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메카닉 플레이어-67화 (67/182)

67화

“뭐, 뭐야?”

길을 지나가려 양해를 구하던 태정은 수많은 사람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들리는 작은 외침.

“저분이 바로 전장의 화신! 유태정 님 입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와 동시에 사방에서 엄청난 환호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건물이 떠나갈 듯 박수와 함께 찬양이 이어졌다.

“정말 멋지십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어머. 얼굴도 잘생겼어, 오빠!”

“꺄악!”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사정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소란스러움에 태정이 박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뭐야?”

“그, 글쎄요. 저도 잘…….”

박세아도 모르는 눈치인 듯하자 태정은 빠르게 상황 파악에 나섰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것이 있었으니.

여기저기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물량 공세였다.

“사인 좀 해 주세요! 젊은 간부님!”

“사진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같은 동 3층입니다! 한 번만 웃어 주세요!”

“야. 내가 먼저 왔어! 비켜.”

“너 하급반 아니야!? 이게 어디서 분수도 모르고. 나와, 인마.”

“제가 먼저 받으면 안 돼요? 저 곧 근무 나가야 하는데.”

“오. 그대와 같은 미인이면 한발 양보하지.”

“고마워요!”

벌떼처럼 몰린 수많은 인파와 어떻게든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광기 어린 헌터들.

개판 오 분 전이 따로 없었다.

아니, 이미 개판이었다.

얼떨결에 선두에 있는 사내의 펜과 종이를 태정이 넘겨받았다.

“이번 공성 정말 최고였습니다, 간부님. 오늘부터 제 롤 모델이자 영웅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저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여백 없이 사인 크게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집에 가보로 모시려구요!”

두 눈을 빛내며 부탁을 하는 사내를 보고 잠깐 망설이던 태정은 이내 펜을 휘갈기며 큼직한 사인을 그려 줬다.

그러자 사내가 인사를 꾸벅하며 쑥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죄송한데 혹시 악수도 한번 가능할지…….”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 후방에서 엄청난 성화가 일어났다.

“그만하고 나와!”

“살림까지 차리지 그러냐!”

“뒤에 사람 안 보여?!”

“눈치가 없냐!”

당장이라도 줘 팰 기세로 말하는 그들의 기세에도 사내는 꿋꿋이 손을 내밀었다.

그런 그의 손을 잡아 준 태정은 다시 한번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제가 지금 출근을 해야 해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런 분과 악수를 해 보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태정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사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리를 뜨자, 이어서 질 수 없다는 듯 한꺼번에 서너 명이 다가와 펜과 종이를 내밀었다.

바로 그때.

박세아가 태정의 팔을 붙들고 정면 돌파에 나섰다.

“다들 나와 주세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출근하셔야 돼요! 부탁입니다! 나와 주세요!”

제법 큰 소리로 외치며 길을 트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그녀는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일반인인 그녀가 건장한 헌터들을 뚫고 길을 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둘러싸여 전진도 후진도 못 하고 있는 그때.

어디선가 커다란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기숙사 앞에 모인 인원들.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징계에 처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징계에 처하겠습니다.

징계라는 말에 헌터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싹 사라져 버린 사람들.

그렇게 박세아와 단둘이 남은 그들을 향해 열 명 남짓 무장을 한 헌터들이 다가왔다.

그중 선두에 선 인물이 예를 갖추며 인사했다.

“경호부장 송민호입니다.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뭐 그렇게 큰일도 아닌 것 같은데.”

“위에서 따로 공문이 있을 테니, 앞으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실 겁니다.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송민호의 말에 태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들은 대체 뭡니까?”

“지역대장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길드원들입니다. 흔한 일은 아닌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저렇게 몰려다니곤 하지요. 쓸데없는 팬클럽 따위를 만들기도 하고요.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강제하질 않으니 꼭 이렇게 일이 생기곤 하네요.”

“그렇군요.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대단하신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단신으로 1만의 병력을 격파할 수 있는 헌터가 길드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감히 전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아이고. 전설이라뇨. 운이 조금 좋았던 건데요.”

“듣던 대로 매우 겸손하신 분이시군요. 참모님들의 칭찬이 자자하십니다. 능력이며 인성이며 매너며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물이시라고요.”

“이거 참. 그 정도는 아닌데…….”

감당을 할 수 없는 추켜세움에 민망해진 태정은 시선을 돌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분명 대단한 일을 하긴 했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었다.

당장은 듣기 좋을지 몰라도, 기대치에 비례해 책임과 부담 역시 커질 것이다.

그것은 곧 압박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컸다.

그래서 뭐든 적당선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압도적인 능력 앞에선 이런 것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뭘 해도 결과는 좋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 그 수준에 이르려면 한참 멀었기 때문에, 태정은 이런 기대와 시선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차량은 10분 정도를 달려, 지역대 본관에 도착했다.

20층 높이의 으리으리한 건물과 그 옆으로 보이는 수많은 부속 건물.

미리 나와 있는 인사과장과 함께 내부로 들어간 그는 곧장 상황실로 향했다.

상황실엔 이미 그가 올 것을 대비해 부대장을 포함 지역대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자. 인사들 하지. 여긴 오늘부로 지역대장을 역임하게 된 유태정 대장이라고 하네. 다들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아무튼 난 처리할 것이 있어 이만 빠질 테니. 나머진 자네들이 수고를 좀 해 줘.”

가벼운 소개와 함께 인사과장이 자리를 뜬 후, 홀로 남게 된 태정은 자신을 보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을 바라봤다.

두 손을 모은 채 그가 먼저 말을 하길 기다리는 눈치.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잠깐 생각을 하던 그는, 결국 인사과장의 말을 답습했다.

“오늘부로 지역대장을 역임하게 된 유태정이라고 합니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알려 주시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간단한 그의 소개에 갈채가 이어졌고, 각 부서의 주요 인사들이 저마다 자신을 소개하며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라 이곳에서도 그의 활약은 영웅담이 되어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 달 이상을 비워 둔 대장 자리에 누가 올까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던 차였는데, 이번 영지전에서의 영웅이 배정됐다고 하니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처의 대장은 곧 힘을 대변하는 자리기에 능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직원들도 일을 하기가 편해진다.

능력이 없으면 예산 편성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다른 부처에도 무시를 당하기가 일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대장만큼은 힘이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태정은 아주 적격의 인물이었다.

1만의 병력을 단신으로 쓸어버리고, 길드를 스페셜리스트에 올려놓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인간이니,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서로의 간단한 소개가 있고 난 뒤, 부대장 한민수가 손수 그를 대장실로 안내했다.

“이곳이 대장님께서 사용하실 집무실입니다. 그리고 저 밖은 비서실이구요. 오늘은 취임 첫날이시니, 둘러만 보시고 내일부터 업무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

부대장이 나간 뒤.

태정은 내부를 두리번거리다 중역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 바퀴 빙그르 의자를 돌려봤다.

그리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밖에선 사장 같은 거겠지? 대표이사라든가. 옛날에 어릴 땐 이런 데 앉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별 감흥이 없냐. 이제 일반인이 아니라서 그런가.”

감회에 젖던 그는 잠깐 옛 생각에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박세아를 향해 물었다.

“어때?”

“뭐가요?”

“소감 말이야. 이제 진짜 일터가 생긴 거잖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하여간 그놈의 일, 일, 일. 아무튼 이제 앞으로 집안일은 하지 마, 이런 번듯한 직장도 생겼으니. 그보다 아까부터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왜 자꾸 팔을 주물고 있어.”

“아뇨. 좀 저려서요. 잠을 잘못 잔 것 같아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그녀의 말에 태정이 일어나 다가갔다.

그리고 뒤로 뺀 손을 붙잡자.

“아!”

“뭐야? 다쳤어?”

“아뇨, 그냥. 아아!”

“다쳤네.”

“그게… 아까 사람들한테 치이다가 살짝 접질린 거 같아요. 근데 별거 아니에요. 이런 건 아무것도, 아아! 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살짝만 잡았을 뿐인데도 아파하는 그녀를 보며 태정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사람이 왜 그렇게 미련하냐. 다쳤으면 다쳤다 하고 치료를 받으러 가야지. 말이라도 하든가. 입은 뒀다 뭐 해.”

“보스 취임 첫날인데, 어떻게 그래요. 그리고 진짜 별거 아니에요. 하루 자고 일어나면 금방 나아요.”

“네가 의사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지금 가서 치료받고 집으로 가. 아까 부대장이 말한 것처럼 오늘은 할 것도 없다니까, 가서 푹 쉬어.”

“그렇게까지 하실…….”

“아, 거참. 말 드럽게 안 들어먹네. 나 네 보스 맞냐?”

“죄송해요.”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불편해도 어쩔 수 없어. 알겠어? 나가 봐.”

몇 번이고 괜찮다는 그녀를 억지로 내보낸 뒤, 그는 아까 전 숙소 앞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 많은 헌터를 상대로 어떻게든 길을 뚫어 보겠다고 전전긍긍하던 그녀의 모습.

기특했지만 미련한 행동이었다.

장정 대여섯이 있었어도 꿈적 안 할 인파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좀 짠하게 느껴지는 태정이었다.

“그 각성 물질이라는 거 어디서 못 구하나? 하나 줘 버렸음 좋겠는데.”

생각 같아선 하나 만들어서 줘 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근직이긴 하지만 그래도 몸 하나 지킬 정도는 돼야 수행 비서라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4년간의 평가를 치러 백 명이 넘는 비서 중 단 한 명만 각성을 할 정도로 각성 물질이란 건 매우 희귀한 아이템이었다.

그가 알기로도 현재 길드에 보관된 각성 물질은 고작 2개.

들리는 말론 다음 기수까지가 비서 각성의 마지막 기회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하나 달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구하려고 한다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다, 최대한 편의나 봐주는 수밖에. 지금은 그보다 내 문제가 더 중요해. 고작 400짜리가 오지랖은 금물이지. 일단은 이곳에 적응부터 해야 하는데… 이거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런 쪽엔 완전 잼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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