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역대급 유망주 (10)
* * *
3차 시험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끝마치고 한유정의 방문 앞에 섰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어제 늦게까지 훈련하더니 이럴 줄 알았다.
“유정아, 들어간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침대 위의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한유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7시인데 애가 어디 간 거지? 아직 한참 잘 시간인데.
머리를 긁적이며 거실로 향했다. 식탁에 앉은 한예림이 기계적으로 시리얼을 입에 넣고 있었다.
“니 집 놔두고 왜 여기서 밥 먹냐?”
“시리얼 가지고 쪼잔하게 굴지 마. 이지아 데려가려고 들린 김에 먹는 거니까.”
“혹시 유정이 봤어?”
“유정이? 아까 훈련장으로 내려가는 거 같던데.”
마지막으로 컨디션 조절하는 건가?
설마 그 잠만보가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훈련장에 들어갈지는 꿈에도 몰랐다.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며 훈련장의 문을 열었다.
한유정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명상에 빠져 있었다.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울 만큼 날 선 기세가 피부를 쿡쿡 찌른다.
“유정이 있잖아.”
어느새 등 뒤에 다가온 한예림이 불쑥 말한다. 혹시 집중이 깨질까,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유정이가 왜?”
“많이 유해지긴 했는데 예전에는 애가 조금, 살벌했었잖아.”
한예림의 말에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내 목에 칼을 들이밀고 협상을 제시했었지. 살려줄 테니까 자신을 옆에 두라면서. 이지아한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고.
한예림한테도 그다지 달갑게 대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확실히, 그런 걸 생각해보면 최근 인상이 많이 순해지긴 했다. 아마 이쪽이 원래 본성일 거다. 1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는데, 안 거칠어지는 게 이상하지.
“갑자기 예전 얘기는 왜?”
“그냥. 요즘에는 볼 때마다 처음 만났을 때가 계속 생각나더라고.”
“처음 만났을 때가?”
“응.”
천천히 일어나는 한유정을 바라봤다.
단 한 번을 휘두르기 위해 벼려진 칼 같았다. 툭 치면 부러질 거 같지만 날은 서슬 퍼런.
“17등까지 떨어져서 어떡하나, 내 눈이 혹시 잘못된 건 아닌가 조금 걱정됐는데.”
한예림이 어깨를 으쓱였다.
“괜한 걱정이었네.”
*
운전을 하다가 백미러로 한유정의 얼굴을 살폈다.
아까의 날 선 기세는 사라지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선을 느낀 한유정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뚝뚝하던 눈매가 따스하게 녹아내린다.
얘는 진짜 17살 맞나? 알고 보면 얼굴만 엄청 동안인 거고 연상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친구라면서 이지혜가 아는척했던 거 보면 그건 또 아닌데.
워낙 인생이 파란만장해서인가, 가끔 보면 애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일요일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유혹적으로 느껴지던 한유정의 미소를.
갑자기 자괴감이 팍 밀려온다.
에라이, 한심한 새끼.
17살짜리 애한테 유혹적인 미소가 뭐 어쩌고 저째?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지랄한다.
열을 가라앉히려고 에어컨 버튼을 마구 눌렀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목이 바싹바싹 탄다.
“유정아, 거기 물 좀 꺼내줄래?”
“어디요?”
“서랍에 들어있어. 뚜껑….”
뚜껑 따서 달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한유정이 내 입술에 물병을 들이민다. 옷에 흐를까, 먹이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냉큼 입을 가져다 댔다.
갈증이 좀 가신다. 턱에 묻은 물을 닦으며 물었다.
“마지막 시험인데 컨디션은 좀 어때? 괜찮아?”
“네.”
“얼마나?”
한유정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엄청요. 오늘만 생각하면서 컨디션 조절했어요.”
그러면서 자신만만한 얼굴을 한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실실 흘리며 물었다.
“되게 익숙해 보인다? 식단 조절도 철저하고 운동도 딱딱 하는 거 보면. 인터넷 보고 한 거야?”
“아뇨.”
고개를 저은 한유정이 의자를 발등으로 가볍게 툭툭 친다.
“아저씨 만나기 전에는 자주 했어요. 날짜에 맞춰서 컨디션 조절하는 거.”
“자주 했다고?”
네가 운동선수도 아니고 그걸 왜 자주 해? 라고 물으려다가 입을 헙 다물었다.
날짜가 암살 날짜였구나.
마른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이번에 헌터 시험 끝나면 당분간은 좀 바빠질 수 있어.”
“바로 활동하는 거예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전에 준비할 게 많아서. 트레이닝도 받고, 공부도 하고, 계약서 써야 하니까 너 친척분들도 만나봐야 하고, 프로필도 여러 군데 돌리고…….”
할 일들이 아주 첩첩산중이었다.
“아저씨, 그런데….”
“응.”
“기뻐 보이시네요.”
“그래 보여?”
“네. 방금 운전할 때 휘파람도 불고 계셨잖아요.”
그랬나? 한유정이 제대로 봤다.
여태까지는 뭐랄까, 매니저라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고작 해봐야 시험장 데려다주고, 인터뷰 장소 데려다주고, 어디 놀러 데리고 나가고.
나름 팀장인데 하는 건 운전만 하는 게 로드 매니저다.
경력도 경력이고, 한유정의 상황도 상황이다 보니까 그런 거지만, 자괴감이 드는 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하는 게 매니저라기보다는 운전기사 같았거든. 이제야 조금 내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
한유정이 굳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뭐?”
“아저씨 없었으면 지금 하고 많이 달랐을 거예요.”
“맨날 이렇게 운전만 하는데 뭐가 달라? 막말로 아무나 앉혀도 똑같을걸.”
가만히 있던 한유정이 갑자기 이마로 내 어깨를 툭툭 민다.
어어, 얘가 왜 이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뭐?”
“하지 마세요.”
“야, 나 운전 중이야. 장난치다가 큰일 나.”
“신호 걸려있잖아요.”
그러면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마를 내 몸에 문댄다.
“기사 나가서 욕먹을뻔한 거, 계약 잘못할뻔한 거, 2차 시험 망할뻔한 거 전부 아저씨가 막아주셨잖아요.”
“어이구, 네가 알긴 아는구나?”
“전부 알아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니, 그건… 야야, 신호 바뀐다! 이제 그만 떨어져!”
엔진 펌프질로 앞차가 덜덜덜 떨린다. 슬슬 나도 악셀 밟고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얘가 제대로 심보가 뒤틀렸는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런 말 안 하겠다고 저랑 약속해주시면요.”
“알겠어, 안 할게!”
“진짜죠?”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냐?”
“아뇨, 없어요.”
그제야 한유정이 뒤로 물러난다. 볼이 간지러워 긁적이니 긴 머리카락이 떨어져나온다.
“너 진짜, 어디 가서 이러지 마. 남자들 착각해.”
눈썹을 찌푸리던 한유정이 대답한다.
“안 그래요. 저는 그냥 아저씨가 편하니까….”
“아무튼, 헌터 시험이 끝나면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라고 했지?”
“네.”
“벌써 김칫국 마시는 거 같긴 한데, 전에 말했던 소원 말이야. 만약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찍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사실 1등 못한다고 해도 들어줄 거였다.
사회의 쓴맛을 벌써 보기에는 너무 어리잖아.
그리고 애가 평소에는 대체 어떤 걸 원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물었다.
“소원은 어떤 거로 할지 생각해 봤어?”
고민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 곧바로 들려온다.
“네.”
“뭔데?”
너무나도 확신하는 어투라 호기심이 생겼다.
한유정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말씀 안 드릴 거예요.”
조금 짓궂게 보이는 미소였다.
*
매니저가 팔짱을 끼며 주위를 둘러봤다. 3차 시험까지 오니까 대기실도 제법 한산해졌다. 1차 시험 때는 다 몰아넣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검은 머리가 듬성듬성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은 아직 보이질 않았다.
“누굴 그렇게 찾고 있어요? 옆에 있는 사람 불안하게.”
헌터의 물음에 매니저가 턱을 긁적였다.
“한유정.”
“한유정이요? 걔는 왜요?”
“그냥, 신경 쓰여서.”
헌터가 피식 웃는다.
“신경을 왜 써요? 걔 완전히 나가리됐는데.”
“나가리는 무슨. 17등인데 그게 낮은 등수냐?”
“1등이었다가 17등으로 떨어진 거면 망한 거죠, 뭐. 제2의 이지아라는 말도 이제 안 써주잖아요.”
“야, 박경수. 긴장 풀었다가 1등 놓치면 웃음도 안 나온다.”
“걱정 마요. 현실적으로 한유정이 뒤집을 방법 없다는 거지, 누가 방심한대요?”
1차 시험은 전체적인 능력치를, 2차 시험은 협동성을 평가했다면.
3차 시험은 순수한 전투력만을 평가했다. 몬스터와의 1대1 전투로 얼마나 빠르게 해치웠나가 고득점의 기준이 된다.
아마 한유정은 3차 시험에서 충분히 반등하긴 할 거다. 1차 시험에서 남다른 성적을 낸걸 보면, 전투력은 나름 있는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2등과 400점 차이 나던 점수가 2차 시험에서 완전히 뒤집혔다.
2등이었던 헌터는 당연하다는 듯 1등에 어울리는 점수를 기록했다. 한유정은 17등으로 떨어졌다.
2차 시험에서 큰 격차가 벌어졌다. 1등부터 10등까지의 유망주들이 나란히 시험을 죽 쑤지 않는 이상, 차이를 좁히는 건 요원해 보였다.
최종 점수는 결국 종합평가였다.
“저도 걱정돼서 한유정 점수 비교해봤는데요. 걔 절대 1등 못해요.”
“왜?”
“2차 성적 그대로 간다고 했을 때 한유정 걔가 1등 차지하려면요.”
헌터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11초 안에 몬스터 잡아야 해요. 11초요.”
“이지아가 몇 초였지?”
“11초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기록 나란히 세워야 가능한 건데.”
헌터의 말에도 매니저는 복잡한 표정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헌터가 인상을 찌푸릴 무렵,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사근사근하게 생긴 남자와 소녀가 함께 들어왔다.
대기실의 눈이 그들에게 쏠렸다가 곧 소녀에게 고정됐다.
이곳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 같았다. 촬영장에 있어야 할 여배우에게 헌터를 연기하라면서 툭 던져놓은 듯.
쏠린 관심에 헌터가 작게 혀를 찼다.
“쟤는 헌터를 하려는 거야, 배우를 하려는 거야? 피부 봐, 고생 한 번 안 해본 티 팍 나네.”
“왜? 실력도 좋잖아.”
“형, 저런 애들이 진지하게 헌터 되려고 임하는 거 같아요? 다 배우나 아이돌 할 때 이색 경력으로 쓰려고 거쳐 가는 거잖아요.”
“글쎄.”
발끈한 헌터가 따져 물었다.
“아니, 형은 왜 아까부터 계속 초 치는 소리만 해요? 한유정이 진짜 위험할 거라고 보는 거예요?”
“어.”
“뭐라고요?”
당황한 헌터가 눈을 깜빡였다. 매니저가 뻐근한 뒷목을 주무른다.
“태산 길드에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거기 유망주가 한유정하고 같은 조였대.”
“그래서요?”
“이게 좀 말이 안 되긴 하는데, 진짜 들으면서 나도 조금 어이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거기 유망주가 말 하는 게…….”
매니저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한유정이 자길 방해하려고 2차 시험을 10 스테이지까지 안 막았다는 거야. 성적 못 쌓도록. 그, 무슨 트롤, 그 뭐냐? 아무튼 그런 거라고 하던데.”
“…네? 트롤이요?”
헌터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했지. 남 방해하면서 어떻게 합격권까지 가냐.”
“그러니까요. 개소리잖아요. 신경 쓰지 마요.”
“그런데 말이야.”
매니저가 조그만 소녀를 쳐다봤다.
“그게 사실이라면, 조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