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마왕님! 부디 저와 ㅅㅅ를!
* * *
용사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 명한 마왕.
이에 대해서 용사는 진한 주저함을 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게.. 그러니까… 혹.. 무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폐하. 부디 소신과.. ㅅ….”
진한 긴장이 느껴지는 용사의 말.
이에 마왕은 그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원하길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가 하는 점에서 약간의 우려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말 한 사람은 짐이다만.. 역시 아무리 그래도 국가 재정에 너무 큰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짝 초조한 기분 속에 용사의 말을 기다리는 마왕.
그리고 잠시 후..
그런 그녀를 향해서 용사는 마침내 마음을 굳힌 듯 조금 떨리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신에게.. 폐하와 단 둘이…ㅅ… 시.. 식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응?”
생각지도 못한 부탁을 하는 용사.
이에 대해서 마왕은 그녀가 우려했던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부탁을 받는 것 이상으로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 했다.
“지.. 짐과 함께. 식사를 말인가?”
“네! 그.. 그렇습니다 마왕님. 그것이 바로… 소신이 폐하께 바라는 것입니다.”
“…”
눈에 띄게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를 하는 용사.
이 순간 그의 얼굴에선 방금 전 보아 왔던 공허함이 아닌, 부끄러움과 진한 생기라는 감정이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시들어가던 꽃이 빗물을 맞고 다시금 활기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
이를 보면서 마왕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잠시 침묵을 유지하였다.
“안.. 되겠습니까?”
마왕의 눈치를 살피면서, 불안감이 담겨 있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는 용사.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왕은 태어난 이래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식사.. 라고? 짐과 단 둘이.. 말인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요구
이에 마왕의 마음 속에는 진한 어색함이 느껴졌으나, 한편으로는 그리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그냥 밥 한끼를 같이 먹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이..이 정도는… 승전을 하고 돌아온 전사에게 연회를 베푸는 정도로 여기면..’
국가에 재정에 부담이 가는 것도 법률 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 자신에게 어떤 큰 부담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마왕은 마음 속으로 미묘한 합리화의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납득시킨 뒤.
그대로 살짝 어색함이 담겨 있는 어조로 그 남자에게..
눈 앞에 있는 용사에게 말하였다.
“ㅁ..뭐.. 딱히 안 될 것은 없다만… 정말 그런 사소한… 것으로 괜찮겠느냐?”
“ㄴ..네! 소신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왕의 말에 반짝반짝 빛나는 표정을 지은 채 대답하는 용사.
방금 전의 그 우중충한 그림자가 거짓말이었던 것 마냥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그를 보면서,
마왕은 마음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 한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살짝 용사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 그대가 그것을 원한다면 그리 해주도록 하마.”
“가.. 감사합니다! 폐하!”
*
공을 세운 포상으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마왕의 물음.
이에 대해서, 난 한 번 겸양의 말을 내뱉은 것과 별개로 그 짧은 순간 그녀의 제안에 무엇을 요구하면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마왕의 말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수 없이 많이 있었다.
막대한 재물이나 영지는 물론이고.
혹은 개인적으로 부릴 수 있는 부하..
그도 아니면 소위 말하는 ‘노예’ 같은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현대와는 달리 이 세계는 각종 윤리관에서 나의 일반 상식과 네 발자국 이상 멀어져 있는 중세 판타지 세계였다.
신분의 차이는 엄격하게 존재하고 있었으며, 노예를 들이는 것은 돈이 있는 이들이라면 물건을 사는 것 마냥 당연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난 마음만 먹으면 소위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하렘을 합법적으로 구성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했으며 한 순간 그런 쪽으로 욕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마왕에게 아름다운 마족 여성들을 수하로 달라거나, 혹은 인간 여전사들을 노예로 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잠시 그런 동물적인 욕망에 흔들린 것과 별개로, 이내 난 그런 생각에 대해서 천천히 고개를 젓게 되었다.
‘..하렘이라.. 뭐, 성욕적인 면에서 보면 조금 끌리긴 하지만.. 내 연애관하고는 역시 맞지 않는 짓이야.’
확실히 하렘은 남자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긴 했으며 본능적으로 이를 원하게 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나라는 녀석은 그런 식으로 여러 우물을 파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며, 책임 없는 쾌락을 남발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현대의 윤리관에서 진하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치게 고지식한 연애관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나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사랑을 발전시켜가며 마지막엔 그것의 결실을 맺는 건전한 이성관계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눈 앞에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떠한 여성보다 아름다우면서, 성격 역시 정확히 나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 존재가 앉아있었다.
처음 그 얼굴을 보았을 때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존재이자..
이 세계에서 나의 삶이 비참한 배드 엔딩으로 끝나지 않게 해준 은인과 같은 인물.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문제의 그 여성은, 눈 앞에 앉아있는 나를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고.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그녀의 이러한 말에 대해서,
난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고 있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녀에게 말했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 해서 너무 무르지도 않은 요구..
그 결과 내가 요구 한 것은..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왕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마왕은 조금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이런 나의 제안을 승낙해 주었다.
내일 저녁. 나를 위해서 시간을 비워두겠다는 말과 함께..
*
용사에 대한 ‘포상’의 이야기를 끝내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마왕.
그곳에는 언제나와 같이 그녀가 가장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 차를 타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안경을 착용한 지적인 외모에, 측두부에 작게 나있는 어린 사슴 뿔을 지니고 있는 마족 여성.
푸른 메이드복 차림에 단정하게 묶은 청색 포니테일 머리를 지니고 있는 보라빛 눈동자의 미녀.
4대 간부 중 한 사람이자, 마왕의 비서 겸 마왕국의 재상 자리에 있는 인물.
벨제뷰티 예레미아
그녀는 방으로 들어온 마왕을 향해 차분한 하면서도 정중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셨습니까 폐하.”
“그래.. 다녀왔다..”
그 말과 함께 심란한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 앉는 마왕.
그런 그녀의 앞에 벨제뷰티는 준비해둔 차를 따라 주었으며 마왕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를 곧바로 쭉 들이켰다.
그리고…
그렇게 어떤 이유로 인해 복잡한 감정을 진정시키려 하는 마왕의 모습을 보면서,
벨제뷰티는 진한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자신의 군주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래서.. 가신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폐하? 이번 일에 대한 공적으로 용사가 대체 무엇을 요구하던가요?”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마왕의 모습.
이를 보면서 이미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벨제뷰티는 단번에 용사가 마왕에게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이 순간.
마왕군의 내정을 총괄하고 있는 벨제뷰티로 하여금
차분한 얼굴 표정과는 별개로,
머릿속으로 매우 복잡한 생각과 더불어
진한 긴장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설마 했지만… 역시 그 용사라는 작가 폐하에게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인가? 엄청난 양의 재물을 내놓으라거나 거대한 영지를 달라고 했거나.. 어쩌면 우리 마족들이나 포로로 잡혀 있는 인간 여성들을 수 십명을 성노예로 요구한 것일 지도 모르겠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용사도 일단은 수컷이니까!’
아직 정확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용사의 요구는 어지간해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신들 군주를 이 정도로 동요시킬 정도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분명 엄청난 것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벨제뷰티는 판단하고 있었으며..
이와 관련해서 그녀는 벌써부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지는 기분과 더불어 진한 분노의 감정을 함께 느끼기 시작했다.
‘제길.. 역시 저 용사 녀석 겉으로는 배신당했다니 뭐니 하지만 실상은 그냥 칼 든 강도 같은 놈이었어. 분명 철저한 계산 끝에 이런 식으로 우리 마왕국을 벗겨 먹을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게 분명해. 시간이야 오래 걸리더라도 어차피 나중 가면 이기게 될 종종 연합 보다는 불안 불안한 우리들 쪽에 더 얻어 먹을 게 많다 이거지? 거기다 이렇게 몰려 있는 상황에서 우리들은 용사놈의 요구를 거절 할 수도 없을 것이고. 이러다가 나중 가서 우리들의 재력이 고갈되면 그땐 곧바로 칼을 거꾸로 쥐면서 우리들의 뒤통수를…’
애초에 철저한 전략가이자 분석가로서 용사의 전투력을 마왕과 더불어 거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유이한 존재였던 벨제뷰티였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리 충성 맹세를 했다 하지만 마왕과 호각 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용사는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자 조금만 수상한 기미가 보일 경우 바로 모가지를 따버려야 하는 위험한 존재였다.
아울러 당장 그녀의 주인인 마왕이 그런 쪽의 경계에 무른 만큼, 자신이라도 나서서 용사를 예의주시 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벨제뷰티의 입장이었다.
실제로 마왕에게 요청해서 롭을 공격하는 일에 엘리사를 끼워 넣은 것도 벨제뷰티의 작품.
그렇게 기본 베이스부터 용사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는 벨제뷰티였으며..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그‘용사의 요구’ 라는 것에 심상치 않은 감정을 내보이고 있는 마왕의 모습은 0.5초 만에 방금 전과 같이 복잡하면서도 기나긴 생각을 출력해 내도록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찰나의 순간 포커페이스를 한 채 머릿속으로 어마 무시한 속도로 용사를 씹어대고 있는 벨제뷰티를 향해서.
마왕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문제의 그 ‘용사의 요구’를 이야기를 했다.
“식사…”
“…네?”
“식사를.. 해달라 요청했다. 용사가.. 나와 단 둘이.. 그것이, 용사가 나에게 요청한 포상.. 이었다.”
“?!?”
정말로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는 마왕.
이에 대해서 벨제뷰티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수 초간 사고가 정지되는 듯 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은..
‘용사 이 새끼..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서운 녀석이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