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콰콰쾅!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한라산 정상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동굴 내부로 진입을 하려던 태정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뭐야. 지진이야?”
땅이 진동함을 느낀 태정은 즉시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순간적으로 화산이 폭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금 전의 충격파와 굉음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진동은 금세 멎었고 이내 고요해진 주변은 오직 빗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방금 뭐였냐.”
-마나에 의한 폭발인 것 같습니다
“마나에 의한 폭발이라니? 그럼 여기 어딘가에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것까진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제라드의 말에 태정은 무심코 던져 버린 일장기를 바라봤다.
“일본 애들인가. 하긴 깃발까지 꽂아 놓은 걸 보면… 근데 자기 동네 놔두고 왜 여기까지 넘어온 거지?”
한국과 일본은 바로 옆 동네다 보니 헌터들 간의 교류가 꽤 있는 편이었다.
서울 시내만 하더라도 심심찮게 그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 가끔은 협력 관계로 프로젝트 같은 것도 함께하는 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은 일부에 불과했고, 일본 역시도 오사카 밑으로는 발전이 전혀 되지 않아 사냥터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굳이 이곳까지 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태정이었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던전으로 추정 되는 굴의 입구가 조금 전 폭발로 인해 완전히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거 틈 하나 없이 무너져 내렸네. 대체 얼마나 큰 전투를 벌이고 있길래 산이 울릴 정도냐.”
손으로 파 보고 발로도 차 보던 태정은 도저히 해결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자 다른 곳이 있나 싶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간 수색을 했을까.
곧 그의 시야에 또 다른 굴 하나가 발견됐다.
최초로 발견을 했던 지점으로부터 약 70여 미터에 놓인 동굴이었다.
그걸 보려고 다가가자 또 하나의 굴이 옆에서 발견됐고, 계속 걸어가자 두 개의 굴이 추가로 발견됐다.
“하나가 아니었어. 근데 제라드.”
-예. 주인님.
“아까 마나에 의한 폭발이라고 했잖아. 그 정도면 레벨이 어느 정도나 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그런 것까진 알 수가 없습니다.
“음. 이거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없는데, 그놈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
제주도 내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누가 일부러 찾아가 하나하나 등록을 하지 않는 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제닉스가 아닌 다른 길드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퀘스트를 진행하며 그가 느낀 것이 있었다.
애초에 엄두도 내지 못할 건 나오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도망 하나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튈 생각으로 온 태정이었다.
한데,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타국의 베테랑 헌터들까지 끼어 버렸다.
그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이가 그리 나쁘진 않을 걸로 알고 있긴 한데. 그래도 왠지 찝찝하단 말이야, 이런 곳에선.”
굴을 앞에 두고 갈등을 하던 태정은 이내 잡생각을 지우며 결단을 내렸다.
“그래. 고작 4일 휴가인데, 저놈들이 언제 갈 줄 알고 기다리냐. 가자, 가.”
결심을 굳힌 그가 동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 그의 등에는 블라스터가 소환이 되어 있었는데, 여차하면 초스피드로 빠져나가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였다.
다른 건 몰라도 직빨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굴의 규모는 입구에서부터 멀어질수록 커지는 형태였다.
자연이 내는 물소리와 울퉁불퉁한 길.
여기저기서 보이는 수많은 동굴 산호와 종유석.
던전에서 봤던 굴과는 다르게 뭔가 날것의 맛이 있는 천연의 느낌이었다.
전진을 하면서도 그는 주기적으로 퇴로를 계산했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전투를 할 수 있게 mk4를 비롯해 수많은 무기를 꺼내 놓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를 하며 들어가기도 얼마 간.
“뭐야? 여기가 끝이야?”
길이 사라지고 작은 공간 하나가 나타났다.
좌우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왠지 모를 허탈함에 힘이 빠지기도 잠시.
곧 그의 눈에 특이한 것 하나가 발견됐다.
벽에 붙은 듯 반쯤 박혀 있는 기둥 형태의 돌.
그 정중앙에 보라색으로 된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저건 뭘까. 보석 같아 보이는데, 넌 아냐? 제라드.”
-쌍둥이 마정석입니다.
“쌍둥이 마정석? 그건 또 뭐야.”
-쌍둥이 마정석은 한 쌍으로 된 마정석을 뜻합니다. 보통 원격 마법을 걸어 다른 마법을 이용할 때 사용을 하곤 하는데, 제가 판단하기로 이건 단순히 마나를 불어 넣는 용도로 설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가져가도 되는 건가?”
-주인님의 선택에 제가 관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위험하고 그런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재차 확인을 한 태정은 블라스터를 이용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곤 마정석을 잡아 힘을 가하자 툭 하고 떨어져 그의 손에 들어왔다.
“이거 크기가 제법인데? 팔면 가격 좀 나가겠어.”
뜻하지 않게 아이템을 얻게 된 태정은 마정석을 인벤토리에 잘 갈무리해 넣었다.
제주도에서의 첫 수확이었다.
그렇게 밖을 나간 태정은 세 번째 굴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똑같은 마정석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길은 끊기고 마정석만 덩그러니 있는 상황.
“여기도 아니야. 대체 퀘스트에서 말하는 그곳은 어디에 있는 거지?”
4번째까지 허탕을 친 태정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허탕은 아니었다.
마정석을 얻었으니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가 얻은 마정석은 총 4개였다.
이것만 해도 그는 인건비를 벌고도 남은 셈이었다.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아마 일주일 내내 포션을 물 쓰듯 써도 그리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배가 슬슬 고프네. 그래, 까짓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던데, 밥이나 먹고 생각해 보자. 마정석을 너무 많이 얻었더니 배가 홀쭉해졌어.”
* * *
메인 동굴 안.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퇴로가 완전히 막혀 버린 이쿠죠 팀은 허망한 얼굴로 출구를 바라봤다.
“야… 마사지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 글쎄.”
“이 자식아, 글쎄가 아니라 왜 저게 터진 거냐고. 네가 설치를 했잖아.”
이쿠죠의 추궁에 마사지마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역시도 왜 저게 터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래서 잘 숨겨 놓으라고 했지? 혹시 모른다고,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고.”
“네가 언제? 난 그런 소린 들은 적이 없는데. 뒤늦게 얘기했잖아.”
“척하면 척이지.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냐. 이제 어쩔 거야, 꼼짝없이 갇혔는데.”
“일단 남은 폭발석으로 뚫어 보고…….”
“남은 폭발석? 기껏해야 이제 5개인데. 그리고 1km 이상 되는 통로가 바위 더미로 가득 찼을 텐데. 100개가 있다 한들 그게 뚫리겠냐. 이건 뭐 붕어 대가리도 아니고.”
“뭐, 뭐 붕어 대가리? 너 이 자식 말 다 했냐, 지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했다 할 땐 언제고. 그렇게 따지면 너도 병신이지.”
“병신?”
“이 많은 사람이 여기 왜 필요해? 밖에 보초라도 세웠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어?”
도긴개긴이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팀의 헌터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병신 둘이서 ‘너 잘났네’, ‘나 잘났네’ 싸우는 거야 늘 봐 왔던 거라 새롭지도 않지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너 안 되겠다. 검 들어라. 오랜만에 좀 맞자. 이게 제 실수를 어디 나한테 뒤집어씌워.”
“그 말 왜 안 나오나 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나도 더 이상 너 같은 독재자 새끼랑은 일 못 하겠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 같자 결국 팀 내 서열 3위인 요시다가 중재에 나섰다.
“그만들 하십시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대책을 세워야지요. 이러다 우리 모두 산 채로 매장당하게 생겼습니다. 팀원들 생각 안 합니까?”
그의 말에 으르렁대던 둘이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며 무기를 거둬들였다.
“미안하다, 요시다. 내가 너무 흥분을 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라… 그리고 마사지마 붕어 대가리라고 한 거 사과하마. 애들도 보고 있는데. 내가 너무 심했어.”
“아니다, 이쿠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이런 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다들 미안하다.”
사과는 빠른 그들이었다.
어찌 됐건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한데 모인 그들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하지만 딱히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1km가 넘는 벽을 뚫고 나간다는 건 어떻게 생각을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그때.
무언가 결심이 선 듯 이쿠죠가 입을 열었다.
“안 되겠다. 역시 이 방법밖에 없어.”
비장한 그의 눈빛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사지마가 되물었다.
“무슨 방법?”
“결계를 해제하는 거다.”
“뭐? 자살을 하자고?”
“아니, 어차피 출구는 막혔고 저기로 나갈 수 없는 건 기정사실이야. 그럼 길은 하나밖에 없지. 바로 저곳.”
그가 결계로 막혀 있는 커다란 입구를 가리켰다.
“저곳밖에 없어. 결계를 풀고 놈들이 튀어나오면 이쪽으로 최대한 몰아넣는 거야. 그리고 어느 정도 수가 줄어든다 싶으면 냅다 달리는 거지. 저곳은 다른 굴과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 무사히 진입만 하면 다른 굴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너무 위험하잖아. 놈들이 뉘 집 파리 새끼도 아니고 하나하나가 우리에 버금가는 놈들인데. 그 많은 놈들을 상대로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속박진을 사용한다면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어. 물론 다 살아 나갈 거란 보장은 없지. 하지만 식량도 뭣도 없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기다림은 체력만 깎아 먹을 뿐이야.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해. 이게 유일한 해답이기도 하고. 목숨이 걸린 일이니 다수결로 간다. 찬성은 손을 들어.”
이쿠죠의 말에 서로의 눈치를 보던 헌터들이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체력이 떨어져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만장일치로 의견이 통일됐고, 이쿠죠가 마사지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해제 부탁한다.”
그의 말에 마사지마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헌터들은 속박진과 이속 버프를 챙겼고, 침을 꿀꺽 삼키며 결계가 해제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을 무렵.
해제를 하러 나섰던 마사지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이거 해제가 안 되는데?”
“뭐? 왜?”
“마정석에 반응이 없어.”
“반응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머지 동굴에 쌍둥석 설치 안했어?”
“했지. 근데 안 돼. 반응이 아예 없는데?”
“뭐라고? 이런 병신 같은 게. 그러니까 내가 두 번 확인하라고 그랬지?”
“뭐 병신? 말 다 했냐, 지금.”
“검 들어, 이 새끼야. 넌 도저히 안 되겠다. 너 같은 놈은 뒤지게 맞아야 돼.”
“흥. 누가 할 소릴.”
다시 바보들의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