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마왕님은 의지로 가득찼다
* * *
갑작스럽게 나타나 나를 막아선 마왕.
그녀의 이런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난 일단 신하로서 그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결정을 내리며 일단 뒤로 물러섰다.
“저자들이 경기장을 습격한 놈들이다. 모두 연행하도록.”
“알겠소.”
“놈들을 잡아라. 일단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감옥에 처넣도록.”
“네, 알겠습니다.”
마왕의 신분이 아닌, 어디까지나 대회에 참가한 마족 전사로서 신고를 넣고 병사들을 끌고 온 마왕.
이에 마족 병사들은 그대로 용사파티의 녀석들을 끌고 돌아갔으며, 동시에 샤뮤엘은 그런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일단 놈들을 처음 발견한 것은 나인만큼 나도 동행하도록 하는 것이 정답일 터. 내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는 돌아갈 테니 그리 전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용사파티를 모조리 끌고 가면 서 깔끔하게 사라진 이들.
그 결과, 이 자리에는 나와 붉은 갑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마왕. 단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후…”
보는 눈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직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왕.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난 약간의 의문을 담가 질문을 하였다.
“어째서 그러셨습니까? 어차피 제 손에서 금방 처리하면 될 문제였는데 왜 그렇게까지..”
상대가 마족 이었다면 모를까. 적국의 전사들로 분류되고 있으며 범죄까지 저지른 용사파티의 녀석들을 즉결 처형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성가시게 병사들을 불러모아 추가적인 취조와 재판을 하는 과정을 거치려 드는 마왕.
이와 관련해서 난 의문을 담아 질문을 하였고…
그런 나의 물음에 마왕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그냥 놔뒀으면 그 다음 일은 뻔하지 않은 것인가. 분명 용사의 손에 저 녀석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겠지. 짐의 말이 틀리지 않은가?”
“…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만한 살기를 방출하고 있지 않았느냐. 오히려 모르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아마 샤뮤엘 역시 얼추 눈치를 채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역시 감춘다 해서 감추었지만 그리 소용은 없었나 보군요.”
솔직히 놈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대한 살려줄 것처럼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다, 단번에 놈들을 쓸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당사자가 아닌 주변 인들 입장에서 내가 놈들을 죽이려는 기세가 제법 또렷하게 보인 듯싶었다.
‘솔직히 살기를 죽이는 것 같은 세밀한 작업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지.’
애초에 정면대결을 나서서 힘으로 찍어 누르는 용사인 만큼 기척을 죽이거나 하는 데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둘 다 그리 좋지 못한 듯싶었다.
어찌 되었든, 그런 사실과 별개로 난 마왕을 보면서 나의 솔직한 진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네, 죽이려 했습니다. 그 빌어먹을 녀석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그도 그럴 것이 놈들은 다른 사람도 아닌 마왕 폐하를 시해하려 한 놈들이지 않습니까. 이 나라의 군주이자 저의 은인…. 동시에 저의 연…인인 폐하를 건드리려 한 놈들에게 제가 사정을 봐줄 필요는 전혀 없지 않겠습니까?”
“…그..그건…”
나의 말에,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를 하려다 이를 잇지 못하는 마왕.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약간 진정이 된 듯한 모습과 함께 나를 보면서 말했다.
“뭐… 그대로 짐을 생각해 주는 것은 일단 기쁘도다. 하지만 그래 봤자 놈들은 완벽히 실패하지 않았느냐? 놈들의 공격에 짐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짐의 대리 역시 무사했다. 물론 응당 처벌은 받아야겠지만 즉결 처형은 조금 심하다 생각되지 않는가?”
약간의 난감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마왕.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난 다시 한번 또렷한 목소리로 나의 생각을 여과 없이 이야기하였다.
“실패하고 성공하고의 여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저들이 소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뻔 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전 저자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할 뻔 했다면 그 자체만으로 눈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고의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면 당연히 분노를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음…”
그런 나의 말에 약간 당황한 듯한 느낌을 내보이는 마왕.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난 내가 너무 여과 없이 과격하게 이야기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난 여기에 대해 후회를 하거나 의견을 수정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소중한 것을 반드시 지켜낸다는 것은 곧 나의 신념과 같은 것인 만큼, 이 점을 피력한 것에 대해선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무튼… 이걸로 놈들이 붙잡혀 갔으니 일단은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는 것으로 하고, 우선은 저희 역시 빨리 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방금 전 대결 순서가 저희들이었던 만큼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나의 말에 살짝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마왕.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난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인 뒤 그대로 마왕과 함께 그곳을 벗어나 경기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저, 용사여 혹 괜찮다면…”
“네?”
*
후배나 다름 없는 용사파티원들을 도륙하려 한 용사.
이에 마왕은 아무리 그래도 일은 순리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런 저런 이유와 관련해 이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용사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마냥 부정적인 생각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자신의 연인을 해치려 한 자들을 용서치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용사.
단호함이 깃들어 있는 그의 이런 선언을 들은 순간,
마왕은 순간적으로 약간 두근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녀를 지키겠다는 선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인 용사.
이 나라의 군주인 마왕에게 있어서 이와 유사한 충성의 맹세는 지겨울 정도로 여러 번 들어본 것이었으나, 지금의 선언은 그런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군주로서의 마왕이 아닌,
자신의 연인으로서의 마왕을 지키겠다는 용사의 말.
그 이야기는 여느 흔한 충성의 맹세들과는 달리, 어째서인지 마왕의 가슴에 강하게 꽂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뭐지? 이 기분은… 익숙하지는 않지만…어쩐지… 조금 기쁘구나…’
한 순간 느껴지는 가슴 깊은 곳의 몽글몽글한 감정.
그것을 인지하면서, 마왕은 문득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욕망과 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감정이 왜 생겨났는지,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마왕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과 별개로 이 순간 마왕은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따라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용사여… 혹 괜찮다면…”
순간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부끄러움.
붉은 갑주로 전신을 가리고 있음에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드는 두근거림.
그러나, 이러한 떨림 속에서도 마왕은 이를 이겨낸 채 행동을 하였다.
평소 감정이 아닌 의지에 따라 움직여 온 그녀의 강인함은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빛을 발하였다.
“잡아줄 수… 있겠는가? 짐의 손을…”
“네?”
마왕의 말에 살짝 놀란 반응을 보이는 용사.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여기까지 일단 이야기를 밀어 붙인 마왕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조금 격해지는 것을 느끼며 변명하듯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이것은… 그냥 그런 것이다. 어차피 경기장 까지는 거리도 제법 있으니 같이 가면 좋지 않겠는가? 하… 하지만 도중에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니 헤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에서도…”
“…”
“아… 안되겠… 는가?”
약간 횡설수설하는 자신의 말에 잠시 침묵을 유지하는 용사.
이에 마왕은 붉은 갑주만큼 붉게 변한 얼굴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런 마왕을 향해서.
용사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
“아…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폐하.”
검은 갑주로 몸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
이에 마왕은 눈 앞에 있는 용사 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자신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
“으음…”
그대로 용사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천천히 이동을 하기 시작하는 마왕.
비록 단단한 금속 장갑으로 덮여 있었기에 여러모로 어색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마왕은 용사의 손에 담겨 있는 온기라는 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갑옷으로 가려져 있는 통에 서로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두 사람은 이곳까지 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천천히, 경기장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
“….헉!”
한동안 정신줄을 놓고 있던 와중에 퍼뜩 제정신을 차리게 된 엘리사.
시간이 얼마나 흘러 갔는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기분 속에서 다시금 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지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데?”
여전히 정신이 온전히 수습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질문을 던지는 엘리사.
그녀의 이런 물음에, 어느 사이엔가 돌아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샤뮤엘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었다.
“정신이 들었는가? 보다시피 지금 용사와 저 붉은 갑주가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벌써 10분째 양쪽 다 한치도 안 물러서고 있는 것이다.”
“뭐? 10분? 아니 대체 어쩌다가…”
서로간에 검을 맞댄 채 기합소리를 내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두 사람.
이를 보면서, 엘리사는 저 용사와 힘으로 겨룰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 마왕 말고 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동적으로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제법 먼 거리 임에도 느낄 수 있는 용사의 긴장과 떨림.
동시에 이를 상대하고 있는 붉은 갑주에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으며. 이에 엘리사는 자동적으로 저 붉은 갑주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순간, 정작 그 당사자들이 어떤 느낌으로 전투에 임하고 있는지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