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48화 (48/112)

〈 48화 〉 송곳 (5)

* * *

“뭐? 길드 관련으로 이야기를 나눠? 나하고?”

본부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일개 매니저가, 여기가 어디라고 대가리부터 들이밀어?”

“만나주질 않으셔서요. 심사는 벌써 다섯 번이나 반려당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도장 찍는 사람 얼굴 한 번은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답답하더라도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지. 안 그래?”

떠나려는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변호사하고 길드 심사 건으로 상담했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관례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있다.”

“그래, 내부 규정의 문제. S급이라지만 우울증 때문에 던전에서 활동도 못 하는 헌터. 그리고 미국에서 물 건너 온 지 고작 석 달 된 길드 대표.”

본부장이 턱을 쓰다듬는다.

“대체 우리가 뭘 보고 그쪽 길드의 심사를 통과시켜 줘야 하는 거지?”

아주 변명은 청산유수다. 개새끼들.

우울증 때문에 활동을 못 한다지만, S급과 이지아란 이름이 모든 걸 덮고도 남았다.

한예림은 미국 대형 길드에서 최연소 팀장으로 근무했다. 나름 잡지에 얼굴도 비춘 유명인사다.

이게 부족하다고 한다면 대한민국의 길드 숫자는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을 거다.

“빙글빙글 말 돌리지 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뭐?”

“이유가 뭡니까?”

찡그려진 눈살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물었다.

“저희에게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말씀하시죠.”

“이유라….”

본부장이 느긋하게 웃는다.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이렇게 뻔뻔스레 나오는 이유가 뭐야? 너희들.”

“뭐라구요?”

뻔뻔스럽다고?

“협회를 그따위로 물 먹여놓고 말이야. 무슨 염치로 쫄래쫄래 와서는 길드 신청을 하는 거냐고.”

본부장은 정말로 기가 찬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내 가슴팍을 검지로 툭툭 밀었다.

“협회, 길드, 헌터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야. 이지아가 유망주일 때부터 우리가 얼마나 지원해준 줄 알아?”

그거야 대외적인 홍보 수단으로 쓰려 했겠지.

역대급 유망주가 등장했다고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던 거잖아.

“어비스 던전 때도 그래. 처음부터 이지아 그년을 묻을 생각은 전혀 없었어. 국내 최정상 헌터가 A랭크로 떨어진 게, 뭐? 복구 안 시켜줬을 거 같아? 당연히 잠깐 쉬다 오라는 의미잖아. 어?”

“…쉬다 오라는 의미라고요?”

본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울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내 얼굴이 험악하게 변해서일 거다.

지금 엄청나게 화났거든.

“공략대와 협회의 잘못을 지아 씨한테 덤터기 씌운 게, 쉬다 오라는 의미입니까?”

“내가 말했잖아. 상부상조라고. 간부들부터 협회장까지 모두 모가지가 간당간당하던 건이었어. S급 헌터 한 명의 랭크 하락으로 퉁친다는데, 그걸 협조를 안 하고 감히 멱살을 잡아? 우리는 적당히 여론 눈치 보다가 바로 복귀시켜줄 생각이었어!”

어비스 던전.

이지아가 완전히 매장당하기 시작하던 시기가 딱 그때부터였다.

협회는 이지아의 랭크를 하락시킨 게 아니다. 이지아를 죽이려 한 거다. 협회장과 협회 간부들의 자리를 위해서.

“그러니까, 지아 씨 때문입니까?”

“그래.”

“그러면, 우리가 길드 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뭡니까?”

본부장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나간 실수를 바로 잡아.”

그러면서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속삭인다.

“이지아와 함께 기자 회견을 열어서 인정해. 그때 실수한 게 맞다고. 청문회의 결과는 잘못됐다고. 탄원해.”

“지아 씨는 어떻게 되는 거죠?”

“이번엔 A랭크로는 안돼. 당분간 헌터 활동도 정지되겠지. 하지만, 길드 심사는 통과시켜줄 거야. 이 문제는 이걸로 깔끔히 청산하자고.”

“안 받아들이면요?”

“말해 뭐해?”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서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길드 심사가 통과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갈라진 혓바닥이 유혹한다.

어려운 길을 포기하고 쉬운 길을 받아들이라고.

“알겠습니다.”

본부장이 음침하게 웃는다.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다.

권력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건 익숙할 거다.

협회 본부장.

그것도 서울 지부다.

아마 로열 로드만 걸었을 거다. 위에 서는 게 당연한 인간. 그런 놈들이 자리에 앉아 명령했겠지.

이지아를 미끼로 던지라고.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솔직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법이다. 저렇게 음침하게 정치질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럼,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가?”

그래서 나는 말했다.

“아뇨, 좆 까십시요. 씨발.”

내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을.

*

“저, 저 미친 새끼, 저거!”

김현우가 떠나고 차장이 씩씩거렸다. 본부장이 코웃음 치며 손을 들었다.

“내버려 둬. 아직 혈기도 주체 못 하는 애송이야.”

“정말 가만히 두시게요? 면전에 대고 욕을 박았는데요?”

“여기서 뭘 더 해? 지도 속에서 짜증이 솟구치니까 욕이나 한번 내뱉고 도망간 거지.”

이미 길드 심사를 반려했다. 충분히 앞길을 가로막는 중이었다.

“고래 싸움하는데 저런 새우들까지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어. 어디 피곤해서 일이나 하겠어?”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본부장님, 만약에 말입니다. 이지아가 재판이라도 걸면 어떡하죠?”

“또.”

“네?”

“또 뭐가 걱정되냐고? 다른 것도 말해봐.”

차장이 이마를 긁적였다.

“내친김에 말씀드리자면, 언론에 알려지는 것도 많이 걱정되고요. 최근에 청문회에서 얻어맞아가지고 자숙 중이잖아요. 로비 건도 있었고요.”

그가 본부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냥, 저는 이게 전부 긁어 부스럼이 아닌지 생각듭니다. 이지아하고 굳이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박 차장, 헌터들은 던전에서 칼과 방패로 싸우지?”

“그렇죠.”

“우리 같은 양복쟁이들은 말이야. 연락처와 명함으로 싸우는 거야. 무력뿐인 헌터들이 쉽게 해결하지 못 하는 일들이, 내 핸드폰 하나면 전부 해결돼.”

본부장이 손에 쥔 핸드폰을 흔들었다.

“고소한다고? 하라 그래. 법무팀이 출동해서 수년을 가로막아줄 테니까. 언론사에 찌른다고? 하라 그래.”

그가 메시지를 작성해 전송했다.

“전부 잘라내줄 테니까.”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을 들렀다.

맥주를 쓸어 담고 안줏거리로 육포와 오징어를 골랐다.

혹시 모르니까 콜라도 사 가야지.

“42,700원입니다.”

“고생하세요.”

봉지를 휘적이며 어두컴컴한 길을 걸었다. 전화가 왔다. 더 헌트의 조정빈 기자였다.

“여보세요?”

­현우 씨! 무슨 일 있었어요?!

받자마자 사람 귀청을 찢어버리려고 하네.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 방금 편집장실에서 회의하고 나왔는데요. 협회 쪽에서 이지아 헌터하고 현우 씨 기사 내지 말라고 손 썼나 봐요!

“음. 그래요?”

­그래요가 아니죠, 그래요가! 무슨 짓을 했길래 협회에서 청탁이 옵니까? 아, 근데 현우 씨.

“네?”

­이지아하고 무슨 관계예요?

누가 기자 아니랄까 봐 호기심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친구요.”

­헉! 이지아 친한 사람 없기로 유명한데. 진짜예요?

주변에서 들리는 이지아 평판은 왜 항상 이 모양이지?

“네. 거짓말해서 뭐 해요.”

­그럼 나중에 인터뷰 하나만……

발걸음이 멈췄다.

집 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기자님, 조금 이따가 다시 전화드릴게요.”

기척을 숨기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현우 씨, 다 들켰어요.”

이지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나는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잊었어요? 저 S급 헌터인 거.”

봉투를 슬쩍 본 이지아가 묻는다.

“뭐예요?”

“맥주요.”

“현우 씨 술 마셔요?”

“원래는 잘 안 하는데.”

맥주 하나를 꺼내 건넸다.

“오늘은 지아 씨하고 마시고 싶어서요.”

“집 앞에 유정이가 있었으면요?”

“유정이하고 마시고 싶었겠죠.”

“저도 술 안 하는데.”

“그럴까 봐 콜라도 사 왔어요. 제로로.”

담벼락에 등을 기댔다. 캔콜라를 손에 쥔 이지아가 애꿎은 땅만 툭툭 찬다.

나는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팔짱을 꼈다. 이지아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아서. 그냥 기다렸다.

“현우 씨.”

“네.”

“아까 예림 씨하고 통화하던 거 들었어요.”

“뭐를요?”

“길드 반려당한 거, 저 때문이라면서요?”

맥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마시니까 톡 쏘는 맛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빙빙 돈다.

“맞아요. 지아 씨 탓이래요.”

“그쪽에서 말한 조건이….”

“공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아 씨가 전부 지래요.”

“만약 못하겠다면요?”

“심사할 때마다 트집 잡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변호사가 그러는데, 법정 싸움으로 가더라도 몇 년은 걸릴 거래요.”

다시 침묵이 길어졌다.

이지아가 무거운 입술을 뗐다.

“그럼, 제가…….”

“됐고, 이거나 씹어요.”

이지아의 입에 오징어를 밀어 넣었다.

깜짝 놀란 눈이 날 쳐다본다.

“지아 씨는 헌터잖아요.”

“…네?”

“저는 매니저구요.”

“네.”

“던전에서야, 지아 씨가 누구보다 뛰어난 건 알아요.”

이지아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헌터였다. 현재는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그 상징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짜증이 났다.

내가 우러러 바라봤던 최고의 헌터가 무기력하게 당하는 현실이.

10년간 어느 누구도, 이지아의 방패막이 돼주지 않았다.

협회나 길드나 모두 이용해 먹으려고만 했지.

“던전 밖에서의 일은 그냥, 매니저인 저한테 맡겨줘요.”

웃으며 맥주캔을 하나 새로 깠다.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테니까요.”

* * *

컴퓨터의 전원을 켜며 전화를 걸었다.

­현우 씨?

“아, 조 기자님. 갑자기 전화 끊어서 죄송해요. 아까 보도 지침 내려진 거까지 말씀 나눴죠?”

­에헤이, 보, 보도 지침이라뇨. 보도 지침까지는 아니죠…. 보도지침은….

뭘 그렇게 식겁해?

하는 짓이 딱 보도지침 맞구만.

“편집장실에서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 나왔어요?”

­아까 말씀드린 게 전부에요. 현우 씨나 이지아 관련 기사는 취재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마우스를 움직이며 물었다.

“다른 곳도 똑같을까요?”

­일개 잡지사까지 연락 돌린 거면, 사실상 신문사들은 싹 다 막혀있다 보시면 돼요. 취재해서 가져가도 편집장 단계에서 전부 커트 될 거예요.

“인터넷 기사는요?”

­대형 언론사 건너뛰면 찌라시 전문 사이트나 조회수 몇십 나올까 말까 한 지방 신문사밖에 없어요. 그런데 올라가면 어그로인줄 알고 믿지도 않아요.

까다롭네. 거참.

“전에 협회 로비 건 터트릴 때는 괜찮았잖아요?”

­로비 사건이야 꼬리 자르기로 끝낼 수 있으니까 크게 상관없는 거죠! 이건 협회한테 치명적이잖아요!

임원급하고 싸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건가.

나름 협회라는 걸출한 놈들이 하는 짓은 밴댕이다.

검지로 책상을 툭툭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차곡차곡, 계획이 쌓여 올라간다.

정리된 생각에는 검증이 필요했다.

수년간 업계에서 구른 언론인의 검증이.

“기자님, 질문할 게 있는데요.”

­어, 네. 말씀하세요.

“언론사 입 틀어막은 거야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만약 사회적인 이슈가 된 뒤라면, 그때도 무시 가능해요?”

­아뇨.

조 기자가 단호히 말했다.

­절대 불가능하죠. 다른 방향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면, 언론사들도 그때는 절대 무시 못 해요.

“왜요?”

­엉덩이 무겁게 앉아있다가는 돈 받아 처먹었냐고 구독자들한테 몰매 맞거든요. 왜 내가 읽는 신문에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세상 소식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들어야 하냐고.

“그러면….”

­여론 눈치 보여서라도 움직입니다. 그때는 3선의원 로비고 뭐고 아무것도 안 통해요. 후원해주던 기업, 고객들 다 떨어져 나가니까요.

조 기자가 덧붙인다.

­그, 잡지 기자인 제가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한데, 여론을 만드는 거 자체가 언론사 도움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워요.

“음. 그럼 만약에요.”

­네.

“만약에, S급 헌터가.”

­네.

“SNS에다가 헌터 협회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런 글을 쓰면요?”

­……네?

입술을 매만지며 모니터를 쳐다봤다.

[ID: wldk123]

[pasword: ******]

S급 헌터 이지아의 SNS 계정.

꾸준히 활동한 게 의미가 있었는지, 팔로워만 벌써 수십만에 달했다.

댓글창은 여느 때처럼 안티팬들과 팬들의 전쟁터였다.

이곳에, 성토하는 글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

맥주캔을 하나 까며 외쳤다.

“누명을 쓴 S급 헌터가 협회로부터 보복 행정을 당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조 기자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모래부터 도배될 기사 제목인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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