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내일은 슈퍼 스타 (18)
* * *
이지아와 함께 바비큐를 굽는 중이었다.
“컷! 촬영 수고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최 작가의 외침에 스태프들이 소란스레 움직였다. 곡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고, VJ는 아예 카메라를 바닥에 둔 채 밤하늘을 이불 삼아 드러누웠다.
“아니, 최 작가님. 여기서 벌써 끝내게요?”
“이제 됐어요! 촬영분 충분하니까 이제 좀 쉬어요. 저희 다 죽을 거 같아요.”
시계를 확인했다. 출발하고 고작 일곱 여덟시간 지났나?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축산 시장 들러서 고기 고르고, 동네 마트 들려서 이것저것 쓸어 담고, 밴에 실어놨던 텐트 꺼내서 치고, 마른 장작 모아서 모닥불 만들고.
이걸로 방송되려나 모르겠다.
“돼요. 두 분이 그림 진짜 좋았어요. 원하던 장면들 다 찍었으니까 이제 촬영 끝내요. 제발.”
스태프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이미 촬영은 물 건너간걸 깨달았다. 다들 그냥 배 째라 식으로 뻗어있었다. 윽박지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프로들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따라야지.
일단 아이스박스부터 확인했다.
남은 고기와 야채도 충분하고, 맥주는 박스째로 사 왔다. 박스들을 몽땅 들고 바비큐 그릴로 걸어갔다.
“다들 피곤한 건 알겠는데, 밥은 먹고 뻗으세요.”
나랑 이지아가 바비큐 굽고 삼겹살 먹는 동안 스태프들은 촬영한다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밥 소리에 좀비들이 벌떡 일어난다.
“밥?”
“먹어야지, 밥.”
“술도 있나?”
“술 드시게요? 돌아갈 때 운전해야죠.”
“시발, 체력 보니까 서울까지 절대 운전 못 해. 그냥 오늘 하루 묵고 가자.”
“고기는 누가 구워? 뒷정리는?”
“야, 막내…….”
스태프들의 말을 끊고 내가 외쳤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리에나 앉아요!”
스태프들이 주변으로 흩어져서 앉을 것들을 가져왔다. 모닥불을 하나 두고 엉기적엉기적 걸어 다니는걸 보면 꼭 부두술 현장 같다.
고기 팩들을 찢어 전부 그릴에 올렸다. 연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뒷짐을 진 이지아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지아 씨, 잘 왔어요. 고기는 제가 구울 테니까 옆에서 채소들 좀 씻어줘요.”
이지아가 조심스레 내 이름을 불렀다.
“현우야.”
“어, 네?”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투정 부린다.
“왜 그렇게 놀라. 촬영 끝나면 말 놓기로 했잖아. 추가 촬영 없고, 이제 전부 마무리됐는데 약속 지켜야지.”
“…….”
입을 다물고 조용히 고기를 구웠다.
치이익!
연기가 올라간다. 등 뒤의 인기척은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사람들 먹으려면 채소 씻어야 하는데.
한유정에게 유정 씨라고 불렀던 거나, 이지아에게 지아라고 부르는 거나.
왜 다들 내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안 되나?
“지아 씨, 원래 일적으로 만난 사이끼리는 반말 쓰면 관계가 복잡해져요. 더군다나 저는 월급 받아 가는 입장이고.”
“대표인 예림 씨한테는 반말 쓰잖아.”
“그거야 원래부터 친구니까 그렇죠. 걔랑은 중학교 때부터 알았어요.”
한예림하고는 중3 때부터 친하게 지냈으니까 10년 됐다.
대표와 직원의 관계인 만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존댓말을 썼지만, 친한 친구끼리 상황극하는 느낌이었다.
이지아가 묻는다.
“나는?”
“네?”
“예림 씨하고는 친해서 그런 거면, 나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고민에 빠졌다.
이지아와 내가 친하다고 할 수 있나?
친하긴 하지.
벌써 9개월이 지났고 한집에서 살고 있는데.
나름 신뢰 관계도 쌓였다.
게이트에서도 그랬다.
내 명령에 가까운 부탁에 이지아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움직였고, 나도 당연히 그녀가 그렇게 할 거라 믿고 움직였다.
그런데 뭐랄까, 한예림이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레드 게이트 이후부터는 친구라고 해봤자 한예림 밖에 없었고, 입대하고부터는 근처에 부대원들뿐이었다.
바스타드 카페 사장은 믿음직한 형이자 삼촌이었고, 카페 알바 박지영은 친한 동생일 뿐이었다.
조 기자나 박 변호사?
말할 것도 없고.
송 팀장?
장난하나.
그나마 비슷한 건…….
음.
“알겠어, 그러자.”
이지아가 눈을 깜빡인다. 어벙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실실 웃음을 흘러나왔다.
“왜? 말 편하게 하자며. 그렇게 노래 불렀잖아.”
“으, 응, 그렇긴 한데, 또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갈 줄 알아서….”
막상 하자니까 이지아가 허둥대며 뒤로 물러난다.
그녀가 채소를 꺼내서 물에 헹궜다.
조금 서먹한 침묵이 감돌았다.
고기 굽는 소리, 채소 씻는 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게라게라포! 게라게라포포!”
루리가 노래 부르며 춤추는 소리.
스태프들이 루리를 둘러쌓고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노래 잘 부르네. 근데 어디 애야?”
“아까 보니까 매니저님한테 아빠라고 부르던데요?”
“엥? 뭐야, 나이 어려 보이던데 사고 친 거야?”
자기들끼리 오해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접시에 고기를 담으며 이지아에게 다급히 말했다.
“지아야, 잠깐 고기 굽는 것 좀 봐줘. 사람들 나 유부남으로 착각한다.”
“어, 응.”
“나 갔다 올게.”
“어, 응.”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고기 굽고 있어서 그런가, 나도 이지아도 얼굴이 좀 불그스름했다.
“그, 지아야, 기왕 하는 거면 편하게 하자. 편하게.”
“어, 응.”
어, 응.
그 말 지금 세 번째 듣는다.
*
촬영이 끝나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5시간 동안 게이트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응급처치 받고 나서 바로 캠핑 장가서 촬영하고, 강원도 철원에서 서울까지 교대로 운전했다.
이지아도 나도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오직 루리만 쌩쌩했다. 그야 촬영할 때나 운전할 때나 뒤에서 계속 자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아이 체력도 무시 못 한다.
루리가 입을 벌리고 물었다.
“여기가 아빠 집이야?”
“내 집은 아니고 지아네 집.”
“엄청 넓다. 요구르트도 많아?”
“배 터지게 먹을만큼.”
루리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순서대로 이지아, 나, 한유정의 방이다. 한유정 옆방의 문을 열고 근처 마트에서 사 온 생필품들을 풀었다.
기왕이면 애 옷도 사주고, 가구도 사주고, 천장에 야광 스티커도 붙여주고 싶은데 지금은 도저히 못 하겠다.
그러다가 문득 얘가 6살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루리야, 혼자서 잘 수 있어?”
“응, 나 혼자서도 잘 자!”
짐을 풀고 곧바로 샤워실로 직행했다.
군 병원에서 씻기는 했는데, 캠핑장에서 고기 굽고 텐트 치다 보니까 거지꼴이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 때였다.
우우웅.
테이블에 올려둔 핸드폰이 진동으로 떨렸다.
[잠깐 얼굴 좀 보자.]
*
카페에 들어가자 멀리서부터 시선을 끄는 남자가 보였다.
험상궂게 생긴 근육질 떡대, 가로로 길게 남은 얼굴의 칼자국, 각진 턱의 러시아인.
피스 메이커의 부대장, 드미트리였다.
주위 자리가 휑하다.
워낙 인상 깊게 생긴 얼굴이라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왜 불렀어? 요즘 별로 안 바쁜가보다? 일 끝나자마자 안 돌아가고 한국에 체류 중인 거 보면.”
맞은편에 앉으니까 사람들의 눈길이 쏠린다.
상당히 인상 깊은 조합일 거다.
나는 나름 선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드미트리는 정반대였으니까.
둘이 같이 돌아다니면 내가 꼭 행동대장을 데리고 다니는 흑막처럼 보인단다.
실상은 정반대인데.
팔짱을 끼고 있던 녀석이 어깨를 으쓱인다.
“돌아가기 전에 얼굴이나 좀 보고 가려고.”
귀에는 자동 번역기가 꽂혀있었다.
시중에 팔리는 제품은 아니었다.
UN군 특성상 부대원들이 국가, 성별, 인종과 상관없이 혼합돼있었다.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나사에서 공급받은 물건이었다.
성능이 워낙 좋아서 전역할 때 나도 몇 개 훔쳐놨다. 그렇게 이것저것 꿍쳐놓은 게 박스째로 제법 된다.
빨대를 입에 물며 물었다.
“다른 녀석들은?”
“게이트 해결하자마자 돌려보냈지. 우리 하는 일이 워낙 갑작스레 벌어지니까, 대기하고 있어야 하잖아.”
가벼운 신변잡기가 이어졌다.
누구는 잘 살아있고, 누구는 날 그리워하고, 누구는 다리 잘려서 전역했고.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워 담는데 드미트리가 팔짱을 풀고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대체 불러서 뭔 말을 그렇게 빙빙 돌리나 했더니 이제야 본론인가보다.
“요즘 일은 어때?”
“일?”
“전역한다길래 축하해줬더니, 지금 매니저나 하고 있다면서? 능력 각성했잖아. 헌터는 어쩌고?”
고작 매니저.
아마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다.
UN 평화군 산하 특수부대 피스 메이커의 부소대장.
혹은 헌터에 비하면 고작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매니저 하면 떠올리는 게 헌터들 따라다니면서 뒤치다꺼리하는 것들이니까.
실제로도 그게 맞았다.
“안타깝게도 재능이 전혀 없더라고. 1년간 헌터 준비하며 훈련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일반인 기준으로 힘이 좀 세지긴 했다.
근데 그게 전부였다.
드미트리가 책상을 툭툭 두들긴다.
“……요즘 일이 많이 바빠.”
“거기서 안 바쁠 때가 어딨냐?”
“안 바쁜 적이 없었지. 근데 최근 1년은 그게 유독 심해.”
뉴스를 떠올렸다.
국제 정세에 영향 끼칠 정도의 사건이 있었나?
없던 거 같은데.
“1년 조금 전쯤에 저격수 한 명이 전역한 게 제법 타격이 크더라고. 그 새끼가 보급이나 작전 보좌관 역할까지 다 맡고 있었거든. 부랴부랴 다른 사람들한테 시키는 중인데, 옛날 맛이 전혀 안나.”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따라 웃던 드미트리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헌터 한다길래 흔쾌히 보내준 건, 진창에서 구르지 말라고 깔끔하게 포기한 거야.”
“그런데?”
“매니저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 들어서.”
“뭔데 아까부터 구국의 결단을 내린 표정이야?”
“혹시 재입대 생각 없어? 네가 쓰던 워슈트도 그대로 남아있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
드미트리가 이것저것 해줄 수 있는 것들을 꺼낸다. 파병 지원금이 어떻고, 내 호봉이 어떻고, 임무 수당이 어떻고, 명예가 어떻고.
듣다 보니까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다.
피스 메이커의 부대원이라고 하면 어딜 가나 인정받았다. 헌터 업계에 비교하면 세계 1위인 길드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의미니까.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누구나 매니저보다는 명예로운 직업으로 생각할 거다.
“글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한유정과 이지아의 얼굴이었다.
피스 메이커에 있으면서 구한 사람들의 숫자도 꽤 됐다.
정신과 의사는 내 정의감을 부채 의식이라 표현했다.
레드 게이트 때,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강당으로 향했다.
내가 친구들을 제물로 바치고 살아남았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나보다 어떻게 날 더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맞는 거 같았다.
입대 후 굳이 피스 메이커에 파병 지원을 했고, 각성하고는 헌터를 하겠다고 그만뒀다.
모두 몬스터들과 싸우는 일이었다.
그런데 매니저 일을 하다 보니까 스스로가 조금 바뀌는 걸 느꼈다.
한유정과 이지아의 인생이 나로 인해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만족감이 심장 언저리를 뻐근하게 채웠을 때, 매니저 일도 제법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 많이 받는 거야 인제 와서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여러 가지 변명들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나온 말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지금 하는 일이 더 재밌네.”
내일은 슈퍼 스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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