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나의 아저씨 (4)
* * *
널찍한 길을 따라 서행으로 운전했다.
담벼락 있는 전원주택들이 멀찍하게 떨어져 있었다. 다들 집에 주차장을 하나씩 두고 있는 모양이다. 길가에 세워둔 차량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뭔 미국도 아니고.
이지아네 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서울에서는 제법 비싼 편에 속하는 동네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자동차에서 내린 나는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커다란 문짝 옆에 붙어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잠에서 덜 깬 목소리가 묻는다.
누구세요?
인터폰 카메라를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옛날부터 사람들한테 자주 들었었다. 길가에서 애들 납치 시도해도 오해 안 받을 인상이라고.
“안녕하세요, 유정이 매니저 김현웁니다.”
응? 한유정이요? 걔한테 매니저가 왜 있어요?
“유정이 삼촌분 되시죠? 잠깐 일 때문에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금전이 오가는 이야긴데.”
10초 정도의 텀을 두고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오쇼.
덜컹!
문이 열렸다.
*
거실 소파에서 한유정의 삼촌과 마주 앉았다.
한승현.
40대 초반의 미혼 남성으로 제법 까칠하게 생긴 남자였다.
나름 특이한 점이라면 아침부터 퍼질러 자고 있었고 비싼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것뿐.
건너건너 섞인 피면 닮은 구석이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얼굴에서 한유정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삼촌이 까슬까슬한 수염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래서, 한유정 매니저가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걔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길래 매니저가 붙어 있어요? 아이돌 해요? 배우 지망생?”
궁금한 것도 많지.
후견인이란 인간이 조카가 뭐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한유정이 아직 인지도가 없긴 했다. 이제야 라이센스 나온 신인이고 연예인도 아닌 헌터였으니까.
하지만, 찾아보려고 하면 모를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아이돌은 아니고 헌터하고 있습니다. 최근 라이센스도 나왔고요. 현재는 길드에서 보호 중입니다.”
“아. 헌터.”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던 삼촌이 이제야 관심을 가진다.
“그럼 한유정 지금 돈 많이 벌겠네요?”
“아뇨, 아직 던전에 들어가질 않아서요. 트레이닝하면서 준비 중입니다.”
“그래도 헌터하고 던전 들어가면 돈 많이 벌잖아요. 그쵸?”
“…네, 많이 벌죠. 나름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삼촌이 가벼운 미소를 띤다. 그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런데, 저한테는 왜…?”
바로 본론이다. 미리 챙겨온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회사에서 계약서를 작성하려는데, 유정이가 아무래도 미성년자다 보니까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서요.”
“아아, 보호자 동의. 뭔지 알죠. 제가 지금 후견인이니까 보호자 신분인 거죠? 한유정이 일하려면 제 지장이 필요한 거고.”
“정확합니다.”
삼촌이 어깨를 으쓱인다.
“뭐, 그럼 지장만 찍어주면 되는 겁니까? 어렵지 않죠. 아, 그런데 말입니다.”
“네.”
뭔 말을 하려는 건지 벌써 기대된다.
“한유정이 그, 뭐냐.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음.
왜 이런 기대는 항상 저버리지 않는 걸까.
“보호자는 저고, 미성년자라 금전 관리가 조금 벅찰 거 같은데. 한유정 명의로 된 다른 통장 있으니까 그걸로…….”
“유정이를 부를 때 계속 한유정이라고 말씀하시네요. 한승현 씨.”
“…네?”
종이를 집으려던 삼촌의 팔목을 내가 콱 틀어잡았다. 그가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혹시 나중에 따지실까 봐 미리 고지 드리는 건데요.”
“…?”
“제가 지금 받으러 온건 보호자 동의가 아닙니다.”
“한유정이 일하려면 보호자 동의 필요하다면서요?”
“네,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긴 한데.”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서류의 글자를 가리켰다.
“후견인 포기 신청서입니다. 이거.”
“뭐요?”
“한승현 씨, 저는 지금 보호자 동의가 아니라 후견인 포기를 승낙받으러 왔습니다.”
미쳤냐?
너 같은 새끼한테 보호자 동의를 받게?
내가 한유정의 후견인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 건, 유정이한테 부모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였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었다.
한유정의 부모가 죽을 당시, 나이가 고작 16살이었다. 양가 친척이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면 후견인이 분명 존재했다.
그러니까, 원래는 보호자 역할을 눈앞에 있는 남자가 해줘야 한다는 거다.
그 범위에는 당연히 밥을 먹여주고, 집에서 재워주고, 옷을 입혀주고, 학교를 보내주는 등의 행위가 포함됐다.
물론 자기 돈으로 하는 일은 아니었다.
법원에서는 한유정에게 상속된 재산을 일정 부분 후견인이 운용할 수 있게 허락해준다. 그걸로 돈 나갈 일은 전부 처리하면 된다. 가끔 부모의 정도 나눠주고.
그런데 내가 본 한유정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백화점에 가서 내가 옷을 사주기 전까지는 고작 옷 한 벌이 없어서 꼬질꼬질하게 다녔다.
후견인이라는 새끼는 어디서 뭐 하는 건지 한유정이 이지아네 집에 1년을 가까이 얹혀사는 동안 연락 한 통 없었다.
빚더미에 앉은 집안이 아니라면 분명 한유정에게 상속된 재산이 있을 텐데, 그 돈은 어디다 팔아 먹은 건지 내가 용돈을 주기 전까진 매일 굶고 있었다.
한유정한테 친척에 관해 물으면 꺼림직해 하며 대답을 회피했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니까 삼촌이 아니라 나를 먼저 찾았다.
그러니까, 내 눈에는 신호들이 계속해서 보였다. 여러모로 의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후견인이라는 삼촌이 멀쩡한 인간이 아닐 거라는 의심이.
마른 숨을 내뱉으며 권고했다.
“유정이가 버는 돈은 당연히 유정이 겁니다. 똑 부러진 앱니다. 알아서 잘 관리할 거고요.”
“뭐?”
“유정이는 이제 제가 보호할 거니까, 서류에 지장 찍으세요.”
“이 새끼 봐라…….”
낯선 사람 앞이라고 나름 신경 쓰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그가 사나운 눈빛으로 날 쏘아봤다.
“이거, 그거지? 한유정 이용해서 돈 벌려고. 주위부터 공사질 치는 거야? 어?”
삼촌이 팔짱을 끼고 오른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가 미간을 팍 찌푸리고, 수염을 긁적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대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그가 말했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노나 먹읍시다.”
이건 정말 예상외인데.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삼촌을 쳐다봤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얘가 지금 16살이니까….”
“열일곱입니다.”
“아, 17살이니까, 앞으로 2~3년 더 있어야 만 나이로 성인이 되잖아요? 그때까지 버는 돈은 내 쪽으로 돌려주고, 이후에는 당신들이 뭘 어떻게 조리하든 전혀 상관 안 하는 거로. 어때요?”
아, 같이 유정이 돈 빼먹는 게 어떻냐고?
사람 하나 병신 만들어서?
“그건 안 되겠는데요.”
“뭐?”
“어서 서류에 지장 찍으시죠. 저는 유정이 데리고 거래하러 온 게 아닙니다.”
“씨발, 욕심 존나게 많네. 적당히 하고 손잡자니까.”
삼촌이 다리를 거만하게 꼬았다. 그가 서류들을 한참 동안 읽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종이를 쫙쫙 찢었다.
“한승현 씨, 아무래도 지금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착각은 씨발, 어차피 내가 지장 안 찍어주면 한유정도 성인 될 때까지 일 못하는 거잖아. 맞지? 너희 어디 한 번 일 시켜봐,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찾아가서 깽판 칠 테니까. 앞으로 2년은 계약금만 주고 뺑이치는 거야. 알겠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가방에서 조 기자에게 받은 파일들을 꺼냈다. 종이를 사락사락 넘기며 말했다.
“한승현 씨, 1년 전까지 인쇄소에서 근무하셨다고요. 도박빚도 꽤 쌓여있었고.”
“…당신 뭐야, 뒷조사한 거야?”
삼촌이 경계심 가득 섞인 질문을 던진다.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오면서 동네를 둘러봤는데, 집값이 상당히 비싸 보이더라고요. 일반적인 월급쟁이면 월세 살기도 불가능할 정도로요.”
눈앞의 남자는 어째서 한유정의 후견인 신분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가.
뻔해도 너무 뻔했다.
“유정이한테 상속된 재산, 꽤 많이 해 처먹으셨죠? 인감이랑 통장 챙겨서. 여기 집도 원래는 유정이가 살던 집이고.”
한유정이 왜 집으로 찾아가지 않았는지 나는 모른다. 눈치 빠르고 머리도 비상한 애다. 옆에서 1년간 봐온 감상이다.
충분히 알고 있었을 거다.
그 똑똑한 애가 왜 멍청하게 당한 건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죄책감 때문에 이곳에 얼씬도 못 한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한유정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이면서도,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씨발, 협박하면 뭐 어쩌려고?”
삼촌의 가족이기도 했으니까.
녀석이 콧김을 푹푹 뿜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가방에서 다시 후견인 포기 각서를 꺼냈다.
“동의하지 않으시면 법적 절차가 들어갈 겁니다. 피후견인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고, 상속된 재산을 멋대로 사용했다는 내용으로요. 어차피 후견인 자격은 박탈당하실 겁니다.”
“그걸 증빙 할 수 있을 거 같아?”
“말이라고 묻습니까? 당연히 가능하죠. 당신이 인감 찍고 통장에서 돈 빼먹고 있을 때, 유정이는 제가 보호하고 있었는데.”
종이를 내밀며 낮게 속삭였다.
“그냥 지장 찍으세요. 시간 아까우니까.”
삼촌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고개를 떨궜다. 녀석이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분을 삼켰다.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집은 넓었고, 통장에는 평생 일해도 만져보지 못할 돈이 꽂혀 있었고, 한유정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집에 들르지도 않는다.
많이 달콤했을 거다.
그래서 포기를 못 하겠나보다.
녀석이 입가를 비뚜름히 올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고민하던 그의 눈동자에 확신이 깃들었다.
“법원에 고발할 거였으면, 이렇게 테이블에 앉는 게 아니라 경찰이랑 바로 날 찾아왔겠지. 너네 함부로 신고 못 하잖아.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랑 이야기하는 거지?”
“개소리….”
“한유정 걔, 부모 죽인 거 그년이잖아.”
* * *
“한유정 걔, 부모 죽인 거 그년이잖아.”
삼촌은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주 앉은 김현우의 눈이 가라앉았다.
무저갱처럼,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던 입가는 그대로였다. 조금 열 받아있는 것처럼 찡그려진 눈썹도 그대로였다. 꼼지락거리던 깍지 낀 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무언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도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몰랐다. 콕 집어서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이 무언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는걸, 그는 깨달았다.
김현우가 옅은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알았어?”
“뭐?”
“어떻게 알았냐고.”
“씨발, 갑자기 찾아와서 뭔 지랄이야!”
당황한 삼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섬뜩한 분위기에 몸이 괜히 크게 반응했다. 그가 삿대질하며 외쳤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
김현우가 입술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뭐?”
“유정이가 죽인 걸 어떻게 알았지? 경찰들은 분명 정체불명의 살인자라 공표했어.”
한유정은 협회장의 비수였다.
수족으로 데리고 가는 와중에 그 정도 뒤처리는 당연했다. 뉴스에는 부모가 죽은 일가족의 비극적인 사고로 정리됐다.
삼촌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현우가 허공에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림자가 형체를 이루더니 권총으로 변했다.
“미, 미친 새끼, 뭐 하는 거야?”
피슛─!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삼촌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갤 돌렸다. 소파에 큰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것도 머리 바로 옆쪽에.
자리에서 일어난 김현우가 창가로 걸어갔다. 밖을 살피던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너만 룰을 깨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게 아니야. 사회에 법규가 왜 필요한 줄 알아?”
“어, 어어?”
“한 명이 룰을 어기면 다른 사람도 어길 수밖에 없게 되거든. 그럼 개판이 돼. 머리 위로 화학 무기가 떨어지고, 창가에는 머리도 못 내밀어. 대가리에 총 맞을까 봐. 그래서 나는 상대방이 룰을 먼저 깨지 않는 이상, 절대 룰을 깨지 않아.”
계속 의문이었다.
계속.
두 가지 전제가 항상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첫 번째, 천살성은 일주일에 한 번 살인을 하는 거로 해소된다.
두 번째, 한유정의 부모는 둘 모두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런데 두 명이 죽었다.
앞뒤가 안 맞았다.
“다른 한 명은 대체 누가 죽였을까. 늘 그게 궁금했어.”
김현우가 창가로 스며드는 역광을 등졌다.
그의 눈이 요사스레 번뜩였다.
“너였구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