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차르르. 철썩. 철썩.
완도의 어느 앞바다에 내려앉은 태정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만 보면 딱히 이상한 걸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내륙에서 본 바다의 모습은 평온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잔잔한 파도와 바람.
구름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
어느 곳에서도 폭풍의 전조는 보이지가 않았다.
“가 보는 데까진 가 볼까, 일단.”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운 태정이 앞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상쾌한 바닷바람을 헤치며 날고 있으니, 문득 소영이 생각났다.
바쁘게 사느라 바다 근처도 데려가 보지 못했던 태정이었다.
그녀 역시 일찍 철이 들어 그런 말을 꺼낸 적도 없었지만, 오빠로서 이런 곳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월미도나 한번 데려가야겠다. 나도 이제 헌터가 됐으니,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겠지.’
대한민국은 통제된 나라였다.
아니, 통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무작위로 나타나는 이동 포털을 시작으로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은 수많은 필드의 던전.
바닷가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많은 몬스터가 드글거리는 실정이고, 이들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 현재 길드의 의무 같은 것이었다.
해서 민간인 신분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발전된 도시들이 전부였다.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바다 같은 곳은 꿈도 꿀 수 없는 곳.
하지만 이제 태정도 헌터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곳은 다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특히 길드의 지분이 들어가 있는 곳은 더더욱 편하게 말이다.
그렇게 비행을 하기도 얼마 간.
휘이잉-!
강한 바람과 함께 와류가 형성되며 그의 신형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시커먼 구름 떼와 쏟아지는 장대비.
아래로는 집채만 한 파도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기서부터구나.”
태정은 좀 더 가까이 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강풍에 추락을 하는 거야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사방에서 치는 번개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천천히 하강을 시작한 태정은 수면 바로 위에서 네비게이터를 소환했다.
그러자 등에 붙어 있던 블라스터가 해제되고, 무언가 거대한 것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무게감이 생기며, 털썩 주저앉은 동체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호. 이게 잠수형 기체구나.”
내부에서 본 기체는 캡슐 형태를 띠고 있었다.
좌우측에 동그란 창이 하나, 전면엔 일자 통창이 하나.
양손이 위치한 곳엔 스틱이 있었고, 그 앞으론 콘솔과 함께 디스플레이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거 프로텍터보다 더 신기하네. 다 막혀 있어서 그런가. 진짜 뭘 탄 것 같은 기분이야.”
태정은 마치 자신이 작은 우주선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어릴 적 본 만화에서 본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프로텍터 기체의 경우 이렇게까지 막혀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더 느낌이 새로웠다.
첫차를 뽑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제라드, 제주도까지 좌표 좀 찍어 줘.”
-알겠습니다. 왼쪽 하단 첫 번째 디스플레이 구 제주항으로 좌표 설정 완료했습니다.
“이거? 오케이. 그럼 어디 천천히 한번 몰아 볼까.”
출력을 올리자 기체가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조작이 마치 애기를 다루듯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외부 서치라이트가 모두 켜진 상태였지만, 바닷속의 시계는 그리 좋지 못했다.
외부 악천후에 의해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탓이었다.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에겐 제라드라는 똑똑한 인공지능이 있었고, 아주 성능이 좋은 레이더와 목적지를 알려 주는 심해 내비게이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애 처음으로 하는 수중 항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처음 뿌옇게 일어나 잘 보이지 않던 바닷속의 모습도, 이제는 적응이 되어 나름 볼만한 상태.
또 몰랐던 사실인데, 이 기체엔 자동 항법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는 오토 파일럿 모드로 편하게 항해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충 몇 시간이나 걸릴까.”
-현재 속도로 10시간, 최대 속도로 간다면 6시간 정도 걸립니다.
“꽤 오래 걸리네. 최대 출력이 현재 먹는 마나의 4배라고 그랬던가?”
-그렇습니다.
“일거리 좀 가지고 올 걸 그랬나 보다. 사냥도 10시간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미지트레이닝이나 해 볼까.”
그가 막 뒤통수를 받치며 비스듬히 몸을 기대려는 그때.
좌측 디스플레이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
띠! 띠! 띠!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확인을 한 태정이 제라드를 향해 물었다.
“레이더에 뭐가 떴는데?”
-무언가 접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거 음파 탐지에서 대반경으로 전환된 거 맞지?”
-그렇습니다.
“그럼 몬스터란 말인데. 오토 해제하고 내가 운행한다.”
-오토 파일럿을 해제합니다.
다시 스틱을 잡은 태정은 속도를 유지하며 좌측의 상황판을 주시했다.
‘500미터. 300미터. 100미터… 50, 어디냐?’
50여 미터를 남기고 속도를 줄인 그는 좌우 사방을 살폈다.
레이더의 물체는 이미 10미터까지 줄어든 상태.
‘어디냐.’
태정이 온 창을 내다보며 타깃을 찾고 있는데, 제라드의 경고음이 들려왔다.
-아래입니다.
“아래?”
쾅!
대답을 함과 동시에 동체에 엄청난 힘이 가해졌다.
그 충격이 얼마나 강한지 기체가 순간 적으로 십여 미터를 솟구쳤다.
“큭. 무슨 힘이 이렇게 세냐.”
-또 옵니다.
“두 번은 안 당해.”
바로 기체를 컨트롤하기 시작한 태정은 출력을 내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동시에 뒤를 돌아 놈의 모습을 확인했다.
“저, 저게 뭐야?”
태정의 눈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벽이었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황갈색의 빛바랜 벽.
저게 무엇일까 생각을 하던 그가 막 스틱을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벽 한가운데 거대한 구멍이 생기더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눈이었다.
자신의 동체만 한 크기를 자랑하는 거대한 눈알.
그제야 태정은 놈의 정체가 바다의 파수꾼 대왕 옥토퍼스인 것을 깨달았다.
몸길이 30미터에 달하는 대형 괴수.
지난 며칠을 바다 몬스터에 대해 달달 외우고 있던 그가 가장 보고 싶어 한 놈이었다.
“그렇게 보기 힘들다더니, 운이 좋은 건가.”
-45도 방향 촉수 내려옵니다.
“어.”
제라드의 경고에 대답을 한 태정이 기체를 좌측으로 틀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촉수가 사선으로 지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진짜 크긴 크구나. 제대로 찍히면 골로 가겠어.’
무언가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태정의 눈은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사실 도감에서 볼 때는 진짜 이렇게 거대한 놈이 있을까 싶었다.
그에게 30미터란 감조차 잡히지 않을 엄청난 크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이건 대단하다 못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3급 대형 괴수에 속하는 대왕 옥토퍼스도 이 정도인데, 1급이나 특급이 붙은 놈들은 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혀를 내두르던 태정은 또다시 들어오는 촉수 공격을 가볍게 피한 뒤, 다시 놈의 눈깔 앞으로 다가섰다.
대충 구경을 했으니, 이제 끝낼 시간이 온 것이다.
약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타깃 설정한다. 좌표는 놈의 눈알.”
-설정 완료했습니다.
“어뢰 장전.”
-장전 완료.
“잘 가라, 문어 대가리.”
말을 끝으로 그의 손이 최종 발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동체 좌우에 있는 발사관에서 기포와 함께 소형 어뢰 2발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뱀이 움직이듯 이리저리 선회를 하며 좌표를 쫓았고, 이내 최종 타깃인 거대한 눈깔을 쑤시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파파팟! 팟!
폭발의 충격파에 동체가 밀리기도 잠시.
놈의 사망을 알리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대왕 옥토퍼스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500만을 획득합니다.]
[기생 대왕 조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오. 아이템까지.”
손쉽게 놈을 처리한 태정은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러자 물기 가득한 거대한 조개 하나가 2번째 열 첫 번째 칸에 들어가 있었다.
그걸 양손으로 꺼내 들자 물이 뚝뚝 떨어지며 생생한 바다 내음이 전해졌다.
“싱싱한 거 보소. 크기는 대충 20인치는 되려나.”
두 손바닥을 펴도 다 담기지 않을 거대한 크기의 조개.
옥토퍼스가 드롭 하는 아이템 중 두 번째로 좋은 아이템이었다.
마정석.
이 조개가 품고 있는 보석이 바로 마정석이었다.
시가 10억에서부터 50억대까지도 나가는 소형의 마정석.
가격이 이리도 차이가 나는 것은 크기가 다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크기면 들어가 있는 것도 상당할 것 같은데.”
태정은 마정석의 자태를 확인하기 위해 조개를 이리저리 만지며 입을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 크기에 걸맞게 역시 꿈쩍도 하지 않는 조개.
몇 번의 시도를 더 해 보던 그는 결국 근력이 붙은 외피 슈트를 소환했다.
그러자 늘어난 힘에 의해 굳게 닫힌 조개의 아가리가 쩍 하고 벌어졌다.
그리고 보이는 애기 주먹만 한 보석.
생각보다는 큰 사이즈였다.
“이 정도면 한 30억은 하겠는데? 전에 초승달 대지에서 먹은 것보다 크잖아.”
꽤나 짭짤한 수익이었다.
이것만 해도 최소 왕복 마나 값은 번 것이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얻게 된 그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다시 항해에 들어갔다.
일반 항해에 비해 수중 항해는 볼 것이 많았다.
이름 모를 물고기들부터 가끔씩 등장을 하는 몬스터까지.
어떤 곳은 아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했지만, 그래도 끝없는 망망대해를 보는 것보단 나았다.
그렇게 나아가기도 잠시.
갑자기 졸음이 밀려들었다.
“새벽부터 못 잤더니 피곤하네. 가서 활동하려면 좀 자야 할 것 같은데, 제라드.”
-예, 주인님.
“레이더에 몬스터가 잡히면 좀 깨워 줘라.”
-걱정 말고 주무십시오.
“그럼 부탁 좀 할게.”
제라드에게 알람을 부탁하고 오토 파일럿 모드로 전환한 태정은 몸을 비스듬히 뉘이고 선잠에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인님.
“어.”
-곧 제주항에 도착합니다.
“벌써?”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태정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정확히 4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잠깐 눈 붙인 거 같은데 시간 엄청 빠르네. 별일 없었어?”
-접근하는 몬스터가 하나 있긴 했지만, 방향을 선회해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잘했어.”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 그는 빨리 항구에 닿길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체의 속도가 급속도로 줄어들더니, 무언가 거대한 것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저건… 배 아니야?”
태정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선체의 아랫부분이었다.
그 옆을 지나 항에 닿은 기체가 수면 위로 올라섰다.
그러자 우측으로 보이는 거대한 배 한 척과 옛 부두의 모습.
즉시 스킬을 비활성으로 돌린 그는 블라스터를 이용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배의 상태를 유심히 체크하던 태정이 이내 내륙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버려진 배가 아닌데? 누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