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여긴 대체 얼마나 규모가 큰 거야.’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태정은 이곳이 진정 일개 길드의 본부가 맞나 의심스러웠다.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벌써 상당한 거리를 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문이라 불리는 곳은 보이지가 않았다.
줄지어 늘어진 수많은 건물과 편의 시설들.
길드인 것을 모르고 왔다면 한국의 어느 동네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달리기도 한참.
드디어 정면으로 거대한 방벽의 입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는 검문소.
셔틀은 바로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사람들이 줄을 서 하차를 하고, 태정 역시 그들을 따라 셔틀에서 내려섰다.
그러자 내리길 기다렸다는 듯, 먼저 내려선 이들이 머뭇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그중 한 청년이 다가와 태정에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십니까, 간부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d-2반 근무 나가는 중입니다.”
“예?”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근무에 임하겠습니다. 저희 d-2반은 간부님을 응원합니다. 부디 이번 선거에 좋은 결과 있으시길 빌겠습니다.”
착각을 해도 아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더 오해가 깊어지기 전 상황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뭔가 잘못아신 것 같은데 저는 간부가…….”
그가 해명을 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클랙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앙-! 빠빵!
다소 거슬리는 소음에 모두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그러자 한눈에 봐도 매우 고급스러운 리무진 차량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곤 웬 사내 하나가 운전석에서 내리더니 부리나케 달려와 사람들을 훑다 태정을 보곤 깊이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기 중에 잠깐 졸아서 나가시는 줄도 모르고…….”
“누구……?”
“아. 저는 이번에 태정 님의 수행 기사로 배치된 김형식이라고 합니다.”
“수행 기사요?”
“예. 어서 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뭐가 뭔지 알 순 없었지만 태정은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기로 했다.
수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막눈이 봐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햐. 이건 뭐 거의 호텔이구만, 호텔이야.’
태정이 감탄에 젖어 있을 때, 김형식이 운전석으로 들어왔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태정 님의 수행 기사 김형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은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익스클루브란 등급이 확실히 끗발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자신을 위한 맞춤 기사까지 존재하다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트럭을 몰고 다닌 태정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도 괜찮아 보이고 대우도 좋고 역시 오길 잘했어.’
태정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차가 검문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대의 인원들이 일제히 각을 잡으며 차단기를 해제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경비대의 인사를 받으며 북문을 나온 태정은 뒤를 바라보다 김형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신분 검사는 따로 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등급에 따라 다릅니다. 보통 노블 이상이면 들어갈 때만 검사를 하고 나갈 땐 검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 차는 익스클루브 전용이라 당연히 자동 통과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일단. 서울의 신림으로 가 주세요.”
태정은 우선 자신의 집부터 정리를 할 생각이었다.
길드에 모든 것이 있으니, 굳이 밖에 있는 집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원래 살던 집에 도착한 태정은 집주인과 만나 계약을 정리했다.
“6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뺀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음. 계약상 남은 6개월치는 줘야 하는 거 알지?”
“보증금에서 까고 통장으로 입금해 주세요.”
“정말이야?”
“네. 지금 바로 정리해 주세요.”
월세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계약이 그리되어 있기에 별다른 수는 없었다.
김형식과 함께 집에 있는 짐을 전부 빼 차에 실은 태정은 바로 소영의 집으로 달려갔다.
“와. 오빠, 이 차 뭐야?”
“길드에서 쓰라고 준 거야. 짐은 싸 놨어?”
“응. 그런데 책상 같은 건 어떻게 해?”
“그건 그냥 둬. 주인한텐 내가 말할 테니까, 옷이랑 책만 실어.”
소영이 짐을 실고 있는 사이, 태정은 집주인과의 계약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넌 앞에 타, 자리 없으니까.”
“응.”
짐으로 가득 찬 리무진에 올라탄 그녀는 신기한 듯 내부를 구경했다.
“와. 아저씨, 이 차 엄청 비싼 거죠?”
연신 감탄하는 그녀의 말에 김형식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사이 태정은 한 가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 트럭도 찾아야 하나.’
한라산 호텔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량.
태정은 그것을 찾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이미 본전을 뽑고도 남은 차기 때문에, 아까운 것은 없었다.
다만 외부에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찜찜한 태정이었다.
“오빠 뭐 해?”
“어?”
“안 가?”
“가야지. 저 기사님, 혹시 차량 하나 매각하려고 하는데, 대리로 해 주는 곳이 있을까요?”
“서류만 준비되면 가능합니다. 파실 차량이 있으신 겁니까.”
“한 대가 있긴 한데, 제가 그곳에 가기가 좀 그런 상황이라서요.”
“그쪽 주소를 주시면 제가 이번 주 중으로 처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긴 한데, 이런 일까지 부탁을 드려도 될지…….”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괜찮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차 문제까지 해결한 태정은 동생과 함께 길드로 복귀해 이태호를 찾았다.
그는 연락을 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헐레벌떡하며 나타났는데, 손에는 입주민 카드와 책자가 들려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근무지 사고가 있어서… 비서를 통해 말씀을 하셨으면 금방 도와드렸을 텐데. 아무튼 이쪽으로 오십시오.”
태정은 소영과 함께 이태호의 차에 올라탔다.
이후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자, 거대한 부지와 함께 북유럽풍의 타운 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 8번째 집 앞에 차를 세운 이태호가 대문을 열고 그들을 맞이했다.
“들어오시죠.”
내부는 지하 2층에서 지상 3층으로 된 조금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1층은 거실과 주방, 2층은 메인 침실, 3층은 침실과 옥상 야외 데크 등이 놓여 있었다.
“오빠… 이거 꿈 아니지? 정말 여기서 사는 거 맞아?”
“그런 거 같네.”
“말도 안 돼.”
소영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눈치였다.
이렇게 넓고 웅장한 집은 TV에서조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겨 나오는 대저택.
언제 그녀가 이런 곳에서 살거라 꿈에서라도 생각을 해 봤을까.
그런 소영을 향해 태정이 뿌듯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야. 내가 있는 곳보다 훨씬 좋네. 너 오빠 잘 둬서 복받은 거야.”
“오빤 여기서 안 살아?”
“나는 숙소에서 지내야 되니까.”
태정이 그렇게 말하자 이태호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여기서 같이 지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동선이 좋지 않아서 보통은 숙소를 쓰시는 분들이 많죠. 이쪽은 길드 주요 시설보단 민간 시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동마다 기사가 한 명씩 배치되어 있으니, 여기로 연락을 하시면 이용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음. 또 보자 뭐가… 참. 지하 2층은 대피소인데 비상시가 아니면 사용이 불가한 점 양해 부탁드리고. 나머지는 여기 책자에 나와 있으니, 시간 나실 때 한 번씩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번 달은 바쁜 날이 많아서 필요하신 거나,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비서를 통해 물어보시는 게 훨씬 처리가 빠르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고,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수고하시구요.”
이태호가 돌아간 뒤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태정과 소영은 그가 주고 간 책자를 보며 신기한 듯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햐. 여기 학교도 있었네. 마트도 있고. 별의별 게 다 있냐.”
“오빠도 몰랐어?”
“나도 하루밖에 안 됐는데, 모르지.”
“나 이런 집 처음 봐.”
“나도 처음 본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오빠 때문에 이런 곳에서도 살아 보고. 난 진짜 복받았나 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냉장고나 채우러 가자. 밖에 뭐 있나 구경도 할 겸.”
“응.”
소영과 집밖으로 나온 태정은 군데군데를 둘러보며, 무슨 건물이 있는지 하나둘 눈에 익혔다.
“저기가 학교인가 보다. 저기 뒤에 저게 마트고. 잘 봐 둬. 앞으로 네가 이용해야 할 곳들이니까.”
“응. 근데 저건 뭐야?”
“음, 저건…….”
꽤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눈에 담은 그들은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저녁까지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깊은 밤이 찾아왔다.
“슬슬 가 봐야겠다.”
“어? 자고 가지.”
“집 비워 두면 못 써. 생각할 것도 있고.”
“그래도 자고 가지, 겨우 하룻밤인데.”
“다음에. 아, 그리고 내일부터 사냥 가게 될 지도 모르니까, 저녁 전엔 연락 안 될 수도 있어. 던전 안에 들어가면 통신 안 되니까, 괜히 걱정하지 말고. 한 며칠은 쉬면서 너도 생각을 해 봐. 학교도 있고 학원도 있으니까 한번 알아보고.”
“알았어. 오빠도 조심해야 해. 혼자 다니지 말고.”
“그래. 문 꼭 잠그고 자라.”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온 태정은 대기 중인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색에 잠기기도 잠시.
졸린 눈이 막 감기려 들 때 즈음 태정을 태운 차가 숙소에 도착했다.
“수고하세요, 기사님.”
한차례 기지개를 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는 38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현관문 앞에 섰다.
“키가 어디에 있더라. 아. 여기 있구나.”
휴대폰 케이스에서 카드를 찾은 태정은 인식을 시킨 뒤 집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향긋한 냄새와 함께 아늑한 기운이 전해졌다.
그런데.
“악!”
불을 키던 태정은 한차례 비명과 함께 서너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거실 소파 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당황한 표정이 된 그는 잠이 든 듯 보이는 여자를 바라봤다.
당연하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
바로 밖으로 튀어나간 그가 호수를 재확인했다.
3805.
‘맞잖아?’
자신의 집이 맞음을 확인한 태정은 다시 들어와 거실의 여자를 바라봤다.
‘뭐야, 이 여자는?’
태정이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고 있는데, 여자가 꿈틀거리며 슬며시 눈을 떴다.
그대로 마주친 그와 그녀의 눈.
그의 입에서 약간은 불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 뭐야?”
“…….”
태정의 물음에도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대신 몹시 피곤한 듯 두 팔을 깍지 끼며 기지개를 폈다.
“으암.”
“뭐냐니까?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야?”
“오셨어요?”
“아니, 당신 누구냐구요. 여기 내 집인데.”
“누구긴요. 유태정 님 비서죠.”
“뭐요?”
“비서요.”
“비서?”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