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몬스터의 사체가 널브러진 칙칙한 석실 안.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도민아.
300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있는 졸업반 헌터였다.
길드 방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서바이벌에 참가를 한 그녀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처럼의 계획된 휴가가 이로 인해 반려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린 순위에도 들지 못할 텐데. 으휴. 그놈의 명성치가 뭐라고. 제대로 된 성 하나 없으면서.”
명성치.
길드의 명성치는 서바이벌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보상이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영지전이나 국가 공성전, 월드 워 등에서 건물과 기물 등을 구입할 때 사용된다.
이외에도 랭킹을 선정하거나, 리스폰의 횟수 등 길드 시스템 전반에 걸쳐 쓰이는데, 보통 대규모 길드가 아니고선 딱히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죽어라 쌓아서 성 하나 올려 봐야 지나가는 대형 길드의 좋은 먹잇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서 보통 제너럴리스트 정도에 드는 길드가 아니라면 기껏해야 소형성 하나 정도를 사게 되는데, 이것도 시골 구석탱이 자리는 딱히 길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즉, 중소 길드의 명성치 노가다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아아. 그건 그렇고 어제 그 남자애 풋풋한 게 참 마음에 들던데, 연락이 왔으려나? 뭐 나 정도 미모면…….”
어제 있었던 미팅을 생각하며 휴대폰을 바라보던 도민아는 셀카를 찍으며 다음 스테이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막 보정에 들어가려는데.
쾅!
“엄마야!?”
갑작스러운 굉음에 도민아가 휴대폰을 떨어뜨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방금?”
눈이 동그랗게 커져 멀뚱거리고 있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떨어뜨린 휴대폰을 주우려 했다.
바로 그때.
다시 한번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쾅!
“뭐, 뭐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이것이 단순 소음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다.
도민아는 청각을 집중해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당연하게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석벽만이 존재할 뿐.
하지만 자세히 보니 뭔가 이상한 점 하나가 발견됐다.
벽이 조금씩 들썩이며 잔해들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진은 아닌 것 같은데… 무섭게 왜 이래?”
생전 처음 겪어 보는 현상에 그녀는 긴장을 하며 굉음이 멎길 기다렸다.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잠시.
콰르르.
벽이 무너지며 벽에 거대한 구멍이 형성됐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도민아가 더욱더 검을 꽉 움켜졌고, 이후 구멍을 따라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괴, 괴물은…….”
구멍에서 나온 것은 그녀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류의 괴물(?)이었다.
거대 강철로 된 팔과 다리, 고개를 꺾어 올려다봐야 할 높은 신장과 그에 걸맞는 웅장함.
그 모습에 압도되어 버린 도민아는 아주 잠깐 정신을 놓을 뻔했다.
그 와중에 괴이한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괴물의 정중앙에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무언가가 포착된 것이다.
‘인간?’
바로 그 순간.
괴물의 무식한 팔이 허공을 향해 올라갔다.
그 모습에 기겁을 한 도민아의 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안을 파고든 그녀의 검이 괴물의 하단을 그대로 베고 지나갔다.
까앙-!
“꺅.”
그대로 튕겨져 나동그라지는 그녀의 신형.
이후 벌떡 일어나 몇 번의 스킬과 공격을 연타로 퍼붓던 그녀는 이내 이 괴물이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았다.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구.’
도민아가 패닉에 빠져 있을 때, 공격을 받은 태정은 태정대로 놀란 상태였다.
갑자기 기습을 가해 올지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기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내구력이 상당해 데미지는 없었다는 점.
이는 도민아가 가진 필살류의 쿨이 돌아오지 않은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만일 오러 스킬의 쿨이 돌아왔다면 그의 다리는 이미 고철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기. 말로 합시다, 말로…….”
태정은 두 팔을 뻗으며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나름 공격 의사가 없다는 제스처였는데, 그것은 그녀의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저리 가!”
겁에 질린 도민아가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태정이 급히 소리쳤다.
“이봐요!”
제법 큰 소리였지만 이미 패닉에 빠진 그녀에게 그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그것은 그저 괴물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도망을 가자 태정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민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에효.”
도민아가 던지다시피 하고 간 검을 주운 태정은 그녀를 쫓기 시작했다.
쿵! 쿵쿵! 쿵!
지축을 뒤흔들며 달려오는 기체의 모습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적어도 쫓기고 있는 도민아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거대한 기계 괴물이 바짝 쫓아오자, 뒤를 돌아본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동시에 이속 스킬과 포션을 연달아 먹은 그녀가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속도가 붙으며 거리가 벌어지자, 태정이 부스터를 풀로 때려 밟았다.
그러자 눈 깜짝할 새 거리가 좁혀지며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꺅!”
그대로 자빠져 바닥을 뒹군 그녀는 돌아 앉아 다가오는 기계 괴물을 바라봤다.
대체 어디서 이딴 것이 튀어나왔을까?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향해 그가 손을 내밀었다.
“아, 안 돼.”
보기만 해도 무식하게 생긴 손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도민아는 절망에 빠졌다.
그대로 반죽이 되나 싶은 그때.
쾅! 쾅!
두 차례 굉음이 일며 괴물이 빠른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엉덩이에 불을 뿜으며 순식간에 건너편으로 사라진 괴물.
도민아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벙찐 상태로 한참이나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기도 잠시.
그녀는 곧 눈앞에 자신의 검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 * *
투두두두두! 투투투!
[경험치 100,000를 획득합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다소 황당한 일을 겪고 다음 방으로 건너온 태정은 사냥을 이어 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전부 빈방은 아니었나 봐, 그렇지?”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지만 다른 방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면 다른 참가자들 역시 있는 게 당연한 일.
다만 빈방만 돌다 보니, 태정에겐 그럴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참 신기하게도 만들어 놨네. 이 넓은 어딘가에 수천 명이 이걸 하고 있다는 건데. 다른 사람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 아까 그 여자가 놀랄 만도 하지. 그렇지 않냐, 제라드.”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니.”
-조금 전 그 인간 여자가 놀란 이유는 주인님의 모습 때문일 확률이 큽니다.
“내 모습? 내가 어때서?”
-프로텍터 아머는 몬스터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단종이 된 구형 기체입니다. 과거 시대사, 그것도 군사학에 관심이 없는 이라면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라드의 설명에 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 수긍했다.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사용하고 있는 자신조차도 처음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볼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분명 보였을 텐데, 다짜고짜 공격이나 하고 말이야. 그 여자, 제법 레벨은 있어 보이던데.”
태정은 여자의 레벨이 그리 낮지 않다고 생각했다.
방에 있던 몬스터의 사체나 기습을 가했을 때의 움직임을 보면 거의 졸업반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 헌터에게 정타를 전부 허용하고도 멀쩡하다는 것은, 기체의 방어력이 생각보다 더 단단하단 뜻이었다.
“그런데 제라드, 만약에 이게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다시 소환을 해야 하나?”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기체가 망가지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장비가 아닌 스킬이라 더 궁금한 태정이었다.
-기체가 손상돼 완전히 쓰지 못하게 될 경우, 2시간 동안 해당 스킬이 잠기게 됩니다.
“2시간? 그럼 2시간 동안 이 스킬은 아예 못 쓰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래? 2시간이라. 좀 빡센데?”
일정 시간 동안 스킬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헌터들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인 페널티였다.
만일 긴박한 전투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냥 죽으란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좀 더 신중히 싸워야겠는데, 단단하다고 마냥 좋아할 게 아니야.”
사냥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스테이지가 올라가면 갈수록 난이도 역시 올라갔다.
불어나는 개체 수도, 몬스터의 레벨도 꾸준히 올라갔지만 아직까지도 태정의 발칸포를 견뎌 내는 놈들은 나오지가 않았다.
파괴력이 강력해서라기보다는 연사가 미친 수준이라, 사정권에 들어오기만 하면 거의 믹서기 수준으로 갈아 버린다.
그 어떤 것도 예외는 없었다.
그렇게 종횡무진하던 태정은 어느덧 종료 시간이 다가왔음을 인지했다.
[서바이벌 종료 시간까지 10분 남았습니다.]
[127단계 스테이지가 시작됩니다.]
“10분? 이게 마지막인가?”
아무래도 이 방이 그에겐 마지막인 듯싶었다.
이번 스테이지도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목표 킬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이었다.
무려 1만 3천 킬.
하지만 이건 메카닉 클래스 특성상 매우 유리한 과제였다.
그렇게 모든 화력을 총동원해 약 8분 만에 스테이지를 정리한 그의 귓가에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13,000kill 달성! 127단계 스테이지를 완료하셨습니다.]
[2분 후 서바이벌이 종료됩니다.]
[종료 후 최종 순위가 발표됩니다.]
[종료 후 귀환 포털이 생성됩니다.]
“후우. 드디어 끝이다. 128은 무리네. 시간 되면 하나 더 할까 했더니. 그래도 이 정도면 뭐…….”
127단계.
잘 모르는 그가 봐도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거기에 레벨 업도 43이나 했으니, 성장으로만 봐도 이 정도면 대성공이지 않을까.
모든 스테이지를 완료한 태정은 뿌듯한 마음으로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곧이어 대기 시간이 종료되고, 최종 순위가 올라왔다.
[최종 순위가 산정됩니다.]
1위 127단계 (완) [뭐야별게다있네]*
2위 34단계 (완) [도민아]
3위 30단계 (완) [질풍]
4위 30단계 (완) [외로운 늑대]
5위 29단계 (완) [강혁]
“햐. 차이 봐라.”
압도적인 격차에 감탄을 하던 태정의 귀로 여러 알림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뭐야별게다있네 님이 명예의 전당 왕좌에 등록되었습니다.]
[제닉스 길드에 왕좌의 명예 버프가 주어집니다.]
[해당 길드원의 통합 전투력이 30% 상승합니다.]
[해당 길드원의 경험치 획득량이 20% 증가합니다.]
[버프 적용 기간 4월 30일 ~ 5월 31일.]
[길드 명성치 12,000을 획득합니다.]
[귀환 포털이 생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