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오늘은 슈퍼 스타 (3)
* * *
협회가 공략대 멤버로 이지아를 지명했다.
그런데 이지아는 우울증이 있단다.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어비스 던전 공략 언제 하냐 ㅅㅂ 불안해 죽겠네. 이거 참치캔 사러 나갔다가 나도 게이트에 휘말리는 거 아님? 크랙 때문에 갑자기 몬스터 튀어나오면 바로 뒤질 듯.]
[ㄴ 어디 사는데?]
[ㄴ 서울]
[ㄴ 씨발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레드 게이트 때 고작 1,500명 언저리 죽었어. 서울 사는 새끼들 호들갑 떨 때마다 뚝배기로 대가리 깨버리고 싶네. 봉합시켜주는 대학 병원 의사도 니 대가리 수술 망치로 다시 깨버릴거임. 뒤지면 무식사라고 적어놔라.]
[ㄴ 왤케 열 냄? 철원군 게이트는 천명 죽었잖슴.]
[ㄴ 수십만 명 중에 천오백 명하고 사천명중에 천명하고 같냐?]
[징글징글하네. 협회에서 이지아 걸고넘어지는 거 벌써 몇 번째냐? 청문회랑 또 뭐 있지?]
[ㄴ 보복 행정 건 말하는거임?]
[ㄴ 아, 맞다 그거ㅋㅋ 어지간하다 진짜.]
[그런데 이지아 우울증 있다면서, 던전 들어가도 괜찮은 거 맞아?]
[ㄴ 아니, 지금 이지아 우울증이 중요함? 어비스 던전은 공략해야 할 거 아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ㄴ 말하는 뽄새봐라. 이지아는 사람 아니냐?]
[ㄴ 우울증은 던전 공략할 때까지 좀 참으면 되잖아. 땀 빼면 기분도 좋아지고 우울증에도 좋다면서]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 말이 많네. 이지아 저거 딱 봐도 청문회 때부터 수상쩍었어. 자기가 잘못한 거 맞는데 교묘히 조작해서 협회장 잘못으로 몰아간 게 분명하다. 협회 본부장도 멀쩡한 사람한테 괜히 보복 행정 했겠어? 이지아는 양심이 있다면 어서 진실을 밝히고 협회에 전면 협력해라.]
[ㄴ 틀딱 OUT]
[ㄴ 언제부터인가 나라에 종북 빨갱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옛날이었으면 삼청교육대 끌려가서 뒤지게 처맞는 건데.]
[ㄴ 틀]
[ㄴ 니는 집에 애미애비도 없냐?]
홍보팀장을 통해서 기사 몇 개를 언론에 내보냈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이지아의 병력이다. 그녀에게 동의를 받고 세상에 공개했다.
예전부터 유명했던 이야기다.
이지아가 전에 몸담고 있던 화신 길드의 대표가 협회장이랑 짝짜꿍하고 청문회에서 공개해버렸으니까.
그걸 다시 재조명 시켰다.
여론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대충 게시글 몇 개를 둘러보다가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화장실 거울을 바라봤다.
“씹….”
웬 폐인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칫솔을 물고 있었다. 어제 몇 시에 잤더라? 홍보팀장이랑 보도자료 준비한다고 새벽 2시까지 같이 사무실에 남아서 작업했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침대에 뻗으니까 새벽 4시.
알람 소리 듣고 일어난 게 7시였다. 턱에 힘이 저절로 꽉 들어갔다.
안 되지, 안돼.
치아 상하고 잇몸에도 좋지 않다.
물로 입을 헹구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 밝고 상쾌한 아침의 시작이다.
요즘 많은 일이 있다 보니까 너무 까칠해져 있었다. 카페 사장이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놀라겠어.
평소처럼 눈웃음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TV를 틀었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장이라는 남자가 뉴스 패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장]
[이재혁]
지적으로 생긴 젊은 남자였다. 작업복을 걸치고 있지만 관료직 특유의 정장 태가 났다. 앵커가 차분히 손깍지를 끼며 물었다.
[S급 헌터 이지아 씨의 우울증 기사가 현재 이슈인데요. 세간에서는 이지아를 던전에 출입시켜도 되나 하는 의문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장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조건 들어가야 합니다.]
[아, 네, 이지아가 아니면 안된다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재혁 본부장이 판넬의 사진들을 가리켰다.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어비스 던전이 발견되고 지난 1년간 네 개의 국가에서 추가로 비슷한 던전이 발견됐습니다.
미국, 캄보디아, 영국, 일본 등이 있습니다만, 현재 캄보디아는 물론이고 영국과 일본도 공략을 실패한 상황입니다.]
[미국은 성공한 겁니까?]
[아뇨, 아직 시도도 안 했습니다. 3개월 전 협회로 자료들을 공유해달라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위 사실로 보아 아무래도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거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그게 이지아 씨가 공략대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와 어떤 관계입니까?]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자면 대한민국의 헌터들이 일본과 영국보다 우세는 아닙니다. 미국은 당연히 비교할 것도 없죠.
그런데 상황이 어떻습니까?
미국은 한국과 일본, 캄보디아, 영국의 실패 사례를 보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존의 던전과 궤를 달리한다, 이 말씀입니다.
던전 공략이란 게 단순 전력만으로 해결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합니다.
당연히 여기서 랭킹 1위 헌터 이지아의 참석은 공략에 있어서 선택이 아닌 강제가…….]
TV를 꺼버렸다.
앓느니 죽지.
출근 준비나 하자.
*
백미러로 조수석의 이지아를 살폈다.
창가에 머리를 살짝 기댄 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볼 게 뭐 있나 싶다.
자동차가 자동차 꽁무니를 따라 줄줄줄 이어져 있을 뿐이다. 평소 같은 서울이다.
“무슨 생각해?”
“응?”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서.”
“그냥, 이것저것.”
이것저것.
가끔 내가 이지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어땠을까.
협회가 그녀에게 한 짓들을 나열하면 정말 끝도 없었다.
협회는 16살의 이지아를 영웅으로 만들어놨다. 레드 게이트 당시 서울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민적인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완벽한 히어로였다.
얼굴도 예뻤고, 각성 전부터 품행은 단정 바르며, 재능은 역대급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유례없었다.
가만히 놔뒀어도 금방 그 자리에 섰겠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과한 관심을 받았다. 협회는 프로젝트의 성과만 우선시하느라 정신적인 이상 신호를 무시했다.
그래서 멘탈 터지고 무너졌다.
어비스 던전 공략에 실패했다. 길드가 아닌 협회 차원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협회장은 단체의 잘못을 개인 한 명에게 모두 몰아넣었다.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열여섯부터 몬스터 잡는 일만 배워왔기에 사회생활도 잘 모르는, 정신 미숙한 여자아이.
쉽게 말해 욕받이로 내세운 거다.
그로 인해 자살 직전까지 갔다.
그걸 내가 해결해줬다.
그녀에게 남은 건 S급 헌터라는 명함뿐이었지만, 새 시작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길드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협회장 옷 벗긴 게 아니꼬워서 그걸 또 방해했다. 이지아가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통과시켜주겠다면서.
미친 새끼들.
그것도 내가 해결해줬다.
길드는 수월하게 자리를 잡았다. 바스타드라는 괴상한 이름을 얻어내고 사옥을 구했다. 송 팀장, 이지혜, 나예정, 홍보팀장, 운영팀장, 분석팀장 등 직원과 헌터들도 들어왔다.
랭킹 1위인 이지아와 그녀의 뒤를 잇는 유망주 한유정이 속해 있었다.
예능 방송은 대박 났고, 몬스터 게이트에서 지대한 활약을 했다.
이지아의 인생이 드디어 순항을 탔다.
그런데 이번엔 2차 공략대에 참석하라고 기습적으로 발표하고, 여론부터 움직여서 그녀를 옥죄였다.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이다. 어느 누구도 모를 거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버리고 싶겠지. 갑자기 협회로 쳐들어가서 직원들 머리를 전부 터트려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을 거다.
그런데도 항상 말없이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다. 이게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것 마냥, 다른 사람들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
이지아가 날 보살이라고 가끔 말하지만, 진짜 보살은 그녀였다.
“지아야, 너무 걱정하지 마.”
라디오를 틀며 말했다.
협회는 현재.......
“던전에서의 일은 헌터가 하는 거지만──”
이지아가 빙긋 웃으며 내 말을 툭 끊는다.
“던전 밖에서의 일은 그냥, 매니저인 너한테 맡길게.”
음.
“전에 말했었잖아. 나도 알아.”
이지아한테 들으니까 쑥스러운데.
내가 저런 낯간지러운 말도 했었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꾸욱 줬다.
지금부터 여론전이었다.
협회는 이지아에게 유명 헌터로서 실체가 없는 ‘사회적 의무’를 들먹일 거다. 사람들의 목숨을 인질 삼아서.
이에 대응할 패가 몇 개 우리 손에 쥐어져 있었다.
우울증.
화산 길드 대표가 협회장과 손잡고 공개해버린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제 와서 말하는 우울증이 갑작스러운 꾀병으로 보이진 않을 거다.
이걸로 끝나면 그림이 좋게 그려진다.
하지만 협회에서 막무가내로 나가면 우리도 강경수를 두어야 했다. 까버리고 우울증 때문에 못 한다고 하면 잡아떼면 그만이긴 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끝나면 여태까지 이지아에게 우호적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반전 될 수 있었다. 나름 자기들 목숨줄이 걸린 상황이니까.
그건 따로 해결 방법이 있었다.
핸들을 꺾으며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이번에 다큐 예고편 나간 거 봤어? 밖에서도 다들 그 말만 하고 있는데.”
“응, 당연히 봤지. 근데 그거 나밖에 안 나오더라?”
당연했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최 작가랑 임 피디한테 으름장 놨으니까.
“방송은 최대한 너 위주로 나갈 거야. 본 방송 찍어서 내보내면 반응들 지금보다 더 뜨거울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그거 보면 아무도 욕 못하지. 이천 명 구한 사람을 욕하면 그건 음, 보통은 돌팔매로 머리 찍힐만한 개짓거리거든.”
이천 명의 생존자가 나온 기적적인 결과를 전문가들은 세 가지의 이유로 설명했다.
첫 번째, 군과 협회가 빠르게 대응했다.
철원군이라는 장소를 생각하면 5시간 만에 구조대를 꾸려서 찾아온 건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두 번째, 정부의 뛰어난 외교력 덕분에 유엔의 워슈트 부대를 구조대로 기용할 수 있었다.
유엔은 워슈트 부대를 원래 분쟁국과 제3세계에나 보내준다. 국력이 강한 나라, 그중에서도 땅덩어리가 좁아 대응이 즉각적인 한국에는 사실상 파견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가능하게 했다.
세 번째, 게이트 내부에 S급 헌터 이지아가 있었다.
위 세 가지 모두가.
실상은 전부 바스타드 길드에서 해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이지아, 한예림 셋이 모든 걸 해냈다.
한예림이 철원군의 이상을 빠르게 감지하고 협회와 군을 움직였으며, 피스 메이커는 전직 부소대장인 나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고, 이지아는 일부가 아닌 이천 명 전원을 보호하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증명이 불가능했다.
한예림은 군 공적을 인공위성 개발부의 직원에게 넘겼고, 나는 전직 스나이퍼라 정체를 공개하면 안 된다.
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는 모든 게 증거물로 남아있었다. 여기서 방송상 편집이 조금 가해질 거다.
내 업적을 이지아의 것으로 연출해 방송한다면, 이천 명의 인원을 오롯이 그녀 혼자 구한 게 된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사람들은 그녀의 업적과 별개로 도덕적인 결함을 지적할 것이다.
그래서 이지아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걸 기사로 내보내 다시 환기시켰다.
던전에 들어가지 못할 변명거리로서 충분했다.
이미 이천 명을 구한 영웅이 우울증 때문에 던전을 못 들어간단다.
누가 욕하겠는가.
그러니까,
절대로,
협회가 어떤 수를 쓰든 간에,
그들의 뜻대로는 안된다.
이미 그런 판을 내가 만들어 놨다.
S급 헌터 이지아가 없으면 공략 자체가 힘들다, 이 말입니다!
저거 전부 개짓거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