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내일은 슈퍼 스타 (9)
* * *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이미 한차례 몬스터들이 휩쓸고 지나갔는지 입간판과 노점상들이 파편만 남긴 채로 박살 나 있었다.
“차가 한 대도 없네요?”
최 작가의 의문에 핸들을 돌리며 대답했다.
“차 있는 사람들은 벌써 도망갔죠.”
“게이트 밖으로요?”
“밖으로는 못 나가요. 완전히 갇힌 거라.”
아마 어딘가 뱅뱅 돌고 있겠지. 게이트 끝 선에 막혔든, 외곽선을 따라 주행하든.
“근데 팀장님, 사람들은 어떻게 수송하려구요? 근처 군부대에서 지원이 오지 않을까요? 그거 기다렸다가 군인들하고 협력해서…….”
최 작가의 물음에 단호히 대답했다.
“진압 가능하다는 판단 설 때까지 절대 안 들어옵니다.”
“네? 왜요?”
“들어오려면 게이트 외부의 결계를 부숴야 하는데, 몬스터들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면 답도 없거든요. 포위망을 2, 3겹으로 빼곡히 만들고 헌터들 편제 끝나야 합니다.”
거기까지 반나절이 걸린다.
한국에서는 10년 만에 일어난 게이트다. 그때 당시 뉴스에서 아무리 떠들었어도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긴 어려운 법이다. 최 작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게이트가 열렸다고 몬스터들이 바로 쏟아지는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약한 개체부터 등장하다가 조금씩 강해지거든요. 아직은 차량 막을만한 개체가 나올 타이밍이…….”
말을 하다 멈췄다.
이지아와 최 작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죠?”
최 작가의 물음에 이지아가 고갤 끄덕였다.
“네, 되게요.”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현우 씨, 대학교에서 이런 거 전공했었어요?”
“아뇨, 고졸이에요.”
“그쵸? 근데 저도 깜빡하고 있던 걸 현우 씨가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이런 거에 관심이 많아서요. 레드 게이트 때 성동구에 살았거든요.”
10년 전, 게이트가 등장한 지역이 성동구였다.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눈치보던 최 작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팀장님.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구조 작업하신다면서요.”
“네.”
“아까 보니까 군데군데 숨어있는 사람들 보이던데. 안 데리고 가요?”
“네.”
최 작가가 눈을 깜빡인다.
“그럼 저희 왜 나온 거예요?”
“사람 구하려고요. 왔네요. 다들 내리세요.”
안전벨트를 풀고 내렸다. 이지아가 허름한 건물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버스 터미널? 여긴 왜요?”
“버스 좀 빌리려고요. 들어가죠.”
밴에 사람들 구겨 넣어봤자 몇 명 못 들어간다. 그런데, 버스는 사람들을 콩나물 대가리처럼 밀어 넣으면 최소 70명이다.
다행히 버스는 여섯대가 남아있었다.
사무실에 보관된 비상 열쇠들을 싹 쓸어 담고 버스 내부를 개조했다.
주로 움직인 건 이지아였다. 그녀가 버스 좌석들을 모조리 떼어내 밖으로 내던졌다. 그사이 나는 펌프통을 가져와 버스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이제 사람들을 구할 준비가 끝났다.
*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두 가지다.
첫 번째, 버스 기사가 필요했다.
나와 이지아는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고, 최 작가는 우릴 촬영해야 한다.
사람은 세 명이지만 일심동체나 마찬가지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버스 한 대로 왔다 갔다 해봤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버스 터미널에 있는 고속버스들을 전부 활용할 만큼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두 번째, 버스를 호위할 각성자들이 필요했다. 아직은 약한 몬스터들 밖에 없지만, 그것도 잠깐의 이야기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강력한 개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호송 인원들이 버스에 타는 동안 안전을 지켜줄 인력이 필요했다.
이지아 혼자 지킬 수 없는 노릇이니까.
위 문제점들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한다는 건 인력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목적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거기서 나는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버스를 운전하며 이지아와 최 작가에게 내 계획을 떠벌렸다.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팀장님, 그건 좀….”
“현우 씨, 미쳤어요?”
이지아가 질색하며 지도를 펼친다.
“백화점으로 돌아가서 사람들 데려오면 되죠. 버스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설마 한 명도 없을까봐요?”
도로는 뻥 뚫려있고, 수동 운전만 할 줄 알면 이 기회에 대형 면허 연습할 좋은 기회다. 나이대 좀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면 금방 할 거다.
나도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범퍼카처럼 뻥뻥 박아대며 운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백화점 내부의 인원들은 절대 나서지 않을 거다. 그건 VJ들의 반응으로 이미 확인했다. 안전이 확보된 인원은 위험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데려올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서 말싸움할 시간도 아깝다.
현지에서 조달 한다.
“지아 씨, 원래 돌파구가 안보일 때는 가끔 미친 척 해야 해요. 들이박다 보면 기회가 보이거든요.”
“이 정도로 터프한 사람인 줄은 몰랐네.”
“사람들이 제 인상 때문에 많이들 착각하더라구요. 시작하죠.”
버스를 길가에 세우고 문을 열었다. 이지아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내 뒤를 따른다.
덜컹!
폴짝 뛴 내가 버스에 매달려서 끙끙거렸다. 어디 밟을 데가 없고 매끄러워서 올라가기 힘들다.
“둘 다 내가 잡아줄게요.”
갑자기 몸이 붕 위로 뜬다. 이지아가 최 작가와 내 허리를 안아 들고 버스 지붕까지 한걸음에 올라갔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주위를 살폈다.
아파트 단지라 그런지 주위에 빌딩들이 사방천지다.
열린 창틈 사이로 시선들이 느껴진다.
혹시 삑사리 나지 않게 생수통의 물 들이켜고, 메가폰을 잡았다.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침착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현재 빌딩 안에 숨어계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약 30분 전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몬스터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하신 분들은 지금 당장 밖으로 나와서 버스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근처 백화점을 거점으로 대피소를 만들어놨습니다. 그곳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대형 몬스터들이 출현합니다. 건물에 숨어있으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아파트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검은 머리카락들이 창틈 사이로 삐져나온다. 숨어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고 우릴 쳐다봤다.
몰리는 시선에서 느껴진 건, 의심이었다.
사람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움직이면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그걸 깨트리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당장 목에 칼이 들이닥친 상황이던가, 아니면 이쪽이 더 안전하다는 신뢰를 보여주던가.
[다시 한번…….]
메가폰에 대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시선을 돌렸다.
소음을 감지한 몬스터들이 단지 내부와 담벼락 너머에서 개떼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촬영하던 최 작가가 호들갑을 떨었다.
“히이익! 모, 몬스터 와요! 몬스터 온다고! 미친놈아! 내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
식겁한 외침을 무시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여태까지 제법 푼수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지아는 S급 헌터였다. 그것도 국내 탑에서 내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명실상부 최강의 헌터다.
그렇기에, 나는 등 뒤의 이지아를 믿고 내가 할 일에 집중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약 30분 전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몬스터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하신 분들은──]
쿠콰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람이 불었다. 맞춤 제작한 정장과 넥타이, 왁스 바른 머리가 볼품없이 펄럭였다.
결국 풍압을 못 이긴 내 다리가 휘청였다.
몬스터 게이트가 열리고, 제일 위험한 상황이 어이없게 찾아왔다.
나는 지금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야 한다. 여기서 엉성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안 된다. 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설득력을 높여야만 한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내려올 사람들의 숫자가 바뀐다.
괜히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정장을 고집한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버스 밑으로 고꾸라지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뻔했다.
탁!
“현우 씨.”
등 뒤에서 나타난 가녀린 손가락이 내 허리를 와락 껴안았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이었다.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팔 덕분에 나는 다시 중심을 잡았다.
“무릎 펴고 허리 곧게 세워요. 아셨죠?”
잘 안다.
아파트를 올려다봤다.
반대쪽의 결과물은 굳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짓이겨진 몬스터들의 시체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겠지.
이 광경은 아파트에 숨어있던 사람들의 눈에 모두 들어갔을 거다.
나는 이지아의 압도적인 힘을 통해 그들에게 보여줬다. 우리에게 붙는 게 더 안전하다는 신뢰를.
그리고 아파트에 있는 몬스터들의 시선을 끔으로써 활주로를 열어놨다.
즉, 안전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와서 버스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남은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메가폰을 끄고 내려갔다.
안 가겠다는 사람들까지 붙잡고 설득할 여유 따위 없다.
우리도 시간 아깝다.
*
도망갈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때늦은 사람밖에 안 남았던 건지, 제법 바글거리지만 아파트 단지 인원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당초 목적에 맞게 선별부터 시작했다.
모조리 한곳에 모아놓고 각성자들과 1종 면허 소지자들을 분리했다. 그리고 내 목적과 계획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물었다.
“버스를 운전할 수송조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지켜줄 호위조가 필요합니다. 지원자 있습니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당연했다. 이들은 대피하려고 찾아온 거지 사람들을 구하려고 찾아온 게 아니다.
기대도 안 했다.
이번엔 당근을 제시할 때다.
“보시면 알겠지만 지금 수송 가능한 버스가 한 대밖에 없습니다.”
웅성웅성.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이어 말했다.
“구조팀에 지원하는 분들 가족부터 먼저 대피시키겠습니다. 지원자 있습니까?”
떡밥 뿌린 호수의 붕어 입마냥 손이 우르르 올라온다. 그들을 전부 버스에 태워 터미널 쪽으로 향하라고 지시했다. 운송하는데 한 대로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터미널에 남은 버스들을 활용하면, 여깄는 사람들 모두 태우고 백화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니, 그럼 손든 사람하고 안 든 사람하고 차이가 뭡니까?”
누군가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단호히 대꾸했다.
“명예요. 나중에 기록으로 다 남을 겁니다. 대대손손 자랑하십쇼. 역사의 한순간에서 사람들을 구했노라고.”
“……음, 그거 존나게 좋구만.”
내 뒤에는 이지아가 서 있었다. 낙장불입인 걸 깨달은 그들이 욕을 내뱉으며 사라졌다. 카메라를 든 최 작가가 걱정스레 물었다.
“빈정 제대로 상한 거 같던데, 자기들끼리 버스 타고 도망가면 어떡해요?”
“자기들 목숨보다 가족을 우선시한 사람들이에요.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갈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손도 들지 않았을 거다. 그녀가 묘한 얼굴로 날 쳐다보다가 따졌다.
“근데, 팀장님. 이거 아무리 봐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핍박하는 거처럼…….”
“왈가왈부할 시간 없어서 공갈친 겁니다. 다음은 교대해야죠. 얹어 탄 사람들하고.”
야외 탁자로 걸어갔다. 보낸 인원들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주민센터 직원이 챙겨온 행정지도를 훑으며 물었다.
“평창읍 인구수가 얼마나 됩니까?”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직원이 대답한다.
“1만이었나? 그쯤 될 거예요.”
게이트가 행정 구역 크기에 딱 맞춰서 등장하진 않는다. 구역을 훨씬 더 짧게 잡으면, 인구수가 대폭 줄어든다.
레드 게이트는 당시 성동구 정도의 크기였으니까. 강원도에서 성동구 크기라고 해봤자, 읍 하나도 안 나온다.
근처에 백화점이 있는 만큼 나름 상가와 인구들이 밀접한 지역이지만 게이트 내부에 포함된 인구는 고작 이삼천일 거다.
직원에게 물었다.
“인구 밀집 지역은 어디에요? 그러니까, 다음으로 저희가 향해야 할 곳이요.”
“아파트 단지는 여기뿐이고, 이쪽은 주택가, 여긴 복합상가가 있을 거예요.”
“거기 말고는요? 근처에 산업 단지는 없어요?”
“아뇨, 여긴 도심지 쪽이라… 없을 거예요.”
시발, 왜 대답이 전부 의문형하고 가정형으로 끝나는 거야? 한대 쥐어박고 싶네.
주민센터 직원의 말이니 정확하진 않아도 얼추 맞을 거다. 인터넷이 안 되기에, 그렇게 빌 수밖에 없었다.
15분 뒤, 버스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길래 세보니까 시내버스가 세 대 섞여 있었다. 도로에 세워져 있던걸 탈취했다 자랑하길래 와락 포옹해줬다.
이지아가 내부의 의자들을 몽땅 뜯는 동안 차례대로 사람들을 버스에 태웠다.
꽉꽉 밀어 넣자 비명과 신음이 난무했지만, 봐줄 여력은 없었다. 아직 콩나물 대가리들이 많이 남아있다.
구조 시작 한 시간째.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서 구출한 인원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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