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1)
* * *
불타고 있는 버스를 뒷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난장판이 될 곳이다. 큰길로 빠져나온 우리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서루리를 안아 든 채 버스에 몸을 밀어 넣었다. 가뜩이나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거기에 최 작가까지 포함해서 세 명이 들어가니까, 꼭 호빵처럼 찌부러질 거만 같았다.
“루리야.”
“응?”
서루리가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날 쳐다본다. 혀로 입천장을 톡톡 두들겼다.
아까 봤던 그림일기의 장면이 떠올랐다. 얘가 했던 말도.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남자는 즉사했다.
반대로 짐칸에 타고 있었던 서루리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만약 내 말을 따라서 버스에 탑승했으면 100퍼센트 죽었다.
그런데 그림일기 때문에 고집부린 덕에 살아남았다. 그려진 그림도 미치도록 수상쩍었다.
처음에는 뭔 찌그러진 계란말이를 그려놨나 싶었는데, 사고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눈치챘다.
그건 전복된 버스였다.
방금 있었던 모든 게, 그림일기의 내용대로였다.
그게 과연 우연일까?
“너, 아까 일기장──”
서루리에게 물으려다가, 문득 내 얼굴을 찍고 있는 카메라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의 대화는 영상으로 남는다.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모님 안 보인댔지? 조금 이따가 아저씨가 찾아줄게. 과자 좋아하는 거 있어?”
*
이지아와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통제실로 걸어가는 와중이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앞에 있던 이지아의 어깨를 두들겼다.
“지아 씨.”
“네?”
“재미있는 사진 보여드릴까요?”
“…?”
이지아가 아리송한 얼굴을 한다.
안다. 지금 상황에서 뒤지게 이상한 거.
핸드폰 화면을 손으로 슬쩍 가리며 그녀에게만 보여줬다.
[최 작가 시선 좀 끌고 있어 주세요. 이유는 게이트 끝나고 설명하겠습니다. 반응은 알아서 맞춰주세요.]
이지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묻는다.
“현우 씨, 펭귄 사진이 뭐가 재미있다고 보여주는 거예요?”
펭귄이란다.
다른 건 없었나?
이걸 어떻게 이어 나가려는 거지?
“기분 나빠졌어… 나 펭귄 싫어하는 거 몰라요?”
“어, 네?”
“같이 일한 지가 몇 개월인데, 진짜 몰랐나 봐. 어이가 없네. 소령님은 제가 만나보고 있을 테니까 머리 식히고 와요!! 짜증 나.”
저게 연기인지 알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
그건 생판 모르는 남들이 더할 거다.
최 작가가 말을 더듬었다.
“페, 펭귄 싫어하시구나. 실수로 이야기 안 꺼내게 조심해야겠네.”
멀리서 이지아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작가님, 뭐 하세요! 안 오실 거예요? 촬영하셔야죠.”
“어어, 네! 갑니다!”
곧바로 루리를 데리고 VIP실로 빠졌다.
넥타이를 풀어 재끼며 물었다.
“루리야, 좋아하는 노래 있어? 캐롤, 팝송, 가요 다 있는데.”
“요괴 워치 노래!”
옷깃에 붙은 마이크를 떼다가, 당황해서 손이 멈췄다.
“오버, 뭐? 그게 노래도 있었어?”
서루리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턱턱 두들긴다.
“아이, 진짜! 이거 몰라? 게라게라포!”
모르겠는데. 인터넷이 안 돼서 찾아주진 못하겠고, 내가 평소 듣던 가요나 틀어놔야겠다. 핸드폰과 마이크를 함께 두고 노래를 재생했다.
이제 대화 소리가 녹음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림일기 좀 보여줄래?”
혹시 꺼리면 어쩌나 했는데 서루리가 시원스레 일기장을 건넸다.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며 확인했다.
바나나를 발밨다. 엉덩이가 아파서 엉엉 울었다.
민지가 내 공주님 요술봉을 훔처갔다. 소시지를 받는대신 선생님한테 말 안했다. 내일은 요구르트도 뺏어야지.
대부분 별 내용 없었다. 그냥 보면 애들 일기하고 뭔 차이가 있나 싶지만,
버스 아래애 탓다! 하나도 안다쳣다!
마지막에 적힌 이 두 줄의 문장이 모든 걸 특별하게 만들었다. 날짜를 확인했다. 일기를 쓴 간격은 뒤죽박죽이었다. 어느 때는 하루 만에 쓴 것도 있고, 어느 때는 한 달 만에 쓴 것도 있었다.
“루리야, 평소에 뭐 갑자기 보이는 거 없어?”
“보이는 거?”
“음, 눈앞에 환상이 보인다던가, 꿈에서 뭔갈 꾼다던가.”
“어제 강아지한테 쫓기는 꿈 꿨는데….”
“그래서 강아지한테 쫓겼어?”
“아니. 흰둥이하고 놀았어!”
탁!
일기장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애가 조금만 나이가 있었으면 대화가 편했을 거 같은데, 자꾸만 이야기가 빙글빙글 돈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여기에 쓴 그림일기들. 언제 쓴 거야?”
루리가 바나나 밟고 쓰러진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어, 음, 이건 9월 17일.”
날짜를 확인했다.
9월 18일이라 적혀 있다.
“날짜는 18일이라고 나와 있는데?”
루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러니까 9월 17일. 이건 전날에 썼었어. 그리고 민지가 요술봉 훔쳐 간 건 일주일 전에…….”
더 듣지 않아도 알겠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아이, 예언가다.
*
예언 능력이란 게 희귀하긴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별자리를 보는 점성가도 있고, 수정구슬로 미래를 들여다보는 주술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뭉뚱그려 나타난다.
사건을 겪고 나서야 ‘아, 그게 이런 말이었구나’ 싶을 정도.
수준이 낮을수록 거의 끼워 맞추기 수준이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 이 일기장은 다르다.
여태까지 가장 유명한 예언가의 예언이라고 해봤자 ‘한 달 뒤에 미국에서 큰일이 벌어진다’ 정도였다. 그게 S랭크의 예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글로써 표현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일기장에 적힌 사건들 대부분이 루리의 근처에서 벌어진 일들뿐이었지만, 이후에 어떻게 능력이 발전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들기며 전략적 가치를 그렸다.
이 아이를 두고 물밑에서 첩보 전쟁이 벌어질 거다.
그것도 냉전 시대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규모로.
세상으로부터 숨겨야만 한다.
루리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루리야, 아저씨하고 약속 하나 할까?”
“약속? 무슨 약속?”
“이거 일기장 내용, 어디 가서 말하지 않…….”
애한테 이렇게 말하면 안 듣겠지.
목소리를 낮추고 작게 속삭였다.
“이거 너한테만 말하는 비밀인데. 아저씨는 사실 신분이 감춰진 스페셜 에이전트야.”
비밀 신분, 특수 요원, 임무.
애들이 환장하는 것들이지.
권총을 짤랑짤랑 흔들자 루리가 충격받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지, 진짜? 아깐 경찰이라며.”
“그건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니는 대외적인 신분. 게이트가 벌어져서 파견 나왔는데 날 도와줄 조수가 필요해.”
아이의 얼굴에 기대감이 차오른다. 제 자리에서 발구름을 뛰며, 내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한유정이 생각나서 희미하게 웃음이 나왔다.
“네가 내 조수가 돼주겠어?”
“응! 응!”
“그런데 이 일기장을 적들이 알면 아주 곤란해져서…….”
“비밀로 할게!”
“좋아, 서루리 요원. 새끼손가락부터 걸고 맹세하자고.”
“복사도?”
“당연하지. 자물쇠까지 걸어.”
루리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마주 웃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숨기기로 한 건지, 피가 낭자할 전쟁을 막아보려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루리의 능력이 탐난 건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
소령의 주도하에 임시 편제가 끝났다. 역시 예비군 동대장 출신이라 그런지 깔끔하게 교통정리를 마쳐놨다.
그가 없었을 거라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내 일의 절반을 가져가 준 셈이다.
자경대를 데리고 다시 백화점 밖으로 나갔다. 경찰서로 돌진한 우리는 그곳에서 무전기와 총기류를 모조리 수확했다.
무기라고 해봤자 고작 엽총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백화점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때.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 매니저님.”
“무슨 일입니까?”
“제가, 그, 쓰읍…… 잠깐만 저기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주치는 소형 몬스터들 사이에서 간간이 중형 몬스터들도 눈에 들어왔다.
고립되기 전에 백화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서 얘기하시죠.”
단호히 말하고 몸을 돌리는데 남자가 내 어깨를 와락 붙잡았다.
“아니, 그, 하… 잠깐 귀 좀 대주십쇼.”
그가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내 귀에다가 속삭였다.
“사실 총포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불법 소지 중인 총기류들을 저희 매장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밀수업자요, 제가.”
뭐?
*
이지아가 주먹으로 벽을 때렸다.
콰직!
돌가루들이 튀며 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다들 헛기침을 하며 총포사의 비밀방으로 들어갔다.
탁, 타닥!
형광등의 불을 켜자 진열장에 깔끔하게 전시된 무기들이 드러났다. 어림짐작으로만 수십 정은 깔려있었다.
총포상이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마대 자루를 낑낑대며 끌고 왔다. 자루 끈을 풀어헤치자 번쩍거리는 총기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K2가 15정쯤 나오고, 그밖에 저격총 1정, 대물 저격총 1정, 산탄총 10정, 소총 15정, 기관단총 5정, 유탄 발사기…….”
총포상이 항목들을 나열한다.
그걸 듣다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은 총기 청정구역이라더니.
개뿔.
전부 개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탄약은 충분합니까?”
“가득하죠. 불법으로 판매하는 거라 고객들이 한 번 살 때 수백 알씩 가져가는데.”
“관리는요?”
“녹슬면 사 가지도 않아요. 주기적으로 수입해준 것들이라 장전하고 쏘면 깔끔하게 나갑니다.”
라이트로 총구를 비춰보니까 확실히, 내부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기름 냄새도 진하게 풍긴다.
총포상 말대로 바로 사용해도 될듯싶다.
“전부 얼마입니까?”
물론 그가 이걸 공짜로 풀려고 하진 않았다.
장사꾼답게 급한 상황에서 나름 주판을 튕긴 모양이고, 자길 임시 부대에서 빼준다면 넘긴단다.
썩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 한 명 빠지는 것보다는 이 총들을 가져가는 게 훨씬 전략적 가치가 높았다.
“러시아 마피아들한테 수입해온 물건이라 이게 좀 비싸거든요. 아시죠? 원래 물 건너 온 게 다 비싼데 이건 또 불법적인 경유로──”
“바쁘니까 본론만 말하세요.”
“원가 그대로 받겠습니다. 에누리 없이 소수점 떼고 3억 5천. 딜?”
“명함입니다. 게이트 끝나면 연락 주세요.”
지금은 뭘 주고 싶어도 전파 끊겨서 못 준다. 총포상이 조금 찝찝한 얼굴로 물러났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시켜 무기들을 버스로 운반했다.
마지막으로 혹시 뭔가 남은 게 있나 싶어서 쓱 훑어보는데, 문득 내 시선을 잡아끄는 녀석이 있었다.
“…사장님, 저건 뭡니까?”
“뭐요?”
총포상이 구석에 처박혀있던 물건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저거. 워슈트입니다. 뉴스에서 보셨죠? 분쟁 지역 보면 용병이나 군인들이 뭔 마린 슈트 같은 거 입고 다니잖습니까. 스타크래프트는 모르시려나?”
“잘 압니다.”
천천히 손을 뻗어 외관을 쓰다듬었다.
재질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하긴.
대한민국, 그것도 강원도 산골지방의 불법 총포상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싸구려인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근력 보조 장치라고 보시면 되는데… 옛날에는 광산이나 공사장처럼 힘쓰는 일에 쓰이던 게, 군용으로 제작된 거예요.”
“이건 왜 안 넘겼어요? 비싸서?”
돈은 충분하다고 말했는데.
총포상이 어깨를 으쓱인다.
“아뇨, 그건 아니고… 싸구려라서요. 마석도 질이 나쁩니다.”
마석이야 밖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한테 쏟아져 나오는 게 마석이다.
“총기들보다는 이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있는 거하고 없는 거하고 차이가 클 텐데요.”
“어후, 저도 알죠. 그런데 이게 말씀드렸다시피 싸구려라서요. 만들다 만 거예요. 오토 밸런스 시스템이 없습니다. 생판 처음 써보는 사람이 이거 착용하면 아마 걷지도 못할걸요.”
턱을 매만지며 워슈트를 바라봤다.
머릿속에 계획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
무기를 버스에 전부 싣고서, 최 작가는 초조하게 김현우를 기다렸다.
중형 몬스터의 출현 빈도가 높아졌다.
백화점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려놨지만 이지아가 없으면 방벽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어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지, 마지막에 나와야 할 김현우는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슬슬 들어가서 데려와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가게 안에서 저벅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조금 두텁고, 그래서 이질적이었다. 두 개의 음영이 조금씩 가까워졌다.
“팀장님, 빨리……!”
재촉하려던 최 작가가 입을 다물었다.
가게 밖으로 나온 김현우의 모습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하긴 했다.
발소리는 씨름 선수처럼 무거웠고,
키는 총포상보다 머리 두 개가 더 커졌으며,
그림자 윤곽선은 척 봐도 일반적인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어어…?”
대물 저격총을 어깨에 걸친 김현우가 최 작가의 옆을 터벅터벅 스쳐 지나갔다.
“티, 팀장님. 그거 뭐예요?”
우뚝 멈춰 선 김현우가 헬멧을 텅텅 두들겼다.
헬멧의 안면 보호대가 열렸다.
그가 사나운 미소를 띈 채 대답했다.
“워슈트요. 존나게 멋지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