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17)화 (117/190)

117화

더 해봐

“구했다는 온천의 배달원들이 오리였어?”

“그렇다.”

베카가 이상할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꽉꽉!”

“꽥!”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중에도 포털에서 쏟아진 어마어마한 수의 오리 떼들은 순식간에 온천을 점령했다.

“저래 보여도 녀석들, 인간들의 탈것보다 속도가 빠르거든.”

확실히 던전 브레이크에서 휩쓸렸을 때 떼를 지어 달려오던 오리 인형들의 속도는 어마어마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마터면 그 속도를 못 이겨서 밟힐 뻔했었지.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했다.

“S급 몬스터라 시스템의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수 있어서 길을 찾는 데도 문제가 없다.”

오리 인형들이라면 내 정체와 온천의 비밀을 지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그래도 S급 몬스터인데 도시를 활보해도 괜찮을까?”

“온천만 꾸준히 하게 해주면 온순한 성정을 가진 녀석들이다. 먼저 인간을 공격할 일은 없다는 것은 내가 보장하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많아도 너무 많잖아!’

온천으로 들어온 오리 인형의 수는 눈대중으로 봐도 족히 오십은 넘었다.

게다가 아직 포털을 타고 계속해서 앙증맞은 오리 인형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다.

“베카, 일단 포털을 닫아줄 수 있을까? 아직 시험 운영 단계라 배달원은 일곱 명 정도만 되어도 충분할 것 같거든.”

‘아니, 오리니까 일곱 마리라고 해야 맞나?’

“그런가? 곤란하군. 이미 그건 훨씬 넘긴 것 같은데.”

‘넘기다 못해 오리에 깔릴 정도란다.’

“거기까지.”

내 뜻을 전해 들은 베카가 두 손을 모으자 점차 포털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꽈아악!”

그때 아슬아슬하게 포털에 부리를 들이민 오리 인형 하나가 꾸역꾸역 몸을 구기다 끝내 온천 안으로 들어왔다.

“꽈악!”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기쁨에 힘찬 울음소리를 낸 오리 인형이 통통한 엉덩이와 꼬리를 흔들며 춤을 췄다.

그걸 보는 순간, 난 치명적인 귀여움에 심장을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저렇게 애써서 이곳에 왔는데 어떻게 돌려보내?’

하지만 아무리 안타까워도 배달원 수에 제한을 두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베카, 혹시 오리가 도시락을 먹어치우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S급 몬스터의 지능은 인간과 다를 게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렇구나.”

그래서 목욕탕 던전에서 만났을 때, 오리 집단이 꼭 사람처럼 의사소통했던 거구나?

그렇다면 오리 인형이 빈 도시락을 배달할 걱정은 하나 덜었다.

“꽥꽥!”

진지하게 오리 인형을 배달원으로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중에 한 마리가 반갑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와 얼굴을 비볐다.

방금 포털이 닫힐 때 머리와 몸통을 구겨 넣은 그 오리 인형이었다.

‘생김새는 다 똑같은데 이상하게 이 오리에게서만 친숙함이 느껴져.’

“너 설마 그때 나랑 인사했던 그 오리야?”

“꽈악!”

내 말에 수긍하듯 오리 인형이 다시 한 번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뺨에 자신의 얼굴을 문댔다.

아마도 내 추측이 맞았던 것 같았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오리야!”

“꽥꽥!”

오리 인형과 반갑게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문득 새로운 문제점이 떠올랐다.

“그런데 사람이 오리랑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지?”

배달일을 하려면 나뿐만 아니라 고객과의 의사소통도 중요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오리들의 행동을 보며 뜻을 짐작할 뿐, 오리 인형과 소통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역시 오리를 배달원으로 고용하는 건 무리인가?’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몬스터와 고용계약서를 쓰고 튜토리얼을 깨면 인간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번역 기능이 생긴다.”

튜토리얼은 스킵하는 게 국룰 아닌가?

잠시 반감이 들긴 했지만 번역 기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좋아, 결정했어! 오리를 배달원으로 고용하는 거야!’

오리 인형은 고객들에게 온천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 같았다.

“베카, 고용계약서는 어떻게 쓰는 거야?”

“증인을 한 명을 두고 너와 오리 인형들이 계약서에 서명하면 된다. 원한다면 내가 증인이 되어주겠다.”

“그럼 부탁할게, 베카.”

[‘탑의 주인’이 고용계약서(인간-몬스터) 양식을 불러들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계약서와 펜이 나타났다.

“그곳에 각자 원하는 계약 조건들을 적도록 해.”

계약서에는 오리 인형들의 근무시간과 그들에게 지급할 보상에 대한 항목이 있었다.

‘일단 하루에 주문을 20건 정도 받는 게 목표이긴 한데…….’

상황에 따라서 주문량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오리들아, 주문량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그러는데 하루에 몇 개까지 가능할까?”

내 물음에 지난번처럼 오리 인형들이 저들끼리 꽉꽉 거리기 시작했다.

“꽉!”

“근무시간 후에 자유롭게 온천을 이용하는 것이 보장된다면 배달은 힘닿는 데까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는군.”

베카가 오리 인형들의 말을 통역해줬다.

‘땡잡았다!’

녀석들은 생각보다 훨씬 시원시원했다.

“그럼 배달 건수와 온천 이용 시간에는 제한을 두지는 않을게.”

“꽉!”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오리 인형이 부리로 펜을 물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좋다는군.”

나는 원하는 조건을 쓴 뒤, 계약서의 ‘발송’ 버튼을 눌렀다.

“이제 서로가 원하는 조건이 아까 얘기한 내용과 맞는지 확인하고 서명하기만 하면 돼.”

베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리 인형들이 쓴 조건이 시스템창으로 떠올랐다.

[꽥꽥꽤액! (온천 좋다! 많이 하고 싶다!) 서명 (인)]

온천에 대한 오리 인형들의 무한한 애정이 느껴지는 요구 조건이었다.

나는 쿨하게 서명을 마쳤고 오리 인형도 거침없이 부리를 휘두르며 서명을 끝냈다.

[‘온천 사장’과 ‘장난감 오리 인형(S)’의 고용계약이 성사됩니다. 증인 : ‘탑의 주인’]

[계약서에 명시된 배달원 7마리를 지명해주세요. 0/7명]

[원하는 ‘장난감 오리 인형(S)’의 부리를 쓰다듬어주면 지명 완료됩니다.]

“이제 배달원으로 일할 오리 7마리를 뽑아야 하는데……. 일단 네가 1번!”

나는 던전 브레이크 때 나와 인사를 나눈 오리 인형의 부리를 쓰다듬었다.

“꽉!”

내게 선택받은 오리 인형이 기쁨의 엉덩이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리를 쓰다듬은 ‘장난감 오리 인형(S)’을 배달원으로 지명합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배달원 7마리를 지명해주세요. 1/7명]

오리 인형들 사이에도 나와 같은 알림창이 떠오른 건지 무리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꽉!”

“꽥꽥!”

배달원이 되고 싶은 오리 인형들은 서로 앞다투어 내게 부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잠깐만!”

“꽈악!”

“꽤애애액!”

그러다가 싸움이 붙은 오리 인형들 짤막한 날개로 서로의 안면을 강타하며 울부짖기도 했다.

‘이놈의 오리들이 쌈박질도 해?’

“꽤애액!”

“꾸악!”

개중에는 꼬리치기를 하는 오리 인형도 있었다.

난투극이 난무하는 온천 안의 상황은 그야말로 전쟁 통 그 자체였다.

“교대 근무를 하자! 매주 일하면 지칠 테니까 일곱 마리씩 팀을 짜서 로테이션을 시키는 거야! 베카, 빨리 통역해줘!”

“멈춰라.”

베카의 서늘한 한마디에 싸움을 하던 오리 인형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베카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내 앞에서는 천사 같은 표정만 짓고 있어서 몰랐는데…….

날카로운 장밋빛 적안을 빛내는 베카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역시 최종 보스란 건가?’

지금의 베카는 늘 지켜봐온 나조차도 긴장할 정도로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베카의 확실한 중재로 난 무사히 일곱 마리의 배달원을 뽑을 수 있었다.

교대 근무를 할 팀들은 매주 베카가 온천으로 데려오기로 합의가 됐다.

“나는 이 녀석들을 데려다주고 오겠다.”

“그럼 부탁할게, 베카.”

[‘탑의 주인’이 던전 브레이크를 생성합니다.]

[!!주의!!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합니다. <등급: SS>]

“따라와라.”

베카가 허공에 나타난 포털로 오리 인형들을 인솔하여 들어갔다.

아쉬움에 온천을 떠나기를 주저하던 오리 인형들도 곧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포털 안으로 사라졌다.

“휴…….”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안도감에 한숨을 쉬는 그때였다.

[‘좋은 사장이 되는 첫걸음! 고용 몬스터와 소통하기’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장난감 오리 인형(S)’과 교감하기]

[황홀 (0/1), 슬픔 (0/1), 놀람 (0/1), 화남 (0/1), 행복 (0/1)]

[튜토리얼 중도 포기 불가, 클리어 시 ‘장난감 오리 인형(S)’에 번역 기능 획득]

……예? 오리 인형이랑 교감이요?

* * *

오리 인형을 던전 브레이크로 돌려놓은 베카가 마탑의 서재로 가는 계단에 올랐다.

계단을 오를수록 작은 꼬마의 그림자가 점점 자라나며 성인의 형상으로 변했다.

피곤한 듯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쓸어 넘긴 베카가 흰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며 고급스러운 붉은 원단으로 된 의자에 걸터앉았다.

“돌아오셨습니까? 베카 님.”

얼마 전 헌터들에게 선물 받은 책에 몰입해 있던 루카가 예의를 갖춰 그를 맞이했다.

“저번에 읽었다던 책, 아직도 있나?”

“아, 이 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루카는 『키웠더니 잡아먹혔다』라는 제목의 책을 꺼내 들었다.

얼마 전, 베카는 서재에서 치유 마법을 공부하다 말고 혼잣말을 내뱉으며 심란한 얼굴을 했다.

“……인간 여자의 마음을 얻는 좋은 방법이 없나?”

수온이 온천 성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쩍 관심을 끌기가 어려워졌다.

“베카님, 그 방법이라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간들이 준 책에 그 내용이 나와 있었거든요.”

“그 방법이 뭐지?”

“약한 척입니다! 책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쓰러지거나 아픈 남자 주인공을 지나치지 못하더군요. 그러다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말입니다.”

“약한 척이라…… 그렇군.”

베카는 속는 셈치고 루카가 말해준 책의 내용을 실행했고, 수온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어쩜 베카는 마음도 이렇게 천사 같을까?”

“날 생각해줘서 고마워, 베카. 감동이야.”

자신을 향한 수온의 사랑스러운 미소를 떠올린 베카의 입가가 매력적인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더 해봐라.”

밤하늘 같은 흑발 아래로 드러난 장미처럼 매혹적인 그의 붉은 눈동자가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반짝였다.

“그 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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