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특별 고문 (4)
* * *
늦은 새벽.
다시 삼촌네 카페.
나와 이재혁이 나란히 앉아 맞은편에 앉은 40대 남자를 쳐다봤다.
내가 박 변호사를 데리고 오는 동안 이재혁은 협회에서 계약서 뭉치를 들고 왔다.
협회가 헌터들과 노예 계약을 맺을 때 사용한 표준 계약서다. 헌터별로 나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틀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을 써먹기 위해 내미는 거니까. 목줄 채우는 건 변함없다.
박 변호사가 계약서를 쭉 훑었다. 그가 무거운 입술을 뗐다.
“그러니까, 헌터들 소집해서 비상 대기조를 만들 거란 거죠?”
“네.”
“이런 지원을 수락한 헌터들 실력이 어떨지 몰라도… 계약서상은 문제없네요. 괜찮습니다.”
이재혁이 식은 붕어빵을 우물거리며 이마를 쓸어내렸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후, 산 하나 넘은 기분이네.”
나도 넥타이 끈을 풀어 헤치며 늘어졌다.
“일단 인사팀에 요청해서 계약한 헌터들 명단부터 받아내죠.”
“줄까요?”
“부협회장이 끈 떨어진 연이어도 직급이 있는데, 그쪽 경유로 말하면 받아낼 수 있을 겁니다.”
“오케이, 고문 선임 좋았고.”
짝!
이재혁과 작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협회 입장에서는 열 받을 거다.
돈 벌어다가 꼬박꼬박 금고에 숨겨놓고 있었는데, 그걸 도둑놈이 홀라당 털어먹은 격이니까.
이사 녀석들 얼굴이 벌써 궁금하다.
나는 비상근 고문이라 못 보겠지만.
“그런데.”
박 변호사가 테이블을 두들기며 끼어들었다.
“이거 정말 공략할 수 있겠어요?”
“뭐가요?”
내 물음에 그가 마땅찮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어쨌든 2차 공략대를 만들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미국에서 2년 걸린다고 손 놓고 쉬지는 않을 테고.”
“그쵸.”
“이재혁 본부장님이 이지아 씨를 지명한 것도 이사회 쪽에서 압력 넣어서 그런 거죠?”
이재혁이 고갤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결국 명분이 중요한 자리니까요. 이지아 씨가 아무래도 랭킹 1위 헌터라서 거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협회는 어비스 던전의 공략이 실패하길 바라기에 이지아를 지명하게 했다.
이재혁의 깡패짓도 하나의 명분 아래서만 가능했다.
‘공략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단 한 마디에 모든 게 허용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건 그의 무기인 동시에 올가미이기도 했다.
이사회 쪽에서도 저걸로 명분 삼아 공격하면 이재혁은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만, 이런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였다.
여론이란 명분 따라 움직이는 거니까.
“결국 마지막에 가서 실패하면 이런 것도 전부 쓸모없어진다는 겁니다. 협회에 아주 미미한 공격이죠. 그런데 이사회 측에서 2차 공략대 멤버 선임에 끼어들 수 있으면, 어려워지는 거 아닙니까?”
이지아처럼 문제 되는 헌터들을 계속 집어넣으려고 한다. 물론 대놓고 문제 있는 헌터를 지명하진 않을 거다.
이지아는 철원군 게이트에서의 활약으로 우울증 이슈를 덮어버렸다. 거기에 랭킹 1위다.
강제 지명할만한 껀덕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헌터가 대한민국에 한둘은 아니겠지. 박 변호사의 말처럼 수작질 부릴 수 있는 건 많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커피에 각설탕을 퐁당 빠트리며 대답했다.
“게이트 재난 대응 본부는 허울로 남길 겁니다.”
이재혁이 고개를 홱 돌려서 날 쳐다본다. 눈에서 빔 나오겠다.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박 변호사님 말처럼 방해받기 쉽죠. 우리 뜻대로 전혀 컨트롤이 안 돼요. 언론을 통해서 한차례 검사를 받아야 하고, 이사회에서도 수작질을 부릴 겁니다.”
공략만 신경 쓰기에는 정치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이 간섭했다.
“아니, 그렇다고 2차 공략대를 완전히 버린다는 게 무슨 본말전도입니까? 그럼 공략대는 누가 만들어요?”
이재혁의 불만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잔을 들고 테이블 근처를 빙글빙글 돌았다.
생각을 정리한 끝에 내뱉은 말은 좀 유치했다.
“제가 누구입니까?”
“철학자는 아닌 거 같은데요.”
“매니저죠. 군인도, 카페 알바도, 협회 고문도 제 본직은 아닙니다.”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한예림이 선물로 만들어준 명함이었다. 딱딱한 고딕 글씨체로 내 직함이 적혀있었다.
[바스타드 소드]
[헌터 매니지먼트 2팀]
[팀장 김현우]
협회와 싸우길 선택하고, 고문을 맡게 될 거라 확신한 순간부터.
모든 생각을 정리해놨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불리한 상황 속에서 승기를 붙잡아야만 했다. 내 전력과 상대방의 전력을 냉철히 분석하고, 결과를 냈다.
“그럼. 매니저가 하는 일이 뭐겠습니까?”
이재혁도 눈치챘는지 멍하니 입을 벌렸다.
“헌터 관리….”
“다행히도 제가 팀장직을 맡고 있고, 관리하는 헌터는 한 명뿐이라 공백이 많이 남는군요.”
빙긋 웃으며 그들을 쳐다봤다.
박 변호사는 팔짱을 끼고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이 중에서 가장 오래 업계에 발을 담근 인간이었으니까.
“박 변호사님이 집어낸 것처럼, 2차 공략대에 온갖 참견이 들어올 겁니다. 하라고 하죠. 이사회와 사람들의 입맛대로 주무르게 놔둡시다.”
먹잇감을 던져준다.
그걸 씹고 뜯어서 조용해지게.
“그동안 우리는 물밑에서 준비하는 겁니다.”
바스타드 소드는 길드였다.
길드에서 헌터들을 모으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매니지먼트 팀장인 내가 직접 팀원들을 뽑는 것도, 누군가가 참견 할 수 있는 소관이 아니었다.
오롯이 내 권한이고, 내 일이었다.
헌터 매니지먼트 2팀에는 여론과 협회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직접 어비스 던전을 공략할 팀을 만들겠습니다.”
* * *
“어어, 그런데 현우 씨.”
이재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어비스 던전 공략 난이도가 역대급으로 높은 건 아시죠?”
“네. 미국에서도 2년을 잡았으니까요.”
“바스타드 소드는 창립한 지 이제 반년도 안된 신규 길드고요.”
“맞습니다.”
바스타드 소드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다. 이지아라는 현직 최고의 헌터와 한유정이라는 차세대 최고의 헌터. 거기에 김현우 덕분에 방송으로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조만간 기라성처럼 버티고 있던 길드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건 확실했다.
하지만.
“길드가 혼자서 떠맡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면 저희가 왜 이러고 있겠습니까.”
한국, 일본, 영국, 캄보디아 모두 협회가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재혁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실세라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각 길드에서 에이스 헌터들을 차출하기 쉽도록, 던전 공략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도록, 정부와 협회가 막강한 권한을 넘겨준 것이다.
당연히 길드 하나가, 그것도 거기에 속한 매니지먼트 팀 하나가 나선다고 공략하긴 힘들었다.
“공략 불가 판정 받은 거 소문 다 나서 헌터들도 어비스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합니다. 2차 공략대로 지명했을 때 뒷돈 찌르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한 트럭이에요.”
당장에 김현우부터 이지아를 빼려고 협회에 들이박았다.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가진 협회조차 그 정도다. 헌터들은 길드의 노예가 아니다. 아무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터다.
“그리고 어차피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이사회에서 현우 씨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텐데, 힘들게 모아놔봤자 개인적으로 접촉하지 않겠어요?”
김현우가 피곤한 안색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S급 헌터 이지아를 예로 들죠.”
이지아는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연봉 180억으로 김현우와 계약한 건,
당연히 다른 무엇보다 목숨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헌터들이 있습니다. 혹은, 능력 페널티 때문에 자기가 원치 않는 행동을 해야 하는 헌터들도요.”
“천살성이나 광전사 같은 것들이요?”
김현우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가 애써 천연덕스러운 눈매로 고갤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보여주면 어떻겠습니까? 능력을 대가로 제가 도움을 강요한다면요.”
김현우는 이미 해답을 겪은 상태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지아와 한유정 모두 시작은 분명 마음의 평화였다.
이지아는 우울증 때문에.
한유정은 천살성의 살의를 억제하기 위해.
그에게 집착했었다.
“S급 능력 중에 반대급부로 정신적인 페널티까지 내포하는 것들이 있죠. 그래서 중간에 헌터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고. 사회로부터 격리당하거나 기피되는 헌터들도 있고. 그걸 현우 씨가 해결 해준다 치면…….”
턱을 괸 이재혁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쩌면, 가능하겠는데요.”
그가 환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는 돈 이상의 가치가 있을 테고, 능력의 주체가 현우 씨인 이상 재난 대응 본부를 절대 배신하지 못하겠죠!
아무리 그래도 천살성까지 통제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현우 씨 말대로 하면 인재풀이 확 넓어지겠네요.”
촤락!
흥분한 이재혁이 서류를 허공에 흩뿌렸다. 종이들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바닥이 더러워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첫 번째, 던전 브레이크를 맡아서 처리할 인력의 충당.
협회랑 노예 계약한 헌터들 싹 다 빼돌려서 써먹는다. 윈윈이었다. 정체불명의 수상쩍은 던전에 들어가서 목숨 걸고 싸우느니,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당분간만 뺑이치는 게 낫다.
두 번째, 2차 공략대.
정신에 치명적인 작용을 하는 대신에 강한 능력을 주는 특성들이 있었다.
천살성, 광전사, 폭주 등.
천살성 같은 경우는 강제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 대부분 사살당하거나 지하 감옥에 수감돼서 스카웃은 불가능했다. 마음의 평화로 컨트롤 될 거라고는 상상도 안 가고.
하지만, 하위 호환 격인 능력들이 여럿 있었다. 김현우가 직접 던전에 들어가면 그것만으로도 기용할 수 있는 헌터들의 폭이 대폭 증가한다.
협회의 참견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된 공략대를 꾸릴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여명이 트기 시작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드디어 보였다.
이재혁이 격앙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이지아 씨랑 한유정 씨도 던전에 들여보내실 생각입니까?!”
김현우의 따뜻한 미소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뇨.”
움찔 굳은 이재혁이 눈을 깜빡였다.
“네?”
“지아랑 유정이는 놔두세요.”
“아니… 한 명은 S급 헌터고, 한 명은 S급 유망주인데…….”
“미리 경고하는 거지만, 둘은 건들지 마세요.”
“어어… 네.”
“제가 왜 재난 대응 본부에 합류했는지. 잘 생각하세요. 본부장님.”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