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02화 (102/112)

〈 102화 〉 오늘은 슈퍼 스타 (8)

* * *

이지혜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시사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고작 18살이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렇게 흥분해서 기다리는 게 썩 어색하게만 보였다.

나예정이 고갤 저으며 물었다.

“너는 어울리지도 않게 왜 이런 걸 챙겨봐? 맨날 예능이나 음악 방송만 봤으면서?”

“언니, 이거 지금 헌터들한테 엄청 화제인 거 몰라? 이지아 선배 나오잖아. 10년 만에 열린 게이트고. 헌터 지망하면 당연히 챙겨봐야지. 인터넷도 난리야.”

앞서 방영한 1화는 사실상 예고편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문가들 나와서 왜 게이트가 열렸나, 게이트 생존자들이 2천 명이 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생존자들 인터뷰를 넣은 흔하디흔한 방송.

다만 다른 방송들과의 차이점은 바로 내부 영상의 존재였다. 그것도 전문 방송 장비로 찍은 듯 아주 선명한 영상.

이거 한 번 보란 듯 생존자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는 장면을 꾸준히 예고편으로 내보냈다.

관심이 안 쏠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영상 중간중간에 출연한 이지아는 기대감을 심어줬다.

1화 시청률 22퍼.

다큐 방송임을 생각하면 요즘 시대에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이다.

그 정도나 되니 이지혜가 관심을 가진 거다. 그녀가 핸드폰을 확인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난리였다.

이지아는 항상 폭풍의 눈이었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게이트 내부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한 걸로 알려졌고, 현재 어비스 던전 참가 이슈로 한창 떠들썩하며, 혼자 살아남기에 출연해 예능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지혜는 이지아가 부러웠다. 일거수일투족이 전국민적 관심사가 된다. 어릴 때부터 관심받길 좋아하는 그녀가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은 당연히 이지아였다.

식당가서 밥만 먹어도 이슈가 되는 삶은 대체 어떨까.

늘 궁금했다.

이지혜가 베개를 끌어안으며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이지아 선배처럼 될 거야.”

“퍽이나.”

“꿈도 말 못 해? 내 나이 때는 대통령이라고 말해도 다들 진지하게 들어줘야 하는 거야. 열일곱 살 소녀잖아.”

그래서 하루하루 기다린 방송이었다.

이지아의 활약만 기다리며, 그녀가 받을 관심에 자신을 대입해보며 기대했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광고가 끝나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어두컴컴한 방안.

중년 남성이 자신을 소개하며 의자에 앉았다. 철원군 게이트 때 바리케이드를 막은 생존자였다.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김현우요? 그, 양복 입은 젊은 양반 맞죠? 얼굴 사근사근하게 생겨서. 본인이 이지아 매니저라고.」

「요즘 예능에서 떠들썩하대요? 당연히 알죠. 나는 그 양반 뉴스에서 볼 줄 알았는데 예능에 나오니까 깜짝 놀랐어. 사실 매니저인 것도 반쯤은 안 믿었거든요.」

「그런데 무슨 용감한 시민상 받을뻔했다면서요?」

중년 남성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내가 그 양반이었으면 벌써 뒤집어엎었어.」

「뉴스에서는 지금 이지아만 주목하고 있는데, 그때 당시에 총 들고 싸웠던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거든요.」

「주목 받아야 할 건 이지아가 아니라 매니저인데.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화면을 보던 이지혜가 눈썹을 찌푸렸다.

“어? 이게 뭐야, 지아 선배는? 왜 뜬금없이 2팀장 얘기가 나와?”

인터뷰 구도 자체가 지금 누굴 주인공으로 잡았는지 뻔했다. 이지아의 업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그때 백화점 내부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안에 꽁꽁 숨어있어서 밖의 전투는 잘 보이지도 않았거든.」

「팀장님이 나이가 어리잖아요. 생존자들 증언이라 봐야 양복 입은 매니저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정도인데. 당연히 S급 헌터 이지아가 전부 한 거처럼 보이겠지. 하늘을 펄쩍펄쩍 뛰며 주먹으로 다 때려 부쉈는데.」

「그런데 제가 하나부터 열까지 옆에서 다 지켜봤단 말입니다.」

중년 남성이 주절주절 떠들었다. 방송에서 조명하는 건 이지아가 아닌 김현우였다.

슬쩍 본 커뮤니티도 난리였다.

김현우가 누구냐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질문부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들의 반응까지.

활화산처럼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심드렁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나예정도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녀가 상체를 TV 쪽으로 기울이며 영상에 집중했다.

키 작은 여자가 딱딱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고갤 꾸벅 숙였다.

「어, 안녕하세요. 최수정입니다. 현재 시청 중이신 ‘철원군 게이트 속으로’의 메인 작가구요.

철원군 게이트 때 혼자 살아남기 팀 서브 작가로 김현우 팀장과 함께 촬영을 진행했었습니다.」

최 작가가 허공에 팔을 퍼덕이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방송 촬영차 철원군 백화점에 들렀었거든요? 얼탔었죠. 10년 만에 열린 게이트잖아요. 다들 꿈에도 몰랐어요.」

「팀장님 얼굴 보시면 알겠지만, 뭐랄까, 엄청 선하게 생겼잖아요? 웃상이라고 해야 하나. 항상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고. 첫 만남 때부터 화내는 얼굴이 연상 안 됐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얼굴 표정 싹 변해서 저어기, 멀리서부터 빠르게 걸어오는 거예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백화점 내부에서 가장 먼저 빠르게 이상 사태를 눈치채셨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감탄밖에 안 나오는데, 10분도 안 돼서 바로 상황 정리했었어요. 제작진들 시켜서 백화점을 외부랑 고립시…….」

“지랄.”

나예정이 작게 핀잔을 줬다.

“매니저가 해봤자 고작 매니저지. 무능력자가 게이트에서 얼마나 활약했다고 저렇게 칭찬해? 안 그래?”

홀린 듯 TV를 보던 이지혜가 뒤늦게 대답했다.

“어? 미안, 언니. 못 들었어. 방금 뭐라고 했어?”

“무능력자가… 아니, 넌 또 뭘 그렇게 집중하면서 보고 있어?”

“그냥.”

인터뷰가 끝나고, 김현우의 활약상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거 계속 보니까 재밌네.”

「뭣들하고 있어? 내가 지금 귀머거리 병신들한테 지껄인 거야?! 전부 뒤지게 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움직여!!」

* * *

교양국 회의실.

최 작가가 손을 모으고 중얼거렸다.

“할머니, 나 진짜 열심히 했어. 카메라 들고 팀장님 쫓아다니고, 몬스터 게이트에 갇히고. 그러니까 시청률 30퍼센트 넘겨보자. 가능하지? 응?”

임 피디가 퀭한 눈가를 주무르며 물었다.

“최 작가, 뭐해?”

“돌아가신 할머니한테 기도하고 있었어요. 시청률 30퍼 넘겨달라고.”

“이거 안돼도 최 작가는 방송국 옮기면 그만이잖아. 뭘 그렇게 필사적이야? 정규직도 아니고 프리랜서면서.”

최 작가가 책상을 내려치며 외쳤다.

“저랑 같이 일하던 언니들 배신하고 나왔잖아요! 이거 실패하면 소문나서 돌아갈 데 없단 말이에요!”

“그, 그래?”

교양국 폐지되면 망하는 건 결국 똑같다는 의미다. 일개 서브 작가인 그녀는 교양국 폐지에 대해 무지했다. 일주일 전 갑자기 결정 났는데 당연했다.

“할머니, 제발!”

임 피디가 턱을 괴며 TV를 바라봤다. 김현우가 버스 위로 올라가 연설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해, 아주 필사적인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약 30분 전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몬스터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하신 분들은──」

“글쎄.”

그가 하품을 길게 했다.

김현우가 기획을 갈아엎게 되면서 촬영을 처음부터 다시 들어갔다. 기한 안에 편집까지 마무리한다고 일주일간 두시간씩 쪽잠 잤다.

이제는 긴장이 탁 풀려서 노곤노곤한 게 눈을 감으면 곧바로 잠이 들것만 같았다. 그가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로 망하는 그림이 도저히 안 그려지는데.”

시청률은 까보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혼자 살아남기에서 이지아의 이미지가 그리 좋게 변할지 누가 알았을까.

아마 편집하던 당사자도 몰랐을 거다.

하지만 임 피디는 한 가지 확신을 가졌다.

이거만큼은 절대 망할 수가 없다고.

“내 방송 경력 10년 중에 이만큼 좋은 소재도 처음 만져봤어. 화제성부터 다큐로서 콘텐츠, 재미까지 어느 하나 놓친 게 없잖아.”

“화제성은 언제 팍 꺼질지 모르는 거고! 콘텐츠는 훌륭하지만 재미는 주관적인 거고!”

최 작가가 다다다, 쏘아붙이자 임 피디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처음 인사했을 때부터 김현우가 귀띔해줬지만, 조그만 체구에 맞지 않게 진짜 강심장이었다. 그러니까 카메라 들고 김현우 쫓아다녔던 걸 거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아니, 안심하라 그 말이지, 내 말은….”

“목숨 걸고 찍어왔더니 교양국은 폐지 직전이라는데, 제가──!”

임 피디가 갑자기 반색하며 카메라를 가리켰다.

“어어, 저거 봐! 저거!”

최대한 편집에 공을 들인 장면이 등장했다.

최 작가가 눈을 번뜩였다.

“나왔다…!”

김현우가 겁에 떠는 사람들 앞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워슈트를 착용한 채로.

「다들 살아남읍시다, 시발.」

* * *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

이재혁 본부장은 가방에서 캡슐 통을 꺼냈다. 그가 손을 덜덜 떨며 알약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어우, 씨발. 속 쓰려 죽겠네. 위에 빵꾸 뚫렸나. 건강 검진할 때 되긴 했는데.”

직장인의 아침이란 늘 괴로운 법이다. 하지만 요즘은 유독 그게 심했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오늘은 어떻게 버티지’였다.

협회 안팎으로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이사회는 어비스 던전 공략에 실패하길 바랐고, 여론은 당연히 성공시키길 바랐다.

거기에 기자들은 혹시 떡밥 떨어지는 거 없나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어제는 잠깐 출근길에 붕어빵 하나 사서 먹었는데 그걸 찍어서 이상한 기사를 작성했다.

대충 일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걸 누가 믿겠냐마는, 믿는 사람이 나온다. SNS에서 벌써 욕을 왕창 얻어먹은 그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숨만 나왔다.

이제 슬슬 한계였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동료가 필요했다.

그게 김현우였다.

그래서 협회 눈을 피해서 몰래 접촉했다. 커피 한 잔을 나누며 협회 정치 상황을 전부 밀고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책상에 꽂힌 삼국지 책을 꺼냈다.

본부장 자리에 앉기 전까지는 이재혁도 나름 출세욕이 있는 인물이었다. 나이 꽤나 먹은 사람들이 삼국지와 바둑을 좋아하기에 뒤늦게 부랴부랴 배운다고 고생 많았다.

지금 와서야 다 개짓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국지의 몇몇 장면들은 그도 마음에 들어 했다.

이재혁은 조심스레 종이를 넘겼다. 찾던 장면이 나왔다.

「공명 선생은 어딨는가?」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삼고초려.

제후였던 유비가 백면서생이던 제갈량을 등용하고자 먼 길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 김현우는 제갈량보다는 조자룡이 어울렸지만.

아무튼, 뛰어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세 번쯤은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노력이라도 들여야 한다.

‘그래, 이제 한 번인데. 실망하지 말자.’

아직 두 번 남았다. 서류 가방을 주섬주섬 싸던 도중이었다.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비서의 번호였다. 그가 불안한 목소리로 수화기에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본부장님, 이사회 측에서 슬슬 소집 날짜 정하랍니다.

“아니, 그건 제 권한인데 왜 이사회에서──”

­이런 소식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으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들릴 데 있으니까 먼저 퇴근하세요.”

비서한테 따져봤자다.

전화를 끊은 본부장이 의자를 뒤로 눕혔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가 갑자기 눈을 까뒤집고 발작했다.

“끄윽, 끄으으윽!! 이사회 영감태기들, 이 십새끼들이……!!”

김현우와 이지아가 대응하기 전에 처리하길 바라는 거다. 이지아가 공략대에 포함되면 이건 뭐, 그대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이나 완전무결한 영웅이지, 조금만 내부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서로 못 본 척 무시하면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 이건 망하라고 고사 지내는 수준이었다.

그가 손을 덜덜 떨며 약통을 뒤졌다. 물과 함께 약을 삼키던 그가 문득 TV가 켜진 사실을 깨달았다.

다큐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철원군 게이트­진실 속으로’, 이지아의 여론전을 위한 방송이었다. 우울증과 업적을 방패 삼아 공략대에서 이지아를 빼내려고 했던, 김현우의 계략이었다.

이사회에서 일찌감치 파악하고 함정을 파뒀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다.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TV를 끄려던 이재혁이 멈칫했다.

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워슈트를 입은 김현우가 거인의 등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곧 거인의 귓속에서 폭발이 터졌다. 김현우가 낙하산 펼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오직 이재혁만이 눈치챘다.

김현우의 숨겨진 의도를.

철저하게 김현우가 기획한 영상이었다. 전부 그의 의도대로 연출했을 터다. 이건 이재혁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협회를 찌르는 비수였다.

그가 손을 잡고 작게 중얼거렸다.

“유엔, 유엔, 유엔, 유엔…….”

화면이 바뀌었다.

워슈트를 입은 군인들이 김현우의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지나갔다.

그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이 새끼 헌터한다고 전역하더니 빌빌거리고 있네. 왜 매니저나 하고 있냐?월급 여기보다 많이 줘?」

「씨발아, 너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아프리카에서 바로 왔어.」

「고생하셨습니다, 중사님.」

이재혁이 무릎을 꿇고 괴성을 질렀다.

와룡이 일어났다.

* * *

[그러니까 정리하면]

[김현우가 먼저 몬스터 게이트가 열린 걸 눈치채고 백화점 사람들 밖으로 못 나가게 고립시켜놨고,

몬스터들 튀어나오는 와중에 고속버스 개조해서 생존자 구출하러 다녔고,

구출한 생존자들로 구조대랑 자경대 꾸려서 몬스터들 밀려드는 거 막아냈고,

워슈트 입고 폭탄 짊어진 체로 대형 몬스터 귓속에 기어들어 가서 죽였고,

알고 보니까 성동중학교 생존자 2인 중 한 명에 유엔군 워슈트 특수부대 소속이었던 거네?]

[지금 영화 찍냐, 시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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