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급 온천 사장은 파업 중입니다 (161)화 (161/190)

161화

널 볼 수만 있다면

던전 브레이크 사태에 부모님과의 이별까지 겹쳤던 탓에 몸이 많이 피곤했었던 건지 나는 꼬박 하루를 죽은 듯이 잠만 자고 나서야 맑은 정신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이번 온천 사장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김패금의 잔혹한 민낯이 드러나, 비난 쏟아져…….

―김패금, 총 33명의 헌터들을 계획적으로 유혹해 미끼로 사용.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더 나올 가능성도 있어…….

내가 잠들어 있는 사이, 김패금에게 같은 수법으로 살해당한 헌터들이 추가적으로 드러나면서 세상을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트렸다.

그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죽을 때까지 수감 생활을 하게 됐다.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부모님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처사였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김패금을 해치는 걸 원하지 않으셨으니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 뜻을 따르기로 했다.

[성좌 ‘저승의 염라’가 강림차사에게 “김패금이 저승에 오기 전에 지옥의 칼날을 새로 갈아놓으라”고 명령합니다.]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염라가 합법적으로 김패금에게 벌할 준비를 하고 있기도 했고.

‘염라는 믿음직하니까.’

뒷일은 염라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변한 건 김패금의 위신만이 아니었다.

<정체가 밝혀진 후 온천 사장님 오피스텔 근황 (사진O)>

* * *

[사진]

온천 사장님 실물 영접하려고 온 기자들이랑 온천 회원들로 꽉 참.

* * *

└익명 1 : 온천 사장님이랑 같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다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익명 2 : 진심 지금 오피스텔 앞에 텐트로 가득한 거 실화냐?

└익명 3 : 나 거기 주민인데 인파 때문에 차가 못 다닐 지경 ;;; 불편한데 나도 온천 사장님 보고 싶음…….

└익명 4 : 사고 위험 때문에 걱정했는데 덕택이들이 와서 온천 사장님이 다칠 수 있다고 해산하라고 했다고 하니까 온천 회원님들 일제히 해산함 ㅋㅋㅋ

└익명 5 : 온천 사장님 말이 곧 법이다. ㅋㅋㅋ

└익명 6 : 온천 사장님 팬들 다칠까 봐 덕택이 보내서 걱정해주는 거 쏘 스윗 ㅠㅠ

<마라탕보다 매운맛>

* * *

[사진]

메테오맛 온천 사장님. 말 한마디에 던전 브레이크 소멸하는 장면 너무 멋있잖아. ༼;´༎ຶ ۝༎ຶ`༽ (오열)

* * *

└익명 1 : 메테오……. 드르륵 탁 메테오……. 드르륵 탁 메테오……. 드르륵 탁 메테오……. 드르륵 탁 메테오……. 드르륵 탁

└익명 2 : 찐 광기 ㅋㅋㅋㅋㅋ

└익명 3 : 흑발 적안 온천 사장님, 잘생쁨! 따라 하려고 빨간 렌즈 꼈다가 사탄 들렸냐는 소리 들음 ㅋ

└익명 4 : 사탄 ㅋㅋㅋ 미친 ㅋㅋㅋㅋ

―온천 사장 최초 SSS급 던전 브레이크 클리어, 최초 SSS급 보스 몬스터 파괴 등 타이틀 이어져…….

첫 번째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나의 상황을 지켜본 사람들이 더욱 온천 사장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도드라진 변화라고 하면 해외 언론들도 지구 멸망 위기 속에서 세계를 구한 영웅이라며 칭송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온천 사장이 대한민국의 명성을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얼마 안 가 세계 헌터 연맹과 대통령, 헌터 협회 등에서 상패와 훈장을 전달하겠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죄송하지만 상패나 훈장은 모두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마지막까지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저희 부모님과 현 시각에도 시민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헌터들의 노고를 잊지 말고 기억해주세요.”

나는 언론사와 통화를 통해 이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 발언은 과거 부모님의 헌신적인 활동을 재조명하고 헌터들이 자진해서 구조 활동에 참여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줬다.

―온천 사장 유명세와 함께 추후 활동 관심, 박시우, 박지호가 있는 집필 합류 가능성 높아져…….

또한 유명세로 인해서 잠시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솔직히 나도 박시우가 전처럼 자신의 동료가 되어달라는 헛소리를 할 줄 알았지.’

그런데 예상외로 박시우는 내 정체를 알고도 집필에 영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온천 사장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오히려 박시우의 관심은 나보다 핑크색 수트 남자에게로 가 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 일은 오해로 인해서 벌어졌다고 치더라도 SSS급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킬 정도면 위험인물인 건 맞으니까. 게다가 나를 노리던 흑막 성좌의 계약자이기도 하고.’

원래는 내가 추적해서 끝장을 보려고 했었다.

“이번에 SSS급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킨 헌터는 내가 조사하도록 할게. 그러니까 나한테 맡겨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조사하겠다는 박시우의 태도가 너무 확고해서 말릴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핑크색 수트 남자가 자기 길드원이라는 걸 눈치챈 거겠지?’

내 예상이 맞다면 그 남자는 현정우다.

내가 폭주를 일으켰을 때 핑크색 수트 남자가 급하게 생성한 포털은 분명히 현정우의 것이었으니까.

‘그걸 박시우가 모를 리 없지.’

SSS급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킬 정도로 강력한 능력을 가진 현정우가 박시우를 공격하지 않은 걸 보면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관계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일단 그 건은 박시우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두 번째로 큰 변화는 지호에게서 일어났다.

“나 헌터 말고 다른 거 하려고.”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 때문인지 지호는 어릴 때부터 해온 헌터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나와 박시우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잘 생각했네. 앞으로 하고 싶은 건 있어?”

내 물음에 지호는 쑥스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고 싶어서 헌터를 해왔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요리를 배우고 싶었거든.”

늘 부담감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굳어 있던 지호의 얼굴이 모처럼 편안해 보였다.

흐뭇하게 밝아진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미리 염두에 둔 일이기도 하고.’

“지호야, 그렇다면 온천의 요리를 배워보는 건 어때?”

“온천의 요리라면 온천표 돈가스를 말하는 거야?”

온천표 돈가스 이야기가 나오자 지호의 눈이 별처럼 빛났다.

“맞아. 사실 헌터들도 이용할 수 있는 온천 별관을 만들 계획인데 그곳의 관리자가 필요한 참이었거든. 온천의 관리자가 되면 온천수로 헌터들을 도울 수도 있고 요리도 할 수 있으니까 좋지 않을까?”

“우와……. 그럼 나 온천표 돈가스 비법을 전수 받을 수 있는 거야?”

“그렇지?”

“할래! 무조건 할래!”

길게 고민할 줄 알았는데 지호는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온천표 돈가스 레시피를 전달해준 뒤로는 줄곧 요리 연습에 매진해서 성과를 내더니 최근에는 운수에게 온천수에 넣을 향료 제조법을 배우고 있다.

“네 손은 박수온을 닮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호가 최근에 만든 향료는 운수에게도 제법 후한 평가를 받는 것 같았다.

세 번째 변화는 베카였다.

던전 브레이크 때 탑에 보낸 이후로 베카가 온천에 나타나지 않았다.

‘베카, 탑에서 쉬고 있어? 몸은 좀 괜찮아?’

혹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 안부를 물었었다.

[‘탑의 주인’이 “탑으로 찾아오는 팬들이 많아져서 성가시다”며 온천 사장과 베카의 장면이 프린팅된 현수막을 소중하게 접어 품에 안아 듭니다.]

아마도 실시간 스트리밍 때 베카와 함께 죽음의 피에로 인형을 박살 낸 게 화제가 되면서 탑에 조공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았다.

‘아프지만 않으면 됐지.’

얼굴을 못 봐서 아쉽기는 해도 당분간은 베카가 탑에서 지내며 회복하는 편이 좋을 거라는 게 내가 내린 판단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변화, 그게 가장 나를 성가시게 했다.

온천 별관 퀘스트를 위해 열심히 수건을 빨아서 개는 내내 나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세 명의 남정네들 때문이었다.

“다들 왜 이래? 나한테 돌려받을 빚이라도 있어?”

오늘 정리할 수건을 안고 복도를 걷고 있던 나는 돌발적으로 뒤로 돌아섰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듯 일제히 멈춰선 세 명의 남정네가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딴청을 피웠다.

이번 던전 브레이크 사건 이후로 해령과 염라, 샤레니안까지 묘하게 내 곁을 빙빙 맴도는 기분이 들었다.

“염라, 넌 저승 업무 보느라 바쁜 거 아니야?”

“큼, 지금도 업무를 보는 중이다.”

염라가 손에 든 명부를 어색하게 넘겼다.

“너 지금 명부 거꾸로 들었거든?”

명부를 바르게 바꿔 드는 염라는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심 당황한 것 같았다.

“그리고 샤레니안! 넌 갑자기 왜 위험하게 복도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데?”

“수련 중이다.”

“방금 급하게 검 꺼내는 거 다 봤거든?”

“잘……못 본 것 같은데?”

시치미를 떼는 샤레니안의 얼굴에 진땀이 흐르는 게 보였다.

“해령, 너는 왜 날 따라오는 건데?”

“……수건이 많아 보여서. 같이 들어주려고.”

“다섯 장뿐인데?”

이정도 양은 한 손으로 거뜬히 들 수 있었다.

그걸 해령이 모를 리 없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내가 답답해서 못 살겠어. 빨리 퀘스트를 깨서 여기를 벗어나든지 해야지!”

다행히 이제 퀘스트 성공까지 개어야 할 수건 개수는 다섯 장이 전부였다.

나는 복도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칼각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며 온천 수건을 마저 개어 내기 시작했다.

[온천 수건의 자존심은 살아있는 각!]

[각 맞춰서 수건 개기 (100/100)]

[필수 퀘스트 ‘온천 수건의 자존심은 살아있는 각!’을 완료합니다.]

마지막 수건을 내려놓자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시스템 창과 함께 눈앞에 커다란 지도가 펼쳐졌다.

[‘온천 별관’의 좌표가 열립니다.]

* * *

그리고 그때, 탑 46층.

“베카님, 몸이…….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어둠 속에서 루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탑의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베카의 팔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통은 탑으로 돌아오면 상태가 회복됐는데, 이젠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게다가 증세가 심해지면서 환각을 보는 일까지 늘어났다.

“……카, 내가 제일 아끼는 건 너인 걸 알지?”

그 장면 속에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파도처럼 물결이 치는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수온이 베카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던 것도 잠시, 환각이 사라지고 차가운 탑의 어둠이 드리웠다.

“난……. 괜찮다.”

‘만약 지금이 내 마지막일지라도.’

베카는 자신과 수온이 함께 프린팅된 현수막을 바라보며 살며시 눈을 내리감았다.

‘널 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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