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0)
* * *
대대적인 수송 작전이 시작됐다.
한국 성인 남성들은 대부분 기초 군사 훈련을 받은 군필자였고, 구조한 인원 중에는 예비군 동대장 출신까지 들어가 있었다.
백화점의 통제실을 임시 지휘 본부로 개조했다. 이지아가 구조팀을 선별하는 동안 나는 소령과 대화를 나눴다.
이후 방향성에 대한 것들이다.
당장 시간이 급박하지만, 그럴수록 동선이 낭비되지 않게 정해놓고 움직여야 한다.
“아이고, 팀장님. 오셨습니까.”
통제실에 들어서자 소령이 상관 대하듯 각진 자세로 반긴다.
경례라도 해줘야 하나?
그냥 짧게 악수나 했다.
“소령님, 뭐, 군 생활도 오래 하셨고 저보다 군 편제나 작계에 대해 더 잘 아시겠지마는…….”
“제 자존심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4, 5시간 뒤면 게이트 내부에 대형 몬스터들이 출몰할 겁니다. 미리 대비해놔야 합니다.”
“……어, 네?”
소령이 당황스레 눈을 깜빡인다. 아무래도 그 역시 게이트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다.
그런데, 이걸 하나하나 설명해줄 시간이 없다.
이럴 때 좋은 게 하나 있다.
군인들은 그게 좋다.
까라면, 깐다.
“백화점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칠 겁니다. PMC 용병, 군인, 헌터 등 현직자들, 혹은 위 세 가지를 지망하던 각성자들을 모아서 부대 편제해주세요. 안에 있는 사람들만 얼추 천 명이 넘는데 몇 명은 나올 겁니다.”
“대형 몬스터한테 바리케이드가 통할까요?”
“아뇨, 대형한테는 안 통하죠. 그놈들 전부 빌딩만한데. 중형 몬스터 막으려는 겁니다. 소령님 혹시 테트리스 해보셨어요?”
“어릴 때 패미컴 선수였죠.”
“백화점에 남아있는 각성자들한테 주차장, 인근 공사장, 도로 근처의 트럭들로 테트리스 좀 하고 있으라고 하세요. 일자형이라 난이도도 별거 없습니다.”
소령이 피식 웃으며 고갤 끄덕인다.
“말씀하신 대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예비군 동대장의 현란한 지휘 아래 임시 편제가 이뤄질 거다. 물론 그게 십분, 이십 분 만에 끝날 리는 없다. 앞으로 한 두시간은 더 걸릴 터다.
어차피 구조 작업하고는 별개로 이뤄지는 거니 제때에만 맞춰주면 된다. 나머지는 그에게 일임하고 백화점 입구로 걸어갔다.
아직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다.
*
“우리는 못 가겠어.”
열 명의 무리가 인상을 있는 대로 팍 찌푸리며 날 쳐다본다. 어깨도 위협적으로 떡 벌린 게 꼭 공작새처럼 보인다.
많이 본 표정과 몸짓이었다.
애초에 싸울 마음을 먹고 카페에 찾아온 진상들이 주로 저랬다.
“……버스에 인원을 전부 채우면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때는 구조받은 인원들이 구조 작업을 이어나갈 거고요.”
기왕이면 인원을 변동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지 않으면 통제가 안 된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남들을 위해 위험을 자초할 이유도, 의무도 없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지. 하지만, 그건 나도 똑같았다.
그러니까 딱, 도와준 값만 받아내야겠다.
“한 번. 단 한 번만 구조 작업을 가면 됩니다. 지금 밖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이 우리에게 위협될 건 전혀 없습니다. 이만 자리로 돌아가세요.”
무리의 리더처럼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어이, 매니저 양반. 당신이 메가폰 잡고 말했잖아. 구조해주겠다고. 그 말 믿고 내려왔는데, 다시 사람들 구하러 나가라고?”
고갤 끄덕였다. 남자가 콧잔등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럴 거면 너네한테 합류 안 했지! 아파트에 있으나, 여깄으나 무슨 차이인데? 굳이 위험 감수하고 이쪽으로 내려올 필요가 있냐고!”
뒤에 있던 무리도 한 마디씩 덧붙인다.
난간에 기댄 채 우릴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동요가 퍼진다.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통계적으로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5~6시간 뒤에 대형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아파트에 계속 남아있었으면, 당신들은 절대 못 살아남았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뉴스 좀 보고 사세요. 레드 게이트 때 전문가들이 입이 닳도록 말한 사실입니다.”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주춤 물러난다.
S급 헌터인 이지아가 분류할 때는 말 안 듣다가 매니저인 나한테는 함부로 못 하는 게 참 우습다.
만약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10분이 지나기 전에 피곤죽이 될 텐데.
유명인이라 함부로 나서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는 거겠지.
이런 비상상태에서마저도.
그가 입을 연다.
“그래도 못 가겠어.”
“……뭐라고요?”
“못 가겠다고. 백화점에 원래부터 있는 사람들은 안 갔다면서?”
불라불라불라.
남자가 불공평함을 떠든다. 사람들의 동요가 커진다.
위급한 상황에서, 공동체를 가장 먼저 무너트리는 건 이런 인물이다.
그럴 상황이 아님에도 공평성과 형평성을 찾는다.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두시간도 안 돼서 급조한 피난대열이다.
나는 방송 때문에 이곳에 들른 타지인이고,
군인이나 경찰처럼 이들을 보호할 합법적인 신분도 아니며,
리더로 인정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스물여섯 살 애새끼다.
이 이상 가면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벌써 내 뒤편에 있는 구조팀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저 입을 멈춰야 한다.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허공에 발사했다.
탕─!
웅성거리던 소음이 멎는다. 남자가 휘둥그레 눈을 뜬다. 그가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초, 총? 너 뭐야? 범죄자야?”
“입 다물고 자리로 돌아가. 대형 몬스터가 등장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형평성 따지면서 한 번씩 차례를 돌릴 여유 없으니까, 돌아가.”
당황하던 남자가 이성을 되찾는다.
주위를 살피던 녀석의 입가가 호선을 그린다.
“이따위로 사람을 협박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날 거 같아? 무기 들고 위협하면 가중처벌 받는 거 모르지? 지금 보는 눈이 몇 개인데──”
이래서 치안 좋은 나라에서 나고 자란 시민들은.
통제실 직원도, 내 눈앞에 있는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폭력에 대한 공포와 현실감이 마비돼있었다.
팔을 일자로 쭉 펴고, 한쪽 눈을 감고, 가늠쇠로 총구 방향을 매섭게 쳐다봤다.
흐릿한 시야로 겁에 질린 얼굴이 들어온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연민, 동정, 자비 등.
이후에 후회할 내 연약한 감정들은 게이트가 끝날 때까지 미뤄두자.
그래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사람들 구하기도 벅차다.
철컥!
“어, 응? 뭐, 뭐 하는……!”
“내가 아가리 닥치라고 했었지, 시발아.”
탕!
*
총알 두 방.
남은 인원에게 군기를 주입하기 좋았다. 빠릿빠릿해진 구조팀이 재빨리 조를 나눠 버스에 탑승했다.
이지아는 구조팀 대열을 호위하기 위해 버스 밖으로 나갔다. 슬슬 몬스터들의 덩치가 커지고 있었다.
“끄윽, 흑…!”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흐느꼈다. 허벅지에 감은 붕대에서 진한 피가 스며 나왔다. 백화점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땡깡 부리던 녀석이다.
결국 내게 제압당하고 본보기로 끌려 나왔다. 촬영 중이던 최 작가가 침을 꿀꺽 삼켰다.
“티, 팀장님. 저러다가 갑자기 핸들 꺾는 거 아니에요?”
“혹시라도 본인이 다칠까 봐 그 난리를 쳤습니다. 절대 그럴 일 없어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외친다.
“총 쏜 장면은요! 사람들 다 봤어요.”
“앞뒤 상황 다 찍혔죠?”
“네, 찍긴 했는데…….”
“그럼 됐어요. 게이트 내부의 일입니다. 초법적 상황이고, 사람들은 오히려 통쾌하다고 느낄 겁니다.”
구조는 무난하게 진행됐다. 긴 버스 대열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태우고 다녔다. 그렇게 버스에 사람들이 가득 차면, 백화점으로 돌아간다.
한 번에 수송 가능한 인원은 얼추 750명.
짐칸에까지 꾸깃꾸깃 다 몰아넣은 결과였다.
주민센터 직원이 말한 주택가와 복합상가까지 한 바퀴 돌자 사람들도 이제는 안 보였다. 우리는 게이트 외곽의 초등학교에 들렀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메가폰을 잡고 차분한 어투로 외쳤다.
[아직 대피하지 못하신 분들은 지금 당장 밖으로 나와서 버스에 탑승해주시길 바랍니다. 근처 백화점을 거점으로 대피소를 만들어놨습니다. 그곳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숨어있던 선생과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버스에 태우고 나서 돌아가려는데 대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고속버스의 짐칸으로 기어들어 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휙 문을 닫아 버린다.
버스 안도 널찍하니 자리 많은데, 왜?
뒤를 봤다.
내가 타고 온 버스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바글거려 들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운전자가 다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으니까 다들 겁난 건지, 이쪽 버스는 타려고 하질 않았다.
당황한 내가 짐칸의 문을 열었다.
“꼬마야, 위에 자리 많아. 왜 여깄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이리 나와.”
사람 가득 실어야 할 때나 억지로 꾸겨 넣은 거지, 기본적으로 짐칸은 어디 부딪히면 최소 곤죽이다.
“안돼. 여기가 더, 더, 더…… 안 아파.”
한참 동안 알맞은 단어를 찾더니 겨우 내뱉은 어휘가 형편없다.
뭔 말인지 이해하려다가 포기했다.
애들 헛소리를 진지하게 들어주다가는 끝도 없다.
“그, 이름이 뭐니?”
“서 자, 루 자, 리 자.”
“서루리?”
대체 부모는 어디 가고 안 보이는 거야?
“너네 엄마 어딨어?”
서루리가 밝게 대답한다.
“없어!”
“그, 그래? 근데 아저씨가 지금 바빠서 일단 나와줄래?”
“안돼.”
“왜?”
“여기가 더, 더, 더…….”
“안 아파?”
“응.”
빙긋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루리야, 여기 있으면 왜 안 아파?”
“일기가 그랬어.”
“일기가? 어이구, 걔 사기꾼이야. 몰랐어?”
“아닌데….”
일기란 게 사람 이름인 줄 알았는데, 품에 소중하게 꼭 안고 있는 종이책을 보니까 그림일기를 말한 거였나 보다.
“아저씨 원래 경찰이야. 총 보여줄까? 보이지? 수사 협조 부탁하고 싶은데 일기장 좀 보여줄래?”
애들한테는 다른 무엇보다 경찰이 직빵이다.
“죄송해요. 전 잘못한 거 업서요. 한 번만 봐주세요.”
“알지, 알아.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해.”
서루리가 충격받은 얼굴로 일기장을 내밀었다.
역시, 뭔 말인지 모르겠다.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막장인 상황이라도 애한테까지 윽박지르고 싶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며 놓고 가는 사람 없나 확인하는데, 뒤에 있던 이지아가 풋풋하게 웃는다.
“다행이다.”
“왜요?”
“게이트 열리고서부터 뭐랄까, 평소답지 않았거든요.”
“제가요? 뭐가 다른데요?”
이지아가 갑자기 부처 미소를 짓는다. 인자하고 너그러워 보이는 그 특유의 미소.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평소에는 현우 씨 얼굴이 이렇거든요?”
“어, 그러진 않았는데.”
“이랬어요.”
그녀가 이번엔 눈을 날카롭게 뜬다. 그리고 날 부리부리하게 노려본다.
“몬스터 게이트 터지고서부터는 이랬고요.”
“…….”
“안 믿기면 나중에 촬영한 거 봐보세요. 사람이 무슨 얼굴을 두 개나 들고 다니는구나 싶었다니까요. 그런데 현우 씨, 아기들 좋아해요?”
“좋아하죠. 아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말랑말랑한 볼따구를 만지다 보면 세상일 같은 건 어찌 되든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연하에 죽고 못 사는 거 같던데.”
“네?”
뒤에서 촬영하던 최 작가가 실실 웃는다.
“팀장님, 이지아 씨. 사적인 대화도 다 기록돼요. 잘 생각하고 말하세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 억울함을 말하려던 참이었다.
가장 앞줄에 있던 버스가 갑자기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내가 타고 왔던 버스다. 그리고 저거 운전하는 놈이 아까 다리에 총 맞은 녀석이다.
뭐 하는 짓인지 알겠다.
우리한테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모양이다. 아니면 엿 먹으라고 버스 하나 가져가는 걸 수도 있고.
뭐가 됐든 간에 내버려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수송 작업도 끝났겠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죽어도 별말은 안 하겠는데 짐칸에 아이가 타고 있었다.
“지아 씨, 도망가는 버스 좀 가서 잡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4족 보행 중형 몬스터가 버스의 옆구리를 뿔로 들이박았다.
붕 뜬 버스가 전복됐다.
*
이지아에게 몬스터의 처리를 부탁하고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에 사람들이 안 탔던 건 다행이지만, 아이가 짐칸에 들어가 있었다.
전복된 버스에서 기름이 질질 흐른다. 버스들에게 떨어지라는 신호를 보내고 짐칸부터 살폈다.
찌그러진 문을 잡고 당겼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뒤에서 이지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현우 씨! 미쳤어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데, 뭐 하는 거예요?”
“지아 씨, 문 좀 뜯어줘요! 안에 애 있어요!”
“네?!”
이지아가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문짝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안으로 기어들어 가 애를 찾았다.
“서루리!”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서루리가 보인다. 아이를 안아 들고 밖으로 허겁지겁 기어나갔다.
그리고,
쿠콰아아앙──!!
버스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등 뒤에서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아이를 품속에 안은 채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사방으로 튄 파편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아까 본 그림일기의 장면이 퍼뜩 떠올랐다.
여기가 더, 더, 더…… 안 아파.
품속에 안겨있던 서루리를 쳐다봤다.
아이는 그림일기를 하늘로 치켜든 채 오열하고 있었다.
“우와아앗──! 내가 뭐랬어, 사기꾼 아니잖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