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상승 3.”
“전진 1.”
“최대 출력 온.”
“강하 2.”
“스톱.”
“우 선회.”
“좌 선회.”
“스핀 턴.”
20미터 상공에서 능수능란하게 턴을 돌던 태정은 급강하를 하며 바닥으로 돌진했다.
그러기도 잠시.
고작 3미터 남짓을 남겨 놓은 그의 신형이 급속도로 느려지더니, 아주 스무스 하게 대지에 안착했다.
“휘유. 이 정도면 어떤 거 같아?”
-훌륭하십니다.
제라드의 칭찬에 그가 비로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밥까지 거르며 연습을 강행한 보람이 있었다.
끝없는 반복 숙달과 제라드의 조언 그리고 태정의 집념이 만들어 낸 성과였다.
“그래도 포션 하나는 알차게 잘 썼다. 이걸 일반 포션으로 사용했으면 대체 얼마야.”
그가 연습에 사용한 마나는 무려 100만에 육박했다.
이는 길드장에게 선물받은 대지의 숨결이 가진 총량에 맞먹는 수치로, 최상급 포션을 기준으로 했을 때 무려 200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연습으로 쓴 게 좀 아깝긴 하지만, 그래도 8개나 남아 있으니까.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배도 좀 고프고.”
전투 훈련장을 나와 차를 탄 태정은 서둘러 집으로 복귀했다.
딱 저녁 시간에 맞춰 온 건지, 집 안엔 온갖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문소리가 나자마자 현관 앞으로 마중을 나온 박세아가 국자를 들고 그를 맞이했다.
“오셨어요? 아까 점심에 훈련장에 갔었는데,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다고 해서 그냥 돌아왔어요.”
“집중해야 될 일이 있어서요.”
“어서 씻고 앉으세요. 식사 준비해 놨어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태정은 씻고 나와 아주 맛있게 저녁을 해치웠다.
그리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퀘스트 창을 오픈했다.
[메카닉의 길 1-1]
클래스 퀘스트에 입문하셨습니다.
헤이그란 신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죽음의 늪이라 불리는 거대 연못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티탄 왕국의 영웅 티이란의 보물을 획득하십시오.
단, 보물을 획득하기 위해선 연못을 지키고 있는 파수꾼, 히드라를 해치워야 합니다.
놈은 신전의 가호를 받아 특정 속성에 대한 극한의 내성이 있습니다.
방법을 찾으십시오.
단. 그것은 혼자 해야 할 일입니다.
당신 외, 누군가 신전에 들어온다면 퀘스트는 완료하실 수 없습니다.
목표
히드라 0/1
티이란의 보물 0/1
보상 - 대파종형 인공지능 지뢰 매설 (유니크 스킬)
“음. 이거 뭔가 복잡해졌네.”
한눈에 봐도 이전에 했던 퀘스트들과는 차이가 있어 보였다.
일단 설명부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히드라, 보물… 내성 그리고 솔플이라.”
그는 가장 먼저 호기심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인 제라드를 호출했다.
“여기가 어딘지 아냐? 헤이그란 신전?”
-블루 7급의 호세의 밀림지대에 있는 신전입니다.
“그래? 그럼 히드라가 얼마나 강한지도 알겠네.”
-죄송하지만 신전 내부에 대한 데이터는 제게 없습니다.
“데이터가 없다라. 그럼 자료부터 찾아봐야 되나.”
* * *
다음 날 아침.
태정은 박세아를 통해 밀림 지대와 헤이그란 신전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다.
그러자 그날 오후, 백과사전에 버금가는 엄청난 양의 파일들이 그의 손에 넘어왔다.
“던전에 대한 기본 자료부터 공략집, 특이 사항이 될 만한 건 모두 가지고 왔어요. 이건 따로 usb에 담아 온 거구요.”
“고생했어요.”
“제가 뭐 도와드릴 건 따로 없을까요?”
“있으면 부를게요. 나가 봐요.”
박세아가 나간 뒤 태정은 곧장 자료들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들여다본 것은 던전에 대한 기본 정보였다.
[호세의 밀림 지대]
적정 레벨 300 후반.
C등급 헌터들의 인기 던전.
블루 5급에 비해 경험치가 배로 뛰는 구간이며 모든 몬스터가 무속성이기 때문에 속성 파티가 필요 없음.
특징. 8급과 경험치 차이가 거의 없어, 대부분 이곳에서 최대 성장 후 바로 9급으로 넘어감.
던전 특성의 난이도는 하.
“여긴 딱히 어려운 곳은 아닌 것 같네. 300 후반이면 나도 거의 근접해 있고. 문제는 여긴데.”
[헤이그란의 신전]
호세의 밀림지대 북쪽 외곽에 있는 신의 성전.
웨이브와 레이드가 동시에 공존하는 복합 던전으로 지하 5층까지 존재하며, 가장 마지막 층엔 이 신전의 최종 보스인 히드라가 서식하고 있음.
완비된 속성 파티 1개를 기준으로 적정 레벨은 390-500.
던전 특성의 난이도는 상.
헤이그란 신전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빡빡했다.
적정 레벨이 390-500.
이는 솔플 기준이 아닌 속성 장비가 갖춰진 완비 팟의 기준이었다.
아무리 레벨을 씹어 먹는 히든 클래스라지만, 과연 이게 가능할까.
생각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는 신전 내부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뜯어 보기 시작했다.
신전에서 난이도를 결정하는 요소는 각 지하층의 대장들에게 있었다.
이들은 각각의 공략법들이 존재했는데, 사실상 혼자서는 할 수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유일하게 그가 할 수 있는 건, 파티 단위의 화력을 퍼붓는 것.
그렇게 몇 시간이고 자료를 들여다보던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제라드, 혹시 내가 가진 무기의 속성이 뭐지?”
-장비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 속성은 진입니다.
“진? 그런 속성도 있나?”
-진이란 속성은 중앙 72좌 아래의 존재들이 가지는 고유의 속성입니다.
“중앙 72좌? 그게 뭔데?”
-그것은 알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아는데 못 알려 준다는 거야. 몰라서 알려 주지 못한다는 거야?”
-제 수준에서 답변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이란 뜻입니다.
“음… 그래, 좋아. 그럼 이 진이란 속성은 다른 속성과 내성 관계가 어떻게 되지?”
-진은 기본 오행 속성에 70%까지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며, 빛에는 50 그리고 마에는 100%가 추가되어 들어갑니다.
“뭐야, 그럼? 전부 추가가 뜬다는 건, 다른 속성에 내성이 없다는 거잖아?”
제라드의 설명대로라면 이 진이란 속성은 그야말로 사기나 다름없었다.
속성은 내성을 가지는 반대 상극의 속성이 반드시 존재한다.
상극을 가지는 속성은 50%의 추가 데미지 혹은 -50%의 데미지가 빠지게 되고 각 속성의 관계에 따라 10%씩 추가 또는 감소를 하게 된다.
이 말은 최대 50%에서 150%까지 데미지의 조정이 있다는 말이고, 추가 감소 데미지의 맥시멈 수치는 50%가 한계란 뜻이었다.
이것도 단일 속성 1개에 한해서였다.
하지만 태정이 가지고 있는 진이란 속성은 오행에 추가 70%, 마에는 무려 100%까지 추가가 붙는다.
또한 가장 까다롭다는 빛에도 50%가 붙으니 수치로만 보면 이미 오버 스펙이며, 단일 속성이 아닌 모든 속성에 상극을 띠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쯤에서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속성은 총 7가지.
모든 속성에 상극을 띠는 이 속성에 과연 내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일까.
“네 말대로 진이란 속성이 모든 속성에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거라면, 퀘스트에 나온 내성은 나와는 무관한 거 아냐?”
-그 부분에 대한 것도 제 권한으론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하지 못한다… 그 말은 뭔가가 있긴 있다는 건데.”
태정은 의미심장한 제라드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보통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예’, ‘아니오’만 있는 질문에,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는 것은 ‘아니오’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속 시원하게 좀 대답해 주면 좋으련만, 제약이 왜 그렇게 많냐.”
-죄송합니다.
“됐다. 그래도 내 속성이 뭔지 알았다는 게 어디야. 진이란 속성은 세상에 나와 있지도 않은 건데, 안 물어봤으면 평생 몰랐을 거 아니냐.”
태정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남은 자료들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펜으로 하나하나 밑줄까지 그어 가며, 하루 종일 던전에 대해 공부를 하던 그는 늦은 저녁을 먹으며 박세아에게 질문했다.
“혹시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속성이 모두 몇 가지인지 알고 있어요?”
“속성이라면… 총 일곱 가지가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배우기도 그렇게 배웠구요. 그런데 속성은 왜 물으시는 거예요?”
“아. 지금 좀 걸리는 게 있는데, 왠지 그 일곱 가지 외에, 다른 게 또 있을 지도 모를 것 같단 느낌이 들어서요.”
“음. 알아봐 드릴까요?”
“그래 줄래요?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정보실에 가서 자료 좀 받아와 줘요.”
추가 정보를 요청한 그는 밥을 먹자마자 다시 방에 짱박혀 남은 자료를 검토했다.
그리고 공략법들을 유심히 보던 그는 가장 저층에 있는 히드라가 지(토) 속성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제 속성학에 정식으로 등재된 것은 아니지만, 공략법의 대부분이 화염 계열이나 풍계 마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 둘은 땅 속성에 상극과 차상극을 띠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놈이 대충은 어떤 속성인지 짐작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각 공략법마다 붙은 각주에도 추가 설명으로 거의 확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풍은 모르겠고 화염방사포가 있으니, 이걸 화염 계열로 봐도 되지 않으려나. 일단 에너지가 아닌 불이 뿜어져 나오니까. 응? 네 생각은 어때, 제라드.”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주인님의 기본 속성은 진입니다. 이 속성 안에는 일곱 가지 속성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외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 일단 오케이. 계속 한번 보자.”
그렇게 밤이 깊어 가는 와중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온 것은 박세아였다.
“안 잤어요?”
“보스가 깨어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요. 이거 아까 부탁하신 자료예요.”
“이걸 지금? 내일 해도 되는데.”
“궁금한 건 바로 풀어야죠. 양이 좀 많은데, 저도 조금 도와드릴게요. 이건 이론적인 분야라, 제가 충분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미안하잖아요. 지금… 새벽인데.”
“괜찮아요. 저 체력 좋아요. 어떤 거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그럼 일단 분명하지 않은 것들 위주로…….”
의욕을 불태우는 그녀와 함께 그는 꼬박 4시까지 자료를 훑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역시. 속성은 일곱 가지가 다야.”
미확인이라 나와 있는 것들도 결국은 오행의 어느 것 중 하나였다.
대부분이 한 개 이상의 상극을 띠어 정확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일 뿐.
결국은 그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되면 딱히 별문제가 없다는 뜻인데. 속성 무적이면 솔플도 충분한 거 아냐?’
생각을 하던 태정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박세아를 바라봤다.
3시까지는 꾸역꾸역 버티더니, 어느새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그녀를 깨울까 하던 그는 너무 곤히 잠든 모습에 불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으아. 피곤하긴 피곤하네.”
한껏 기지개를 펴며 물을 한 잔 쭉 들이킨 그는 이내 소파에 뻗어 생각했다.
‘그래. 일단 가 보는 거야. 버겁다 싶으면 중간에 돌아 나오면 되는 거고. 일어나면 예약부터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