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다음 날.
박세아가 차린 아침으로 식사를 끝낸 태정은 전투 훈련장을 찾기 위해 밖을 나섰다.
실전에 들어가기 전 얻은 스킬들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태정이 있는 구역의 훈련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저쪽에 둥글게 솟은 건물이라 했지.”
박세아가 알려 준 이미지를 찾은 태정은 도로를 건너려다, 광장에 모여 있는 엄청난 인파를 발견했다.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어림잡아도 수백에 이르는 헌터들은 저마다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어디 대규모 레이드라도 가려는 것일까.
호기심이 인 그는 가는 것을 미루고 광장으로 향했다.
“자. 다들. 열심히 해 보자고!”
“이번엔 꼭 순위에 들고 말겠어.”
“광탈이나 하지 마.”
“그럼 조금 있다 보자!”
결의를 다지는 소리와 함께 인파가 곧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많은 사람이 사라지자 전방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게이트?”
사람들이 너도나도 게이트로 진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고 있던 태정은 뒷줄에 있던 헌터 한 명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저기 이거 어디로 연결된 게이트에요?”
“네?”
“제가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아아. 오늘 글로벌 서바이벌이 있거든요. 지금 다들 거기 참가하려고 들어가는 거예요.”
“글로벌 서바이벌요?”
“전 세계 사람들 모여서 순위 경쟁 하는 거요.”
여자의 말에 태정은 더욱더 호기심이 일었다.
“아. 그런 게 있어요? 난이도는 어떻게 돼요?”
“음… 딱히 난이도라 할 건 없는데, 본인 레벨에 맞춰서 적당히 나와요. 물론 단계가 올라갈수록 힘들어지지만요. 한번 도전해 보세요. 귀환 스킬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빠져나올 수 있거든요.”
“순위 경쟁이면 보상도 있겠네요?”
“네. 일정 기간 동안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요. 순위에 따라 길드 버프도 들어오구요. 아. 이제 곧 닫힐 시간이라. 전 이만 가 볼게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글로벌 서바이벌이라, 제라드.”
-예, 주인님.
“어떻게 생각해? 한번 가 봐?”
-저는 주인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저곳에 대한 정보는?”
-던전에 속하는 곳이 아니라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
여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조금 전 그 많은 헌터가 모두 거리낌 없이 들어갔다.
그렇다는 건 즉.
“해 볼 만하다는 거지.”
태정은 남은 포션을 체크하며 당당히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배경이 뒤바뀌며 새하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벌 서바이벌에 입장하신 걸 환영합니다.]
[서바이벌에 참가할 닉네임을 등록하겠습니다.]
[사용하실 닉네임을 말씀해 주세요.]
“뭐야? 별게 다 있네.”
[닉네임을 등록하셨습니다.]
[닉네임 뭐야별게다있네.]
“엇?”
무심결에 뱉은 말이 그대로 등록된 태정은 황당한 얼굴로 메시지 창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닉네임 창은 넘어가고 다른 창이 떠올라 있었다.
[본인의 소속을 비공개로 돌릴 수 있습니다.]
[비공개로 돌릴 경우 해당 길드 외, 조회가 불가능합니다.]
[비공개로 돌리시겠습니까? yes/no]
“굳이 알릴 필욘 없지. 비공개로 하자.”
[길드명이 비공개로 전환되었습니다.]
[곧 해당 레벨 구간의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뭐야별게다있네 님 건투를 빌겠습니다.]
마지막 메시지 창과 함께 다시 배경이 일그러졌다.
그리해서 도달한 곳은 굉장히 넓은 공간의 석실이었다.
“미궁이랑 좀 비슷한데?”
공간은 얼마 전 다녀왔던 리콜 던전의 미궁과 흡사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나가는 문이 없다는 것.
그야말로 완벽하게 폐쇄된 공간이었다.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던 태정의 좌측 상단으로 반투명한 창이 하나 떠올랐다.
[스테이지-1]
[클리어 kill 0/300]
[순위 -]
“300마리만 잡으면 되는 건가? 그런데 몬스터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아무리 둘러봐도 마법진이나 포털 따위는 보이지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정교하게 만들어진 돌벽과 돌바닥.
그리고 천장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돌기둥 4개가 전부였다.
뭐가 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태정은 일단 무장을 한 채 대기하기로 했다.
“드디어 써 보는구나. 어디, 일단 이것부터 해 볼까.”
태정은 슈트의 강화판인 프로텍터 아머를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한차례 빛이 일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기계 덩어리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두 팔과 등 그리고 다리에 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철로 된 프레임.
그 크기가 족히 3, 4미터는 되어 보였다.
“오. 뭐냐 이건.”
뭔가 엄청난 스케일에 그가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봤다.
그러자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관절의 구동 범위가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제 몸인 듯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
“이거 뭐야. 미쳤네, 로봇이야?”
마냥 신기해하던 그는 곧 남은 스킬도 차례대로 소환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소환이 된 것은 리콜 던전에서 사용하지 못했던 로켓 런처였다.
그의 우측 좌방 프레임에 장착된 위풍당당한 런처.
이후. 우측 핸드 상단에 m61 슈퍼 발칸포가 장착됐고, 핸드 전방엔 방사포로 보이는 거대한 파이프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좌우 가슴팍엔 원반 형태의 전파 레이더가 위치했고, 등 하단 부분엔 확장형 8구짜리의 거대한 부스터가 형성됐다.
“이게 뭐냐, 대체…….”
태정은 자신이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눈앞의 것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거대한 기체에 거대한 무기와 거대한 장비들.
전고만 눈대중으로 4미터 이상이었다.
기본 프레임만 놓고 봐도 어지간한 중형 몬스터를 압도하는 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구조물은 마치 옷을 입은 듯 편안했고, 움직임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와… 이거 헌터 맞냐?”
입을 벌리고 연신 감탄을 자아내던 태정은 곧 좌우 상단에 각기 다른 반투명한 디스플레이 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터보 부스터]
[출력 0%] [상태: 비활성]
[최대 속도 120km]
[현재 속도 없음]
[제로 50 (3.5초)]
[현재 마나 25,651]
[전파 레이더] 고정형
[탐지 가능 범위 200m]
[상태: 상시 개방]
[대상: 생체 반응이 있는 2미터 이상의 모든 개체]
[현재 탐지된 물체의 수 0]
“이게 레이더고 저게 부스터 계기판 같은 건가?”
대충 파악을 끝낸 태정은 사용법을 숙지하기 위해 제라드를 호출했다.
“부스터 사용법이 어떻게 되지?”
-좌측 허벅지 프레임을 보시면 레버가 있습니다. 아래로 쭉 밀면 활성화가 되고, 반대로 당기면 비활성화 상태가 유지됩니다.
제라드의 설명에 태정은 좌측에 보이는 레버를 아래로 쭉 밀었다.
[터보 부스터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부스터가 공회전 상태에 진입합니다.]
[초당 20의 마나가 소비됩니다.]
“좋아. 다음은?”
-다인전으로 전투 모드를 바꾸십시오. 시동어는 다인전 모드 변경입니다.
“다인전 모드 변경?”
태정이 그대로 읊자 동시에 몸을 구속하고 있던 프레임이 떨어져 나가며 중앙으로 조종석이 올라왔다.
그에 따라 그의 몸 또한 서 있는 자세에서 앉은 상태가 되었는데, 전고는 낮아진 대신 옆으로 더 넓어진 구조였다.
“이건 또 뭐야? 팔이 빠졌는데 어떻게 움직이지?”
-앞에 조종간이 보이실 겁니다.
“아. 이 모드에선 이걸로 조종하는 거야?”
제라드의 말대로 비행기 조종간같이 생긴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조이스틱처럼 보이는 것부터 레버에 각종 버튼들까지.
뭔가 복잡해 보였지만 각 부위엔 글로 된 명칭들이 붙어 있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이게 출력. 이게 기동. 이건 브레이크고. 역추진은 또 뭐야?”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해 보는 것이 낫다고 태정은 하나하나 조작해 가며 기체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다행히도 조작법은 어렵지 않았다.
핸들만 없고 바퀴만 없을 뿐, 차와 별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이렇게 움직이면 될 것 같고. 무기는 이걸 쓰면 되고. 근데 제라드.”
-예, 주인님.
“아까는 그럼 무슨 모드였던 거야? 로봇 모드인가?”
-조금 전의 그 상태는 특수전 모드입니다. 근접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모드라 보시면 됩니다.
“그래? 움직이는 거 빼곤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장단점이 있습니다. 특수전 모드 같은 경우 몸을 직접 사용하기 때문에, 조종간을 이용해 컨트롤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반응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선회 회피 기동에서 다인전 모드에 비해 월등히 앞서 있죠. 게다가 손과 발이 자유로우니 격투 또한 가능합니다. 해서 일대일의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주로 사용하는 모드입니다. 단점으론 다인전 모드에 비해 부스터 효율이 떨어지고 장착할 수 있는 장비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반응속도가 뛰어난 놈은 특수전 근접 모드로, 일반 몬스터가 개떼로 나올 땐 다인전 모드로?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어.”
태정은 제라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이속이 빠른 것과 반응속도가 빠른 것은 별개의 문제니까.
어쨌든 2가지 모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그에게 장점이었다.
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골라 쓰면 되는 거니까.
“그건 그렇고 이건 언제 시작하려나? 빨리 써 보고 싶은데.”
기체의 비주얼이 압도적이라 그런지 무기의 성능 역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다리는 게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질 때 즈음.
공간 내 반가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60초 후 글로벌 서바이벌이 시작됩니다.]
[제한 시간은 10분입니다.]
[59초… 58… 57…….]
최종 카운트가 시작되고 태정은 긴장한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자. 얼른 나와라. 뭐든 다 벌집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게 카운트가 끝나갈 무렵.
삐익-! 삑! 삑!
[전방 30m 생체 신호가 포착됩니다.]
[현재 잡혀 있는 물체의 수 15]
[17]
[21]
[39]
레이더의 경고음이 울리기가 무섭게 전방으로 시커먼 포털이 생겨났다.
동시에 몬스터로 보이는 무언가가 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순식간에 수백 마리에 달하는 놈들이 대거 밀집했다.
[현재 잡혀 있는 물체의 수 300]
정확히 300마리였다.
놈들의 정체는 태정도 익히 알고 있는 놈이었다.
대가리 양옆에 뿔을 달고 있는 상체가 하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몬스터.
오거였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더니, 이렇게 흔한 놈이었냐.”
어이가 없는 상황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위 산맥의 산신령이니 뭐니 하며 추켜세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한편으론 걱정도 덜 수 있었다.
오거 정도는 좀 과장해 그가 발로 상대해도 잡을 수 있는 놈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정도 물량이면 값비싼 뿔도 많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대충 놈들을 파악한 태정이 슈퍼 발칸포를 조준했다.
“그럼 어디 한번 조져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