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오늘은 슈퍼 스타(2)
* * *
최 작가와 함께 방송국 복도를 걸었다. 그녀가 옆에서 실실 웃으며 쫑알댔다.
“지금 교양국 PD들부터 국장님까지 이번 방송에 기대하는 게 장난 아니에요. 시청률 잘 뽑아달라고 매일 저한테 기프티콘 보내더라구요. 이게 슈퍼 을인가 싶기도하고…….”
눈가는 퀭하고 피부는 푸석푸석한데, 동공만큼은 은은하게 빛났다. 다큐멘터리 작가가 꿈이라고 하더니 힘든 와중에도 일이 그렇게나 마음에 드나 보다.
“방송 기획은 잡힌 거에요?”
미팅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현재 계획은 2주에 4회분 방영.
화제성이 높을 때 끝내야 하는 만큼 시간 싸움이었다. 이틀이면 얼추 기획은 전부 잡아놨을 거다.
“네! 이번에 피디님이랑 밤새워서 준비했는데, 4회분 모두 시청률을 챙길 거면 지루한 다큐보다는 예능적인 요소가 추가됐으면 하더라고요.”
“예능이요?”
다큐랑 예능이 양립 가능한가?
최 작가가 가슴을 텅텅 두들겼다.
“제가 또 혼자 살아남기 팀에서 4년을 작업했잖아요. 요즘 관찰 예능이 대세기도 하고, 화제성은 방영 내내 유지될 게 분명하고, 사람들이 지루해하지만 않아도 이거 무조건 대박이거든요?”
“어, 네. 그래서요?”
“그래서 어차피 할 거면 잘하는 걸 하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지아 씨랑 팀장님한테 카메라 붙여서 관찰 다큐 찍을 거예요.”
“관찰 다큐를요? 저도요?”
“네! 아, 여기가 편집실이에요. 임 피디님, 팀장님 오셨어요!”
총총총 달려가는 최 작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발걸음이 가벼운데 이걸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실망할 걸 생각하니까 벌써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일단 최 작가를 따라서 편집실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마우스를 딸칵거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날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 뵙는 건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이번에 메인 피디를 맡은 임재훈입니다.”
“2팀장 김현웁니다.”
짧게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임 피디가 신기하다는 듯 날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손을 붕붕 위아래로 흔들었다.
“나이도 젊으신데, 이야.”
“네?”
“이틀 동안 국장님, 부장님이랑 촬영분 싹 다 돌려봤거든요. 대단하시던데요? 이거 나가면 슈퍼 스타 되시겠어요.”
“지금도 스타인데요.”
혼자 살아남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자꾸만 얼굴을 알아본다. 매니저가 뭐라고 내게 사인까지 부탁하지는 않지만 하도 손가락으로 가리켜대서 선글라스까지 하나 구비해놨다.
“아니죠. 지금은 스타가 아니라, 반짝 스타죠. 제가 이런 경우 여럿 봐왔는데 얼굴 한번 비춘 걸로는 한 달만 되도 사람들이 잊어요. 예능에 사람들이 좀 나와요? 그런데 지금 나이가 몇이세요?”
“스물여섯입니다.”
“혹시 정치에 관심 있어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첫 대면부터 갑자기 저런 말이 왜 나와? 임 피디가 의자에 앉으며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방송 나가면 정치권에서 손 엄청 내밀겠던데. 이천 명 구했잖아요. 매니저 그만두고 한 번 알아봐요. 마스크 좋고, 나이 어리고, 업적도 있고, 딕션까지 또박또박하니까 인기 괜찮겠던데요. 대변인 뛰다가 비례대표 자리 하나 먹을지 누가 알아요.”
최 작가가 옆에서 열심히 고갤 끄덕인다.
“이거 동영상 보면 뭐, 사람들도 다들 알 걸요? 이천 명 구한 건 군대랑 협회가 빠르게 움직인 탓이 아니라, 팀장님 덕분이란 걸요!”
팔짱을 끼고 어색하게 웃었다.
정치에 뜻 없다.
임 피디 뒤에 서서 편집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워슈트를 입은 내가 거인의 등 뒤를 오르고 있었다. 슬며시 다가가서 스페이스 바 키를 눌렀다. 동영상이 멈췄다.
“…?”
임 피디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다.
무시하고 최 작가에게 말했다.
“최 작가님, 제가 분명 전에 말씀드렸었죠? 지아한테 포커싱 맞춰 달라고. 워슈트 입은 모습 나가면 안 됩니다. 빼세요.”
“네? 아, 아니, 팀장님, 이걸 왜요?”
“전역한 지 2년밖에 안 된 특수부대 전역자가, 그것도 현장에서 뛰던 군인이 신원 다 드러내놓고 다니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최 작가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조, 좋지 않나? 사람들이 막 우러러 쳐다보고.”
“아뇨, 좆….”
임 피디랑 최 작가의 눈칠 살피며 말을 바꿨다.
“곤란해집니다. 그리고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이거, 지아랑 회사 홍보 차원에서 제작하려는 거예요.”
회의 때 교양국 CP가 너무 저자세길래 자세히 알아봤다. 현재 교양국이 폐지를 앞두고 있다고.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명목으로 경영진이 칼 빼 든 거고, 그거 막을 방법이 이거뿐이란다.
즉, 우리가 갑이고, 교양국이 을이다.
“아, 이거 아까운데… 그림 너무 괜찮은데…. 슈퍼스타 될 텐데 분명… 시청률도 막 20퍼, 30퍼 넘기고….”
임 피디가 구시렁거린다.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니까 깨갱하며 편집한다. 최 작가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트리며 말했다.
“팀장님 뜻이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저랑 지아가 준비할 건 또 뭐 있어요?”
그녀가 눈물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예고편은 이미 나갔었고, 대본 작업 끝나는 대로 보내드릴게요. 당시 생존자들이랑 소령님, 구조대로 활동한 사람들한테 협조 부탁해서 인터뷰 딸 거고요.”
이 정도면 뭐, 다 된듯싶다. 최 작가의 안내를 받으며 방송국 밖으로 나갔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이지아 씨 뉴스 봤어요. 방송 촬영은 괜찮으시겠어요?”
때마침 로비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나왔다.
[협회에서 어비스 던전의 2차 공략을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평창군에서 열린 게이트가 원인으로, 현재 밝혀진 공략대 리스트에는 랭킹 1위 이지아도 포함돼있습니다.]
[협회는 명단의 헌터들에게 비상 회의를 소집했으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게 만들어야죠.”
* * *
1년 전, 대한민국에 공략대 하나가 결성됐다. 공략대원들의 최소 랭크가 A급인, 대한민국에 다신 나오기 힘들 드림팀이었다.
랭킹 1위 이지아를 필두로 S급들이 대거 뭉쳤다. 하지만 결국 어비스 던전 공략에 실패했다.
중상은 기본에 사망자도 여럿 나왔다. 에이스 멤버였던 이지아는 쏟아지는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잠수를 타버렸다.
협회는 던전을 관리할 의무와 권리가 있었다. 길드들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유야 뭐,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다.
한국은 던전을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관리했다. 돈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였다. 대부분의 국가가 그랬다.
각국에서 마석을 이용한 기술을 발전 시켜 수요를 만들어냈고, 마석은 석유와 화약을 대체하는 하나의 에너지원이 됐다.
그렇기에 돈을 원하는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가고, 돈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그들을 지원했으며, 돈을 원하는 길드들이 자발적으로 판을 짰다.
이에 필수적으로 나오는 게 ‘본전치기’가 안되는 애매한 던전들이었다.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마석이 터무니없이 적다던가, 위험 난이도가 보수에 비해 너무 높다던가.
벌 돈 보다 나갈 돈이 많으면 당연히 아무도 맡지 않는다. 똥통을 억지로 떠안을 존재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협회의 기원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병신 짓거리가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다.
던전을 처리하지 못하면 지상에 균열이 생긴다. 이게 온갖 문제점들을 초래한다. 웨이브, 게이트, 크랙 등 일상이 위협받게 된다. 쉽게 말해 평창군에서 있었던 비극이 대한민국 국토 위에 재현 되는 것이다.
어비스 던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천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협회가 이제 행동에 나섰다.
우리에게는 썩 탐탁지 않은 방법으로.
회사 대표실.
소파에 앉아 물었다.
“협회에 연락해봤어?”
내 물음에 한예림이 책상에 늘어진다. 피곤해서 죽으려는 표정이다.
“당연히 했지.”
“뭐래?”
“소집 있으니까 그때 자리에서 얘기하래. 정해진 대본만 줄줄 읊더라.”
어떻게든 강행하고 싶을 거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기자회견부터 때린 거다. 여론 먼저 만들려고.
철원군에 게이트가 열리고 1천 명의 희생자가 나오며 대한민국 전역에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은 S급 헌터 이지아가 공략대에 참석하길 원했다. 이미 한 차례 1차 공략에 실패한 상황이기에 더더욱이.
한예림이 소파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물었다.
“이지아 멘탈은 어때? 괜찮아졌어? 아까보니까 멀쩡해 보이던데.”
“처음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지금 던전 들어가면 안 돼. 큰일 나.”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기대에 절대 부응해줄 수 없었다. 이지아는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던전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걸 조금, 예쁘게 포장해서 내보내야 한다.
귤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한예림에게 물었다.
“소집일은 언제래?”
“아직 미정. 통보해주겠대.”
“한동안 잠 못 자겠네.”
눈가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골머리가 아파진다.
할 일이 많았다.
말이 회의지 이건 순 청문회나 마찬가지다.
일단 이지아가 던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의견들을 피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료들을 준비해야 한다.
한동안 꼬박 밤을 새워서.
협회에서 우리에게 시간을 많이 줄 리가 없었다.
“…매니저 업무가 원래 이렇게 고된 거야?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일 없을 때는 제발 있어라 있어라 기도했는데, 그게 얼마나 배부른 기대였는지 이제 알겠다.
게이트 터지고서부터 쉬었던 날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날 리가 없지. 한 번을 안 쉬고 쭉 달렸는데.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이지아나, 한유정이나, 루리나 내가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지아에게는 뭐든 해결해주는 매니저가. 한유정과 루리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방패막이를.
그나마 교복 입을 때부터 서로 볼 장 다 본 건 한예림뿐이다. 약한 소리도 이럴때 아니면 못한다.
“아니, 원래 매니저 업무가 이 정도 까지는 아닌데…….”
한예림이 겸연쩍은 얼굴을 한다.
“너도 무슨 악재가 낀 건지, 대단하긴 대단해. 이지아랑 일한 1년 동안 사건 몇 개가 터지는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헌터 준비할 때가 더 낫지 않아?”
“……가끔은 그냥, 헌터하고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들지. 간단하게 몬스터만 잡으면 되잖아.”
한예림이 웃는다.
“그럼 내가 매니저하고?”
“당연하지. 누구한테 맡기겠어.”
이 판에 사기꾼 투성이인 거 뼈저리게 느꼈는데.
한예림이 짧게 혀를 찬다.
“너한테 재능 없는 게 한이다. 진짜.”
내 말이.
원래는 나도 한유정, 이지혜, 나예정과 비슷한 시기에 각성했었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질없는 망상이다.
이제 일하러 가야 한다. 문고리를 잡고 물었다.
“아, 그리고 기사 하나 내보내려는데. 홍보팀장한테 부탁해도 괜찮을까?”
한예림이 고갤 갸웃했다.
“어떤 기사?”
“저기서 먼저 판 깔았으니까 이쪽에서도 하나 깔아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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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철원군 게이트에서 활약한 이지아지만, 현재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비스 던전이 끝나고 당시 얻은 우울증 때문이다. 이지아는 현재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꾸준히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받고 있다.
최근 협회에서 어비스 던전 2차 공략대로 이지아를 지명했다. 랭킹 1위의 위상과 1차 공략 실패를 생각하면 이지아의 합류는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이지아가 앓고 있는 극심한 우울증이다. 이미 한차례 실패한 고난이도 던전이다. 한 명의 실수가 더 큰 피해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런 이지아가 던전에서 활약을 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조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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