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63화 (63/112)

〈 63화 〉 역대급 유망주 (8)

* * *

2차 시험 일주일 뒤.

전화를 받은 협회 직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이의 신청하려면 당일 날에 하던가. 일주일 지나서 뭔 지랄이야?”

투덜거리던 직원이 감독관을 찾아갔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던 감독관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의신청 들어와서요.”

“이의 신청?”

감독관이 눈썹을 확 찌푸렸다.

“이의신청하려면 당일 날에 하던가. 일주일 지나서 뭔 지랄이야?”

“그쵸?”

직원이 열심히 맞장구쳤다.

시험이란 게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정하기 힘들어졌다. 거기다가 당일날에 점수와 함께 등수까지 전부 발부했는데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감독관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물었다.

“그래서, 누군데?”

“나예정이라고 태산 길드 소속인데요.”

“태산? 나예정?”

대형 회사다. 거기에 협회에서 밀어주려던 유망주 이름이었다.

그가 한숨을 푹 쉬며 흡연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컴퓨터 책상에 앉은 그는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들겼다.

“뭐 때문에 이의신청한다는데?”

“한유정이 본인 떨어트리려고 고의로 시험을 방해했대요.”

“뭐?”

감독관이 모니터를 확인했다. 둘이 같은 팀이었다.

“어떻게?”

“9 웨이브까지 몬스터를 일부러 흘렸다고….”

“흐.”

감독관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나예정을 일부러 떨어트리려고 9 웨이브까지 안 막고 오픈했다고? 나예정이 탈락하자마자 본인은 고득점을 받아내고?”

“어, 네.”

“왜?”

“네?”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왜 그랬대?”

“매니저가 어떻고 하던데, 울음소리 때문에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감독관이 팔짱을 끼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머릿속에서 저울이 그려진다. 한쪽에는 나예정, 다른 한쪽에는 한유정.

저울추는 가늠할 것도 없이 한유정 쪽으로 휙 기울었다.

“하지 마.”

“뭐를요?”

“수정해주지 말라고.”

“그래도 기록 다 남아있는데 이의신청 들어왔으니까 영상 확인은…….”

“그런 게 아니야.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없다고 말 해야 해. 번거롭게 확인하지 말고 내일쯤 못 해준다고 답장 보내.”

눈을 끔벅이던 직원이 물었다.

“네? 왜요?”

“왜긴, 인마! 협회하고 바스타드하고 사이 안 좋은 거 몰라? 그쪽에서 벌써 두 번이나 엎었잖아!”

“그럼 오히려 기회 아닙니까?”

직원의 당당한 물음에 감독관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바스타드하고 협회 사이 안 좋은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없죠.”

“그래, 없지? 뉴스에서 아직도 이지아가 협회에 보복 행정 당한 걸로 떠들고 있어. 그런데 여기서 한유정이 갑자기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보일 거 같아?”

“아.”

감독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나예정의 말대로라면, 원래 한유정의 행동은 제재를 먹여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문제는 단지 그녀가 바스타드 소속이란 것이다.

여태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다. 누군가를 시험에서 떨어트리려고 고의로 아군을 방해하는 일은.

기준이 없는 첫 처벌인 만큼, 사적인 감정을 배제했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규칙에 명확하게 적시된 게 아니었으니까.

바스타드와 협회의 관계. 협회가 처한 상황. 사례가 없던 행위.

세 개가 교묘하게 맞물려갔다.

어떻게 처리하든 간에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의신청을 당일날에 해도 안 해줬을 텐데. 일주일 뒤에 처넣어서 그림이 더 이상해지잖아.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줘?”

“그러면….”

“말했잖아.”

감독관이 짜증스레 말했다.

“그대로 놔둬. 이번 시험에서 한유정은 우리가 못 건드려.”

“알겠습니다.”

꾸벅, 고갤 숙인 직원이 자리로 돌아갔다. 감독관이 턱을 괴며 한유정의 이름을 지그시 응시했다.

한유정을 처음 봤을 때부터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서늘한 칼날. 숨겨진 비수. 똬리를 튼 뱀.

‘대책 없이 일 벌이는 스타일로 안보였는데.’

행동과 인상이 너무 어긋난다.

그렇다고 아니라기에는 이걸 전부 예측했다는 말인데.

17살 소녀에게 그게 가능한가?

협회와 자신이 속한 길드의 정치적인 상황을 읽고,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 예측한다는 게?

감독관이 작게 코웃음 쳤다.

&

1층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기댔다. 휘파람을 불며 기다리는데, 문틈 사이로 손가락이 끼었다.

문이 다시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송 팀장이었다.

그가 눈썹을 올리며 묻는다.

“김현우? 여긴 웬일이야?”

“대표님이 사무실 구경하라고 주소 보내줬거든요. 잠깐 둘러보다가 가는 길이었어요.”

“아.”

바스타드에도 드디어 사옥이 생겼다. 지금은 망하고 사라진 길드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이태원의 7층짜리 빌딩. 기존에 쓰던 사무용품까지 전부 구매하는 조건으로 임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길드에 필요한 건 다 갖춰져 있다.

자금 출처는 당연히 이지아와 은행.

내가 보기에는 이지아가 없었으면 이 길드는 시작도 못 했다.

“송 팀장님은 무슨 일이세요?”

“내가 너처럼 명함만 팀장인 줄 알아? 매니지먼트팀 꾸리고, 길드에 부족한 인력 채워 넣는다고 바빠.”

설핏 봐도 피곤해 보이기는 했다. 볼도 움푹 팼고, 눈가 밑은 퀭하니 블랙홀이 생긴 걸 보면.

하긴.

한예림은 미국에 있다가 건너와서 한국에 아는 사람이 적을테고. 나는 신입 매니저다. 업계에 잔뼈 굵은 사람은 송 팀장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바쁘신 분이 어디 가시는데요?”

“커피 사러. 카페인이 없으면 쓰려져서 죽을 거 같거든.”

띵!

문이 열렸다. 밖으로 걸어 나가며 계속 대화를 나눴다. 송 팀장이 간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너 혹시 근처에 능력 좋고 괜찮은 사람들 있냐?”

“예를 들면요?”

“아무나. 홍보팀, 운영팀, 기획팀 싹 다 비어있어.”

“공채는요?”

“공채도 돌리고 있긴 한데 한참 부족해. 팀장직은 다 알음알음 데려올 생각이고. 시발, 매니지먼트 팀장이 대체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야?”

조 기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직접 일해 보니까 그 양반도 능력 괜찮았는데. 불법 로비 건 올릴 때 보니까 아는 기자들도 많았고.

기자 인맥이 중요한 홍보팀 업무 특성상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 됐다. 멀쩡히 자기 일 잘하는 사람한테 무슨.

“글쎄요. 생각 좀 해보고요.”

송 팀장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신입 매니저한테 내가 뭘 기대하냐는 얼굴이다.

갈림길이 나왔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왼쪽 길로 걸어가려는데 송 팀장이 불쑥 날 부른다.

“김현우, 한유정 2차 시험 순위 내려갔다면서.”

“네. 아시네요?”

“회사에서 제일 밀어주는 유망주인데, 당연히 알고 있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예, 뭐….”

“같은 팀장끼리 이런 말 하기 뭐한데, 그냥 선배 매니저의 충고라고 들어. 벌써 기선제압하려고 정치질 하는 거 아니니까.”

“말하세요.”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한유정 관리 잘해야 할 거야.”

송 팀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네가 일개 매니저도 아니고. 엄연히 매니지먼트 팀 하나를 맡은 팀장이니까.”

맞다. 명목상의 불과한 팀장이지만, 일단은 팀장이었다.

“맡은 인원이 한유정 하나뿐인데, 그것마저 관리 못 하면 나중에 가서 입지가 조금 곤란해지거든. 회사는 결국 실적이니까.”

헛웃음을 흘렸다. 송 팀장이 인상을 찡그린다.

“뭐가 웃기냐?”

“신기해서요.”

박 변호사 말이 이해 갈 거 같았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그 말.

결국 지금 선 위치가 바뀌면 적도 아군도 바뀐다는 뜻이었나.

송 팀장이 퉁명스레 말한다.

“지랄 마. 예쁘다고 말해주는 줄 알아? 네가 팀장직 내려놓으면 한유정이 우리 쪽 팀으로 오니까 그런 거야.”

말하는 뽄새하고는. 간질거리던 감정이 쏙 들어간다.

“저도 알고 있어요.”

“뭘?”

“유정이가 1등 못하면 나중에 제가 곤란해지는 거요.”

한유정의 등수가 확 내려갔다.

3차 시험에서 어지간히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게 아니면 1등을 찬탈하기 힘들어졌다.

나중에 한유정이 실적을 쌓고 유명해지면 분명 말이 나올 거다. 도대체 이런 헌터를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시험 성적을 죽 쒔냐고.

스물여섯, 무경력의 젊은 팀장.

화살이 내게 돌아올 건 분명했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렇게 태평해?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그냥 뭐… 제가 욕먹으면 욕먹었지, 이런 거로 유정이 압박하기 싫더라구요.”

“정신 나간 놈. 그렇게 일하면 오래 못 버틴다. 직장에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생길 열리는 거야.”

송 팀장의 잔소리를 적당히 한 귀로 흘려보냈다.

*

차에서 내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익숙하게 한유정의 이름을 검색했다. 추가 키워드는 제2의 이지아와 유망주.

찾던 기사들이 쭈르륵 떠올랐다.

눈살을 찌푸리며 꺼버렸다.

당분간 한유정한테 인터넷은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집으로 들어가는데 불이 몽땅 꺼져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유정아?”

애가 어딨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귀신처럼 눈치채고 마중 나왔는데. 한유정의 방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밖에 나갔나?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쇠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갔다. 지하의 훈련장으로 이어졌다.

끼익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유정이 로잉 머신을 당기고 있었다. 왜, 조정 선수들이 훈련할 때 줄 당기는 그거.

다만, 헌터용 훈련 장비라 무게를 수십 톤까지도 늘릴 수 있다는 게 조금 다르다.

펑퍼짐한 운동복이 흠뻑 젖어 있었다. 로잉 머신을 당길 때마다 땀방울이 길게 바닥으로 튀었다.

주변 인기척에 엄청 예민한 애인데, 얼마나 집중하는지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있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봤다.

끼익 끼익!

거친 쇳소리가 멈춘 건 한참 뒤였다. 운동이 끝나고 한유정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거친 숨을 헐떡인다.

“끝났어?”

내 물음에 눈을 슬쩍 뜨더니 도로 감는다. 어이구, 아는 체도 못하는 거 보면 힘들긴 한가보다.

물병의 뚜껑을 따서 건네니까 자기 머리 위에 콸콸콸 쏟아붓고 남은 물은 벌컥 마신다.

소나기라도 맞은 거처럼 푹 젖은 생쥐 꼴이다. 진열장에서 곱게 게 여진 수건을 가져왔다. 머리를 털어주니까 얌전히 고갤 숙인다.

숨을 고른 한유정이 물었다.

“훈련장에는 어쩐 일이세요?”

“안 보이길래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 웬일로 훈련을 하고 있어?”

평소에는 시간 있으면 게임하기 바빠 보이더니.

한유정이 훈련장에서 땀 빼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져서요.”

“무슨 생각?”

“그냥….”

뜸 들이던 목소리가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내 거는 제가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요.”

“너 거?”

“네.”

한유정이 고갤 끄덕인다.

“내거.”

“너 거가 대체 뭐길래 안 하던 훈련을 해?”

수건에 가려진 그늘 사이로 빨간색 눈동자가 보인다. 문득 시선을 마주쳤다. 한유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키 차이 때문일까? 한유정의 옅은 숨이 턱 끝을 간질거린다.

5초, 10초, 15초… 대체 얼마나 지난 거지? 체감상 일 분쯤은 된 거 같은데. 실제로 얼마나 흐른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아무튼, 몇 초가 됐든 간에 되게 부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내 착각인지 모르겠는데, 한유정의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가까워진 거 같기도 했다.

이상야릇하고 끈적한 공기가 주위에 감돈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어우, 시간 좀 봐. 저녁 준비해야지.”

허겁지겁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고 발걸음을 옮겼다. 문손잡이를 잡으며 물었다.

“유정아,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시험 전까지는 관리하려구요. 죄송해요.”

“아니야, 훈련하는 데 방해해서 내가 미안하지. 고생해.”

“네.”

쾅!

문을 닫고 곧바로 벽에 등을 기댔다. 안 그러면 다리에 힘이 풀려 종이 인형처럼 푹 고꾸라질 거만 같아서.

“씨발.”

거친 욕을 중얼거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혀가 바싹바싹 마른다.

…아니겠지?

양손으로 뺨을 짝짝 때렸다. 입안에 맴도는 상상을 기어코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정신 차리자, 김현우 이 새끼야.

뻐근한 턱을 주무르며 계단을 올라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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