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송곳 (7)
* * *
협회의 대처는 빠르고 훌륭했다.
과거 협회장과 부딪혔던 일 때문에 보복을 당했다는 이지아의 주장.
그걸 단순한 착각으로 틀었으니까.
단, 그건 아무런 증거물도 없을 때의 이야기다.
“귀에 익은 목소리죠?”
본부장의 당황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까지 여유를 가장하던 태도는 사라졌다. 연기할 정신도 없는지, 토끼 눈으로 녹음기를 쳐다보고 있다.
“스물여섯, 혈기 넘치는 나이죠. 앞뒤 분간 못하고 열 뻗쳐서 바로 협회 본부장을 찾아가 따질 만큼.”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뭐…?”
“협회장도 그렇고, 대체 왜 이렇게들 나이로 무시하는 건지.”
본부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설마 녹음 따려고 일부러…!”
그런 이유가 아니면 뭐하러 찾아가서 선전포고 했을까 봐? 쎄쎄쎄라도 하려고? 커피로 입술을 축였다.
“아까 뭐라고 말씀하셨었죠?”
협회의 입장문을 보고 사람들의 의견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협회에서는 이미 입장문으로 이지아의 주장이 잘못된 거라 반박했다.
이 녹취 기록은 그걸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증거물이었다.
방금까지는 협회가 대처 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본부장이 초췌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김현우 너, 너 이 새끼… 처음부터 이런 걸 들고 있었으면서 왜… 왜 풀지 않은 거야?”
“녹취록이요?”
“그거 말고 더 있어?! SNS에 같이 올렸으면, 니네가 원하는 대로 납작 엎드려줬을 거 아니야!”
인생은 타이밍이라고들 말한다.
협회가 입장문을 내길 기다렸던 건, 혹시나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머리를 숙일까 하는 기대를 해서 그런 게 아니다.
바로 인정할 거 같으면 하지도 않았겠지.
만약 본부장의 말대로 녹취록을 처음부터 터트렸으면 번거롭지 않게 일은 해결됐을 거다.
그래도 내가 녹취록을 끝까지 숨기고 있다가 지금에야 꺼내는 건…….
“그게 더 효과적이니까.”
“…뭐?”
“그렇잖아요. 협회 측이야 보복 행정에 대해 모르는 척 나올 거 뻔한데.”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 터트려야, 당신들이 더 큰 타격을 받겠지. 안 그래?”
본부장의 눈이 잘게 떨린다.
“……김현우, 처음부터 협상할 생각이 없었구나. 길드 심사를 통과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어.”
이 사건이 공론화된 시점부터 원하던 건 이미 전부 얻을 수 있게 됐다. 협회는 눈치가 보여서라도 심사를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
평소 같았으면, 아마 그걸로 만족하고 물러났을 거다.
처음 본부장에게 찾아간 날.
녹음본을 그 자리에서 바로 보여주고, SNS에 올릴 거라 협박하고, 결과물을 받아내고, 떠난다.
그쪽이 내 성향에 맞았다.
싸웠다고 해서 누군가와 끝을 보려 하는 건, 나하고 맞지 않는다.
아마 한예림과 나의 결정적인 차이가 그것일 거다.
도저히 상대방을 잔혹하게 몰아세우질 못한다.
한유정 가지고 장난질 치려던 기자를 협박했지만, 그걸 굳이 외부로 알리지 않았다.
태산 길드 매니저와도 그랬다.
2차 시험에서 한유정이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거로 만족했다.
그 과정에서 태산 길드 매니저가 많이 곤란해졌지만, 불법 로비의 비밀을 모두 파헤쳐서 끝장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한유정이 내게 암살 명단을 넘겼을 때.
그녀의 안위를 신경쓰지 않고 언론에 정보를 풀어버렸다면, 협회장을 감옥에 보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태까지 드잡이질하던 모든 게, 그저 어쩔 수 없이 싸웠던 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던전이 아니면 너무나도 무능력한 내 헌터들을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스물여섯짜리 신입 매니저가 그저 밑바닥에서부터 발악한 거일 뿐이다.
그런데 이지아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걸 보면서 조금, 심사가 뒤틀렸다.
“제가 진짜 이해 안 되는 건 말입니다.”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말했다.
“당신들이 먼저 지아를 끝까지 이용해 놓고 왜 자꾸만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이겁니다.”
내가 이지아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열불이 난다.
자기들 멋대로 필요하니까 영웅으로 만들었다.
보통은 얻기 힘든 기회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협회는 이지아가 정신적인 이상을 보였을 게 분명함에도, 프로젝트를 우선시하느라 케어를 소홀히 했다.
그리고는 공략 실패 책임을 모조리 이지아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비극적인 자살로 끝났을 거다.
사건이 전부 마무리 되고 새 시작을 하려는데, 이번엔 지들이 피해자인 거처럼 이지아를 걸고넘어진다.
여기서 대체 협회가 억울할 일이 뭐가 있다고?
“내 참, 어이가 없잖아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뀐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안 그래요?”
여기까지 왔는데도 참으면 그건 이성적인 게 아니라 호구지.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지아를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이 개새끼가──!!”
잠자코 듣고 있던 본부장이 일어나며 책상을 쾅! 내려쳤다. 주위의 시선이 쏠린다. 턱살을 파들파들 떨던 본부장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흥분으로 콧김을 푹푹 뿜는데, 금방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듯 엉덩이를 들썩인다.
차라리 달려들어서 잡아줬으면 좋겠네. 진심으로.
한참 동안 ‘시발시발’, 욕을 하며 분을 식히던 본부장이 다시 차분히 이야기를 꺼냈다.
“……녹음본 넘겨. 전부 없던 일로 하자. 앞으로 협회가 이지아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할 일은 없어.”
“진짜 신기해요.”
턱을 괴고 심드렁히 빨대만 쭉쭉 들이켰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미는걸세. 정말 우연히 나온 기회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대본을 챙겨주는 척, 지아 양에게 다가가서 말하세. 이번 싸움은 포기하자고. 자네 말이라면 듣지 않겠는가.
당장 조 기자한테 전화해서 정정 보도 요청해!
그러니까요. 스케줄 꼬여서 인터뷰 시간도 못 챙기고, 이번 기사는 못 나가겠네… 다음으로 미뤄야죠.
“왜 다들 마지막에 와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냥 처음부터 잘들 하시지.”
처음에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승부란 건 결국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법이다.
그럼 항상 패자가 마지막에 제안한다.
없던 일로 되돌리자고. 끝까지 치달아서야 그런 말을 꺼낸다.
“비겁하지 않아요? 제가 아무것도 못할 거라 생각하고 싸움을 걸어오고, 길가의 쓰레기 밟듯 짓뭉개며 지나갔을 양반들이… 막상 원하던 결과가 안 나오니까 그때 가서 뒤늦게 손 내미는 거.”
입가를 비뚜름히 올리며 말했다.
“되게 더럽고, 추하잖아요. 이길 싸움만 하려고 했다는 게.”
본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답답한 듯 입을 달싹거리지만, 결국 꺼내지 못하고 다물어버린다.
녹음기가 계속 신경 쓰이나보다.
이래서 사람이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날 봐.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걸릴 게 없잖아.
“본부장님이 하신 말씀이요. 그거 협회장도 똑같이 말했어요.”
“뭐…?”
“마지막에 와서 손 내밀더라구요. 이대로 청문회 없던 일로 무르자고. 제가 뭐라고 했을 거 같아요?”
본부장이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봅시다. 여기서 뭐 더 잃을 게 있겠습니까? 저희야 아직 길드도 없는데 밑져야 본전이지.”
결국 시위는 한참 전에 놓인 상태였다.
쏘아진 화살이 멈추는 건 목적지에 박히고 나서다.
이건 그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때리는 내 분풀이에 불과했다.
“제가 할 말은 전부 끝났으니까, 나머진 나중에 우리 쪽 대표님하고 이야기 나누시고. 미리 충고드리는데, 저보다 더 음험하면 음험했지 덜하진 않으니까 속여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속을 사람도 아니니까.”
이지아의 어깨를 두들기며 일어났다. 함께 카페를 나서려는데, 본부장이 불쑥 물었다.
“김현우, 협회 보복이 안 두렵나?”
진짜 구질구질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돌아봤다.
본부장이 체념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궁금해서 묻는 거야. 여기서 말로 설득해봤자 안된다는 걸 알았거든.”
걱정되지 않다고 한다면, 말도 안 되겠지.
“저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요.”
“그럼 협상을…….”
“그런데요.”
여태까지의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촤르륵 지나간다.
“싸움을 피한다고 안 때리는 게 아니더라구요. 저희가 SNS로 이번 건을 터트리지 않았으면 어디 길드로서 출발이나 했겠습니까?”
아마 지금도 손가락이나 쪽쪽 빨면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나마 싸우고 이김으로써 첫발이나 내디딘 거다.
“이번에 협상을 해서 서로가 원만하게 끝낸다 치더라도요. 당신네가 우릴 좋게 봐줄 건 아니잖아요.”
여태까지 사사건건 걸고넘어진 거만 봐도 뻔할 뻔 자였다.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그럴 거면 말이야. 가만히 앉아서 맞기보다는 같이 주먹질이라도 해야지. 적어도 억울하진 않게.”
본부장이 테이블에 몸을 기대며 얼굴을 쓸어내린다. 더 할 말은 없어 보인다. 이지아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어딘가 시무룩한 얼굴로 내 뒤를 따라왔다.
“뭐해요?”
“네?”
“사람이 뭐에 홀린 거마냥 멍을 때려서요.”
“아뇨, 그냥, 항상 현우 씨한테 도움만 받는다 싶어서요. 동갑인데 저는 뭐하나 싶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했더니.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월급을 워낙 많이 받아서 지아 씨가 저를 도둑놈처럼 생각하면 어쩌나 했는데.”
“네에?”
이지아가 손사래를 친다.
“한 번도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오히려 계약 기간을 더 연장하고 싶은걸요?”
“그건 제가 좀….”
10년도 충분히 길다.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이지아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정말로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싶어서.
“지아 씨.”
“네?”
“이런 거로 괜히 의기소침해할 필요 없어요. 헌터야 헌터가 할 일이 있는 거고, 매니저야 매니저가 할 일이 있는 거죠. 그거 다 잘하면 지아 씨가 초인이게요?”
헌터는 던전에서 제 역할만 다하면 된다. 그밖에 외부에서의 일은 매니저가 케어해주는 거고.
서로가 활약하는 무대가 다른데 누가 누굴 부러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지아가 나처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지아는 이지아니까.
할 말을 찾던 이지아가 빙글빙글 웃는다.
“현우 씨, 그거 아세요?”
“뭐요?”
“아까 본부장하고 싸울 때요.”
“네.”
“저보고 계속 지아라고 불렀는데.”
짤랑!
실수로 차 키를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차 키를 주우며 아하하, 마른 웃음을 쥐어짰다.
“글쎄요.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제가 그랬었다구요?”
“진짜 안나요?”
“네, 지아 씨한테 말을 놓을 리가 없잖아요.”
사회에서 만난 친구한테는 원래 말놓는 거 아니다.
내 고용주이기도 했고.
“에이, 청문회 때도 반말했었잖아요.”
“그걸 또 왜 꺼내요?”
잊었나 싶었는데….
얼굴을 붉히며 열쇠 구멍에 열쇠를 마구 꽂아 넣었다. 자꾸만 빗겨나간다. 젠장, 이거 왜 이렇게 안 들어가?
한참 동안 구멍하고 씨름하는데 이지아가 갑자기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빼간다.
“지아 씨?”
“갑자기 생각나서요.”
불안해지는 속마음을 꾹꾹 눌러 앉히며 물었다.
“…뭐를요?”
“현우 씨가 분명 아까 대화 내용도 녹음했을 거 같거든요. 맞죠?”
맙소사. 창가에 비친 내 얼굴이 꼭 귀신이라도 본 사람 같다. 식겁해서 팔을 뻗는데 이지아가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핸드폰 돌려줘요!”
“현우 씨, 비밀번호 뭐에요?”
“그걸 알려줄 거 같아요? 빨리 줘요!”
“비밀번호 알려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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