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스킬 1차원 전파 레이더가 오픈됩니다.]
[스킬 프로텍터 아머가 오픈됩니다.]
[스킬 터보 부스터…….]
[스킬…….]
수많은 알림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설아가 태정의 옆으로 내려섰다.
“괜찮아?”
“어떻게 된 거예요?”
다소 떨떠름한 그의 표정에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 사과의 말을 전했다.
“조금 놀랬지? 미안. 가볍게 테스트 좀 해 본 거였어.”
“테스트요?”
“최소한의 자격은 봐야 하니까.”
“그럼 미리 말을 좀… 아니, 그보다 그럼 제 몸에 바른 약은 뭐예요?”
“아, 그거? 하피의 호르몬이야. 딱히 쓸모는 없지만, 몬스터들은 아주 환장을 하고 달려들지. 동생도 봤지? 여기저기서 다 튀어나오는 거.”
한설아의 태연한 말에 태정이 순간 발끈했다.
“죽을 뻔했다고요. 그리고 굳이 사라질 필요까진 없었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난 한계 레벨이라 이곳에 있으면 애들이 다 숨어 버리거든. 아무리 하피의 호르몬이 있어도 말이야.”
“그럼 아까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거나 그런 건 다 거짓말이었네요.”
“아니지. 네가 그만큼 잘 도망다녔으니까. 이 약이 없었으면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도망다닐 수 있었겠어?”
그녀의 황당한 논리에 태정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애초에 약이 없었으면 도망을 다닐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이 여자, 어디 모자른 거 아니야?’
그런 그를 향해 한설아가 다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동생은 제법 오래 버틴 거야. 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거든. 아까 그 스킬 좋더라? 난 숨이 끊어질 듯 달리고 또 달렸었는데.”
“누님도 이걸 했었어요?”
“오래전에. 아직도 그날이 생생해. 난 그때 정말이지 평생 할 욕을 다 했던 것 같아. 진짜 살아만 나간다면, 찢어 죽이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었는지. 근데 벌써 그것도 추억이네. 동생은 내 욕하고 그런 거 아니지?”
“그럴 리가요. 저는 태생이 건전주의자라.”
“그럴 것 같았어, 동생은 순수해 보이거든. 참. 레벨 업은 좀 했어?”
“조금 한 거 같긴 한데. 잠시만요… 어? 어!?”
상태창을 확인하던 태정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레벨의 수치가 300까지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삼, 삼백이에요.”
“뭐야? 그것밖에 안 돼? 원래 몇이라고 했었지?”
“145요.”
“음. 확실히 디버프 때문에 얼마 먹지 못한 모양이네. 좀 더 크게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이거 어쩌지? 한 번 더 잡기엔 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아뇨. 이것만 해도 저는… 완전 로또인데.”
“정말? 맘에 들어 하니 다행이네. 자, 그럼 이제 본부로 가 볼까?”
한설아의 도움을 받아 던전을 빠져나온 태정은 다시 요트로 복귀했다.
“잠깐만 기다려, 좌표를 잡아야 하니까.”
한설아가 좌표를 수신받는 사이, 태정은 새로 들어온 스킬들을 점검했다.
[1차원 전파 레이더], [천룡-1], [프로텍터 아머 타입2], [화염 방사포], [m61 슈퍼 발칸포], [터보 부스터], [1차원 대인지뢰].
150업으로 인해 들어온 스킬은 총 일곱 가지였다.
근접 타깃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전파 레이더.
슈트의 확장판인 프로텍터 아머.
화염 방사기의 무려 5배 이상 출력을 보여 주는 방사포와 분당 천 발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발칸포.
부스터의 발전형인 터보 부스터와 땅에 매설을 할 수 있는 지뢰가 바로 그것이었다.
태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오픈된 천룡이란 스킬이 마음에 들었다.
[천룡-1] lv1 [다연장 로켓]
봉인된 속도 [500km/h]
구경: 130mm 에너지 로켓탄
사정거리: [3km]
살상 범위: 100m
기본 파괴력 5,500-7,700
소비 마나 9천
분당 최대 12발
‘사거리, 파괴력, 범위, 속도까지. 그냥 미친 스킬이야.’
다연장 로켓인 천룡은 지금까지 태정이 사용해 왔던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파괴력만 봐도 으뜸인 데다, 분당 12발까지 쏠 수 있는 어메이징 한 스킬.
게다가 사거리가 무려 3천 미터에 달하며, 살상 범위 또한 기존의 무기와 스킬들을 통틀어 가장 넓은 범위를 자랑하고 있었다.
‘빨리 써 봤으면 좋겠는데.’
태정은 당장이라도 무기들을 소환해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이건 어떤지, 저건 어떤지.
업그레이드가 된 스킬은 체감이 어느 정도인지.
모든 것이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얻게 만들어 준 한설아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패 죽이고 싶었는데, 그게 다 설계였다니. 역시. 이래서 관 뚜껑 닫기 전까지 모른단 소리가 나온 거구나.’
태정이 그러고 있는 사이, 허공에 포털 하나가 생성됐다.
“이건?”
“많이 기다렸지. 짜식이 좌표를 자꾸 거부해서 애 좀 먹었네.”
“누가요?”
“있어. 우리 클럽에서 제일 깐깐한 놈. 들어가자.”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몸이 붕 하고 뜨더니 순식간에 포털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나타난 배경은 누군가의 집무실로 보이는 서재였다.
예상 밖의 공간에 신기해하기도 잠시.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절차는 좀 지켜 주지?”
사내의 말에 한설아가 피곤하다는 듯 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번에 오면 이렇게 편한데, 뭐 하러 둘러와, 어차피 올 사람도 없는데.”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다.”
“네네. 그럽죠. 다음부턴 꼭 명심해서…….”
“거기 있는 그 친구인가.”
“응. 내가 잠깐 봤는데, 괜찮은 동생이야.”
“동생? 하여간 그 저질스러운 붙임성 하나는 알아 줘야겠군. 유태정이라고 했나.”
사내가 묻자 태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난 서진이야. 이 변변찮은 클럽의 장을 맡고 있지.”
“아. 반갑습니다. 유태정입니다. 그리고 호텔에서의 일 감사드립니다.”
“나한테 감사할 거 없어. 나 또한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을 뿐이니까.”
“예?”
“그보다 클럽에 들어오고 싶은 이유가 뭐지?”
그의 질문에 태정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더니 이내 그를 향해 되물었다.
“솔직히 말합니까.”
“좋을 대로.”
“기왕 한번 들어가는 거, 제일 좋은 곳에 들어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습니까.”
“좋은 곳이라.”
“멋있기도 하구요.”
“단순해서 좋군. 하지만 우리 클럽은 일반적인 길드가 아니야. 목적이 있는 이들이 한데 모인 일종의… 결사대라고 할 수 있지. 해서 들어오려면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우리와 뜻이 같아야 함은 물론이고, 목숨을 걸어야 할 일도 종종 생기지. 당연히 자신의 몸 하나 지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하는 거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자넨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했어. 즉, 가입이 불가하다는 말이지.”
“…….”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가입이 되지 않는다니.
그럼 왜 굳이 이곳까지 오라고 한 것일까.
이해를 할 수 없던 태정은 소파에 앉아 있는 한설아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눈빛을 느꼈는지, 그녀가 서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냥 가입시켜, 우리 항상 인력난이잖아.”
“이건 리더의 권한이다.”
“알지.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내 얼굴을 봐서라도 어떻게 임시 단원으로…….”
“한설아, 한마디만 더 하면 파견이다. 이번엔 1년짜리야.”
“파견? 나 이제 들어왔는데? 그건 안 될 말이지. 오케이. 쉿. 조용히 할게.”
손으로 입을 잠근 그녀는 이내 책 하나를 펼쳐 태정의 시선을 외면했다.
‘뭐야? 허가도 안 났는데, 대책도 없이 그냥 데리고 온 거야?’
어이없는 상황에 허탈해하기도 잠시.
서진의 입이 다시 열렸다.
“대신, 다른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다른 제안이요?”
“나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길드가 하나 있어. 클럽과는 상관이 없지만, 그곳에서 한번 힘을 키워 보지 않겠나. 이후에 자네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다면, 그때 다시 입단에 대해 얘기를 해 보도록 하지.”
“그곳이 어딥니까.”
“자네도 들어 봤을 거야. 제닉스라고.”
“제닉… 어?”
서진의 말에 태정은 반사적으로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같이 사냥을 했던 조용석의 길드였기 때문이다.
‘뭐야. 그럼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
사건의 조각을 맞춰 보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서진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자네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싶군. 내 여동생을 구해 줘서 말이야.”
“여동생이라면… 설마 그때 그중의 한 명이…….”
“주아가 내 동생이야.”
“아.”
이제야 이 말도 안 되는 일의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는 태정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곳에서 맹목적으로 자신을 지켜 줬던 이유.
보은이었다.
“내게 뭘 부탁하는 동생이 아닌데, 사람이 붙을 것 같다며 꼭 좀 지켜봐 달라더군. 원칙상 거절을 해야 하지만, 그 녀석이 그런 부탁을 하러 온 건 처음이라 거절을 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 된 거군요.”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어차피 길드는 하나 있어야 할 테고, 제닉스 정도면 그렇게 부족한 길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지금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도 아니고 말이야. 굳이 톱 텐의 명예가 필요한 게 아니라면 썩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저야 뭐… 제닉스도 생각을 하고 있던 곳이라. 그럼 그곳에서 힘을 키우면 다시 재고는 해 주시는 겁니까.”
“추구하는 목표가 같고 그에 걸맞은 힘만 갖춰진다면야.”
“그럼 거기로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조건이나 대우도 섭섭지 않을 거야.”
태정은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닉스가 비록 최상위권에 위치한 길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너럴 리스트에 들어가는 명문 길드다.
일단 제너럴이란 타이틀이 붙었다는 건 최소한 100위권에는 들어간다는 소리니까.
더군다나 리더가 직접 각별한 사이라고 언급을 했다.
그렇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고, 동생이 가입되어 있는 것 역시 장기적으론 호재로 작용할 확률이 높았다.
‘그래. 나쁠 거 없어. 아니, 오히려 지금은 이게 나을지도 몰라. 괜히 이 상태로 클럽에 들어가 봤자 짐만 될 게 뻔하니까. 일단 그곳에서 힘부터 키우자.’
태정이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서진의 시선이 한설아를 향했다.
“설아.”
“응?”
“한 번만 더 수고해라.”
“제닉스에 다녀오란 말이지? 오케이. 그럼 갈까, 동생?”
한설아와 포털을 타고 밖으로 나온 태정은, 다시 요트를 타고 육지로 향했다.
“근데 방금 그 포털은 뭐예요?”
“루프 커버트. 공간 이동 포털이야.”
“말로만 듣던 텔레포트가 저거였군요.”
“일반적인 텔레포트가 아니야. 추적도 방해도 거의 불가능한 암호화된 포털이지. 그래서 이용료도 텔레포트에 수십 배나 돼. 유지 비용이 상당하거든. 클럽 내에선 나밖에 사용을 안 해.”
“누님은 돈이 많으신가 보네요.”
“아니. 아마 내가 제일 깡통일걸?”
“그런데 저걸 타요?”
“귀찮잖아. 절차 다 밟고 들어가려면 최소 여섯 번은 거쳐서 들어가야 하는데. 그보다 잘 생각했어.”
“뭐를요? 길드요?”
“사실 클럽보단 제닉스가 훨씬 낫지. 여기 있으면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만 있지. 자유가 없어, 자유가. 항상 일에 치이니까.”
“그런데 왜 저를 가입시켜려고…….”
“아, 그거? 그냥.”
“…….”
그렇게 육지에 이른 그들은 한설아가 소환한 포털을 타고 제닉스 본부로 넘어갔다.
“아저씨 안녕.”
“아, 오셨습니까, 아가씨.”
“이게 얼마 만이지? 1년 만인가?”
“그 정도 된 것 같군요.”
“어머. 근데 아저씨 머리숱이 왜 이래? 스트레스 너무 받은 거 아냐? 누구야, 누가 그렇게 말을 안 들어. 내가 혼내 줄게.”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제 나이가 있다 보니, 허허.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로…….”
“아. 여기 이 친구. 길드에 가입시키라는 리더의 지시가 있었어.”
“리더께서요? 혹 관계가……?”
“진이 빚을 좀 졌지. 자세한 건 묻지 말고 가입이나 시켜 줘.”
“일단 앉으시죠. 차를 내오라 하겠습니다.”
“아냐. 지금 바로 가 봐야 해.”
“벌써 말입니까? 왜 좀 더 있다 가지 않으시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여기 이 친구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밀렸거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금세 포털 하나를 소환했다.
“참. 그 친구 히든이니까, 잘해 줘야 해. 아저씨, 그럼 아저씨만 믿고 간다? 동생도 열심히 해 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