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역대급 유망주 (11)
* * *
대기실에 들어올 때부터 미어캣 녀석들이 우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질투, 조소, 경계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지나서 한유정에게 부닥친다.
제2의 이지아로 혜성처럼 등장한 1등은 추락했다. 현재 한유정의 소문에 가장 민감한 건 여기 대기실에 있는 인원들이었다.
몰락한 1등이란 항상 처지가 곤궁한 법이다.
[이제 곧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유망주들이 쭉쭉 빠져나간다.
얌전히 앉아있던 한유정도 일어났다.
“아저씨, 저 갔다 올게요.”
“너무 긴장하지 말고. 힘내.”
*
2차 시험이 불법 로비로 엎어지고 한 달이 지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지아의 보복 행정 논란까지 불거졌다.
이렇게 보면 협회도 참 어이없겠구나 싶다. 카페 알바하던 새파랗게 젊은 놈한테 두 방을 연달아 먹은 거니까. 불법 로비 건이야 누가 한 짓인지 모르겠지만.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위권의 중소규모 회사들, 협회 행적에 관심 많은 일반인들 등.
3차 시험에 대책을 요구한 것이다. 투명성을 증명해야 하는 협회는 다급히 개선책을 내놓았다.
시험을 아예 오픈한 것이다.
의자에 앉아 감독관들이 여러 항목을 체크하는 걸 구경했다.
꼭 내가 방청객이라도 된 거 같다. 관찰 예능 그런 거. 박수라도 쳐야 하나 싶을 때 작은 감탄 소리가 터져 나온다.
뭐 때문에 그런가 싶었더니, 박경수라는 유망주 때문이었다. 한유정이 엎어지고 낼름 1등 먹은 녀석.
왜 이렇게 호들갑들이야?
호기심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도 고개를 빼꼼히 들었다. 커다란 화면 우측 상단에 카운트가 적혀있다. 대충 20초쯤 지난 상태다.
덩치 좋은 남자가 4m 정도 되는 거인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대검을 들고 호쾌하게 움직이는데, 키 차이가 두 배를 넘는 데도 힘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하는 거처럼 보인다.
45초가 됐을 때, 대검이 거인의 눈을 찔렀다. 시체를 짓밟고 선 헌터가 이마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걸로 시험은 끝났다. 화면이 꺼지고 음성이 나왔다.
[27번 시험 종료]
매니저들이 소란스럽게 의견을 나눈다.
“공수 밸런스도 좋고 기술도 괜찮네요. 경험만 더 쌓으면 당장 현직으로 데려가도 괜찮겠어요.”
“1등은 이변이 없으면 그대로 가겠죠?”
“이변은 무슨, 천재지변이죠. 이걸 어떻게 엎어요? 속도 보니까 무난하게 1등 기록하겠는데.”
칭찬 일색이었다. 하긴, 하반기 헌터 시험의 유력한 1등 후보자인데 칭찬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지. 자기 담당 헌터들이 전부 저 유망주보다 아래라는 의미인데.
욕해봤자 의미 없는 질투고 누워서 침 뱉기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한유정의 차례를 기다리는데, 옆으로 시커먼 그림자가 진다. 방금 화면 속의 유망주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헌터가 물병을 벌컥 들이키며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에게 묻는다.
“지금 시험 결과 어때요?”
“네가 1등이야.”
“한유정은요? 시험 결과 나왔어요?”
“아니. 이제 슬슬 시작할걸.”
문득, 헌터와 시선을 마주쳤다.
녀석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왜 저래? 게이인가?
“어? 한유정이다.”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고개가 돌아갔다.
*
시험 시작 전.
의자에 앉은 한유정이 눈을 감고 작게 심호흡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 힐끔, 머리카락 사이로 삐져나온 한유정의 턱선을 살폈다.
사흘 전에 봤던 러브 코메디 영화가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침을 꿀꺽 삼킨 그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기….”
“집중 깨지니까 말 걸지 마세요.”
“넵.”
살벌한 기세에 남자가 냉큼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러브 코메디가 정지했다. 이번엔 일주일 전에 봤던 스릴러 영화가 켜졌다.
도끼를 든 살인마가 산장에 놀러 온 대학생들을 한 명씩 죽이는 내용이었다. 전화선이 끊겨 울부짖는 대학생으로 빙의한 거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정도로 섬뜩한 눈빛과 분위기였다.
단아한 얼굴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씨근덕거리던 한유정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44번 한유정,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가상 현실 속의 필드였다.
신경을 날카롭게 집중할수록, 그녀는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는걸 느낄 수 있었다.
천살성의 살의는 분명 그녀가 증오하고 두려워하던 것이지만, 전투에서는 무엇보다 더 기꺼운 무기가 돼준다.
노이즈라도 낀 듯 폴리곤이 뭉치더니 거인의 형상을 이루었다. 저 멀리 나타난 외눈박이 거인이 멍청하게 서 있다.
타이머가 움직인다.
[0:01]
한유정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지아가 3차 시험에서 몇 초를 기록했더라?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무튼 10초는 넘겼던 거 같다.
[0:05]
[행동 제약이 풀립니다.]
[사이클롭스를 처리…….]
머릿속에 들리는 안내 음성은 귓등으로 흘려 넘겼다.
시험이 시작되고, 한유정이 높게 뜀박질을 했다.
그리고 칼을 휘둘렀다.
*
길거리 공연 마술사가 카드를 내밀며 말한다. 아무 카드나 고르고, 자기한테는 말해주지 말라고.
그러면 이즘에서 관객들은 전부 눈치챈다. 어떻게든 간에 참가자가 고른 카드 색깔과 모양이 어디선가 짠, 나타날 거라는걸.
사람이란 게 그런 게 있다.
조금 신기하다 싶으면 다들 입을 조그맣게 말고서 오오, 작게 함성을 내지르며 잘했다고 손뼉을 쳐준다.
어디까지나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으니까.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사람은 그렇게 깜짝 놀라지 않는다. 작게 호들갑을 떨 뿐이다.
하지만 상상 밖의 결과를 맞이하면 사람들은 호들갑을 떠는게 아니라 말문이 턱 막히게 된다.
시험장의 분위기가 그랬다.
고요가 내려앉았다.
[44번 시험을 종료합니다.]
무기질적인 기계 음성만 크게 들릴 뿐.
매니저들도, 유망주들도, 감독관도 굳은 얼굴로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기계음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맨 앞자리에 앉은 매니저였다.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바, 방금 몇 초였어요?”
그걸 기점으로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커졌다.
“10초였던가? 11초? 워낙 빨리 지나가서 못 봤는데.”
“아니, 그것보다 방금 어떻게 처리한 거예요? 칼로 썰은 거야? 주먹? 보였던 사람 있어요?”
“한유정이 어디 소속이라고 했지? 바스타드?”
속 시원하게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집단적 독백이 이어졌다. 모두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한유정이 1차 시험에서 조명받을 때는 얼추 납득이 갔다.
몬스터들을 직접 찾아서 해치워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전투 능력만 있다면 추적 기술이 월등한 헌터가 유리했다.
마의 3,000점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일 뿐. 그 점수 근처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만약 한유정이 추적 능력에 특화된 길잡이라고 한다면, 2차 시험을 망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어느 정도 운도 따르지만 본신의 무력도 중요하다. 추적에 특화된 길잡이들은 2차 시험에서 짐 덩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후반 웨이브는 사실상 포기하는 셈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치면 전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유정은 길잡이가 맞았다.
3,000점을 넘긴 것도, 2차 시험을 망해버린 것도.
전부 아다리가 맞는다.
그래서 3차 시험에서 한유정이 크게 반등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니저가 어벙하게 서 있던 헌터에게 물었다.
“야, 경수야. 네가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는 눈썰미가 제일 좋지 않겠냐? 앉아있는 사람들은 일자무식 매니저들이고, 유망주 중에서는 네가 1등인데.”
“…네?”
“방금 한유정, 대체 어떻게 처리한 거냐?”
헌터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매니저는 재촉하지 않았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너도 방금 안 보였지?”
“……네.”
“언제부터?”
“예?”
“언제부터 안 보였냐고. 칼 휘두를 때? 아니면 그 전에?”
헌터는 그 말에도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다. 대답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쪽팔렸다. 대기실에서 매니저에게 호언장담하던 말이 떠올라서.
그가 마른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첫발을 내디딜 때… 부터요.”
매니저가 헛웃음을 삼킬 때였다. 상단에 집계 점수가 나왔다. 그가 고개 숙인 헌터에게 물었다.
“이지아가 몇 초였지?”
“11초… 최고 기록이었죠.”
“시발, 그 지긋지긋한 기록 언제 깨지나 신입일 때 형들하고 내기했었는데.”
헌터도 상단에 박힌 전광판을 바라봤다.
[한유정 9초]
이지아보다 2초 더 빨랐다.
“10년이 지나서야 갱신됐네. 난 안 깨질 거라는 쪽에 걸었는데.”
“…실장님들은요?”
“뭐?”
“실장님들은 어디에 걸었는데요?”
헌터의 물음에 매니저가 입구를 바라봤다.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소녀에게, 매니저와 헌터들의 시선이 쏠린다.
집중되는 관심에 기가 죽을 만도 하건만 한유정은 마치 남 일인 거처럼 천연덕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당연히 다들 안 깨질 거라는데 걸었지, 새꺄.”
*
시험이 끝나자마자 한유정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매니저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옆구리 쪽에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아봤다. 한유정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얼씨구?
최고 기록 경신했다 이건가?
남 같으면 재수 없다고 느꼈을 거 같은데, 내 담당 헌터라 그런지 귀엽게만 보인다.
“너 때문에 지아 씨 깜짝 놀라겠는데? 기록 깨졌다고.”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요.”
“인터넷?”
“아줌마가 헌터 시험 도전한 게 각성한 지 일 년 반 됐을 때래요.”
“진짜?”
“진짜요.”
그거까지는 몰랐는데.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지?
한유정이 은근히 기대하는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저도 각성한 지 일 년 반 됐어요.”
아, 이제야 알겠다.
얘가 칭찬이 고픈가 보다.
칭찬할만하지. 이런 걸 칭찬 안 하면 뭐를 칭찬하겠어? 2차 시험 끝나고부터 노력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이 그랬다.
“첫 담당부터 어쩌다가 이런 헌터를 담당했는지 모르겠네. 내가 복에 겨웠어, 아주.”
한유정의 무뚝뚝한 얼굴 속에서 감춰진 감정을 파악하는 기술은 내 특기였다.
그런데, 굳이 그런 기술이 필요 없어도 알 거만 같았다.
애가 지금 얼마나 신났는지.
“다른 헌터들도 담당하면 큰일 났네….”
“왜요?”
“눈이 너무 높아져서 기대에 못 미친다고 헌터들 윽박지를까 봐. 첫 헌터가 개차반이어야 기대치가 낮아지는데….”
얼굴 보니까 웃겨 죽겠네.
차키를 꽂으며 한유정의 안전벨트를 확인했다. 그동안의 잔소리가 효과 있는지 말 안 했는데도 잘 매고 있다. 시동을 걸려다가 문득 약속한 게 떠올랐다.
“아, 유정아.”
“네?”
“아침에 이야기 했던 거 있잖아.”
“어떤 거요?”
“소원 말이야. 나중에 말해준다면서.”
기어를 움직이며 물었다.
“소원이 뭐야?”
진짜 궁금했다. 좀처럼 나한테 부탁을 잘 안 하는 애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까지 열심히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노력했다.
도대체 어떤 걸 부탁하고 싶어서?
“유정아?”
갑자기 한유정이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뭐 하는 거야?”
“동영상 촬영이요.”
“동영상 촬영을 왜?”
“기념으로 찍고 싶어서요.”
물질적인 건 아닌가 보다.
그건 그렇고, 이거 불안해지는데.
도대체 뭘 부탁하려고 촬영까지 하려는 거지?
불안감을 담아 쳐다보니까, 빙글빙글 웃고 있다.
“일주일 동안 저한테 유정 씨라고 불러주세요. 아줌마한테 하는 거처럼.”
“……뭐?”
“존댓말도 붙여서요.”
한유정이 야릇한 미소를 띠며 다가온다.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빨리요, 현우 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