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길고양이를 주웠는데 XX이었다
목덜미부터 몸 전체로 오소소 소름이 돋아나는 걸 느낀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는 짙은 흑발에 장밋빛의 적안을 가진 예닐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깜짝이야.”
그냥 꼬마였잖아. 괜히 놀랐네.
그런데 이런 곳에 왜 어린 꼬마가 혼자 있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흰 수염 영감을 떠올렸다.
흰 수염 영감의 손자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아이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닮은 구석은 없어 보이지만…….
평범한 노인처럼 생긴 영감과 달리 남자아이는 어둑한 공간 속에서도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돋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우월한 미모의 소유자이실 수도 있지.
나는 홀로 조용히 수긍했다.
“너 여기 혼자 있었던 거야?”
특별한 걸 물어본 것도 아닌데 남자아이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그렇지, 어린애를 혼자 내버려두는 건 엄연히 아동 학대라고.
약 항아리 어르신의 친우라는 걸 보면 흰 수염 영감도 보통 인간은 아닐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없어?”
혹시나 다른 보호자가 있나 싶어 물어본 것이었는데, 남자아이가 다짜고짜 검지를 뻗어 나를 가리켰다.
“네가 처음이다. 이 안으로 들어온 건.”
안에 들어온 게 내가 처음이라고?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인간 주제에 제법이군. 내가 있는 층까지 올라오다니.”
꼬마가 뭔가 더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동 학대의 현장을 목격한 충격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나갈 때 영감님하고 이야기를 좀 해야지.
“밥은?”
“밥?”
이건 또 무슨 이야기냐는 듯 남자아이의 미간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어쩌면 좋아.
반응을 보아하니 남자아이는 밥의 존재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밥을 모른다는 건 챙겨준 사람이 없다는 건데, 다행히도 남자아이는 지치거나 기력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또 오랫동안 혼자 방치되었다 보기에는 방금 씻은 것처럼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흰 수염 영감 손자니까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꼬마가 무탈한 게 이해가 됐다.
건강하다는 건 다행이긴 하지만, 썩 개운한 기분은 아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손길이 닿지 않아도 더러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닌데.
내내 이 어둑한 약초밭에 있었을 꼬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못했다.
“아직 밥 먹기 전이면 누나랑 이거 나눠 먹자.”
나는 어르신이 챙겨준 주먹밥을 꼬마에게 건넸다.
꼬마에게는 주먹밥이 낯설었는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건 뭐지? 새로운 공략법인…….”
“자, 이렇게 손에 들고 먹는 거야.”
마음이 찡해진 나는 손수 남자아이의 손에 주먹밥을 들려줬다.
“잘 봐. 이렇게 해서, 앙!”
그리고 시범을 보이듯 크게 주먹밥을 한입 베어 물었다.
“독은 없는 건가?”
작은 소리로 뭔가 중얼거리며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남자아이가 조심스럽게 주먹밥을 입에 댔다.
꼬투리 부분을 작게 한입 베어 문 꼬마의 눈이 점차 커지더니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귀여워!
주먹밥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다람쥐처럼 양 볼을 통통하게 부풀린 채 주먹밥을 먹는 꼬마를 나는 흐뭇한 눈길로 지켜봤다.
“자, 여기 물도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
물병을 내밀자 가라앉았던 남자아이의 경계심이 되살아나는 게 보였다.
물도 마셔본 적 없어?
대체 영감은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어른들의 무관심에 방치된 귀여운 꼬마를 보니 화가 울컥 치밀었지만, 아이의 앞이기에 꾹 참았다.
“물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봐, 먹어도 괜찮지?”
나는 이번에도 물병을 통째로 들어 먼저 물을 들이켠 다음 꼬마에게 건넸다.
목이 많이 말랐는지 벌컥벌컥 물을 넘기는 속도가 빨랐다.
[‘약 항아리(EX)’의 정성이 담긴 주먹밥(S)을 먹습니다. 체력이 Max로 회복됩니다. 체력 (35/35)]
배를 채우고 나니 문득 꼬마가 이곳에 혼자 있게 된 사정이 궁금해졌다.
“꼬마야.”
“베카.”
마지막 남은 주먹밥까지 먹어치운 남자아이가 짤막하게 답했다.
아마도 꼬마의 이름인 것 같았다.
“베카라……. 예쁜 이름이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다들 내 이름을 들으면 벌벌 떨기 바쁘던데.”
남자아이는 여전히 내가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를 향한 경계가 흥미로 변한 것 같다는 것 정도였다.
“널 보고 덜덜 떤다고? 이상한 사람들이네.”
꼬마는 길가에 버려진 작은 검은 고양이 같았다.
이렇게 귀여운 꼬마가 어디가 무섭다고.
나 같으면 부둥부둥만 해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밥을 먹지 않아도 멀쩡하고, 씻지 않아도 더러워지지 않는 특별함을 가졌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걸 보면 두려워하거나 꺼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우리 지호도 행운 큐브로 각성하면서 칭송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만큼 적도 많아졌다.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지호의 특별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지호와 닮은 구석이 있어서일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베카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쓰였다.
“베카, 네 부모님은 어디에 계셔?”
“부모님?”
“너를 낳아주신 분 말이야.”
“없다.”
분명 힘든 이야기였을 텐데 베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베카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걸까?
그래서 이곳에 혼자 남게 된 거구나.
그 담담함이 더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나도 베카처럼 행동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실종되고 난 뒤, 한동안은 밥도 먹지 않고 하염없이 넋을 놓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지냈다.
조금 오글거리긴 해도 박시우와 지호가 날 밖으로 꺼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곳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숨기려고 조심했는데 내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난 황급히 웃음으로 표정을 감췄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나도 너랑 비슷해서.”
“뭐가 비슷하다는 거지? 네가 가진 능력이 나와 같다는 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건지, 베카의 한쪽 눈썹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아쉽게도 나한테 너처럼 특별한 능력 같은 건 없어.”
아니지. 헌터 직업이 온천 사장이니까 특별하긴 한가?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거였다.
“나도 어릴 때 부모님이 실종되셔서 혼자 보낸 시간이 길었거든. 왠지 널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그때였다.
[칭호 ‘사연 있는 여자’가 발동합니다.]
[칭호 ‘사연 있는 여자’의 효과로 해당 사연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맞다.
나한테 이런 칭호 효과가 있었지.
칭호 효과 때문인지 베카의 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군.”
뺨에 흐른 눈물을 손으로 훔친 베카가 젖은 손끝을 바라봤다.
가슴을 틀어쥔 그는 낯선 감정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미안해. 괜히 우울한 이야기를 해서 울게 해버렸네.”
“내가 울고 있다고?”
베카는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눈물이라는 건 패배자들이나 흘리는 게 아니었나?”
여전히 심각하게 혼잣말을 하던 베카가 내게로 눈길을 돌렸다.
“뭐지?”
“응?”
“네 이름.”
그러고 보니 내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네.
“박수온이야.”
“박수온…….”
베카는 조용히 내 이름을 읊조렸다.
이제 충분히 쉰 것 같으니까 다시 약초를 캐볼까?
“베카, 난 약초를 더 캐야 해서. 거기 앉아서 놀고 있어.”
주먹밥을 먹어서인지 몸이 가벼워져서 전보다 약초 캐기가 수월했다.
[스킬 ‘호미는 거들뿐(A)’의 효과로 2분간 약초를 두 배로 획득합니다. 재사용 쿨타임 : 30분 00초]
[약초 ‘새살’을 획득합니다. x2]
“새살이 필요한 건가?”
구경만 하기는 지루했던 건지 베카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응, 약을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로 필요하거든.”
내 똥손이 변하지 않는 한 해독제는 계속 만들어야 하니까 넉넉하게 가져가는 게 좋겠지.
“여기 있다.”
잠깐 눈을 돌렸을 뿐인데 베카의 앞에 새살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이게…… 되나?”
“부족하다면 더 줄 수도 있다.”
얼떨떨한 내 앞에서 베카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손짓 한 번에 많은 양의 새살이 공중으로 뿜어져 나왔다.
“베카, 넌 최고야.”
노동이 줄었다는 생각에 즐거워진 난 베카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들고 품에 덥석 안았다.
베카는 놀라면서도 날 밀어내지 않았다.
역시 흰 수염 영감의 손자다운 솜씨야.
난 베카의 도움으로 손쉽게 얻은 약초를 가방에 꾹꾹 눌러 담고 어깨에 멨다.
약초도 두둑하게 얻었으니 이제 돌아가볼까?
“베카, 난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아쉬운 인사를 전하는데 베카의 고사리 같은 손이 나를 붙잡았다.
“가지 마.”
베카도 나와 헤어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너도 가자. 영감한테 데려다줄게.”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베카의 주변으로 보랏빛 오라가 피어났다.
쾅!
큰 소리와 함께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
“이곳에는 새살이 많이 난다. 원한다면 계속 따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보랏빛 오라는 곧 족쇄가 되어 나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탑의 수호자’가 잊었던 기억을 되찾으며 ‘탑의 주인’으로 각성합니다. 잠들어 있던 힘이 깨어납니다.]
나를 바라보는 베카의 적안에서 선명한 핏빛 섬광이 일었다.
“나와 여기 함께 있어.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