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하늘을 새카맣게 물들인 놈들은 말 그대로 벌이었다.
여름이면 도심에서도 꽤 흔히 볼 수 있는 곤충.
문제는 놈들의 덩치가 사람 하나에 육박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뭐야?’
갑작스런 벌 떼의 등장에 당황하기도 잠시.
곧 수백 수천에 달하는 벌들이 태정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그는 본능적으로 스킬을 활성화시켰다.
[아머 슈트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외골격 로봇 다리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방어력과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순식간에 2개의 스킬을 연달아 사용한 태정은 볼 것도 없다는 듯 냅다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무슨…….’
전력을 다해 도망을 가고 있는 태정은 곧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사라진 한설아와 처음 보는 몬스터.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수가 더 불어나기 전에 놈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
생각을 함과 동시에 m60을 소환한 그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바로 코앞까지 날아든 거대 말벌의 무지막지한 비주얼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방아쇠가 당겨졌고, 수백 발에 달하는 빛의 탄환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졌다.
두두두두-! 두두두!
귀를 때리는 소음과 함께 빛살처럼 날아간 탄환들이 날아드는 벌 떼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 요란함과는 다르게 결과는 처참했다.
단 한 놈도, 아니 단 하나의 상처도 내질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갑옷을 입기라도 한 듯 단단해 보이는 벌 떼의 동체.
마나 한 통을 모두 소비하고서도 타격을 주지 못하자, 태정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전혀 안 통해.’
m60은 그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무기였다.
레벨 차이가 상당히 났던 리콜 던전의 보스조차도 이걸로 잡았으니, 이게 안 통한다는 것은 놈들의 레벨이 그보다 높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이놈들은 보스도 아닌 일반 몬스터.
다른 무기 역시 통하지 않을 공산이 컸다.
‘이 여자는 대체 어디 간 거야?’
태정은 달리면서도 한설아의 존재를 찾으려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녀 레벨 정도 되는 이가 이곳에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었을 터.
왜 갑자기 모습을 감춘 것일까.
태정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혹시 함정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 봤지만 그 또한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죽이려 했다면 굳이 호텔에서 구해 줄 필요가 있었을까?
일이야 어찌 됐건 현재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 보자.’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어그로가 풀릴 때까지 가능한 멀리 도망을 가는 것.
그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태정이 부스터를 소환했다.
동시에 가속페달을 밟자 그의 신형이 곱절의 속도로 앞을 향해 튀어나갔다.
바람을 가르며 해변을 질주하고 있는 태정은 틈이 날 때마다 후방을 돌아보며 놈들과의 거리를 파악했다.
다행히 속도에서 앞서는지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그가 제라드를 호출했다.
“제라드.”
-네, 주인님.
“저놈들 뭔지 알아?”
-레드 존의 데이터는 학습되어 있지 않습니다.
“레드 존이라니? 그럼 여기가 레드 등급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주인님.
“x 됐네.”
제라드의 말에 태정은 허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블루도 아니고 레드라니.
레드는 필드의 그라운드 제로를 제외한 나머지 등급 중 최고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태정으로선 감히 꿈조차 꿀 수가 없는 곳.
이곳을 가려면 블루 17단계를 순차적으로 클리어 해야 하는데, 고작 블루 1단계에서 맛만 찍어 본 태정으로선 사망률 100%의 죽음의 던전이나 다름없었다.
“어쩐지 기스도 안 나더라. 저것들 지금 나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로 강한 거야? 다른 무기로도 힘들겠지?”
-해당 레드 존의 정보는 학습이 되지 않아 강함을 따질 순 없지만, 공개된 데이터값에 의하면 레드 등급의 최소 적정 레벨은 750으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뭐? 750?”
-이것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레드에도 각 레벨이 존재하니까요.
“난리 났네.”
제라드의 대답을 들은 태정은 더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질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방 모래바닥이 꺼지며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건물처럼 솟아나 앞을 가로막고 선 정체불명의 괴수.
그것은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투구게(?)였다.
물론, 한 마리가 아니었다.
구덩이를 헤집고 줄지어 등장하고 있는 놈들은 마치 개미 떼를 연상시키듯 무한대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태정을 향해 일제히 전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지옥 같은 광경에 얼굴이 핼쑥해진 그가 사방을 살피며 갈등했다.
뒤는 벌 떼, 앞은 게 때.
좌측은 바다고 우측은 야자 숲이었다.
‘바다로 가는 건 자살행위야. 하지만 저쪽도 딱히…….’
고민을 하던 태정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눈을 질금 감았다.
‘그래. 차라리 숲이 나아.’
결정을 내린 태정은 즉각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숲도 꺼림칙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바다보다는 나았다.
숨은 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야자가 무성한 숲으로 그의 신형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러기도 잠시.
“으악!”
한차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며 사라졌던 태정의 신형이 다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후방으로 보이는 전봇대만 한 뱀 떼들.
물경 수십 마리에 달하는 이무기 같은 뱀들이 그를 죽일 듯 뒤따르고 있었다.
퇴로가 전부 막혀 버리자 태정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선택지도 없는 상황.
바다를 제외한 삼면이 괴수 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자연스레 그의 신형은 이제 정면 바다로 향했다.
“제라드.”
-네, 주인님.
“부스터로 바다 위에 뜰 수는 없겠지?”
-그 정도 출력까진 나오지 않습니다.
“젠장.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이대로 가다간…….”
방법이 있을 턱이 없었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놈들의 레벨은 최소 750.
그 숫자만도 수천 마리에 달한다.
덩치도 죄다 한 덩치씩 해 틈을 비집고 돌파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
‘모르겠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바다로 내달리던 태정은 속도를 줄이며 대지에 멈춰 섰다.
그 상태로 뒤돌아 선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오픈했다.
동시에 좌우로 형성된 포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고, 수백 발에 달하는 에너지 탄이 일제히 쏘아지기 시작했다.
쾅! 까앙-!
파파파팟! 파파팟!
실로 엄청난 화력이 가장 가까이 있던 뱀의 무리를 뒤덮었다.
동시에 RPG-7과 유탄을 차례로 발사한 그는 거대하게 솟아난 먼지 속 TRG를 꺼내 전방을 조준했다.
그런 그의 조준은 오래가지 않았다.
흙먼지를 뚫고 나온 무수히 많은 뱀.
그 첫 번째 놈의 대가리에 7.62미리 강화 에너지 탄이 그대로 날아가 박혔다.
하지만 이 역시도 무용지물이었다.
닿자마자 물처럼 흩어지는 빛의 탄환.
이어 몇 번을 더 당겨 봤지만, 놈들의 전진은 멈출 수가 없었다.
“아…….”
절망적인 신음이 그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던 태정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제 죽음이란 공포가 그를 엄습하고 있었다.
“끝이야… 난 수영도 못 하는데.”
아직 바다란 곳이 남아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그런 그에게 제라드의 말이 들려왔다.
-주인님.
“왜? 뭔가 방법이 있겠어?”
-개 헤엄도 못 치십니까.
“뭐라고? 이런 x신 같은…….”
어처구니없는 제라드의 말에 짜증이 나기도 잠시.
그가 곧 비장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그래. 개헤엄이라도 쳐 보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라면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돼.’
각오를 다진 태정은 곧장 바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될지 안 될지 확신은 없었다.
다만 어릴 적 목욕탕에서 구르며 배운 개헤엄 기술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면, 약간의 가능성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도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갑자기 파도를 뚫고 생선들이 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생선들은 다리와 발이 달려 있었다.
‘아니, 이게 뭔…….’
펄쩍펄쩍 뛰며 다가오는 생선 떼를 보는 태정의 표정이 분노로 휩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벌 떼와 게 떼, 뱀 떼까지는 이해를 하려 했다.
한데, 육지를 뛰어다니는 발 달린 생선 떼라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이건 마치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던전 같지 않은가.
모든 희망이 꺾인 태정은 사방에서 다가오는 괴물 무리들을 보며 망연자실에 빠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태정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사태의 주범인 한설아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할 거였음 왜 굳이 여기까지 끌고 와야만 했을까.
요트 위에서도 바닷속에서도 그녀는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가 있었다.
한데, 대체 왜?
왜 자신은 이곳에서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설마. 이런 걸 즐기는 변태 싸이코 년인가.’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을 장난감 취급하며 죽이는 놀이가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그게 뭔 개소린가 싶었는데, 지금 보니 이게 딱 그 짝이었다.
“내가 미친놈이지. 그렇게 조심했었는데. 막판에…….”
그가 후회하는 사이, 놈들과의 거리가 십수 미터로 줄어들었다.
“이런 개같은…….”
마지막 힘을 짜내 울분을 토하려는 그때.
태정의 귓가에 낯선 알림음 하나가 들려왔다.
[사이킥 연대 스킬로 인해 시전자 염동력자의 에스퍼 파티에 강제 합류됩니다.]
‘뭐?’
난데없는 알림음에 무얼 느낄 새도 없이, 그의 주변으로 일렁이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눈을 뜨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수천의 괴수 떼들이 일제히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 떼도, 게 떼도, 뱀 떼도.
그리고 그를 농락하듯 뜬금포로 튀어나왔던 생선 떼도.
그렇게 하늘로 승천하고 있는 놈들을 보고 있던 태정은 그 중심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를 등지고 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
그녀는 바로 한설아였다.
그와 그녀의 눈이 사선에서 마주쳤다.
동시에 한설아가 한쪽 눈을 찡긋했고, 그녀의 입에서 작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염동파쇄.”
그녀의 영창과 함께 떠 있던 괴수 떼들이 일제히 분쇄되기 시작했다.
마치 투명 빛에 타들어 가듯 무로 돌아가고 있는 수천의 몬스터들.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저것이야말로 소멸이라는 단어에 가장 걸맞은 광경이 아닐까.
그렇게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던 몬스터들은 찰나의 순간 사라졌고, 놈들이 없어진 곳엔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 하늘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