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
* * *
부우우우웅.
적막한 분위기의 차 안.
시선을 전방에 고정하고 운전했다. 옆자리에 앉은 한유정과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운전이란 게 이렇게나 답답한 거였나…?
이러니까 꼭 경주마라도 된 거 같다.
틱.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올림픽대로 교통상황…….
틱.
한유정이 라디오를 곧바로 꺼버린다.
“아, 배철수 아저씨 거 듣고 싶네. 이거 지금 놓치면 나중에 못 듣는데.”
혼잣말로 변명을 하면서 다시 켰다. 하얀 손가락이 교차하며 버튼을 누른다. 다시 라디오가 꺼졌다.
미치겠네. 분위기 환기가 도저히 안 된다. 내비게이션에는 도착 시간이 1시간으로 나오는데, 직장인들 퇴근 시간대하고 겹쳐서 턱도 없었다.
한 시간 반은 걸릴 거 같다. 이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거다.
대체 서울에는 왜 이렇게 차가 많은 거야? 다들 그냥 걸어 다니면 안 돼?
신호에 걸렸다. 초조하게 핸들을 검지로 툭툭 두들기다가, 본드 칠한 입술을 뗐다.
“저기, 유정아….”
조심스레 불러봤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는다.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해도 잘만 알아듣던 앤데. 설마 못 들었을 리는 없고.
일부러 대답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 저기, 유정 씨. 제 말 들려요?”
“네.”
한유정이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웃는다.
“왜 그러세요? 현우 씨.”
손에는 아직도 핸드폰이 들려 있다. 카메라를 보니까 진짜로 동영상 촬영 중인 거 같다.
저걸 진짜.
휙, 뺏으려고 손을 내뻗는데 한유정이 냉큼 뒤로 물러난다. 십 합 정도의 공방전이 펼쳐졌다. 당연하지만 내가 이길리가 없다. 휘청이는 팔이 애꿎은 허공만 가른다.
이를 갈며 부탁했다.
“유정 씨, 혹시 다른 소원은 없어요?”
한유정이 대답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호한 말투로.
“아뇨. 괜찮아요. 저는 지금 이게 제일 마음에 들어요.”
“진짜?”
“진짜요.”
“아닐 텐데.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요.”
해줄 수 있는 게 천지삐까리다.
라이브러리에 신작 게임들을 DLC 패키지로 싹 다 넣어줄 수도 있고, 지금 한유정이 사용하는 컴퓨터 장비들을 하이엔드 스펙으로 교체해줄 수도 있고, 하다 못해 용돈으로도 줄 수 있다.
“모처럼 소원인데 이런 거로 날리면, 아깝잖아요. 몇 주를 체중 관리하고 훈련한다면서 고생했는데. 고작 존댓말로 괜찮겠어요?”
금전적인 보상. 얼마나 좋아?
그런데 한유정은 그게 도저히 끌리지 않는지 다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혀요. 엄청 만족 중이에요.”
미처 참지 못한 성취감 같은 게 목소리 사이로 새어 나온다.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다. 애가 지금 존대를 받으면서 얼마나 만족 중인지.
젠장, 바뀐 신호 때문에 재빨리 악셀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나간다. 옆자리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운전을 하며 힐끔 눈동자를 돌렸다. 한유정이 빙글빙글 웃으며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현우 씨, 현우 씨.”
“…네?”
“면허증는 언제 따신 거예요?”
“며, 면허증이요?”
갑자기?
“그,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그러면 현우 씨.”
“네?”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아까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처럼 한유정이 계속 말을 건다. 핸드폰을 내게 내밀면서. 주제 선정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이상했다.
얘가 무슨 속셈인지 이제야 알겠다.
“한유정 너, 나한테 존댓말이 그렇게 듣고 싶어?”
“네. 그런데, 아저씨.”
“응?”
“저 부르실 때는 유정 씨라고 부르셔야죠. 약속하셨잖아요.”
“야, 이제 그만해!”
내 어른으로서의 위엄이 팍팍 깎여나간다. 그동안 어떻게 쌓은 이미지인데? 땅에 떨어진 존경심은 다시 회복하기 힘든 법이다.
“우리 다른 거로 하자. 어디 여행갈까? 아니면 용돈 늘려줄 수도 있는데.”
한유정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싫어요. 현우 씨.”
*
“네가 여긴 웬일이냐?”
송 팀장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마른 웃음을 지으며 종이컵을 홀짝였다. 직장인의 소울 프렌드, 국밥의 영원한 단짝, 자판기 커피다.
역시 달달하다.
“웬일이긴요. 직장인이 회사에 출근하는 게 이상합니까?”
“아니, 직장인이 출근하는 게 이상하진 않은데.”
다가온 송 팀장이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몇 주간은 코빼기도 안 보이던 망나니가 갑자기 나와 있으면 이상하지. 안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양아치 같긴 했지. 한동안 집에만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한예림이 일단은 자택에서 대기하라는데, 대표말은 들어야지.
그리고 내가 맡은 역할도 중요했다.
이지아와 한유정을 관리하니까.
그렇게 속으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고 있는데 송 팀장이 묻는다.
“그래서, 대표님한테 자택 근무까지 허락받아놓고 왜 출근한 건데?”
“유정이 때문에요.”
“……너네 집에서 묵고 있다고 했지? 한유정 집안 사정 때문에.”
“네.”
“한유정이 왜?”
왜긴.
대체 존댓말에 뭐가 그리 꽂혔는지. 한유정은 쉬지도 않고 날 찾아와서 현우 씨, 현우 씨 거렸다.
유정 씨라고 부를 때마다 좋아하는 거 보면 흐뭇하긴 한데, 정신적인 고통을 더는 참지 못하고 회사로 피난 왔다.
그렇다고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쪽팔려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뭐, 사춘기 그런 거요. 17살이잖아요. 질풍노도의 시기.”
“아.”
뭐지? 누가 봐도 어색한 변명에 송 팀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갤 끄덕인다.
“한유정, 한유정이면 그래… 고생한다.”
날 안쓰럽게 쳐다보더니 때마침 잘 됐다는 듯 얘기한다.
“그러잖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지금 뭐 맡은 일 없지? 한유정 시험도 끝났고.”
“네.”
“잘됐네. 방금 회의하고 나왔는데.”
“네.”
“이지아 관찰 예능 출현하기로 했거든. 방송 찍는 동안 네가 좀 데리고 다녀.”
“……네?”
내가 잘못 들었나?
“방금 뭐라고요?”
“놀 만큼 놀았으면 매니저 일하라고.”
“아뇨, 지아 씨요. 지아 씨가 뭐를 한다고요?”
“관찰 예능 몰라? 요즘 방송국들 사이에서 유행하잖아. 유명인 나와서 뭐 하고 사는지 구경하는 거.”
송 팀장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며 말했다.
“이지아, 관찰 예능에 출연하기로 했어.”
*
자세한 건 한예림이 찾고있으니까 가서 들어보라는 송 팀장의 말에 대표실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한예림이 고개를 든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꿈 많은 커리어 우먼은 어디 가고 웬 폐인이 한 명 여기 있다. 그녀가 다크서클을 양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송 팀장한테 너 부르라고 했는데 잘 왔다, 사실…….”
“지아 씨 관찰 예능 나간다면서?”
한예림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뭐야, 벌써 이지아한테 들었어?”
“아니. 송 팀장. 관찰 예능 나간다는 건 대체 뭔 말이야?”
헌터가 방송에 출연한다는 게 썩 어색하지는 않다. 외모가 되거나 예능감이 있다면 본직을 버리고 방송인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길드가 엔터테인먼트 팀을 꾸리고 전문적으로 밀어주기도 했고.
뭐가 됐든 간에, 유명해지기만 하면 방송에 얼굴 비추는 게 썩 어렵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터를 준 연예인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반적인 스포츠 선수보다 생활에 밀접해 있고, 직업 특성상 화려하게 보이는 부분이 많아 스타성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이지아는 경우가 좀 다르다.
얼굴 팔리고 이름 알려진 건 어디까지나 자기가 맡은 일을 워낙 잘하다 보니까 그런 거지, 천성적인 연예인 스타일은 절대 아니었다.
지난 10년간 뉴스를 제외하고는 방송에 단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거만 봐도 이지아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갑자기 방송에, 그것도 예능에 출현시킨다고?
왜?
“지금 이지아 이미지가 애매해.”
한예림이 노트북을 접고 기지개를 쭉 켠다.
“원래부터 이지아가 커뮤니티에 우호적이지 않았는데, 잠수 건으로 이미지 나락갔었잖아.”
“오해는 다 풀렸을 텐데.”
“그치. 청문회로 여론 반전시키고, 보복 행정 건도 터트려…… 이렇게 말하니까 너가 생각보다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었구나?”
무경력인 내가 그나마 자랑할 수 있는 이력 두 줄이었다.
한예림이 턱을 괴고서 책상을 톡톡 두들긴다.
“아무튼, 이제는 이지아한테 눈 가리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고 굳이 따지자면 호감 쪽에 가깝기는 한데.”
“그런데?”
“이게 조금, 헌터로서 좋다기보다는 불쌍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더라고.”
그렇긴하지.
협회에 덤터기 쓴 건데 잠수탔다고 전국민적으로 아주 찢어 죽일 듯이 욕 처먹었지, 이번엔 새 시작을 하려니까 협회에서 아니꼽다고 가는 길에 압정을 아주 가득히 뿌려줬지.
사람이라면 이걸 다 알고서도 욕을 할 수는 없을 거다. 덕분에 악플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지아는 우리 대표 헌터인데 그런 이미지가 고정되면 조금 위험할 거 같아서.”
“아.”
이지아는 어디까지나 헌터다. 동정 여론도 좋지만 회사의 마스크 역할을 할 예정인데, 너무 약해 보이는 이미지도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한예림이 음험한 미소를 짓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기왕 긍정적인 이미지로 변한 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겸사겸사 회사 홍보도 하고.”
“회사 홍보?”
“관찰 예능이잖아. 며칠간은 사업하는데 데리고 다니고, 사옥도 보여주면서 회사 홍보할 거야.”
“홈페이지 있잖아?”
“비교가 되냐, 그게? 이지아가 예능 나온다고 하면 헌터들이 방송 안 볼 거 같아?”
무조건 보겠지.
업계 1위가 오랜 신비주의를 깨고 나온다는데.
호기심에라도 찾아본다.
“걔네가 회사에 흥미 가지게 하려는 거야. 방송에서 사람 구하고 있다고 살짝 흘리면 때마침 계약 기간 끝나가던 헌터들한테 먼저 연락 올 수도 있는거고. 우린 회사는 있는데 사람이 없잖아.”
“어이구, 방송을 우리가 마음대로 내보내? 방송국 마음대로지.”
“PD하고는 전부 이야기됐어. 홍보 분량은 알아서 빼주겠대.”
이야, 얘는 진짜….
이런 거로는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간다니까.
“회사 홍보가 진짜 목적이구나?”
“당연하지. 이지아 같은 고급 인력을 어떻게 놀고먹게 놔둬? 써먹을 수 있으면 써먹어야지.”
한예림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긴다.
“내가 데리고 다닐까 했는데, 한창 바빠서 시간 못 낼 거 같고. 송 팀장 붙이기에는 우울증 도질까 봐 불안해서 안 되고.”
회사에서 이지아의 스케쥴을 담당 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였다.
한예림과 나.
내 담당은 원래 한유정이지만, 한예림이 안된다면 이렇게라도 이지아에게 붙을 수밖에 없다.
한예림이 지친 안색에 어울리지 않게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삐뚤어진 내 넥타이를 고쳐매주며 말했다.
“회사 올라가고는 첫 일이지? 바닥부터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잘해봐, 김 팀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