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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들이 내게 집착한다-103화 (103/112)

〈 103화 〉 오늘은 슈퍼 스타 (9)

* * *

바스타드 소드에 아침부터 연락이 폭주했다.

팀장들이 분주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기자님, 반갑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방송 보셨군요. 저희도 근데 이게 갑자기 터진 거라 지금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돼서요. 2팀장님 아직 출근도 안 했습니다. 나중에 보도 자료 묶어서 보내드릴게요. 네? 2팀장님 전화번호요? 그건 개인정보라….”

“여보세요? 네네, 방송국이시라고요? 2팀장이요? 혼자 살아남기 때는 본인이 방송 출연 의사 없다고 해서요. 일단 한 번 물어보고 길드 자체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송 팀장이 신경질적으로 넥타이 끈을 풀었다.

“김현우 씹… 이런 걸 풀 거면 홍보팀이랑 미리 입을 맞춰놨어야지. 다짜고짜 방송국에 풀어버리면 어떡해?!”

그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옆자리에 앉은 운영팀장이 의자를 질질 끌고 다가왔다.

“1팀장님, 그래도 다행이네요.”

“뭐가?”

“뭔진 몰라도 새파랗게 어린 신입한테 당했다고 자존심 엄청 상해했었잖아요. 그때 소주 마시면서 눈물도 쪼끔 보였는데, 상대방 경력이 저 정도면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뒤에서 전화 받던 분석팀장이 수화기를 가리며 끼어들었다.

“명예로운 죽음.”

“아, 맞다. 명예로운 죽음, 그런 거 아닐까요? 상대방이 나빴던 거죠.”

송 팀장이 버럭 소리쳤다.

“지랄, 매니저랑 군인 업무가 같냐?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가서 전화나 받아!”

“홍보팀 직원을 빨리 더 뽑든가 해야지.”

운영팀장이 투덜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송 팀장이 김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전원이 꺼져있어──]

새벽에 기사 뜬 거 확인하자마자 전화부터 걸었는데 계속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이렇게 큰 건 던져놓고 설마 잠수탄 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니저 업무 자체가 워낙 고강도 노동이라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인간이 한둘이 아니었다.

“책임감 없이 나갈 놈은 아닌데….”

그가 불안감에 작게 중얼거릴 때였다.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울렸다. 회사 대표 한예림이다. 퀭한 눈을 한 그녀가 커피를 쯉쯉 빨며 들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신문지를 든 채로.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바쁠 거 뻔하니까 같이 전화 받으려고 왔죠.”

따르릉!

그녀가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으려던 때다. 송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대표님! 혹시 2팀장 그 자식 어디 갔는지 아세요?”

“일하러 갔어요. 용감한 시민상 받고 온 데요.”

“네? 전화도 꺼놓고요?”

“기자들한테 전화가 워낙 많이 와서 꺼놨을 거예요.”

의자에 앉은 한예림이 다리를 꼬며 책상에 엎드렸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일 벌이는 사람 따로 있고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는 건지.”

한예림이 손가락으로 송 팀장의 책상을 가리켰다. 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일단 전화부터 받죠.”

*

“김현우는 민간인임에도 몬스터 게이트라는 특수 상황에서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솔선수범 움직였으며──”

숨 막히는 연설이 한차례 끝나고 철원군 군수에게 표창장을 받았다. 단상 뒤에 앉아있던 사람들과 악수를 하다가 맨 끝 열에 있던 중년 남자 앞에 멈춰 섰다.

국방부 차관이다. 그가 내 어깨를 두들겼다.

“입 간질간질해서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지 모르겠네. 시민들 구출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욕 옴팡지게 처먹었을 거 그나마 덜 먹었어.”

국방부 차관이 대체 왜 용감한 시민상 수여식에 있나 싶었는데, 감사 인사 전하려고 굳이 찾아왔나 보다.

군대 있을 때는 감히 쳐다도 못 봤을 양반이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관등 성명이라도 댈까요?”

“전역한 사람이 관등성명은 무슨.”

“장교들은 전역하고도 선배님, 선배님 하던데요.”

“선후배 문화가 그렇게 부러우면 지금이라도 육사 올래요? 바로 꽂아 줄 수 있는데. 사관학교장이 내 바로 위 기수 선배거든. 그 선배가 날 아주 아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제 곧 스물일곱이라 자격 요건이 안됩니다.”

“ROTC도 있는데. 학교장이 나보다 한 기수 후배야. 이놈한테 말만 하면 그냥 바로….”

“제가 고졸이라, 괜찮습니다. 사양할게요.”

“질색하는 거 봐라. 군바리 서러워서 쓰나.”

빙긋 마주 웃으며 작게 포옹했다. 구석에서 카메라 플래시들이 연달아 터졌다. 국방부 차관이 미련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내가 줄 대줄게. 오면 군 영웅이야. 장기 걱정 말고──”

홀가분하게 털어내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철원군 게이트 당시 활약했던 생존자들이 차례대로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았다.

용감한 시민상이라기에는 규모가 컸다. 나랑 이지아 때문이다. 기자들도 워낙 몰려왔고 언론의 관심도 쏠리니까 거의 훈장 수여식 규모로 진행됐다.

단상에 올라간 이지아도 표창을 받았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박수를 짝짝 쳤다. 웨이브 잘 들어갔네. 기사에 예쁘게 잘 나가겠다.

“팀장님.”

옆자리에 누군가 말을 걸었다.

철원군 게이트 당시 활약했던 예비군 동대장이다.

“소령님도 오셨었네요?”

“벽에 걸어두면 때깔 좋거든요. 밖에서 보니까 이제야 좀 20대 청년 같네. 참, 방송 잘 봤어요.”

다큐 시청률은 32퍼가 나왔다. 최 작가 말로는 역대 다큐 기록을 갈아치웠단다. 교양국 폐지가 철회 될 거라고 어찌나 기뻐하던지.

시청률 32퍼.

단순 계산으로 전 국민 3분의 1이 봤다는 건 아니지만, 실제 영향력을 생각하면 현재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수준이다.

조간신문의 정면에는 전부 다큐에 관한 것들로 도배돼있었다.

그러니까, 내 얼굴이.

“멋지게 잘 나왔죠?”

“장난 아니던데요. 아주 그냥 영웅처럼 나오셨어. 아까 보니까 공화당 의원도 와있던데, 보셨어요?”

“네? 국회의원이요?”

“팀장님한테 공천 약속하러 왔을걸요. 2천 명을 구한 사람이고, 지금 얼굴 제일 많이 팔린 사람인데, 당에서 얼마나 탐나겠어요.”

소령이 부럽다는 듯 쳐다본다.

“4년 뒤에는 금배지 달고 계신 건 아닌가 몰라.”

멋쩍게 웃으며 대꾸했다.

“정치에 뜻 없습니다.”

“누가 정치에 뜻을 가지고 입회해요? 판검사 출신 의원들은 무슨 정치 하려고 사법 공부했었나. 기회 되니까 왔을 때 잡는거죠. 서른에 초선 들어가고 2천 명 구한 것만 두고두고 우려먹어도 4선 찍고 마흔여섯에 중진 돼있을 텐데. 만약 제가 팀장님이었으면 일단 이번 총선 때는 선거캠프 본부장을──”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아? 게이트에서 임무 맡길 때는 과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정치 얘기 시작하니까 말이 엄청 많아진다.

중간에 말을 싹뚝 잘랐다.

“글쎄요. 제가 하려는 일 하고는 전혀 맞지 않아서요.”

“아무리 그래도 매니저보다는 국회의원이 때깔 좋지 않겠어요?”

“때깔이야 좋겠죠.”

표창을 받은 이지아가 단상에서 내려왔다. 눈을 마주친 그녀가 카메라를 의식하며 눈꼬리만 슬쩍 내리깔았다.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그걸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

카페에 들려 커피 여러 잔을 포장했다. 밖으로 나온 이지아와 나는 회사 근처를 걸었다.

둘 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얼굴 까고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금 여기서 이지아나 나나 둘 중 한 명이라도 선글라스를 벗으면 아마 난리 나겠지.

“지아야, 나한테 묻고 싶은 거 없어?”

“응?”

“그냥. 이것저것 있잖아. 피스 메이커나, 레드 게이트나, 이번 방송 기획을 갑자기 왜 바꿨나. 전부 너한테 속 시원하게 말해준 적 없던 거 같아서.”

나는 이지아에게 단 한 번도 무언가를 밝힌 적이 없었다. 철원군 게이트 때도 그랬고, 이번 다큐 방송 때도 그랬다.

이지아 관점에서 보자면 내 행동은 어떻게 보일까.

자기 위주로 방영할 계획이었는데, 방영 직전에 전부 갈아엎고 주인공을 나로 바꿔버렸다.

이지아가 게이트에서 한 역할은 나보다 컸다. S급 헌터인 그녀가 없었다면, 생존자는 전무했을 거다.

하지만 방송에서 의도적으로 이지아의 역할을 축소했다. 나를 유명하게 만들고, 내 업을 대중들에게 과대 포장하기 위해.

이지아를 위한 행동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공을 가로챈 거나 마찬가지다.

객관적으로도 그게 맞았다.

하지만 이지아는 다큐가 방영하는 날까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내 계획을 그녀에게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다. 무슨 의도를 갖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바쁘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다 보니까 같이 터놓고 말할 기회가 없었다. 그게 이지아의 일에 관한 거면서도.

이지아가 턱을 괴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그녀가 작게 웃으며 고갤 저었다.

“글쎄, 나는 그런 것보다는 다른 게 좀 걱정됐는데.”

“응?”

“요즘 많이 지쳐 보여서, 일 그만두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그게 좀 무서웠어.”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카페 거울에 얼굴을 비췄다.

볼이 홀쭉 들어간 게 초췌해지긴 했다.

그런데 그거야 당연했다.

철원군 게이트에서 그 고생을 하고, 혼자 살아남기 방송 찍고, 유정이 삼촌 만나고, 다큐 갈아엎어서 처음부터 기획을 다시 준비하는 등.

워낙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까.

“그런 거 말고.”

이지아가 고갤 갸웃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일 자체에 회한 비슷한 걸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질려버렸다고 해야 하나, 옛날에 너랑 만나기 전의 나나 유정이처럼…….”

“…….”

“뭐야? 왜 그런 얼굴을 해?”

“어, 아니. 놀라서.”

“왜 놀랐는데?”

이지아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묻는다. 날카로운 시선 때문에 뺨이 따갑다.

집에서 눈치 빠른 건 한유정뿐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구석에 잠깐 얼이 빠져있었다.

이걸 솔직하게 말하면 실례겠지?

“그, 바로 맞춰서…?”

“왜 말끝을 흐려? 아닌 거 같은데.”

“아냐, 맞아.”

“진짜?”

“맞다니까. 지아야, 내가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어?”

“아니…?”

“왜 이번엔 네가 말끝을 흐려.”

어느새 우리는 회사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가만히 기다렸다.

이지아의 말이 맞았다.

요즘 회의감을 살짝 느끼고 있었다. 일은 괜찮았다. 만약 내가 매니저가 아니었다면 이지아와 한유정을 도와줄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한숨을 푹 내쉬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헌터 업계가 서로 속고 속이는 판이란 건 정말 꿈에도 몰랐다.

이지아는 3층 휴게소에서 내렸고, 나는 7층으로 향했다.

홍보팀장에게 커피 좀 돌려야지.

아마 지금 나 때문에 제일 많이 바쁠 거다.

복도를 터덜터덜 걸을 때였다.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꼴랑 10명 남짓한 회사에 안 익숙한 얼굴이 어딨겠냐마는,

이지혜였다.

그녀가 날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서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 뒤로 슬금슬금 꽁무니를 내빼려 한다.

방송 봤겠지?

시청률이 32퍼가 나왔다.

뉴스에서 떠드는데 관심 생겨서라도 찾아봤을 거다.

짓궂은 미소를 감추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당황한 이지혜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

떠나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으니까 불안한 얼굴로 내 눈칠 살핀다.

“그, 혹시 제가 실수라도…?”

“이제 내가 반말 쓰는 게 안 불편한가보다?”

이지혜가 땀을 뻘뻘 흘린다.

짓궂은 장난을 치려다가,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냥 웃음만 터트렸다.

한유정이랑 동갑이다.

17살짜리 애를 고작 권위로 찍어누르면 얼마나 꼴사납고 우습겠어.

역시, 애들한테는 세게 못 나가겠다.

이지혜의 양 볼따구를 잡고 쭉쭉 당겼다.

“무시하지 말고. 얼굴 찌푸리지 말고.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인사하고 지내자. 알겠지?”

“넵…!”

커피를 뒤적이며 물었다.

“하나 마실래?”

“아뇨, 괜찮은데….”

“넉넉하게 사서 어차피 남아.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저, 그럼 아메리카노로….”

커피 두 잔을 건네며 이지혜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훈련 힘내고. 이건 유정이 갔다 줘.”

*

커피를 받은 이지혜가 멍하니 김현우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김현우가 복도 끝에서 사라지자 그녀가 작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개 멋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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