나. 실례. 신경 쓰지 마요.”
본부장이 벤치에 앉아 담배를 뻐끔뻐끔 피운다. 한유정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스쿨존입니다. 시속 20KM 미만을 유지해주세요.
내비게이션이 따가운 소리와 함께 경고한다. 악셀을 밟은 발에 힘을 줄였다. 계기판의 초침이 왼쪽으로 쭉쭉 내려온다. 차가 굼벵이처럼 기어갔다.
운전대를 쥐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놈의 일은 정말 서로 등쳐먹으려는 놈들밖에 없구나.
기자는 트래픽 때문에 한유정을 자극적인 기사의 소재로 쓰려 하고, 대형 길드는 불법 로비로 2차 시험을 입맛대로 주무르려 하고, 협회는 좋은 제안인 척 목줄을 채우려고 계약서를 들이민다.
한 달도 안돼서 벌어진 일들이다.
만나는 업계 사람들마다 뒷짐에 망치 하나씩 들고 언제 뒤통수를 내려칠지 고민만 하고 있다.
지랄 났다. 예술이네, 진짜.
더럽다, 더럽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헌터 업계가 이렇게까지 시궁창일 줄 몰랐다.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 거지?
저기 인도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애 엄마가 갑자기 아기 대신 총을 꺼낼 거만 같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한유정의 맑은 목소리가 귀를 정화한다.
“응? 뭐가?”
“얼굴이 안 좋은 거 같아서요.”
“괜찮아, 잠깐 여러 생각이 들어서.”
“무슨 생각이요?”
한유정이 걱정스레 눈을 깜빡인다.
히죽 웃으며 한유정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너 혼자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
신호등에서 대기하는데, 교복을 입고 하교 중인 학생들이 보인다. 전부 한유정의 또래들이다.
힐끔, 한유정의 옆얼굴을 살폈다.
창가에 턱을 괴고 멍하니 학생들을 쳐다보고 있다.
“유정아, 거기 껌 좀 줄래? 천천히 달리니까 눈이 자꾸 감기네.”
한유정이 운전용 껌을 주먹 한 움큼 덜어낸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내 입에다 왕창 집어넣었다.
“콜록! 켁!”
“아저씨, 괜찮으세요?”
즙이 질질 흐르는 턱을 손등으로 닦았다.
“어우, 물파스 씹는 거 같네.”
“그, 그 정도예요?”
“야! 이거 원래 두세 개씩 씹는 거야. 다음부터는 조금씩만 줘.”
“네… 몰랐어요. 죄송해요.”
한유정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차 안의 공기가 텁텁하다고 느껴질 때쯤, 내가 입을 뗐다.
“학교 다니고 싶어?”
“네?”
“교복 입은 학생들 보고 있길래. 혹시 학교 다니고 싶은 건가 해서.”
껌을 종이에 툭 뱉었다. 부피가 너무 커서 말하기 불편했다.
“다니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헌터는요?”
“꼭 이쪽에 올인할 필요는 없어.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학생이 되는 건 불가능하잖아. 졸업 때까지는 스케줄 넉넉히 잡아줄게.”
“아뇨, 괜찮아요.”
“응? 왜?”
다니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방금도 되게 부럽다는 듯 쳐다봤고.
“학교 다니려면, 보호자가 있어야 한대요. 근데 친척들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심각한 얼굴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럼 내가 보호자 해주면 되잖아.”
“네?”
“나이 차이 적으면 안 된대?”
“아뇨, 그건 아니에요.”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뜸을 들였어? 친척들이 안 해주면 내가 후견인 해줄게.”
평소에는 할 말 다 할 거처럼 행동하면서.
막상 필요한 건 저렇게 말도 못 하고 망설인다니까.
“학교는 해결 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잘 생각해봐.”
“네….”
“그리고 미리 말해두는 건데.”
“네.”
“어디 가서 비슷한 일로 보호자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지 나 불러.”
“네?”
한유정이 입술을 달싹이더니 꾹 닫아버렸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다시 말했다.
“……진짜 그래도 돼요?”
“그래, 학교는 사실 전부터 생각했었거든.”
“아뇨, 그거 말구요.”
“뭐?”
“어디 가서 누가 제 보호자 찾으면요. 진짜 아저씨 불러도 돼요…?”
불현듯 사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 혼자만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그게 조금 섭섭하게 느껴졌다.
“언제든 부르라니까, 그걸 뭘 다시 묻고 있어? 학교는 헌터 시험 끝나는 대로 내가 알아볼게.”
한유정이 창가로 고개를 돌린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어깨가 잘게 떨린다. 비스듬히 보이는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걸 보니까 웃는 거 같기도 하고.
한유정이 한참 뒤에야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후회 안 하겠어?”
“학교보다는, 일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내가 코웃음 쳤다.
“어릴 때는 다들 그런 말 하거든? 그런데, 막상 일하기 시작하면 교복 입을 때가…….”
“아뇨.”
한유정이 빙긋 웃으며 통에서 껌을 꺼냈다.
그리고 내 입에다가 넣어주며 작게 속삭였다.
“저는 일하는 걸 더, 좋아할 거 같아요. 아저씨.”
*
집에 돌아가니 이지아가 소파 위에 누워있었다. 갑자기 짠하게 보였다.
이지아의 능력이 능력이니까 금방 명성을 얻었겠지만, 그 타이밍이 너무 일렀다.
결국, 협회가 이지아의 정신병을 만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에 집중하던 이지아가 시선을 눈치채고 날 쳐다본다.
“현우 씨, 무슨 일이에요?”
“아뇨, 그냥…….”
이지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힘내시라구요.”
“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요.”
“어어, 현우 씨?”
안아줄까 하다가 오바 떠는 거 같아서 거실로 향했다. 한예림이 의자에 앉아 테이블을 톡톡,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물을 꺼내 마시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얼굴 되게 심각해 보이는데.”
“이상해서.”
“뭐가?”
“심사 결과가 나왔거든.”
머리를 긁적이던 한예림이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를 조심스레 펼쳤다. 빼곡한 글자 위로 굵은 도장이 박혀있었다.
[불허]
한예림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젠 이 결과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