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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메카닉 플레이어-94화 (94/182)

94화

레스토랑에 도착해 조식을 먹고 있는 태정은 공대장의 말을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공대장이 함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공대장의 클래스는 창기사로 은신 따위의 스킬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그곳에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는 몸.

더군다나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다면 저렇게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어젯밤 있었던 사건은 길드의 명운이 걸릴 만큼 초비상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일이기 때문이다.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걸린 걸 봤을 텐데. 왜 아무 말을 안 하지?’

도저히 감조차 잡히지 않던 그때.

앞에서 겸상을 하고 있던 박세아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저…….”

“어? 왜? 뭐 할 말 있어?”

“어제 일은 죄송했어요. 기다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어서.”

“시간이 그만큼 됐는데 자는 게 당연하지, 신경 쓰지 마. 근데 혹시 내가 나가고 나서 무슨 일 없었어?”

태정의 물음에 순간 화들짝 놀란 그녀가 말을 얼버무렸다.

“수, 순검이 왔었는데… 제, 제가…….”

“왔었어?”

“네.”

“어떻게 넘겼냐. 그놈들 말도 안 통하는 독종 같던데.”

“그냥 제가…….”

“응, 너가.”

“술에 취해 주무신다고… 하니 가던데요?”

“순순히? 희한하네. 그렇게 널널해 보이진 않던데. 뭐 아무튼 잘했어. 들키지 않았단 거지?”

“네.”

“그런데 어디 아파? 안색이 영 별론데.”

“그냥 좀.”

“맞아. 너 어제 술 마셨지. 하긴 양주를 그만큼 마셨는데. 속이 남아나겠냐. 얼른 먹어.”

“네.”

* * *

제닉스 길드의 인사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금사자 길드 내부는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뭐야? 그게 사실인가.”

“예. 2차 아이템을 진열하러 들어갔는데, 5층 메인 창고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예.”

“대체 경비를 서고 있던 놈들은 뭘 한 거야!? 아니, 아니야. 그놈들부터 조사를 해야지. 어떻게 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전부 조사실로 연행을 했습니다.”

“나온 건?”

“이제 막 조사 중이라 이렇다 할 무언가가 나온 것은 없습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게 다 얼마짜리인데. 피해액이 얼마야?”

“시세를 매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대충이라도 알 거 아닌가.”

“그게… 군수과에서 이르길 대략 1조 8천억으로 추정…….”

쾅!

보고를 듣던 최철호가 책상을 내리쳤다.

“내가 이래서 신규 창고 건설을 반대했던 거야. 그놈의 구조가 어쩌고 관리가 안 되니 마니 하더니. 결국 이 사단이 나고 만 게야. 이 일을 대체 어떻게 책임질 건가?”

그의 말에 긴급 소집해 있던 간부들이 너도 나도 시선을 회피했다.

그 모습에 더 분노가 이는 최철호였다.

“병기부, 이 일은 애초에 병기부에서 추진을 한 것이 아닌가. 왜 아무 말도 없이 쥐죽은 듯 가만히 있나.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 보게.”

“추진은 저희가 했지만 진행은 군수과에서…….”

병기부처의 대장이 군수과로 책임을 전가하자, 군수과장이 손사래를 치며 반박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는 오더를 받아 그대로 진행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승인을 내줬던 사업부에서…….”

“이봐, 말조심하게. 어디 우리한테 덤터기를 씌우려 그러나.”

쿵!

“다들 조용히들 해. 어떻게 인간들이 하나같이 다 책임은 없고 서로들 떠넘기기만 한단 말인가. 이러니 우리가 아직도 톱 파이브 안에 들지 못하는 거야. 공동체 의식이라곤 쥐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최철호의 말에 간부 전원이 속으로 똥 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일의 최종 승인은 결국 그의 손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최무혁이 기다리고 있으니 회담장으로 가지. 이 일은 회담이 끝나고 다시 의논해야겠어.”

* * *

식사를 마치고 회담장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지만, 어찌 된 연유인지 금사자 길드에선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매너가 영 꽝이군.”

벌써 한 시간째 자리에 앉아 있던 양태식의 말이었다.

다른 간부들 역시 심기가 불편하다는 기색이었는데, 상석의 최무혁도 영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더 흐른 뒤에서야 그들이 느긋이 모습을 나타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내부에 사정이 좀 생겨서.”

회담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양측 모두 협의점을 찾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 회담은 여기서 종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 있습니까.”

최무혁의 말에 좌중이 고개를 내저었다.

최종 결렬.

모두가 예상을 한 바였다.

“그럼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도 없겠군요. 저희는 이만 길드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차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회담장을 나온 그들은 금사자가 대기시켜 놓은 버스에 올라탔다.

함께 올라탄 최무혁을 향해 양태식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희 요청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떻게 사례를 드리고 싶은데. 잠깐 저희 길드에 방문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게 제가 하는 일인데요. 괘념치 마십시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사례를 받으면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러지 마십시오.”

이윽고 버스가 정문에 도달했다.

이미 기사들이 차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

한데, 그 앞으로 웬 병력들이 대거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차를 하자마자 막아서는 헌터들.

그중엔 조금 전 회담장에서 본 최철호 일당들도 함께였다.

심기가 불편해진 공대장 김한수가 최철호를 향해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절차이니 따라 주시게.”

“다 끝났는데, 대관절 또 무슨 절차가 남았단 말입니까.”

“그냥 간단한 절차야.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인벤토리 탐색을…….”

“뭐라고?”

최철호의 말에 그를 비롯한 모든 간부의 얼굴이 굳어졌다.

들어올 때야 보안 때문에 응했다지만, 나갈 때도 탐색을 한다는 건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함께 끼어 있던 최무혁이 나섰다.

“이유가 뭡니까.”

“아. 위원장님께선 그냥 가셔도 좋습니다. 이건 위원장님과는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

“관련이 없다니요. 제가 이곳에 조정위로 나왔는데, 이렇게 묶어 두려 하시면 곤란합니다.”

“이유가 있는데도 안 되겠습니까.”

“들어 보고 결정하죠.”

예상외로 우직하게 나오는 최무혁을 보며 최철호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그냥 갈 것이지. 사사건건 참견을 하고 지랄이야.’

속마음과 다르게 그는 미소를 띠며 사정을 말했다.

“간밤에 저희 1급 창고가 누군가에 의해 털렸습니다.”

“도둑이 들었단 말입니까.”

“예. 이전 공사로 보안 시스템이 모두 내려간 틈을 타 들어온 것 같더군요.”

“그럼, 지금 마스터께선 그 범인을 제닉스로 보고 계시는 겁니까?”

“범인이라 말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저들이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있지 않았던 일이고, 인벤토리 탐색의 경우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거지요.”

최철호의 그 말에 제닉스 인사들이 분개했다.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지금 우리를 도둑으로 모는 것인가.”

“회담이 결렬되니 이제 별의별 더러운 수가 다 나오는구만.”

“내 살다 이런 치욕은 또…….”

순식간에 좌중이 시끄러워지자 양태식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곤 최철호를 향해 단호히 얘기했다.

“우린 탐색에 응하지 않겠소. 톱 티어나 되는 길드가 이 무슨 추태란 말이오.”

양태식이 그리 말하자 최철호의 말투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댁들의 동의를 구한 적은 없네만.”

“뭐야!?”

더 이상 무시를 당할 수 없다는 듯 김한수의 신형에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분노에 못 이긴 그가 스킬을 끌어 올린 것이다.

그 모습에 그들을 둘러싼 헌터들의 몸에서도 각양각색의 빛이 솟아났다.

여차하면 들이받겠다는 기세.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최철호 일당은 그저 비웃음만 날릴 뿐이었다.

보다 못한 최무혁이 중재안을 내놓았다.

“다들 너무 흥분하신 것 같은데, 진정들 하십시오. 금사자 마스터께선 꼭 탐색을 하셔야겠습니까.”

“간단한 절차일 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닉스 길드의 명예와도 관련이 된 일입니다. 그에 따른 책임은 어떻게 지실 생각입니까.”

“길드 내규의 절차인데, 책임이라뇨? 중립을 지키셔야 할 위원장께서 어째 계속 한쪽으로 추가 기우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곤란하다? 그래서요?”

“불공평한 조처에 민원을 넣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최철호의 협박에 사람 좋아 보이던 최무혁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민원이라. 지금 그따위 것도 협박이라고 지껄이는 건가.”

살기마저 내비치는 서슬 퍼런 말투에 최철호가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곳엔 든든한 그의 친구 무적 길드의 마스터 조영민이 있었다.

줄곧 구경만 하던 그가 최철호의 옆에 섰다.

“협박이라뇨. 그리고 그 말투는 아무리 한산도의 사람이라고 해도 듣기가 좀 거슬립니다만.”

이쯤 되자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인 태정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렇게까지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탐색이 있다 해도 그는 당당하게 보여 주고 지나가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들어올 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간부들의 자존심과 길드의 명예.

퀘스트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자책을 하고 있는 사이,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무적과 금사자 그리고 한산도.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들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결국 가장 먼저 고집을 꺾은 건 비교적 약체인 제닉스였다.

더 이상 최무혁을 곤란케 만들기가 싫었던 것이다.

“저희가 그냥 탐색에 응하겠습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최무혁의 눈빛을 겨우 받아 내고 있던 조영민이 시선을 회피하며 얼른 그 말을 받았다.

“그렇게 나오셔야지. 진즉에 그렇게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자자. 그럼 한 명씩 이쪽으로…….”

기 싸움에서 이긴 보람을 막 느낄 무렵.

갑자기 귀가 웅웅거리며 대지가 미친 듯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웅-!

“뭐, 뭐야?!”

“지, 지진인가.”

“아냐. 이건 틀려. 이건…….”

소리를 치던 헌터들이 어느새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벌리고 충격에 빠진 얼굴이 되었다.

건물.

건물이 나무 뽑히듯 뽑혀 나가고 있었다.

3층, 5층 할 것 없이 콘크리트가 부서지고 철근이 뜯겨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상황.

그 숫자가 무려 100여 채에 달했다.

그 경이로운 광경에 오직 최무혁만이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 저기!”

손을 하늘 높이 쳐든 그의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건물 사이의 펄럭이는 붉은 망토.

그것은 허공에 떠 오만한 눈으로 대지를 굽어 보고 있는 한 여인의 것이었다.

동시에 여인의 얼굴을 확인한 최철호와 조영민이 경악한 듯 소리쳤다.

“마,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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