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역대급 유망주 (6)
* * *
아니, 잠깐만….
헌터 매니지먼트팀을 맡는다고?
태산 길드 매니저, 송 실장이?
흐.
헛웃음을 흘리며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지금 들은 말이 믿기지 않아서 그런가, 아메리카노가 써서 그런가.
인상이 저절로 팍 찌푸려진다.
이게 뭔 개소리야?
입가를 손등으로 슥 닦으며 물었다.
“진짜요? 설마 받아들인 건 아니죠?”
“뭐 문제 있어?”
문제가 없긴 왜 없어!
한 달 전에 나는 조 기자를 통해서 불법 로비 건을 터트렸다. 거기에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된 증거물이 눈앞의 남자였다.
그 일로 매니저는 태산 길드에서 쫓겨나게 됐다. 거기에 나는 한술 더 떠서 때리라며 도발까지 했고.
그런데 같은 직장에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일하라고? 장난해? 직장 꼴 잘만 돌아가겠다.
매니저가 태연히 어깨를 으쓱인다.
“원래 이 업계가 그래. 며칠 전에 멱살 잡고 싸웠던 놈들끼리 어깨동무하며 형, 동생 한다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박 변호사가 했던 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하고 같이 일하고 싶습니까?”
“너 같으면 하고 싶겠냐?”
당연히 하기 싫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질색하는 거잖아.
“한예림 대표가 매니지먼트 팀장직을 언급했으니까 가는 거지. 바스타드에는 이지아랑 한유정도 있고. 앞으로 크게 성장할 거라 봤으니까.”
매니저, 송 팀장이 차분히 설명했다.
현재가 아닌 앞으로의 비전.
꽤나 승수 높은 도박수로 봤을 거다. 이지아는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헌터였고, 한유정은 차세대를 최선두에서 이끌 유망주였으니까.
턱을 괴며 톡톡 테이블을 두들겼다.
나도 팀을 하나 맡을 예정이었다. 이래 봬도 나름 회사 개국공신이다.
담당하는 헌터는 오직 한유정 하나뿐인 허울에 불과했지만, 직책상으로는 송 팀장과 동등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실 한예림이 팀장직을 내게 제안했을 때 바닥에서부터 배우고 싶다고 거절한 전적이 있다.
회사가 커지고 나면 주변 눈치 때문에 달아주기 힘들다고 한예림이 억지로 밀어붙였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바닥에서 배우긴 개뿔.
마대 자루 대신에 얼굴로 바닥칠만 할뻔했다.
서로 멱살 잡고 싸울 뻔한 상대가 직장 상사라니. 꿈에 나올까 무서운 상황이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부터 나왔다.
혹시나 착각할까 싶어 미리 으름장을 놓았다.
“저도 팀장입니다. 기강 잡으려고 하신 거면 잘못 찾으셨어요.”
“나도 알아. 누가 뭐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괜히 지 혼자 찔려서 설레발이야?”
반박할 말이 없어 뻘쭘하게 볼만 긁적였다.
잠깐 대화가 끊겼다.
할 말 끝났나? 턱을 괴고 창문 밖을 바라봤다. 시험장 건물이 우뚝 솟아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며 멍하니 있으니까 한유정의 얼굴이 떠오른다.
유정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송 팀장이 조심스레 묻는다.
“그, 한유정 말인데.”
“유정이요? 왜요?”
“너하고 있을 때는 얌전하다고 했지?”
나하고 있을 때?
“아뇨.”
“…?”
“평소에도 되게 얌전해요. 착하고, 말 잘 듣고,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는…….”
송 팀장이 질색하며 내 말을 끊는다.
“그만. 일단 네 앞에서 얌전하단 건 충분히 알겠다.”
알겠다면서 얼굴은 왜 저래?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굴뚝 같아 보이는데, 입만 벙긋거린다.
꼭 누군가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입 열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한 거처럼.
“……사실, 바스타드에 들어오면서 대표님하고 이야기된 게 하나 있어.”
“뭔데요?”
“한유정 소속에 관한 건데.”
경계심이 머리끝까지 팍 치밀어오른다.
설마 한유정을 자기네 팀으로 옮기겠다,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려는 건 아니겠지?
아마 안될걸.
병원에서 진단받은 기록이 남아있거든. 불법 로비 사진 원본도 컴퓨터에 그대로고.
나한테 한유정을 뺏으려고 하면 당신이 많이 힘들어질 거야.
송 팀장이 얼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한유정은 네가 담당하는 거 맞지?”
“당연하죠.”
마음속으로 투지를 끓어 올린 게 무색하게 처절한 목소리로 송 팀장이 부탁한다.
“힘든 일 있어도 중간에 절대 그만두지 마.”
뭐?
“그만둘 거 같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줄게.”
“……네?”
의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질색하며 나한테 맡아달라 사정한다고?
한유정이 어떤 유망주인데.
제정신이야?
그런데 방금의 부탁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송 팀장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내 손을 붙잡았다.
“한유정이 우리 팀으로 오는 일 없도록, 꼭 좀 부탁한다. 제발.”
* * *
나예정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점수는 0점을 찍었다. 뒤에 있을 스테이지에서 추가 점수까지 획득하는 게 아니라면 상위권은 물 건너갔다.
모두 한유정이 시험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여태껏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등장해서 한다는 말이 고작…….
“……뭐? 멘탈을 잡아? 너 지금 나랑 장난해?”
나예정이 험상궂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태까지 어디서 뭐 하다가 이제야 기어 나오는 거야?!”
“게임이요.”
“그놈의 게임, 게임, 게임! 지랄 좀 하지 마!!”
나예정이 한유정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멀리 서 있던 유망주들이 다급히 달려와서 그녀를 몸으로 막아섰다.
“나예정 씨! 그만 하세요! 이제라도 하겠다고 하잖아요!”
“저러다가 수틀려서 또 안 하겠다고 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에요?!”
나예정이 염동술로 둘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그래서 어쩌라고? 난 이미 과락 났는데! 저년 눈치를 볼 거 같아?!”
어차피 전부 끝났다.
이제 와서 한유정이 시험을 하든 말든 간에,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녀가 한유정의 멱살을 잡았다.
[warnning!][warnning!][warnning!]
[필요 이상의 신체 접촉이 감지됐습니다. 물러나세요.]
나예정은 메시지를 무시했다.
머리가 흥분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방금 한유정이 등장한 타이밍을 생각해봤다.
한유정의 목적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졌다.
과락이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서 몬스터들을 죽였다. 이걸 보고도 모르면 그건 병신이다.
그녀를 저격해서 떨어트리려고 이런 행동을 한 거다.
나예정이 멱살 잡은 손을 마구 흔들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한유정은 힐끔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다른 인원에게 방해가 들어왔습니다. 방어 활동을 인정합니다. 재시험을 치겠습니까?]
[Y/N]
[재시험을 거절합니다.]
그녀가 염동술사의 얇은 손목을 붙잡았다. 나예정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손목에서 통증이 얼얼하게 느껴졌다.
한유정이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
“……뭐?”
“온천에서 아저씨한테 시비 걸고, 그것도 모자라서 뒷담하며 모욕했잖아.”
나예정이 한유정의 말을 되새김질하다가 되물었다.
“온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때 자리에 있던 건 한유정이 아니라 이지아였다. 그녀가 의문을 가지고 한유정과 눈을 마주쳤다.
붉은색 눈이 핏빛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살기가 목을 옥죄여온다.
“당신은 1년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헌터야. 일반인이 그런 인간 병기한테 손목을 붙잡히면, 얼마나 아팠을 거 같아? 너도 한 번 느껴봐.”
빠득!
나예정의 손목이 뒤틀렸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손 놔! 손!”
염동술로 밀어 내려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목에서 지독한 통증을 느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저씨한테 왜 그랬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게 어떻게 억지야?! 김현우 그 새끼 탓이 맞는데!”
천살성의 살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평소에는 김현우의 능력이 억제해줘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현우가 없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일이 아니라면 감정을 억제하는 건 제법 익숙한 일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자극하지만 않는다면, 그랬을 터다.
하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김현우의 능력이 사라졌다. 나예정은 원수라도 진 것처럼 행동했다.
한유정이 손아귀에 힘을 더 강하게 줬다.
까득!
나예정의 비명이 커졌다. 한유정이 그녀의 귀에다가 작게 속삭였다.
“다른 누굴 탓하든 상관 없어. 누구한테 손찌검해도 신경 안 써. 나한테 욕해도 적당히 무시하고 지나갈 거야.”
한유정은 혀끝이 저릴 정도로 치밀어오르는 유혹을 꾹 눌러 담았다. 감정이 격해질수록 살의가 치솟았다. 방심하면 바로 목에 칼을 찔러넣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만은 안돼. 알겠어?”
나예정은 두개골까지 징징 울리는 통증 때문에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한유정은 그제야 손을 털며 뒤로 물러났다. 나예정이 손목을 주무르며 한유정을 노려봤다.
“가, 가만 안 둘 거야… 한유정,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너.”
“상관없어. 알아서 해.”
나예정의 몸이 번쩍였다.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잘 됐다. 있어봤자 분위기만 이상하게 망쳤을 게 분명하니까.
한유정은 유망주들을 바라봤다. 어깨를 굳힌 그녀들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한유정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한 명 빠졌으니까, 다들 그만큼 더 열심히 하죠.”
&
복도로 나온 나예정은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이대로 물러날 거 같아?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어.”
한유정은 고의로 아군을 방해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당연히 관련 처벌 기록도 없을 터다.
하지만 어떻게든 규칙을 적용하면 재시험의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상식적으로 그랬다.
나예정이 핸드폰 주소록을 뒤졌다.
[매니저 오빠]
잠깐의 수신음이 울리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팀장이었다.
여보세요? 너 왜 벌써 끝났어?
“오빠, 그게 아니라 한유정하고 트러블이 생겼는데…….”
나예정은 방금 있었던 일들을 전부 설명했다. 수화기 너머로 송 팀장이 열심히 맞장구쳤다.
“그래서 협회에 이의신청 내야 할 거 같아. 이런 거는 시기 놓치면 나중에 가서 처벌하기 애매해지잖아. 오빠가 지금 알아봐 줄 수 있어?”
당연하지.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인데. 일단 있어 봐, 감독관하고는 아는 사이니까 바로 이의신청 걸어볼게.
“알겠어, 고마워.”
전화를 끊은 나예정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한유정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했다. 손목의 통증까지도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거 같아? 두고 봐.”
&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던 송 팀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다시 커피 빨대를 입에 문다.
“뭡니까?”
“뭐가?”
“전화요. 되게 심각한 이야기 같던데.”
“별건 아니고.”
그가 팔짱을 끼며 턱을 쓰다듬는다.
“전 직장 동료가 이직하는 곳에다가 똥물 뿌려달라길래.”
“네? 바스타드 길드에요?”
“어.”
“방금 해주겠다는 말은 뭐예요?”
송 팀장이 피식 웃는다.
“대충 얼버무린 거지, 내가 미쳤냐? 직장 생활 시작부터 대표 눈 밖에 나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