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오늘은 슈퍼 스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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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이 네모난 안경을 괜히 고쳐 썼다.
‘비싸기만 더럽게 비싸고 아무런 효과도 없네.’
우황청심환 먹은 건 어디 갔는지 심장이 계속 쿵쾅쿵쾅 뛰었다.
회의실에는 그를 제외하고 열여섯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좌측에 앉은 아홉이 현재 협회를 주무르는 협회장 라인이었고, 우측에 초라하게 앉은 여섯이 그나마 부협회장 라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상석에 앉은 부협회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재혁 본부장은 수세에 밀려있는 세력에 붙어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이렇게 소집한 겁니까?”
좌측 가장 앞줄, 협회장 라인 상임 이사의 질문에 이재혁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부협회장이 이사회를 소집해서 판을 깔아줬다. 여기서부터는 그의 일이었다. 그가 목청을 가다듬고 힘껏 말했다.
“어비스 던전이라는 위험이 대한민국에 도사리고 있는 이때,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장이라는 과분한 자리를 제게 수여 해줘서 감사…….”
“바쁘니까 용건만.”
“미국에서 어비스 던전의 최소 공략 기간을 2년으로 잡았습니다.”
이재혁이 리모컨 버튼을 눌러 회의실 스크린에 자료를 띄었다. 미국 협회에서 분석한 내용이 줄줄이 떴다. 어제 날밤을 까서 번역했다.
어비스 던전은 한국에서만 열린 게 아니다.
캄보디아, 일본, 영국, 미국 등.
한국에서 문젯거리가 된 어비스 던전과 동일한 던전이 발견됐으며,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공략에 실패했다.
“한국을 포함한 4개국에서 얻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어비스 던전을 2년 안에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도 그 안에 절대 해결하지 못합니다.”
인선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이지아만 봐도 전투력과 정신력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었다. 강한 신체에 강한 정신력이 깃드는 것도 정도가 있지, 헌터들이 도사도 아니고 염불 외우며 정신 수양을 하지는 않았다.
공략 난이도는 역대급 수준인데, 던전 내부의 환경은 강인한 정신력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전투력과 정신력 모두 뛰어난 초인을 찾아야 했다. 그들을 던전에 갈아 넣으며 맨땅에 헤딩부터 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잡은 기간이 2년이었다.
한국이 미국을 앞서서 공략에 성공시킨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부협회장 라인 쪽 이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공략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인가?”
“아뇨. 협회 입장상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입에 담아서도 안 되고요.”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운 건 어려운 거고.
던전 브레이크가 잔류하는 와중에 ‘미국이 2년은 걸린다는데요?’ 라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던전 공략은 던전 공략대로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게이트, 웨이브, 크랙 등의 위협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굳이 2년간의 자료들을 따지지 않더라도요. 벌써 밖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공략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략 기간 동안 시민들을 위협하는 문제가 꾸준히 등장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에 전권을 위임했을 텐데. 2차 공략대와 더불어 어비스 던전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까지.”
이재혁 본부장이 웃는 얼굴로 작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자리가 그를 죽이기 위한 전기의자고, 이사들이 직접 앉혀놓은 만큼 얼굴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시한부 인생 아니던가.
이재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맞습니다! 협회에서 저의 능력을 인정해줘서 과분한 자리를 맡겨주셨죠.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은 던전 관리에 있어서 지나치게 유능했다. 국토 면적 대비 인구수, 훌륭한 치안, 뛰어난 헌터들까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한 희생은 20년간 레드 게이트와 철원군 게이트가 전부였다.
그리고 둘 다 불가항력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던전 브레이크는 20년간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20년이란 보통 한 세대가 교체되는 시기다. 한국은 던전 브레이크가 없어 PMC조차도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국가였다. 대부분의 전문 인력들은 한국에 잔류하지 않았다.
돈이 돼야 연구가 진행되고 전문가들이 남아있을 텐데, 일이 하나도 없었다.
비상사태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다.
“현재 게이트, 웨이브, 크랙 등의 재난 상황에 대처할 전문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충원이 필요합니다.”
“인사권에 대해서는 전부 위임했을 텐데?”
이사회에서는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에 대해 선을 딱 잘라 그었다. 어차피 실패할거 뻔하다. 욕 뒤지게 먹을 게 뻔한데, 거기에 괜한 참견을 했다가는 같이 책임지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전권을 위임하고, 고작 32나이의 이재혁을 나름 전문가라는 이유로 앉혀놓은 거다.
“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에 대한 인사권은 제게 있죠. 하지만 이렇게 부협회장님을 통해서 이사회 여러분들을 소집한 건 다른 게 아닙니다. 협회에 비상임 특별 고문이 필요합니다. 고문 선임은 이사회 권한이니까요.”
“특별 고문?”
“앞으로 몇 년간 대한민국은 게이트의 위협에 시달릴 겁니다. 협회 내부 시스템을 뜯어고칠 전문가와 자문위원이 필요합니다.”
이사회 일원들이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무슨 의도인지 재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재혁은 종이를 팔랑이며 말을 이었다.
“앞에 놓인 회의 자료들을 한 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느긋한 손길들이 움직였다.
사락, 사락.
회의실에는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이력서를 읽던 그들의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좌측에 앉은 상임 이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재혁이, 너 이 새끼, 무슨 장난질을 치려는 거야?”
이재혁은 뻔뻔스레 나갔다.
“세상 밖을 보십쇼! 여론이 원하고 있습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어차피 이사회에서는 그를 자르지 못한다. 모가지를 치려면 최소한의 구실이 필요했다.
평소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여론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들 말 안 듣는다고 책임자 갈아치우면 어떻게 보이겠는가. 그리고 거기에 또 누굴 앉힐 것인가.
좆같은 자리였지만,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한다.
최소한 공략에 실패하기 전까지는.
이재혁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연설했다.
“본 후보를 특별 고문으로 선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후보는 4년 동안 제3세계와 교전국들에 투입되어 수많은 몬스터 브레이크들을 해결했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제3세계는 던전 브레이크의 위험 속에서 생활했다.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은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범죄로 빠졌다.
헌터의 인력은 항상 부족했고, 종교나 정치적인 이유로 전쟁을 반복했다. 당연히 처리하지 못한 던전이 생기기 마련이다.
던전 브레이크로 사람들이 죽는다.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게 되면 당연히 치안이 안 좋아진다.
악순환에 반복이다. 던전 브레이크의 관리가 잘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숙련된 전문가들이 나오기 쉬운 구조였다.
가만히 있어도 던전 브레이크가 찾아왔으니까.
몬스터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만 따져봐도 한국이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후보는 세계 최고의 전투 부대에서 4년간 작전들을 수행했습니다. 비록 나이는 젊지만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대처 능력은 당연코 뛰어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3세계의 전문가들이 뛰어난 건 사실이나 그들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했다.
그렇다면 어느 집단이 제일 수준 높은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질문에는 모두가 똑같은 대답을 내뱉는다.
단 하나.
가만히 있는 던전 브레이크를 굳이 찾아가는 집단이 전 세계에 단 하나 존재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뒤져봐도 이만한 실전 전문가는 없습니다. 현재 한국에 던전 브레이크 전문가의 씨가 말라비틀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특별 고문으로서 이만한 인선은 없습니다.”
정부는 각성자들을 통제할 새로운 무력 수단이 필요했다.
핵이나 미사일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건 전쟁을 위한 병기지 국지전에 쓰이는 전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각성자들을 주전력으로 쓰는 건, 양복쟁이들 입장에서는 마땅찮았다.
인간을 전략 병기로 쓴다는 건 조금 복잡한 일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신경 써야 하고, 뛰어난 인력일수록 언제 영입 제안을 받아 길드로 넘어갈지 모르며, 개인 사정에 따라 전역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도구는 숫자로 간단히 통계를 낼 수 있다. 사용기한이 얼마고, 유지보수 비용이 얼마고, 구매 비용이 얼마고, 화력이 어느 정도 되고, 판매하지 않는 이상 유출되지도 않는다.
군대가 쓰기 가장 효율적인 무장 수단.
그게 워슈트였다.
그리고 워슈트의 개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강대국들은 국제 평화 기구인 유엔군을 이용해 빈민국에 군인을 파병했다.
데이터 수집을 목적으로 하기에, 그들은 유일하게 위험을 찾아가는 집단이었다.
즉, 전 세계 최고의 던전 브레이크 전문가는 당연히.
유엔 평화군이었다.
“이에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는! 본 후보를 협회의 비상임 특별 고문으로 선임하길 요청하는 바입니다!”
유엔군.
피스 메이커의 부소대장.
스나이퍼.
철원군에서 2천 명을 구해내 자신의 인성과 실력을 증명한 퇴역 군인.
이 모든 걸 시청률 32퍼센트짜리 방송으로 전국에 얼굴을 알렸다.
터벅, 터벅.
회의실 밖 복도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회의실 문 앞에서 멈췄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고개가 자연히 문 쪽으로 돌아갔다.
이재혁이 목을 가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들어와서 인사 나누시죠. 특별 고문 후보.”
끼익!
귀에 거슬리는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 *
이지아와 협회의 여론전 싸움은 협회의 승리였다. 그들이 내 능력을 데이터베이스에서 말소시킨 이상,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지아의 우울증이 단순 언론 플레이의 일환으로 변할 테니까.
그래서 깔끔히 포기했다.
그렇다고 2차 공략대에 이지아를 순순히 참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송 기획 갈아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내 위주로.
사실 내 업적을 공개한다고 협회에 위협이 되는 건 아니다. 그저 몬스터 게이트를 해결했을 뿐이다.
하지만 여론은 격변한다.
나는 그걸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짝 틀어줬다.
철원군 게이트의 다큐 방송.
화제성과 오락성을 이용해 시청률 32퍼센트짜리 PPL을 열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맡아서 해결할 전문 인력이 부족해 서른둘짜리 인물을 본부장이라고 앉혀놨다.
철원군에서는 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고, 어비스 던전이 공략되기 전까지 언제, 어디서 똑같은 재앙이 등장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이곳에, 게이트를 해결한 유엔군 특수부대 전문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여론이, 협회가, 그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겠는가.
그리고.
내게 무엇을 원해야 하겠는가.
이지아에 대한 여론전은 우리가 패배했다. 체급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빠진 이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녀석들이었다.
이지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보복 행정을 명령하고,
2차 공략대로 지명한 개자식들이.
“드디어.”
저기에 있었다.
“만나 뵙게 되는군요.”
오늘은 슈퍼 스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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