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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78화 (78/190)

78화

한입 거리

베카가 영계의 여의주를 보고 달걀이라고 한 것이라면, 영계가 왜 저렇게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도 처음 영계를 봤을 때 여의주를 달걀로 착각해서 입맛을 다신 적이 있었지.

그치만 저건 내가 봐도 달걀 같은걸.

나는 여전히 입이 묶인 채 씩씩대고 있는 조그마한 털뭉치 영계에게로 눈을 돌렸다.

솔직히 저 작고 귀여운 솜뭉치가 사실은 거대한 용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어?

앞구르기를 하고 봐도, 물구나무를 서서 봐도 병아리인데…….

영계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게 베카에게 수긍하게 됐다.

하지만 베카가 계속해서 여의주를 달걀이라고 불렀다가는 온천에 바람 잘 날이 없겠지.

지금으로서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게 최선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베카를 잘 이해시키냐는 건데…….

금쪽이 박사님, 제게 힘을 주세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비장하게 다짐하며 베카의 앞에 눈높이를 맞추고 앉았다.

“베카, 저건 달걀이 아니야.”

“닭이 품고 다니는 알이 달걀이 아니면 뭐지?”

베카는 진심으로 의문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닭 취급을 당한 것에 충격을 받은 건지 길길이 날뛰던 영계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넋을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까지 베카는 영계를 닭이라고 생각했던 거였나?

그렇다면 여의주를 달걀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그럼 좀 이상한데?

지난번 해령과 내가 탕에 있을 때, 베카는 해령에게 은색 뱀이라고 했었다.

그땐 해령을 영계라고 착각한 줄 알았는데, 영계를 닭으로 알았던 거라면 왜 해령을 그렇게 불렀을까?

의문이 들긴 했지만 지금은 베카에게 영계의 존재를 이해시키는 게 먼저였다.

“영계는 닭이 아니라 용이야.”

“용? 저게 용이라고?”

베카의 짙은 눈썹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단지 표정만 봤을 뿐인데 그의 당혹스러운 감정이 모두 읽혔다.

왠지 남의 일 같지가 않네.

“설마 지금 한입 거리도 안 되어 보이는 저 닭이 드래곤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베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어왔다.

드래곤과 용은 엄밀히 따지면 생김새나 정체성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차피 뜻은 통하니까 상관없나?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베카가 의심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영계를 돌아봤다.

오히려 그의 낯빛에 떠오른 의문이 전보다 짙어져 있었다.

그래.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이해해.

베카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닭이 용이 된 거나 다름없으니까 얼마나 혼란스럽겠어?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나도 처음에는 영계를 병아리로 생각했거든.”

사실 영계를 병아리처럼 대하는 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나 혼자만 속으로 생각하는 거니까 문제없지만 베카의 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용한테 여의주는 보물 같은 거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말이야. 베카한테도 있지? 영계에게 여의주 같은 소중한 존재가.”

내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베카가 내 물음에 고개를 들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탑에 오랫동안 갇혀서 산 베카에게는 소중한 게 없을 수도 있으려나?

오랜 침묵에 궁금해하고 있던 그때.

“있다. 내게도 소중한 존재가.”

굳게 닫혀 있던 베카의 입이 열렸다.

나에게 고정된 새빨간 눈동자는 그가 말을 끝맺고 난 후에도 집요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소중한 존재가 있다니까 다행이야.

그렇다면 베카에게 영계가 화가 난 이유를 설명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만약 베카의 소중한 존재를 누군가 달걀 프라이로 만들려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처단한다.”

[‘탑의 주인’이 살기를 내뿜습니다. 살기에 30초 노출될 경우 상태 이상으로 1분간 채팅이 금지됩니다.]

[※주의 정해진 표적이 없는 경우 모두가 표적이 됩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카의 살벌한 음성이 되돌아왔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처단한다니…….

베카에게 소중한 존재가 뭔지 몰라도 가볍게 여길 마음은 아닌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표적이 없는 경우에는 모두가 살기의 대상이라니 너무 가차 없잖아!

[성좌 ‘운수를 믿으십니까?’가 온천 안에서 강한 살기가 느껴진다며 액막이 부적을 꺼내 듭니다.]

운수도 베카의 살기를 느낀 건지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운수는 그런 쪽으로 능력이 발달해 있으니까 제일 먼저 알아챌 만도 했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나의 기상이 거기까지 전해졌냐”며 흐뭇해합니다.]

‘응, 그거 너 아니야.’

심각한 와중에도 샤레니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헛물을 켰다.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여기에 내 살기를 이길 자가 또 어디에 있냐”며 온천을 하다 말고 탕을 박차고 일어납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샤레니안의 시스템창을 보니 굳이 눈으로 탕 안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뒷목이 뻐근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했다.

‘좋은 말할 때 다시 앉아.’

[성좌 ‘불사의 살인귀’가 내 엄포에 울상을 지으며 얌전히 탕에 쪼그리고 들어가 앉아 “주인은 나만 미워한다”며 한탄합니다.]

무슨 다섯 살배기 꼬맹이도 아니고.

베카도 안 하는 짓을…….

샤레니안의 답 없는 행동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데 거뭇거뭇한 기운이 시야를 가려 왔다.

베카의 주변에서 흘러나온 살기는 종이에 닿은 먹물처럼 삽시간에 주변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살기가 빠르게 퍼지고 있어.

이러다가는 온천에 있는 모두가 상태 이상에 걸릴지도 몰라!

온천의 가이드인 영계도 상태 이상에 걸렸고 운수가 살기를 느끼고 경계하는 걸 보면 성좌들에게도 베카의 기운이 위협적인 것 같았다.

일단은 베카부터 진정시키자!

“베카,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니까 살기를 뿜는 건 그만두는 게 어떨까?”

내가 눈을 맞춘 그대로 조곤조곤 말을 건네자 조금 당황한 듯한 베카가 주변을 뒤덮은 살기를 둘러봤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마도 무의식중에 나온 행동 같았다.

“내가 너무 흥분했군.”

베카가 검은 연기처럼 피어난 살기를 향해 손가락을 뻗어 몇 번 휘적거렸다.

[‘탑의 주인’이 살기를 거두어들입니다. 살기와 상태 이상에서 벗어납니다.]

최악의 사태는 면했나?

시스템창과 함께 주변을 까맣게 덮고 있던 살기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진 것을 확인한 난 안도한 마음으로 베카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위험천만하고 살벌하긴 했지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살기를 뿜어낸 걸 보면 베카의 공감을 얻어내는 데에는 성공한 게 분명했다.

“베카가 영계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니까 어떤 기분이 들었어?”

“화가 났다.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평소처럼 무감정해 보이는 얼굴인 것에는 다름이 없었는데 유난히 시뻘겋게 빛나는 베카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이 매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베카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많이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면 오히려 베카한테 있어서 소중한 게 뭔지가 궁금해지는데?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 베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정도면 특별하다는 거니까.

“영계도 같은 기분이었을 거야. 영계는 소중한 보물을 달걀로 오해받아서 상처를 받았을 테니까 이번에는 베카가 먼저 사과하는 게 어떨까?”

“…….”

입을 꾹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베카가 영계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작은 손으로 널브러져 있는 영계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저기, 사과하면 어떻겠냐고 한 건데 왜 영계 뒷덜미는 잡아 올리는 거야?

“네 이놈, 당장 나를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베카의 손에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영계가 악을 내질렀다.

귀에서 피가 날 것같이 소리가 우렁찬 것을 보니 이제 막 상태 이상이 풀린 것 같았다.

영계의 거센 항의에도 베카는 무서운 눈으로 손에 들린 것을 노려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려놓으래도!”

화가 난 영계가 입을 벌려 베카의 손을 덥석 물었다.

안 돼…….

이러다가는 다 죽어!

나는 반사적으로 베카를 돌아봤다.

그는 전보다 공격적인 눈빛으로 영계를 쏘아보고 있었다.

망했다!

매서운 눈동자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고 있는데 베카가 영계를 붙잡은 손을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왔다.

혹시 영계를 잡아먹으려는 건가?

마탑의 최종 보스를 돌보는 건 처음이라 베카의 식성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나는 간이 벌렁거리다 못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날 어쩌려는 거냐? 이놈!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아느냐?”

영계를 코앞까지 데려온 베카가 입을 열었다.

“악!”

위기를 느낀 영계가 솜털 같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리를 내질렀다.

베카의 눈동자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번뜩였다.

“베카!”

그거 먹는 거 아니야!

어떻게 말려야 할까 싶어 다급하게 팔을 뻗는 순간.

“사과한다. 한입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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